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 정가
- $58.00
- 판매가
-
$31.90
(45%↓)
- 적립금
- $0.64 (2%P)
품절된 상품입니다.
이 책을 꼭 원하시는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문의"를 클릭 후 구매의사를
알려주세요. 책이 확보 될 경우 연락 드리겠습니다.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94606392 / 628쪽 152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14,400
- 16,020
- 32,400
- 42,300
- [시리즈] 19세기의 동아시아 [4]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서구와 근대가 만든 시간관(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다시 구축하자” 역사,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 명의 연구자가 모여 진행한 세미나 40회, 워크숍과 학술대회 3차례의 성과를 담은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의 첫 책 이 책의 제목인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라는 질문은 서구적 근대가 만든 표준적인 발전론(목적론)의 역사인식이나 시간관으로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한국사회의 통념은 아직도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의 ‘근대’를 19세기 중반 ‘... “서구와 근대가 만든 시간관(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다시 구축하자” 역사,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 명의 연구자가 모여 진행한 세미나 40회, 워크숍과 학술대회 3차례의 성과를 담은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의 첫 책 이 책의 제목인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라는 질문은 서구적 근대가 만든 표준적인 발전론(목적론)의 역사인식이나 시간관으로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한국사회의 통념은 아직도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의 ‘근대’를 19세기 중반 ‘서구의 충격’ 이후 형성된 것으로 바라본다. 능력에 기반을 둔 관료제와 과거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특권이 통하지 않는 토지소유구조, 당시로선 가장 개명한 합리적 사상이었던 주자학 등,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에 나타나는 많은 것들이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으나 단지 그것이 ‘서구의 충격’을 받기 이전, 서구를 수용하기 이전의 현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근대적인 것’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을 규정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세계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대두하면서 ‘중국과 동아시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21세기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또한 자본주의와 지속가능성, 환경과 생태 등 서구적 근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도 마치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서구 중심, 근대 중심주의의 시각에 포섭된 양상이다. 이 책이 던지는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의 질문은 동아시아 사회가 서구적 근대와 같은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와 ‘근대’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관념을 제거한 뒤 다시 동아시아 역사상을 구축하자는 촉구이다. 동아시아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 되었던 서구 중심적, 근대 중심적 인식을 넘어선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상의 구축을 모토로 한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의 특징은 첫째, ‘19세기의 동아시아’에 주목한다. 19세기는 서구에서 형성되어간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수용되는 시기이자, 서구와 동아시아가 본격적으로 만나고, 전근대와 근대의 결절점을 이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위를 넘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운데 구체적인 사례연구로 동아시아 각국을 넘나들고 현재와 전근대를 연결하며 ‘어떻게’의 문제에 답변을 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근본적인 ‘무엇을 위해’, ‘왜’라는 질문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셋째,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19세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만 서구적 근대를 향해 달려 나가는 종래의 시대 묘사나 연구들과 매우 다르고, 나아가ㅡ 연구시각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와 트랜스내셔널한 시점의 접근, 문화와 사유, 삶의 방식을 유교와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엮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미야지마 히로시, 배항섭 선생이 주도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연구모임은 지난 4년 동안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대만사, 베트남사 등의 역사학과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명의 연구자가 모여 세미나 40여회, 워크숍과 학술대회 각 3차례를 진행하였고, 그 성과를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로 담아낼 예정이다.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는 그 첫 책이다. 서구중심주의의 쌍생아, 근대중심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우리는 ‘전근대적’ 운운하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정작 ‘전근대’와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몰상식한’, ‘무식한’이란 형용사를 ‘전근대적’이란 용어와 혼동하는 것이다. 