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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기시모토 미오, 미야지마 히로시 저 | 김현영, 문순실 역 | 너머북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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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606309 / 56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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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이 형성되었던 조선과 명청 시대! 일국사를 넘어선 역사 읽기가 오늘날 우리와 동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와 명·청 시대는 시간적으로는 500년에 가깝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여러 변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최대의 특징은 오늘날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 한국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이 형성되었던 조선과 명청 시대! 일국사를 넘어선 역사 읽기가 오늘날 우리와 동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와 명·청 시대는 시간적으로는 500년에 가깝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여러 변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최대의 특징은 오늘날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문화, 전통적인 생활습관, 가족·친족 제도 등이 모두 이 시대에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온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는 한국, 중국에 있어서 ‘전통 형성의 시대’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데도 특별히 중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현재를 보는 역사’인 까닭이다.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와 정년을 마치며 명저『나의 한국사 공부』, 『양반』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와 당대 불세출 중국사학자인 기시모토 미오 교수(오차노미즈여대)가 함께 쓴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은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국제적 시야’를 확보한 독보적인 역사책이다. 또한 정치사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면서도 문화나 경제의 장기적 추세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에서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부계 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 조직이 형성되는 그 시점인 명말 청초에 중국에서도 ‘지아(家)’라는 동족 집단의 형성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를 집필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그동안 16세기를 15세기의 성과들이 무력화되는 시기로 묘사하는 경향에 대해, 16세기는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조감하는 위치에 놓여 있는 중요한 시기로 평가한다. “조선왕조의 국가체제를 흔히 양반관료제라고 하는데, 바로 이 양반관료제가 체계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16세기로, 이 시기에 양반이라는 조선의 독특한 지배 엘리트 계층이 성립”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개정판 머리말에서 노무현, 이명박 두 대통령처럼 중류 이하 가정 출신의 사람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한국인의 강한 평등의식도 족보 편찬의 보급, 확대 현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서 전통과 근대의 분리보다는 연속성을 강조한다. 중국의 명·청 교체에 대해 명의 외부에서 강성해진 ‘주변세력의 결승전’이었으며 최종적인 승리를 차지한 것이 청 왕조였다는 견해를 펴고 있는 기시모토 교수는 “이 책에서 다룬 14세기에서 19세기 초반까지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오늘날과 연결되는 ‘나라國’의 통합이 형성 내지 재편된 시기”로 이전과 같이 ‘진전된 유럽, 뒤처진 아시아’라는 고정관념이 이미 통용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각각의 차이를 파악하고 세계상을 묘사하는 것은 지금부터의 과제라고 한다.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의 원저인 『명청과 이조시대』가 1998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어판은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역사비평사)로 한국어판이 나왔다. 2008년 원저의 개정판이 나옴에 따라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출간한 것이다. 동아시아 세계의 지각 변동, 넓어지는 국제적 시야 이 책은 140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중국·조선·일본이 한 장에 그려진 최초의 동아시아 전도인데, 단순히 동아시아 전역을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유럽까지 부정확하게나마 그려 넣었다. 이 지도가 이때 조선에서 만들어진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배경에는 동아시아 전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역사적 과정-송 왕조의 문화혁명, 몽골 세계제국의 성립 등 구체적으로 10세기에서 14세기에 걸친 동아시아 세계 교류의 현격한 진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몽골제국과 고려가 무너지고 명과 조선이 성립할 수 있었다. 세계지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이미지가 시사하는 것처럼 14~15세기는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신숙주처럼 국제적 경험을 가진 엘리트들이 많았고, 바깥을 향한 시야가 현저하게 확장된 시기였다. 문자사상 세계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한글 창제 역시 더 넓은 세계와의 관계가 그 배경이었다. 미야지마 교수는 “표음문자라는 발상법에 한자의 작자법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동양과 서양의 작자 원리를 융합한 것”이라 한다. 명 제국의 건국에 대해 ‘한족의 중국지배회복’이란 관점은 한족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것으로 비판하는 미시모토 교수는 “원 왕조 역시 중국 정통 왕조의 하나라는 것은 주원장에게도 당연했으며 자신이 새로이 천명을 받아 세웠다는 인식이 당시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1430년대 북경 거주민의 3분의 1은 몽골인이었으며, 북경 내성의 북문은 몽골 등 북방과 연결하는 창구였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낙타를 탄 캐러밴들이 북경과 북방을 연결하였다는 이 책의 서술에서 보이듯이 명 제국은 남방(남경)과 북방(북경)의 이원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희춘과 그가 쓴 『미암일기』를 통해 양반과 양반을 둘러싼 16세기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역할을 한 중국의 ‘신사’와 한국의 ‘양반’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흥미롭다. 명·청 시대 중국의 관료 경험자 또는 과거 자격 보유자를 가리켜서 ‘신사(紳士) 또는 향신(鄕紳)이라 불렀다. 그들은 지방 사회의 유력자로서 지방관과 병립할 수 있는 세력을 가졌는데, 현임 관료도 퇴임 후의 신사도 모두 요역 면제 등의 특권을 부여받고 또 갖은 의례에 있어서도 일반 서민과 달리 한 단계 높은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중국에서 사람들이 이들을 따랐던 것은 인간으로서 서민보다 휼륭하다-그러한 도덕적 능력이 과거시험으로 인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조선의 양반은 한층 더 복잡한 존재였다. 저자는 양반을 신분으로 파악하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라고 본다. 양반이란 지위는 국가의 법제적 규정도 아니고, 양반으로서의 근거나 양반들끼리의 격(格)의 상하를 결정하는 기준도 없었고 따라서 양반과 비양반과의 한계 기준도 매우 상대적이며 주관적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양반들도 과거제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나, 양반은 중국의 신사에 비해서 동족집단 및 지방사회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저자는 설명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그의 명저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에서 안동 권씨 권벌 가문을 통해 조선시대 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 나섰다. 이 책에서는 ‘유희춘’이라는 16세기의 한 인물과 그가 쓴 『미암일기』를 통해 양반과 양반을 둘러싼 16세기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시대를 반영한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통해 전체 사회상을 묘사하는 방법은 이 책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이다. 양반 체제는 사림파의 중앙 진출과 함께 향촌에서 양반을 핵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저자는 사림파 등장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기술하며 왕권과 신권의 문제에 주목한다. 핵심 요지는 왕권과 재상권의 대립을 축으로 한 양극 구조에 사림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더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정치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신권이 재상권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낭관권으로 분리됨으로써 왕권의 상대적 강화를 이룰

