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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판 정보
하루하루가작별의나날 알랭레몽 저 | 현대문학 | 2001년 05월 [절판]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34972396 / 312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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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금빛처럼 찬란했던 청춘과 방황, 아름답고도 고독한 생生의 의미…
김화영의 유려한 문장으로 만나는 ‘알랭 레몽’의 자전적 성장소설!
★★ 1999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화제작! 〈렉스프레스〉 ★★
아름답고도 고독한 인생의 의미를 모노톤의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려낸 알랭 레몽의 중편소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두 편의 걸작을 ‘모던&클래식 시리즈’로 한데 엮었다. “집이 팔려버렸다”라는 독백으로 유년의 기억을 여는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왜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작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삶의 궤적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 나선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1968년 5월, 파리 전역을 뒤흔든 ‘68혁명’과 이념의 대립 한가운데에서 ‘삶의 진실’과 ‘진정한 삶’에 목말라하던 한 젊은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프랑스 문학 번역의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의 유려하고 탄탄한 문장이 빛난다. 2009년 타계한 故김점선 화백이 생전에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을 읽고 ‘살아갈 날이 많은 이들’을 위해 남긴 편지가 해제로 수록되어 더 뜻깊고 반갑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 끊임없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일이었다.” 삶의 궤적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건져 올린 알랭 레몽의 빛나는 회고록! ★ 생의 본질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파노라마 소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그 나직하고, 그러면서도 좀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하마터면 수십 년 동안 참아온 울음을 퍽, 하고 터트릴 뻔했다.” _김화영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집과 가족에 관한 기억들을 흑백사진첩을 펼쳐보이듯 관조한 자전소설. 어느덧 아버... 출판사 서평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 끊임없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일이었다.” 삶의 궤적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건져 올린 알랭 레몽의 빛나는 회고록! ★ 생의 본질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파노라마 소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그 나직하고, 그러면서도 좀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하마터면 수십 년 동안 참아온 울음을 퍽, 하고 터트릴 뻔했다.” _김화영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집과 가족에 관한 기억들을 흑백사진첩을 펼쳐보이듯 관조한 자전소설.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가 된 일인칭 화자(작가)는 “트랑의 집이 팔려버렸다”라는 쓸쓸한 독백으로 이야기를 연다. 끝내 이방인일 뿐이던 아버지와, 십남매의 버팀목이 되어준 슬프도록 강인했던 어머니,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자신의 모든 기억의 원천인 ‘집’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화자는 죽음과 이별, 상실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왜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작별해야 하는가?”라는 거대한 물음에 직면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의 궤적 속에서 건져 올린 작가의 독백은 독자의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사와 가족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작가적 용기가 빛나는 이 작품은 “인생이란 모든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과정”이라는 생의 진리를 전하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 생을 꽃피워낼 청춘, 그들에게 건네는 노장의 축전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거의 미칠 듯한 추진력에 떠밀려 번역해본 적이 없다.” _김화영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책과 책상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하얀 얼굴의 열일곱 소년이 청춘의 불안과 고뇌를 거쳐 마침내 홀로서기까지의 숨 가쁜 행로를 담았다. 견습사제의 길을 걸으며 ‘어지간히도 착하게만 살아왔던’ 소년은 68혁명과 사회적 모순, 이념의 대립을 겪으며 세상의 한복판으로 용감하게 나아간다. 어느 한순간도 온전치 못했던 폭풍 같은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가 된 그는 비로소 “삶은 현기증 나도록 영원하고, 우리의 삶은 항상 전진한다”라는 거대한 ‘삶의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이 땅의 청년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달리고 달려라”라고 당부한다. 