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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5391 / 448쪽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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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 『제국을 사진 찍다』(Picturing Empire)는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1837~1901)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대영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당대의 사진자료와 기록을 꼼꼼히 연구하여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영국의 지리학자로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와 시각이미지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저자 제임스 R. 라이언(James R. Ryan)은 사진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당대의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습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되거나 제작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이 의도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전제에서 사진과 대영제국의 팽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의 발명(1939년)과 발전은 대영제국의 급격한 팽창과 시기적으로 일치하며 이 기간 동안 영국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리학적 탐험의 증거로서, 식민지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의 생산자로서, 군사작전이나 사냥과 같은 정복활동의 기록으로서, 식민지 인종과 내부의 범죄자들에 대한 유형화의 도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상의 지리학’을 위한 교육의 자료로서 제국이 스스로를 이미지화하는 데, 어떤 매체보다도 중요한 도구로 사진을 활용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진, 대영제국을 만들다!!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확장과 사진이 만든 ‘심상의 지리학’! 이 책 『제국을 사진 찍다』(Picturing Empire)는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1837~1901)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대영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당대의 사진자료와 기록을 꼼꼼히 연구하여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영국의 지리학자로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와 시각이미지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저자 제임스 R. 라이언(James R. Ryan)은 이 책을 통해서 사진이 영국인들이 제국에 ... 사진, 대영제국을 만들다!!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확장과 사진이 만든 ‘심상의 지리학’! 이 책 『제국을 사진 찍다』(Picturing Empire)는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1837~1901)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대영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당대의 사진자료와 기록을 꼼꼼히 연구하여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영국의 지리학자로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와 시각이미지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저자 제임스 R. 라이언(James R. Ryan)은 이 책을 통해서 사진이 영국인들이 제국에 대한 이미지(심상의 지리학)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논증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대영제국이 해외에서 크게 팽창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얻었던 빅토리아 시대가 사진이 발명되고(1839년)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렇게 제국의 팽창과 더불어 발전하기 시작한 사진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리학적 탐험의 증거로서, 식민지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의 생산자로서, 군사작전이나 사냥과 같은 정복활동의 기록으로서, 식민지 인종과 내부의 범죄자들에 대한 유형화의 도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상의 지리학’을 위한 교육의 자료로서 제국이 스스로를 이미지화하는 데, 어떤 매체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사진이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흔히 사진이 기록하여 보여주는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아낸 것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빅토리아 시대의 지리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사진에 대해 지리학적 탐험의 증거로서, 생물학적 인종적 관찰의 증거로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진이 정확하고 객관적이라는 관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일 수 없으며, 오히려 당대의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습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되거나 사진의 제작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이 의도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담론적 구성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사진 이전에 제국의 ‘심상’을 만들어 왔던 지도나 회화 등의 시각이미지에서도 동일했던 것이지만, 사진은 더욱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복활동의 기록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복활동에 사진을 활용한 최초의 사례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잠베지 강 탐험을 들 수 있다. 리빙스턴이 동생인 찰스 리빙스턴을 사진가이자 지도제작자로 탐험에 데려간 이래, 식민지를 향한 탐험과 여행에 사진은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의 원시적이고 황량하고 무질서한 풍경은 정복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었고, 원주민이나 식민지 풍경에 대한 이국적이고 에로틱한 이미지들은 영국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해 주었다. 또한 험난한 지형이나 높은 산의 이미지는 정복의 위대함을 표상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풍경, 자연, 인종을 수집하는 행위로서의 사진을 저자는 총에 비유하고 있다. 단지 ‘장전-조준-격발’이라는 작동상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전리품을 수집하고 맥락에서 떼어내어 배치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식민지에서의 큰 동물(호랑이, 사자, 코뿔소, 코끼리 등) 사냥에서 실제로 총과 카메라가 동시에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밝히고 있다(4장 참조).