저자 소개

宮嶋博史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카이(東海)대학 문명학부 강사,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년부터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조선시대와 근대시기의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분야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했고 동시에 한국사의 특징을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파악함으로써 한국 학계와 외국 학계의 소통을 위해 고민해왔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兩 班』(1995년, 중공신서, 한국어판: 『양반』 노영구 옮김, 1996년, 도서출판 강), 『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 1998년, 중앙공론사, 한국어판: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김현영‧ 문순실 옮김, 2003년, 역사비평사) 등이 있다.
岸本美緖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인문과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중퇴하였다.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조수, 오차노미즈여대 조교수, 도쿄대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과 교수를 거쳐 현재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중국명청사. 주요 저서는 『청대 중국의 물가와 경제변동』(1997, 硏文出版), 『동아시아의 근세』(1998, 山川出版社), 『명청교체와 강남사회-17세기 중국의 질서문제』(1999, 東京大學出版會) 등이 있다. 

“일국사를 넘어선 시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몇 개의 나라를 묶어서 보다 넓은 시야에서 비교하고 조감한다는 차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각각의 ‘나라國’의 통합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재편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파악되어갔는가를 생성적으로 파악하려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 소개

文純實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나 메이지대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졸업했다. 동양사학 전공. 현재 주오대학 상학부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18세기 조선의 대외인식에 대하여-특히 화이관을 중심으로」(1996, 『駿台史學』82), 「백두산 정계비와 18세기 조선의 강역관」(2002, 『朝鮮史硏究會論文集』40)이 있다.

195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도쿄대학 문학부 객원연구원, 오사카한국종합교육원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회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한글 제정은 조선의 문자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왜 이 시점에서 독자적인 민족문자가 만들어진 것일까? 이 문제는 언어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한국어의 구조 자체가 독자적인 표음문자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한국어 음절의 특징상 자음으로 끝나는 것이 매우 많은데, 즉 하나의 음절이 자음+모음+자음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다른 언어보다도 음절의 수가 훨씬 많아진다. 일본어는 100개도 안 되는 음절밖에 없고, 하나의 음절을 하나의 문자로 표시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한국어의 경우에는 음절 수가 1만 가까이 되는 것이다.
음절의 종류가 이렇게 많기 때문에 한 음절에 하나의 문자를 대응하면 1만 가까운 문자가 필요하게 되고, 이것으로는 한자와 마찬가지로 그 습득이나 사용이 극히 어렵다. 한자를 차용해서 만든 베트남의 민족문자 추놈 등은 이 방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 번잡성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음과 모음의 종류만큼 문자를 만들고, 그 문자를 조합해서 음절을 나타내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다. 한글이 자음자와 모음자로 이루어진 표음문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언어보다도 민족문자의 제정이 훨씬 곤란했던 것이고, 그 제정을 위해서는 음성학적인 치밀한 연구를 필요로 하였다. -57~58쪽 중에서

