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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742515 / 350쪽 160 x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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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불교유신론』(1913년 불교서관)은 만해 한용운의 저작으로, 당시 조선 불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개혁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조선불교의 근대화를 추진했던 책이다. 이번에 최경순씨가 새롭게 번역한 이 책은 기존의 번역들을 월등히 뛰어넘는 책이다. Ⅰ장은 『조선불교유신론』의 해제이다. 역자는 저자 한용운의 생애와 저술 당시의 시대적 상항에 대해 자세히 고찰했다. 또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만해 사상의 근간이 된 량치차오(梁啓超)와 사회진화론에 대해서도 살폈다. Ⅱ장은 『조선불교유신론』 을 번... 『조선불교유신론』(1913년 불교서관)은 만해 한용운의 저작으로, 당시 조선 불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개혁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조선불교의 근대화를 추진했던 책이다. 이번에 최경순씨가 새롭게 번역한 이 책은 기존의 번역들을 월등히 뛰어넘는 책이다. Ⅰ장은 『조선불교유신론』의 해제이다. 역자는 저자 한용운의 생애와 저술 당시의 시대적 상항에 대해 자세히 고찰했다. 또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만해 사상의 근간이 된 량치차오(梁啓超)와 사회진화론에 대해서도 살폈다. Ⅱ장은 『조선불교유신론』 을 번역한 부분인데, 한용운은 조선불교 개혁을 토로하고, 불교는 미신이 아니라 고금동서의 모든 철학을 종합·포섭하고 있는 위대한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불교의 이상(理想)은 평등주의 내지는 구세주의(救世主義)에 있는 것으로 이는 서양의 자유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고 역설했다. 인류 문명이 발전해 갈수록 불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미신적인 요소가 있는 탱화와 번잡한 의식들을 버려야 하고, 승려도 체계적 교육을 받아야 하며,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원의 주지 선출 문제, 교단 조직과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Ⅲ장은 《『조선불교유신론』 의 번역과 그 연구(부제: 만해학(萬海學)의 ‘빛과 그림자’)》이다. 여기서 역자는 『조선불교유신론』 의 새번역의 필요성과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만해의 일본행이 만해 사상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했다. 부록에는 『조선불교유신론』 의 영인본이 실렸다. 조선의 승려, 조선 불교의 근대화를 꿈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국인들의 애송시 《님의 침묵》의 첫 구절이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이 식민지 하에 있던 1926년 당시, 민족 독립에 대한 희망을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형상화했다. 이 시는 그 후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낭송되고 있다. 한용운은 1896년, 18세의 나이로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입산해 승려가 되었다. 오세암에서 그는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고 선(禪)을 닦았다. 이후 세상사에 대한 관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등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후 1905년에 재입산하여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을 은사로 정식으로 득도(得度)했다. 1908년에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공부하다 마침 금강산에 방문한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관계자들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5월부터 약 6개월간 조동종대학(曹洞宗大?, 현재의 고마자와대학[駒澤大?])에 입학하여 불교와 서양철학 등을 배우며 새로운 문물을 익혔고, 조선인 일본유학생들과도 교류했다. 만해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약 6개월간 일본 불교계를 견문했던 경험에 있다. 이 시기에 일본 불교는 이미 매우 발전해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불교대학, 불교유치원, 포교당, 복지시설, 출판사 등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마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다. 만해는 이런 발전상을 보면서 조선의 열악한 불교 현실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에서는 각종 현안에 대하여 근대화의 주장이 풍미하고 있었다. 만해는 일본 불교계의 이런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이란 ‘우물’을 벗어나 세계를 여행하고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일본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조선이란 나라와 조선 불교를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역자 인터뷰 1.