역사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한국사의 경험과 현상을 ‘한계’나 ‘미흡’, ‘결함’이나 ‘비정상’으로 간주할 때 쓰인다.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가 시종 문제를 삼는 ‘근대 중심주의’에 압도된 영향 때문이다. 근대 중심주의 시간관(역사관)은, 근대는 새로운 체제·가속·혁명으로, 전근대는 낡고 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비가역적으로 지나가버리는 과거 전체를 처음부터 무(無)화한다. 근대를 목적론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대로 설정하며 ‘전근대’를 종속시키는 것, 그것이 근대 중심주의이다. 따라서 전근대-근대의 시기 구분은 처음부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근대-근대의 시기 구분이 중국은 아편 전쟁, 일본은 메이지 유신, 한국은 개항기로 분기점을 나누어왔다. 역사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다. 이는 동아시아 세계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근대’를 선취한 ‘서구의 충격’에 따라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근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순간 동아시아 전근대의 개성적 경험이 지닌 풍부한 가치나 가능성을 스스로 봉인하며, 전근대는 근대에 종속된다. 이는 전근대로부터 근대의 너머를 바라볼 가능성마저 봉쇄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의 토지소유권은 서구의 중세와 달리 ‘근대적’ 내지 ‘일물일권적·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나 일본의 경우 지주제 역시 배타적 소유권이 확립된 ‘근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달리 조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적 질서와 무관한 ‘전근대’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들은“조선사회가 비근대사회였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소유권도 비근대성을 띠고 있었다.”거나, 대한제국기를 포함하여 조선 왕조는 어디까지나 전근대적 범주에 속하였다고 단정함으로써 기껏 발견한 조선사회의 주요한 특성을 서구와 근대중심주의의 인식틀 속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토지소유권에서 보이는 특징이 다른 분야와 어떤 내적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처음부터 차단해버렸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서구의 충격’을 일방적으로 강조해온 메이지유신의 연구와 반대로, 도쿠가와 일본의 막부체제가 ‘서구의 충격’ 이전에 이미 ‘유교적 영향’으로 동요·변질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메이지유신을 바라본 최근의 연구(이 책의 9장 박훈의 ‘사무라이의 ‘사화’,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참조)가 주목된다. 그 역시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 기반을 둔 설명틀을 거부한다. 종래의 주류적 견해에 따르면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일본은 유학의 영향력이 약해서 유학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는 점, 곧 전통과 단절하기 쉬웠음이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박훈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오히려 유교라는 전통적 요소가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전통과 근대를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역사상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배항섭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여 서구·근대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서구의 충격’이후 구성된 동아시아 역사상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며, 나아가 서구적 근대만을 향해 달려 나가는 근대 이후 동아시아의 학문과 지식체계에 대한 비판”이라 하며, 이를 위해 동아시아 세계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접근이나 비교사적 접근과 함께 ‘시간을 넘나드는’ 접근, 그리고 전근대와 근대를 비교하거나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접근을 제안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처음에 지적했듯이 유교적 근대론을 제기하는 한 가지 목적은 일본과 한국의 근대를 파악하려면 서구적 근대를 수용한 19세기 후반 이후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그 이전의 유교적 근대의 영향도 더불어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유교적 근대론의 견지에서 보면, 조선시대나 도쿠가와 시대의 조·일 양국은 유교적 근대의 주변적 존재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성이 일본과 조선에서 각각 정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교, 주자학을 둘러싼 양국 언설의 대조적인 모습도 그런 현상형태의 하나였다. 곧 도쿠가와 일본에서의 탈주자학과 조선시대의 주자학 일원화는 모두 중심으로서 중국이라는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며 생겨난 경향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조적 모습이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반복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불 수 있다는 점이다. 곧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와 다른 점(전전의 천황제나 ‘근대의 초극’, 전후의 일본적 경영 등)에서 아이덴티티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던 데 비해, 식민지기 조선에서 현재 한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사회주의나 그리스도교라는 서구 기원의 사상이나 종교가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20세기 들어 조선에서는 유학자 가운데 사회주의자가 다수 등장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점도 유교적 근대의 규정성을 빼고는 이해되지 않는다. - 본문 57~58쪽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메이지유신이 이뤄졌다. 그에 따라 만들어진 메이지국가의 정치체제는 병영국가적 요소를 다분히 남기면서도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활발해진 속에서 서양 정치문화와 맞닥뜨렸다. 서양 정치문화는 주로 ‘사대부적 정치문화’를 매개로, 그 맥락에서 수용·변용·왜곡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받아들여졌다. 그 과정을 주도한 이들은 막말 수십 년 동안 격동을 거치며 광범하게 형성된 ‘사대부’들이었다. 건백서나 상서가 난무했다. 당시 폭발적으로 확장한 신문도 이 상서의 열기에 뒷받침된 측면이 강하다. (중략)