한쪽에는 혹한의 삼림·산지의 특산품인 초피나 인삼의 이득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성량 군단, 한쪽에는 햇빛 넘치는 바다를 무대로 은과 생사의 교역으로 거대한 이익을 얻은 정지룡 선단이 있었다. 양자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공통의 특질을 발견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자에서 공통의 배경을 이룬 것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에 걸친 동아시아의 국제 교역 붐이다. 두 세력 모두 국제 상업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사상인(私商人)에 머무르지 않고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변경의 상업 질서를 지탱하는 무인이 되었다. 그들 군사력은 명 정부에 공인되어 명의 군사조직 일부가 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수령에게 개인적인 충성심을 가지는 사병에 의해 지탱되었다. 다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그들의 리더십은 다양한 민족 집단이 제휴하고 반발하는 변경지대의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단련되었다. 강한 응집력을 가진 그들의 시야는 ‘외향적’이었고, 필요하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 기회주의적 내지는 현실주의적 재능이 그들의 장점이었다.
이들 세력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명 정부는 그들의 힘을 빌려서 변경·연안의 치안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량으로 투하된 군비는 그들의 사복을 채울 뿐만 아니라 변경의 상업 붐을 부채질하고 그 상업 이익을 둘러싼 여러 집단 간의 분쟁은 더욱 격화되어 무역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명 정부는 더욱 깊이 그들엑 의존하게 되었다. 명말 중앙정부에 의한 엄격한 징세는 사람들의 원망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는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변경의 자립세력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와 군사의 무제중심이 주변부로 이동해가는 강력한 원심력 속에서 명의 지배는 해체되어갔던 것이다. - 258~259쪽 중에서

