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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아서

미야지마 히로시 저 | 노영구 역 | 너머북스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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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606255 / 255쪽 152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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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인에게 양반은 무엇인가?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은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 “한국의 유교적 전통은 중국을 존숭하는 민족성이 아닌 역사적 형성물이다” 십수년 전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옮겨와 화제가 되었고, 작년에 40년 한국사 공부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낸 바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 명예교수)가 최근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의 주저인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을 다시 출간하였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양반’이 키워드임은 두말... 한국인에게 양반은 무엇인가?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은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 “한국의 유교적 전통은 중국을 존숭하는 민족성이 아닌 역사적 형성물이다” 십수년 전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옮겨와 화제가 되었고, 작년에 40년 한국사 공부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낸 바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 명예교수)가 최근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의 주저인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을 다시 출간하였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양반’이 키워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오늘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는 유교적 전통과 맞닿은 맥락이 무엇인지와 연관해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만큼 정리된 이해를 갖고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은 15, 16세기 재지양반층의 광범위한 형성을 1단계로 하고 18, 19세기 양반적인 가치관, 생활 이념이 향리나 서얼 등의 중간층은 물론이고 농민들에게까지 침투한 양반 지향 사회의 성립을 2단계로 하여 사회 구석구석까지 유교적 생활 관습이 정착하는 모습을 펼쳐낸다. 저자는 부분을 감싸 안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그동안 한국 역사학계의 여러 연구 성과들을 적절하게 종합하면서 한국의 전통 사회를 하나의 뚜렷한 흐름 속에 담아냈다. ‘양반’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되게끔 이 책의 기술(記述)은 요령 있고 체계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통이 사회 전체로 보급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것은 한국인의 긴 역사에서 본다면 그렇게 오래지 않은 산물이라 한다. “전통이 오랜 시대부터 존속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면 전통과 근대를 대립해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것은 19세기 후반인 근대에 들어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면도 보입니다.”라며 특히 18세기 이후 양반층의 지방지배에 도전하려고 새로이 성장해온 계층도 그 목적은 양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양반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고 피력한다. 이 결론은 전통을 하나의 역사적 형성물로 객관적으로 짚어낸 다음 다다른 생각이라는 점에서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미야지마 교수는 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정밀하고 풍성하게 복원해낸 이 책에 이어, 조선시대 양반의 ‘정신세계’에 대해 고찰한 책을 집필할 것이라 한다. 1.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서 추석 때 차례와 성묘를 위해 귀성하는 한국인 친구를 따라 경북 안동에 들렀던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같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일본과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오늘날에도 유교적 전통을 일상생활 곳곳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통념과는 달리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유교적인 예가 일반 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간 것은 조선시대 후기인 18, 19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통치이념으로서의 주자학 수용과 생활규범으로의 전면적 수용 사이의 긴 시간적 거리를 메우며 주자학의 이념을 조금씩 일상생활 속으로 운반해 들어간 주체는 누구이며 그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미야지마 교수는 양반 계층, 특히 재지양반층의 형성 과정을 밝힘으로써 이 질문에 답한다. 그런데 왜 재지양반일까? 서울양반〔京班〕은 비교적 가계의 근본이 분명했고 누가 봐도 양반이었지만 사회 전체로 본다면 한 줌의 특권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재지양반은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하였고 한국 전통 사회의 특징을 고찰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유교적 전통과 친족, 가족제도의 존재 방식 등도 재지양반층의 형성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재지양반은 어떤 존재였으며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안동 권씨 권벌 가문을 모델로 하고 해남 윤씨 윤선도 가문과 그 밖의 일족을 곁들여 우리에게 재지양반의 전형적이고도 구체적인 이미지(像)를 보여준다. 권벌 일족이 당시 안동에서 양반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단순히 저명한 관료와 학자를 조상으로 두었을 뿐 아니라 여러 대에 걸친 집단적 세거지가 있었고, 양반의 생활양식 즉 조상제사와 손님접대를 정중히 하고, 학문을 통한 자기 수양에 진력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대의 결혼 상대도 앞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집단에서 고르는 가운데 양반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안동 권씨 권의, 권벌 형제 일족이나 천전 김씨 김성일 일족의 가계에서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사회 계층으로서의 양반층은 15~17세기에 걸쳐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이는 하나의 광범위한 사회 운동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재지양반 계층의 출신 모체는 고려시대 토착 이족(吏族) 세력으로 이족→중앙관료→세거지 정착이라는 코스를 밟아왔다. 즉 재지양반 계층의 형성 과정은 이족 세력에서 재지양반층으로 분화해온 과정이었고, 이 분화의 분기점으로 한번은 중앙정부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15~17세기에 재지양반층이 일제히 형성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저자는 재지양반층의 형성을 당시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조선 전기는 농업 생산력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였다. 이 시기의 농업 발전은 재지양반층 형성의 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재지양반층은 농업 기술의 발전과 산간 및 해안 지역의 농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저자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권벌 가문의 분재기와 지방지, 대동여지도 등 다양한 고문서를 통하여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농사직설』『금양잡록』『농가월령』등 독자적인 농서의 출현도 이를 확인시켜준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양반을 지주라고 이해해왔던 통념을 뒤엎는다. 즉 양반은 자기의 소유기를 소작인에게 임대하고 그 지대를 얻었을 뿐 생산 활동에서는 완전히 유리된 기생적인 존재가 아니라 16세기의 재지양반층은 노비를 지휘 감독하며 직영지를 경영하는 농업 경영자였던 것이다. 3. 당시 양반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하였을까? 저자는 현재 권벌 종가가 소장하고 있는 9종류의 분재기와 족보 및 오희문의 『쇄미록』과 유희춘의 『미암일기』등 양반가의 일기를 를 통해 독자들에게 당시 양반 사회에 대한 실제적 감각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6세기 일상의 풍경 중 일부를 보자. 먼저 봉제사(奉祭祀)의 비중이다. 오희문은 1598년 일년간 스물여덟 번의 제사를 지냈다. 저자가 증답(贈答)경제라 한 ‘선물’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희춘의 일기를 보면 10년 동안 선물을 받은 것이 2,788회, 준 것이 1,053회로 기록되어 있다. 거의 매일같이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화폐경제의 비중은 낮았는데 이는 재지양반층이 농촌거주자였다는 점과 맥이 통한다. “재지양반층의 형성이 한국전통사회의 존재 방식을 특징지었다는 것은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분명하다. 조선의 양반층이 지배 엘리트였다는 점에서는 중국 명·청조의 사대부층과 근세 일본의 무사층에 비견되지만, 중국의 사대부층은 명에서 청대에 걸쳐 점차 향거(농촌거주)에서 성거(도시거주)로 존재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일본의 무사층도 마찬가지였는데 중세에는 농촌 거주지였던 무사들이 근세가 되자 성하정(城下町, 성 아래의 마을)에 집주하게 되었다. 이와 달리 조선의 경우 문자 그대로 농촌에 거주하는 재지양반층이 사회적으로 널리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조선 사회의 존재