그러나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확산되어가는 가운데도 끝내 민주주의는 그 선상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서양 정치사상을 수입하면서 이뤄졌다. 동아시아에서는 민과 이의 ‘사화’를 거쳐 정치적 확대가 이뤄졌지, 민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발상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민은 따르게 해야지 알게 해서는 안 된다(『論語』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라는 사상은 19세기 말까지 많은 지식인에게 여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이나 조선의 동학농민운동, 민민공동회 같은 정치현상은 ‘민주’라는 프레임 이전에 먼저 ‘사화’라는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운동들이 대부분 군주와 왕정을 인정했다는 점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근세’정치사의 여러 현상 그리고 근대의 수용과정을 ‘실태적으로’ 이해하려면 ‘근대적 잣대’, ‘근대적 가치기준’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 당시인들이 남긴 일차 사료에 밀착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독자적 맥락’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언어와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은 ‘근대에 사는 연구자’에게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일본의 막말 유신 정치사를 소재로 이런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해 본 것이다. - 본문 299~300쪽
목차
머리말
1부_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유교적 근대론’과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위치
1.‘유교적 근대론’에 관하여
2. 일본에서의 유교 문맥
3.‘재발견된 주자학’론의 문제점
4. 유교언설의 지형학
2장 동아시아사 연구의 시각: 서구·근대 중심주의 비판과 극복
1.‘새로운 세계사’와 동아시아
2. 서구중심주의의 쌍생아, 근대중심주의
3. 동아시아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4.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의 방향
5. 전근대로 근대를 심문하는 것
3장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1. 20세기의 동아시아적 관점
2.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3.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4. 동아시아적 관점과 주체성
4장 한국사 연구자의 딜레마
1. 새로운 패러다임
2. 세계사 속에서 본 한국사
3. 조선을 근세국가로 보는 근거
4. 대안적 접근방식인 ‘선진화된 유기적 사회’
5. 선진화된 유기적 사회
2부_ 연동하는 동아시아
5장 동아시아 은 교역과 조선
1. 조선과 은
2. 인식과 상황의 전환
3. 동아시아의 은 교역 체제
4. 은 유통의 여파
5. 연동하는 동아시아
6장 일국사를 너머 변경사로: 여진-만주족과 조선의 관계
1. 몽케 테무르와 조선 변경
2. 일국사적 관점
3. 만주중심주의
4. 신청사와 변경사
5. 한중관계사를 너머 변경사로
7장 19세기 조선의 동문의식과 한문 근대
1. 왜 19세기의 동문의식인가
2. 동문의식의 기원
3. 『사고전서』의 편찬과 동문의식의 강화
4. 청일전쟁 이후 동문의식의 변용
5. 19세기 동문의식의 의미
8장 인도차이나의 ‘열린’ 바다: ‘근대’ 하이퐁의 풍경과 애환
1.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형성된 하이퐁의 실상
2. 하이퐁의 전통과 ‘근대’로의 이행
3. 하이퐁의 교류 양상과 현지 사회
4.‘근대’ 하이퐁의 치열한 ‘삶’
3부_ 유교와 동아시아
9장 사무라이의 ‘사화’: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1.‘근세사’ 연구의 방법론적 문제
2.‘근세’ 동아시아 정치사와 ‘정치문화론’: ‘유교핵 정치문화론’에 대한 평가와 비판
3.‘근세’ 동아시아 정치사 이해를 위한 개념으로서의‘사대부적 정치문화’
4. 중국·조선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행방
5.‘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의외의 출현, 막말 일본
6. 메이지유신 후의 행방
10장 법문학적 관점에서 본 유교적 사법전통
1. 문제의 제기
2. 법문학 운동이란 무엇인가?
3. 유교적 사법전통과 법문학 운동의 관계
4. 동아시아 사법전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11장 “광작을 자제하라”: 19세기 어느 성리학자의 가작과 그 지향
1. 성리학자는 농사에 무관심했을까
2. 김씨가의 농업사 관련 자료
3. 노비 규모와 가작 면적 추이
4. 가작지의 생산성
5. 집약화와 다각화를 통한 자급, 그리고 안민
12장 『목민심서』에 나타난 다산 정약용의 ‘인시순속’적 지방재정운영론
1. 정약용이 본 지방재정, 무엇이 문제였나?
2. 대동법 실시와 지방재정운영의 모순
3. 지방재정운영과 방납·은여결 문제의 인식
4.‘인시순속’의 지방재정운영론
5. 『주례』의 이상과 국법의 준수, 그리고 인시순속의 구상
4부_ 비교사로 본 동아시아
13장 조선의 『부역실총』과 명·청의 『부역전서』 비교
1. 비총제\u003d총액제적인 지역별 재원 액수의 설정 기준은?
2. 『부역실총』의 비총제적 성격
3. 『부역전서』에서 본 명·청대 재정
4. 18세기 비총제 재정의 조선적 특성
5. 『부역전서』와 『부역실총』 그 이후
14장 1920년대 한국과 대만의 자치운동
1. 식민지 경험에 대한 기억의 차이는 왜 생겼는가
2. 식민지자치운동의 전개과정과 이론 구조
3. 두 지역의 지배층과 문화적 개성
4.‘중국’ 요인과 두 지역의 민족운동
5. 식민지화 전후의 역사에 대한 겸고
주 501
참고문헌 581
찾아보기 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