작가의 진심 어린 목소리는 불안한 미래 앞에 좌표를 잃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숨을 고르고, 돌아보기를” 권하는 작은 이정표가 된다. 다채로운 삶의 이면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길어 올리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지성 ‘알랭 레몽’의 자전적 성장소설 “추억에 관한 단서를 찾는 과정은 인생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업이었다.” _알랭 레몽 영화평론가이자 교수, 저널리스트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프랑스 현대문학의 지성’ 알랭 레몽. 그를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대문학 작가로 등극시킨 것은 20세기 말, 폭풍처럼 써내려간 자전적 성장소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면서도 깊은 호흡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01년 한국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였고, 호소력 짙은 문장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언론의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을 직접 고르고 옮긴 김화영 교수뿐만 아니라 故김점선과 정은숙 등 예술가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애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작가 자신의 원체험(原體驗)을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이다. 십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나, 푸른 대자연 속에서 놀이의 기쁨을 만끽하며 보낸 유년기는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의 배경이 되었고, ‘68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치열한 청년기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의 모티프가 되었다. 이별과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는 자전적 성장소설과, 이념의 대립과 사회적 모순 앞에 방황하는 한 청년의 고백적 성장소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삶의 이면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해내며 ‘성장소설’의 지평을 넓힌 두 편의 연작소설은 작가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물론, 혁명이 휩쓸고 간 현대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문학사적으로도 의의를 가진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알랭 레몽의 독백을 프랑스 문학 번역의 최고 권위자 김화영의 유려한 번역으로 만나다! 프랑스 여행 중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한 김화영 교수는 처음엔 ‘만만해’ 보여서 집어 들었지만, ‘식지 않은 불덩이’처럼 뜨거운 목소리가 내내 따라다녀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번역 말미에 “이토록 빠른 속도로, 거의 미칠 듯한 추진력에 떠밀리며 번역해본 적이 없다”라고 덧붙인다. 유년기과 청년기의 기억 면면을 뜨거운 시선으로 돌아본 알랭 레몽의 독백은 대한민국예술회 회원이자 프랑스 문학 번역의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의 유려한 번역으로 다시 태어나 가슴 먹먹하면서도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또한 2009년 타계한 故김점선 화백의 서평은 마치 ‘살아갈 날이 많은 이들’에게 남긴 한 통의 편지 같아서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과 묵직한 여운을 더한다.
명사의 추천
딴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우리 집에.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가끔 내가 살던 마을에 간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떠돌다가 온다. 그럴 때 느끼던 서사적인 슬픔이 이 책에서 느껴진다. 사람이 태어난 집에서 죽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에 누군가가 뻔뻔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나서 거기 사는 데도 알 수 없는, 옅은 분노가 치민다. 왜 나의 공간에 들어서 있는가 하는……. 감성은 터무니없다. 세상의 법칙을 따르길 거부한다. 괜히 심통이 나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유니온 영어 교과서에서 읽은 시가 떠오른다. 〈솔로몬 그런디의 생애〉. 솔로몬 그런디는 월요일에 태어났다. 화요일에 세례받고, 수요일에 결혼하고, 목요일에 병들고, 금요일에 더 나빠지고, 토요일에 죽는다. 일요일에 땅에 묻힌다. 이것이 솔로몬 그런디의 생애다. 이것이 전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천 번은 소리 내서 외웠을 것이다. 물론 혼자 있을 때, 씁쓸히. 이것이 ‘그의 생애다’라는 문장으로 끝낼 때, 꼭 내가 죽는 순간을 내가 보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도 그랬는데, 그 후로도 변함이 없다.
알랭 레몽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에는 이 시에서 느꼈던 서사적인 슬픔이 그대로 살아 있다. 자신의 생애를, 죽음까지를 되도록이면 짧게, 이 책처럼, 이 시처럼 써보면 맘이 가라앉으면서 정리될 것이다. 허황된 욕심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소년이 알게 된 비밀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어린이에게 충격이 되는구나 하고 충격받았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부모는 너무 지겹게 밀착된 생을 살아서 구역질을 느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는 그때 개인적인 애정에 얽매여 인생을 탕진하는 인간들을 경멸했었다. 남녀 간의 사랑 말고 다른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단 말인가 하면서 그들을 경멸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소년은 충격을 받는다. 나는 두고두고 생각할 일이 생긴 것이다.