저자 소개

宮嶋博史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카이(東海)대학 문명학부 강사,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년부터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조선시대와 근대시기의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분야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했고 동시에 한국사의 특징을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파악함으로써 한국 학계와 외국 학계의 소통을 위해 고민해왔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兩 班』(1995년, 중공신서, 한국어판: 『양반』 노영구 옮김, 1996년, 도서출판 강), 『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 1998년, 중앙공론사, 한국어판: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김현영‧ 문순실 옮김, 2003년, 역사비평사) 등이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 일본 방위(防衛)연구소 전사(戰史)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조 대의 한양 도성 수비 정비』(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중기 무예서 연구』(공저, 2006, 서울대출판부) 외 다수가 있다. 

머리말

저자의 말
사회인류학자 나카네 치에 선생이 근무처 동료로 있을 때다. 어느 날 나카네 선생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는데, 선생이 ‘양반의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순간 답변이 궁했던 나는 아들이 어릴 때 읽어주었던 동화 『숲 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라 “한마디로는 말할 수 없군요.”라고 답했던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는 내 불학의 소치지만 양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전통 사회의 개성이 응축되어 있다.

책 속에서

권벌 자손들의 경우를 보면, 동보, 동미 형제의 경우 ‘동(東)’이 항렬자가 된다. 그다음 세대에서는 ‘목(木)’이 항렬자로 권동미의 네 아들에게는 ‘목’자를 포함한 한자가 이름에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세대가 되면 권동보의 양자인 권래의 아들에게는 ‘충(忠)’자가 항렬자로 쓰이는 데 비해 권동미의 손자들 사이에서는 ‘상(尙)’이 항렬자로 쓰인다. 요컨대 권벌의 증손 세대에서는 공통의 항렬자가 쓰이지 않은 것으로, 동족으로서 의미가 약해진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대단히 흥미있는 것은 이는 권상충의 손자대, 즉 권벌에서 6대째 세대에서는 권동미의 자손을 포함하여 ‘두(斗)’라는 공통의 항렬자가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권상충의 대에 일단 약해졌던 동족으로서의 결합이 권두추 대에서 다시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항렬자가 사용되는 범위는 조선 전기까지는 형제와 사촌 사이에 국한된다. 한국에서는 혈연의 원근을 재는 것으로 일본어의 친등(親等)에 해당하는 ‘촌(寸)’이란 단어를 쓴다. 형제라면 2촌, 종형제라면 4촌이 된다. 권벌 일족도 권래의 대까지는 2촌 또는 4촌의 범위에서 항렬자가 쓰였다.
그런데 동족 경합이 강화되어가는 조선 후기가 되자 전기의 경우보다 매우 넓은 범위에서 항렬자가 나타나게 된다. 권벌 일족의 예에서 보면 권두추 세대에서는 항렬자 범위가 10촌가지 확대된다. 그리고 이 세대 이후 권벌의 자손들 사이에서는 세대마다 공통의 항렬자를 사용하게 된다. - 본문 58~59쪽