사진을 ‘자연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19세기 중반 이후 사람들은 사진을 과학과 예술에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다음 장에서 제시하겠지만, 바로 카메라의 정확성에 대한 이러한 믿음 때문에 카메라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 광경을 탐험하고 조사하는 데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지만 카메라가 세계를 재현하는 데 충실한 도구라고 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의미는 문화적 코드와 관습을 통해 도출되는 하나의 사회적 행위였다. 실제로 사진은 풍경화를 통해 물려받은 시각적 사실주의에 관한 회화적 관습 없이 ‘근대적 관점’으로 부상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사진이 회화로부터 많은 미학적 관습을 물려받았음에도, 사진적 이미지가 갖는 지표적(indexical) 지위는, 사진가가 카메라로 세계를 프레이밍하는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력(이에 반해 화가의 통제하는 정도는 훨씬 강하다)과 함께 사진을 회화나 그 외의 다른 모든 그래픽 예술과 분명히 구별하였다. _ 본문 19-20쪽
포란이 카메라를 들긴 했지만, 희생물의 생명을 앗는 사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른 많은 카메라 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총과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즉, 동물들은 카메라로 찍힌 직후 몇 초 만에 총에 맞아 죽었다.537 이러한 사실은 초기의 보존주의자들 가운데 사냥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전혀 모순적이지 않은데, 보존주의자들은 그저 정당한 ‘스포츠맨’에게 사냥감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일을 옹호했을 뿐이기 때문이다.538 카메라 사냥은 바로 이러한 사냥 스포츠맨십의 새로운 코드 안에서 깔끔하게 맞아떨어졌는데, 지지자들은 일관되게 카메라 사냥의 기술과 남자다움을 강조하였다. 원주민은 바로 이 보존주의자들이 세운 새로운 사냥 코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_ 본문 225쪽
아이러니하게도 한 ‘원주민 유형’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도겟은 제국 과학이라는 캘리퍼의 두 날 사이에 잡힌 모습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사실, 그러한 사진술은 그 자체가 제국의 인류학자를 측정해 주는 것이면서 자신이 재현하는 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측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존스턴의 ‘원주민 유형’에 대한 사진들은 궁극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비록 정도는 다르겠지만 유럽 사람들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그가 이 특정한 예에서 사진술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우간다는 ‘백인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_ 본문 259쪽
아이러니하게도 한 ‘원주민 유형’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도겟은 제국 과학이라는 캘리퍼의 두 날 사이에 잡힌 모습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사실, 그러한 사진술은 그 자체가 제국의 인류학자를 측정해 주는 것이면서 자신이 재현하는 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측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존스턴의 ‘원주민 유형’에 대한 사진들은 궁극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비록 정도는 다르겠지만 유럽 사람들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그가 이 특정한 예에서 사진술을 사용한 것은콩고의 잔혹 행위에 반대하는 운동을 한 데 대해 존 해리스는 많은 공훈을 인정받았고, 1933년에는 노예반대협회에 끼친 공로로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그의 아내 앨리스 해리스 또한 그와 동일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콩고 사진의 공로가 존 해리스에게 돌아갔다 할지라도 사실 그 사진들은 대부분 앨리스가 찍었을 것이다. 특히 존 해리스가 사진에 등장한 사진이 그렇다. 실제로 앨리스는 남편만큼이나 사진을 잘 찍었고, 슬라이드 강의를 잘했으며, 노예 반대운동을 열심히 한 운동가였다. _ 본문 360쪽
목차
감사의 글
서론
1장 _ 암흑 탐험하기
2장 _ 경관 틀 잡기
인도에서의 새무얼 본, 1863~1870 | 존 톰슨의 여행 | 그림 같은 여행과 제국 풍경
3장 _ 작전의 예술
사진과 군사: 왕립 공병 | 현장에서의 사진 | 과학과 전쟁 | 아비시니아 경관
4장 _ 카메라와 함께하는 사냥
제국 건설과 자연사 | 사진, 박제술 그리고 야생 | 산과 고개를 사냥하기 | 카메라 사냥
5장 _ ‘원주민 사진 찍기’
사진의 ‘유형’ | 사진과 인체 측정 | 인도 사람들 | 아프리카 ‘유형’ 조사하기 | 상업적 ‘유형’ | 영국 내에서의 인종 문제 | 복합 사진 | 런던 거리의 삶 | 다중 유형
6장 _ 시각 교육
사진을 활용한 수업 | 식민성(省)시각교육위원회 | 식민지에 영국 투사하기 | 영국에 식민지 투사하기 | 슬라이드 | 지리 가르치기 | 인도 사진 찍기 | 제국 투사하기 | 식민성시각교육위원회에 대한 평가 | 순간적인 시선
7장 _ 결론을 향하여
후주 | 참고문헌 |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