소년은 또 말한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이 세상에 ‘내가 충분히 사랑한 우리 아버지’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존재할까. 아버지뿐만 아니다. ‘내가 충분히 사랑한 그대’ 이런 말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맹세한다. 이 세상에는 충분한 사랑이란 없다. 누구나 사랑하는 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넘친다고 생각하는 자는 이미 사랑이 끝난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들이여, 죽은 자 앞에서 지난날의 부족했던 사랑 따위를 말하지 말라. 자신이 인간임을 받아들여라. 부족함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철저히 미쳐버려라.
故김점선 (화가)
* 故김점선 화백이 2002년 10월 24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하였습니다.
학교나 직장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사람은 그 떠나온 기간과는 무관하게 ‘집’을 떠나 살고 있다는 상실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물질이 눈에 닿았을 때처럼 심한 아픔을 동반하는 그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집’에 대한 추억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항상 옛날 자신이 살던 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옛날 집이 어찌 그렇게 따뜻하기만 했으랴. 때론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가한 사람이 가족일 수도 있는 법이니, 이 그리움의 정체는 애증의 차원인 것이다.
이번 주말 오후, 나는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란 책을 읽었다. 소설인가 싶으면 에세이 같고 에세이인가 싶으면 소설 같은 느낌의 독특한 책이었다. 알랭 레몽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어서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이 책을 빨리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 그 하나는 이 책의 번역자가 김화영이라는 것, 또 하나는 표지가 퍽이나 아름다웠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끝 문장에 이끌렸다는 것이다.
나를 유혹한 끝 문장은 이렇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오, 평화!
단숨에 읽고 난 후 이 책에 대한 느낌은 복잡했다. 슬프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고 쓸쓸한 느낌.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는 느낌이 나를 적막하게 만들었다. 번역자 김화영은 “하마터면 수십 년 동안 참았던 울음을 퍽, 하고 터뜨릴 뻔했다. 그러나 실제로 울지는 않았다”고 적고 있다.
저자인 알랭 레몽은 현재 프랑스의 유명 주간지 편집국장으로 깊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십남매 중 여덟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깊은 시골’, ‘십남매’, ‘가난한 집’이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내포함직 하지 않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의 집이 다른 이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순간 일생의 추억에 잠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은 천국의 행복과 맞먹는 것으로 기억되지만(국적을 초월한 아이들 세계의 유사함이라니!), 어린이들끼리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을 보면 사실은 부모의 불화, 술꾼 아버지의 이른 죽음, 정신병을 얻은 누이의 그림자가 어둡게 배면을 드리우고 있다.
행복과 동시에 너무나 많은 불행이 서려 있는 시골집의 추억들.
저자는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라는 샤토브리앙의 글을 차용해 제목으로 정했다. 어린 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온 사람들. 왜 사람은 사랑하는 것들과 작별해야 하는가? 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일까? 이 회한 어린 질문은 우리 마음의 현을 울린다.
다시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을 읽는다.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모르탱의 집은 허물어졌다. 르 테이욀의 집은 허물어졌다. 트랑의 집은 팔려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이가 죽었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유년시절에는 이렇게 빨리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줄 모른다.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작별 인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 문득 어떤 계기로 그는 너무 늦게 유년시절과 작별 인사를 한다. 이 계기가 이 책의 저자에게는 ‘타인에게 집이 팔렸다는 소식’인 것이다. 저자는 그 속에서 영혼을 묻고 몸을 굵게 했던 과거의 집과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저자만의 인사겠는가. 우리는 모두 매순간 모든 것과 작별한다. 또 매순간 새로운 대상, 새로운 인간과 만난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에선 똑같은 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억을 회상하며 우리는 늦은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잘 가라, 나의 지나간 시절들아,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회한들아!”