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번역은 몇 가지가 있는데, 왜 다시 번역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의 번역본과 비교해서 선생님 번역본이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조선불교유신론》의 한글번역은 1972년 서경수 편역이 나온 이래, 1983년 이원섭 번역(2007년 개정판), 1991년 정해렴 편역, 2014년 조명제 번역 등이 간행되었습니다. 기존 번역본에서 문제점을 느끼고 새번역을 시도하면서 가장 의식했던 것은 불교학자이자 시인으로 저명한 이원섭(1925~2007) 선생의 번역본입니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굳이 이원섭 번역본을 거론하는 이유는 《조선불교유신론》 번역의 기본 틀을 제시한 작업으로 그 이후 번역본들에서 나타나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원섭 번역본은 불교학자이자 시인이라는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불교 관련 부분이나 만해가 인용하고 있는 고전의 한시(漢詩) 번역에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이 무색하리만큼 만해가 사용한 불교용어나 인용하고 있는 고전 혹은 근대 중국과 일본 서적 등의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밝힌 것 가운데서도 종종 오류가 보입니다. 기존 번역본 가운데 가장 훌륭한 편이라 할 만큼, 그에 비례해 아쉬운 부분이 두드러지는 셈입니다. 제가 단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이원섭 번역본이 없었다면 아마도 《조선불교유신론》은 여전히 암호문과 다를 바 없이 읽히지 않는 책으로 방치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조선불교유신론》의 번역사에서 이원섭 번역본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이원섭 선생의 노고에 대한 가장 여법한 회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번역본의 장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번역투의 일관성 : 《조선불교유신론》의 원문은 한글 토나 조사만 한글이고, 그 한글의 문투도 ‘~하니라’, ‘~하랴’, ‘~하나니’ 등 옛 말투로 되어 있습니다. 이원섭 번역본은 원문의 한자 부분을 비교적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반면, 한글의 문투는 현대어법과 원문의 옛 말투를 살린 대목이 섞여 있어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처럼 번역에서 직역과 의역의 선택은 늘 고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번역을 잘 한다 해도 원문의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힘든 부분이 어김없이 나타나 번역자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번역본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옛 말투를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글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둘째, 원문의 인명과 지명 확인 : 이원섭 번역본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원문에 자주 등장하는 서양철학자의 인명이나 지명 등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애매한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대목이 많습니다. 근현대 중국에서는 외국어를 표기할 때 그 외국어의 발음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한자를 빌어 표기했습니다. 이런 방식을 음차(音借)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독일의 철학자 칸트(Kant)는 ‘康德’, 프랑스의 정치가 나폴레옹(Napoleon)은 ‘拿破侖’ 등으로 적는 것입니다. 이 한자 이름에서 원래 서양인명을 역추적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1910년대 당시의 표기와 현대 중국어의 표기가 달라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해가 본문에서 언급한 서양인의 인명이나 지명은 대개 중국 근현대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글에서 인용한 것인데, 인용과정에서 누락된 것인지 량치차오의 문장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불교유신론》 원문에 사용된 한자식 서양인명과 지명의 원어표기를 찾아내는 작업은 먼저 량치차오의 문장을 비롯해 중국에서 나온 각종 외국인명사전과 지명사전 등 각종 공구서를 세밀하게 조사해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제 번역본에서는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 《조선불교유신론》 본문에 사용된 서양인명과 지명의 원어를 밝히는 한편, 이원섭 번역본에서 잘못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았습니다. 셋째, 원문의 출처에 대한 확인 : 이원섭 번역본의 큰 문제점 중 또 하나는 《조선불교유신론》 본문 가운데서 만해가