목차

목차
개정판에 부쳐1 일국사를 넘어선 역사 읽기_기시모토 미오
개정판에 부쳐2 족보와 한국의 평등의식_미야지마 히로시
1장_ 동아시아 세계의 지각변동
송ㆍ원 시대의 유산
가시적인 동아시아 세계 | 몽골제국의 유산
흔들리는 고려왕조
공민왕의 반기 | 경주의 설씨 | 이성계의 대두
원 말기의 반란과 주원장
빈곤한 회서 지역 | 원 말기의 반란들 | 주원장 세력의 대두
명 왕조 지배의 확립
회서의 기풍 | 유교적 정통주의 | 공포정치
조선왕조의 건국
태조 이성계의 즉위 | 용의 눈물 | 위대한 발명, 한글 | 보기 드문 독재자 세조
넓어지는 국제적 시야
『해동제국기』 | 조선 사절이 본 중세 일본
2장_ 명 제국의 확대
명 정권 초기의 '남과 북'
명 왕조의 중심 | 건문제와 연왕 | 북경 천도 | 새 수도 북경
영락 시대의 대외발전
몽골 원정 | 동북의 여진족 | 정화의 대항해 | 환관과 주변 민족
명대의 조공 세계
명대의 조공관계와 해금 | 류큐와 말라카
수세에 선 명 제국
토목의 변 | 끊어진 곳 없는 만리장성
명대 중기의 국가와 사회
성화ㆍ홍치의 성세 | 황제와 중앙관제 | 지방 행정제도 | 과거와 신사 |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던 황제
3장_ 양반의 세기 - 16세기 조선
유희춘과 『미암일기』
『미암일기』 | 유희춘의 생애 | 다채로운 등장인물들
양반관료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조선과거론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 중국과의 비교 | 과거와 양반 | 사림파 정권 성립의 의의
친족 네트워크
유희춘을 둘러싼 친족들 | 쌍계적인 친족개념 | 족보 편찬의 시작 |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와 관련해서
향촌사회와 지방통치
담양 향안 | 양반은 신분인가? | 유향소와 경재소 | 개발의 시대 | 양반들의 경제력
양반의 정신세계
독서광 유희춘 | 계몽정신 | 16세기 대유학자들 | 문학하는 마음
시대의 변천
그 후의 유희춘 일가 | 무대는 바뀌고 | 당쟁의 시작 | 좁아지는 국제적 시야
4장_ 후기 명 제국의 빛과 그림자
북방 방위와 재정 문제
풍속의 변화 | 북방정세-장성을 넘는 한인들 | 명 재정과 은 문제
동남 연안의 왜구
일본 은의 등장 | 왜구 집단의 성장 | 가정의 대왜구 | 북로남왜 문제의 완화 | 북로남왜와 은의 흐름
명말의 도시와 농촌
관료ㆍ상인의 축재 | 농촌 수공업 | 도시 서비스업
공동성와 질서
양명 선생의 돈오 | 갓난아기의 마음 | 명말 사회와 양명학 | 양명학의 급진화와 양명학 비판
정치의 계절
가정제의 시대 | 서계와 해서 | 장거정의 시대 | 중앙과 지방 | 위충현과 개독의 변 | 초망의 지사와 ‘조로’한 영웅들 | 명말 '시민' 사회 | 살찐 환자
5장_ 화이변태
세계 시스템과 동아시아
『화이변태』 | 은을 둘러싸고 | 19세기와 비교하여
임진ㆍ정유왜란
'상업의 시대'와 신흥국가 | 안동 하회에서 | 『징비록』으로 보는 임진ㆍ정유왜란 | 점령지 에서의 일본군
변경의 자립세력
변경 '권력'의 동시 발생 | 요동의 군벌 이성량 | 남해의 주인공 정지룡 | 남과 북의 신흥 세력
청의 성장
누르하치의 등장 | 후금국의 성립 | 후금의 진격 | 홍타이지의 시대
명의 멸망
궁핍한 농민의 반란 | 전설에서 사실로 | 북경 함락과 청의 입관 | 남명 정권 | 청의 중국 대륙 정복 | 명의 유민들
청 왕조 지배의 확립
정씨와 대만 | 삼번의 난 | 주변세력의 결승전
6장 조선 전통사회의 성립
호란과 소중화
포로가 된 왕자들 | 광해군의 균형외교 | 『조선왕조실록』과 두 종류의 『광해군일기』 | 인조반정과 호란 | 소중화
당쟁으로 죽어간 사람들
당쟁의 경위 | 나주 나씨와 해남 윤씨 | 당쟁에 대한 평가
지배체제의 재편
세제의 변혁 | 균역법 | 호적과 양안 | 전통농법의 성립
전통의 형성
네덜란드인이 본 17세기의 조선 | 친족제도의 변화 | 마을의 형성 | 장시와 상업 | 상업 의 위치
7장_ 청 왕조의 평화
강희 시대의 국제환경
강희제의 시대 | 동남의 해상무역 | 러시아와 만나다 | 중가르와의 싸움
청 황제의 두 얼굴
칸과 황제 | 연회와 사냥 | 자금성 내의 학자 황제 | 역법 논쟁 | 청 황제의 다문화적 소양 | 주접 정치
청 왕조 국가의 비전
옹정제의 즉위 | 『대의각미록』| 옹정제의 사회관 | 황제가 쥔 줄사다리
유럽에서 본 중국
기독교 포교와 전례 문제 | 계몽주의자들이 본 중국
8장_ 새로운 도전자들 - 왕조 말기의 조선
향촌사회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향전 | 향리의 세계 | 향리 조직과 그 역할 | 향리층의 양반 지향
실학과 천주교
실학의 '발견' | 『열하일기』의 비판정신 | 실학 사상가의 위치 | 천주교의 전래 | 양반들의 천주교 수용 | 중인층의 천주교 수용 | 연행사와 통신사
정조의 꿈과 좌절
영조와 탕평책 | 정조와 규장각 | 정조와 정약용
사회변동을 예감하다
신분제의 동요 | 노비제의 해체 | 『춘향전』의 세계
근대를 전망하며
민란의 시대 | 흥선대원군의 등장 | 대원군의 권력 기반
9장_ 성세에서 위기로
『홍루몽』과 『유림외사』
청대의 사풍 | 『홍루몽』논쟁 | 과거와 중국사회 | 청대의 고증학
'십전노인' 건륭제
판도의 확대 | 청 왕조의 통치구조
호황의 시대
빈발하는 식량폭등 | 구미선 무역의 활성화 | 칸톤 시스템
산구 경제와 종교반란
동서의 '인구론' | 이주민의 사회 | 가경 백련교의 난
10장 사람과 사회 - 비교 전통 사회론
중국의 '가'와 사회단체
‘차등적 질서구조’ | ‘가’란 무엇인가 | 명청 시대의 종족 형성 | '동기'의 감각과 사회집단
조선의 사회조직 - 중간단체를 중심으로
헨더슨의 정치사회론 | 조선의 중간단체 | 중국ㆍ일본과의 비교
대담 ‘왜구적 상황’에서 ‘쇄국’으로
연표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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