이 간절한 작별 인사로써 추억은 완성되는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팔든지 말든지 마음대로들 해요, 난 아무래도 좋으니. 나는 알고 싶지 않아. 전혀 관심 없어. 집이라는 게 웬만해야 말이지. 골목 두 개 사이에 틀어박혀 가지고 다른 두 집 사이에 꼭 끼어 있는 집. 터는 있느냐고? 조그만 마당 하나. 그것도 길 건너 저쪽에. 어찌나 보잘것없이 생겨먹었는지 벽지가 붙잡아주어서 간신히 지탱하는 집. 방들은 또 어떤가. 칸수를 늘리려고 쪼개고 또 쪼갠 공간들. 난방은 아예 안 되고. 이층. 그야말로 형편없는 집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맘대로 팔라고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그렇다. 정말 그게 당시의 내 속마음이었다. 그런데도 이브가 그 얘기를 꺼내자 자다가 깬 것처럼 퍼뜩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오직 한 가지뿐. 딴 사람들이 들어 살고 있구나, 우리 집에.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 집이 우리 집이었었지? 그 집으로 이사 갔을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렇게 따져보니 한 이십 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도 넘었다. 그렇대도 그 집은 우리 집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불청객들은 나가라, 감히 어디라고! 꺼지란 말야! 그 집은 당신네 집이 아냐. 우리 집이란 말야. 그 집에 살면서 겪은 일들이 너무 많고 너무 지독하고 너무 찐해. 거기서 우린 너무나 행복했어. 그리고 때로는 여지없이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 열 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들 전부. 그리고 부모님들도. 지금 나는 트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집에서 먼 곳에, 그 모든 것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17-18페이지)
이따금씩 새 옷을 사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퐁토르송에 있는 티에리네 옷가게에 들어가서 손가락을 입에 댄 채 지갑 속의 사정을 고려하는 한편 내게 사 입혀야 할 윗도리를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는 점원과 이야기를 하고 값을 좀 깎아보려고 애를 쓰고 여러 번에 나누어 돈을 내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 품질이 비슷하면서도 좀 덜 비싼 것은 없겠는지 알고 싶어 한다. 퐁토르송에 있는 티에리 상점 안에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서 있는 우리 어머니. 깊은 생각에 잠긴 우리 어머니. (62페이지)
나는 샤토브리앙이 쓴 그 유명한 《무덤 저 너머의 회상》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중략) 나는 그의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었다.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 콩부르의 숲을 떠나야만 했을 때의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을 표현한 대목이었다. 왜 어린 시절부터 사람은 사랑하는 모든 것과 작별을 해야 하는 것일까? 왜 모든 것들은 허물어지고 마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84-85페이지)
하마터면 가질 뻔했던 그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을 애도한다. 나는 그 부당함이 억울해서 이 세상 전체를 저주한다. 내가 아들로서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말이다. 모든 것이 너무 늦게 왔다. 나는 이제부터 그 상처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마치 그런 상처가 없기라도 하다는 듯이 행동하려 할 것이니 말이다. 마치 그런 상처가 없는 척. 침묵을 지키면서. (93페이지)
트랑에 있는 우리 집의 새 주인들도 왔다. 그곳에 와서 영구히 자리 잡은 두 사람의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내가 원한다면 그 집을 다시 와서 보라고 했다. 아니다. 나는 그 집을, 우리 집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내 속이 까맣게 타버릴 것이다. 너무 많은 추억들 때문에. 너무 많은 행복, 너무 많은 죽음들 때문에. 그렇지만 나는 트랑에 다시 가보았다. 나는 맞은편 포도에 서서 빨리, 슬그머니 도둑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머물지 말고 얼른, 얼른, 보고 가야지. (301페이지)
목차
[작품 소개] 충분한 사랑이란 없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작품 해설] 나를 향해 오고 있는 목소리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작품 해설] 폭풍 같은 성장과 구도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