노비는 토지를 소유하거나 빌려서 이처럼 자기 농업을 경영했을 뿐만 아니라, 상행위도 했다. 『쇄미록』에 나타나는 번동이란 상행위에 대해서는 앞에서 소개했는데, 오희문의 남자종인 덕노(德奴)도 이 번동을 했다.
1600년 9월 4일과 10월 9일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인다. 즉 주인에게 휴가를 얻은 덕노가 면화를 번동하려고 9월 4일에 여행을 떠났는데, 오희문도 이에 편승하여 자기가 구입한 면화의 번동을 덕노에게 부탁하였다. 10월 8일에 덕노는 번동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자신의 면화는 전부 팔았지만 오희문이 부탁한 면화는 팔지 못했다며 그대로 가지고 왔다. 이 기사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덕노는 자기의 자금으로 면화를 사서 다른 지역에서 팔아 이익을 남긴 것이다.
덕노는 자기 어머니와 사이가 나빴던 모양으로, 그의 불효로 속을 태우던 오희문이 덕노를 큰 매로 때렸다는 기사가 1594년 4월 16일조에 보인다. 이 기사에서 덕노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 달리 말하면 가족을 형성하였음을 볼 수 있다. 노비에게는 이러한 가족의 형성이 그들의 농업 경영과 상행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쇄미록』에는 노비들의 게으름과 ‘부정(不正)’에 대한 오희문의 불만과 분노를 기록한 것이 무수히 보인다. 노비를 이용한 농사일의 낮은 효율, 시장에서 사고팔 때 생기는 상품의 감소, 가격의 허위 보고 등 오희문에게는 머리 아픈 일이 연속되었다. 이런 게으름과 ‘부정’은 노비 같은 부자유 노동자에게는 필연적인 것인데, 앞에서 소개한 한복과 덕노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도 자기 자신의 경영에는 게으르지 않았다.
- 본문 139~140

다음으로 1682년에 작성된 분재기 (8)을 보면 남녀균분상속 원칙의 해체가 더욱 두드러진다. 분재기 (8)의 내용을 상속자별 상속분으로 나눠보면 <표 6>과 같다. 이에 따르면 이천기를 제외한 네 명의 사위에게는 농지가 일절 분재되지 않으며, 노비도 세 적자가 21명씩 분재받은 데 비해 사위들은 13명의 노비를 분재받았을 뿐이다. 사위 중에서도 유일하게 이천기에게만 농지가 상속된 것은 그가 대대로 빈궁한 집 출신으로 유우(流寓 방랑하다가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것)의 신분이라는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중략)
한편 매우 흥미로운 것은 분재기 (8)로부터 5년 뒤 작성된 분재기 (9)를 보면 남녀균분상속의 방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표 7 참조). 분재기 (9)에서는 수급액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사위들도 적자 못지않게 노비와 농지를 분재받았다.
1682년에 일단 화희문기가 작성되었는데도 5년 뒤 다시 다른 내용을 담은 화회문기가 작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경위에 대해 분재기 (9)에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추측해보건대 분재기 (8)처럼 『경국대전』의 규정이나 종래 관행과는 크게 다른 분재 방식이 당시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분재를 다시 시행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결혼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 다른 혈연집단이 결합하는 하나의 사회적 형태였으므로 결혼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속제도의 형태도 사회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 가문이 사회 관행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상속 형태를 바꾸기는 어렵다. (8)과 (9) 두 분재기의 존재는 17세기 후반 안동 지방에서 남녀균분상속제가 해체되던 과도기적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 183~185

목차

목차
서론 현대에 살아 있는 유교적 전통
1장 양반-주자학의 담당자들
양반이란 무엇인가
사회 계층으로서의 양반
2장 재지양반층의 형성 과정
안동 권씨에 대하여
입향조 권벌
유곡 권씨의 형성
재지양반 계층의 성립
3장 재지양반층의 경제적 기반
분재기
권벌가의 경제 기반-노비 소유
권벌가의 경제 기반-농지 소유
4장 개발의 시대
농서의 출현
황무지 개간 방식
민간 농서 『농가월령』의 탄생
농지의 개발과 재지양반층
산간과 해안 지역의 농지 개발
5장 양반의 일상생활
『쇄미록』에 대하여
양반의 일상생활
양반과 노비의 관계
6장 양반 지배 체제의 성립
향안·향소·향약
내성동약과 유곡 권씨
혼인·학연의 관계망
동족집락의 형성
7장 재지양반층의 보수화와 동족 결합의 강화
양반 계층 성장의 종언
상속제도의 변화
상속제도를 바꿔놓은 사회적 배경
족보 형식의 변화
문중 조직의 형성과 동족 결합의 강화
8장 양반 지향 사회의 성립
향리층의 양반 지향
민중의 양반 지향
소농층의 성립
결론 전통과 근대
저자 후기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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