▸“나는 일찍이 불교를 유신(維新)하려는 뜻이 있어 마음속에 약간의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에 실행할 수 없었기에, 시험 삼아 말할 수 없는 불교의 신세계에 대해 자잘한 글을 지어 스스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자 할 뿐이다.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해소하는 것도 양생(養生)의 한 방법인데, 이 유신론은 매실의 그림자 격이라, 내 목마름의 불꽃이 온몸을 불사르니 어쩔 수 없이 이 매실 그림자로라도 불을 끌 맑은 샘물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불가(佛家)에서는 가뭄이 매우 심한데, 우리들 중에 목마른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만일 있다면 이 매실 그림자로 서로 비춰보기 바란다. 육도(六度) 중에서 보시(布施)가 으뜸이라고 들었는데 나도 이 매실 그림자나마 보시한 공덕으로 지옥을 면할 수 있을까.” (「序」 )
▸“유신(維新)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세상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개 말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 어쩌면 그리도 비례(比例)의 학문에서 미루어 아는 것이 멀지 못한가. 파괴라는 것은 모두 무너뜨려 없애 버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습(舊習) 중에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서,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뿐이다. 이름은 파괴지만 사실은 파괴가 아니다. 유신을 더 잘 하는 사람이 파괴도 더 잘한다. 파괴가 느린 사람은 유신도 느리고, 파괴가 빠른 사람은 유신도 빠르며, 파괴가 작은 사람은 유신도 작고, 파괴가 큰 사람은 유신도 큰 것이니, 유신의 정도는 파괴의 정도와 정비례한다. 유신에서 가장 먼저 손대야 하는 것은 파괴다.” (「논불교지유신의선파괴(論佛敎之維新宜先破壞)」 중에서)
▸“승려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보통학(普通學)이다. 보통학이란 사람의 옷·음식과 같다. 동양과 서양, 황인종과 백인종을 따질 것 없이 사람이라면 모두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줄 아는 것이니, 옷을 입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내가 알기로 며칠 못 가서 이 세상과 하직할 것이다. 보통학도 그와 같아서 이것을 모르는 자가 있다면 모든 행동과 일상생활의 온갖 일에서 막히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므로 생존경쟁의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명국에서는 사지(四肢)와 육근(六根)을 갖추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보통학을 모르는 경우가 없다. 그리고 보통학은 전문학(專門學)의 예비교과이니, 종교를 배우는 사람은 더욱 마땅히 이 점을 재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도 승려 학인들이 학력의 수준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교의 전문적 학문에 종사하여 보통학을 원수처럼 보면서, 배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헐뜯고 있으니, 사리를 헤아릴 줄 모르는 무지함이 많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또 불교 교과서와 교수 절차가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힘은 두 배나 들이고 성과는 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 그 학문이 미비하고 산만한데 집약할 줄 몰라서 차츰 안목이 고루해지고 가슴속 생각이 부패하여 괴상하고 허무맹랑한 말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풍속을 어지럽혀 심지어 세상 사람들 눈에 버린 물건처럼 보이게 만들고 사람들 속에는 떳떳이 끼지도 못하는 지경이다. 승려가 자기 몸을 스스로 상하게 하는 것이 슬픈 일인데 불교를 해치기까지 하니 또한 심하지 않은가.” (「논승려지교육(論僧侶之敎育)」 중에서)
▸“수백 년 이래 승려들은 대단한 압박을 받아 다른 사람들이 거의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으니, 그러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놀면서 입고 먹은 것도 하나의 큰 원인이다. 놀면서 입고 먹는 것은 오늘날의 경제학자가 말하는 ‘분리(分利)’에 해당한다. 분리는 남에게 해롭고 나라에 해로우며 세계에도 해롭다. 사람이 옷을 입을 수 있는 이유는 길쌈하는 데 있고,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농사짓는 데 있으니 길쌈하지 않고 옷을 입는다면 반드시 남이 길쌈한 것을 입는 셈이며, 농사짓지 않고 먹는다면 반드시 남이 농사지은 것을 먹는 셈이다. 이처럼 길쌈도 농사도 하지 않고 남의 것으로 입고 먹는 경우, 나도 다른 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할 때 내가 입고 먹는 것을 갚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답한 다음에야 서로 감정이 없어지고 전체 경제도 결함이 없게 될 것이다.” (「논승려지극복인권필자생리시(論僧侶之克復人權必自生利始)」 중에서)
목차
Ⅰ장. 『조선불교유신론』 해제
1. 저자 한용운(韓龍雲)에 대하여…………………………………………… 9
2. 저술의 시대 상황적 배경: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 12
3.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 14
4. 만해의 사상적 배경: 량치차오(梁啓超)와 사회진화론……………… 17
Ⅱ장.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역주(譯註)
1. 서(序)… …………………………………………………………………………… 21
2. 서론(緖論)……………………………………………………………………………… 23
3. 불교의 성질을 논함(論佛敎之性質)……………………………………… 29
4. 불교의 주의(主義)를 논함(論佛敎之主義)……………………………… 55
5. 불교의 유신(維新)은 먼저 파괴부터 해야 함을 논함
(論佛敎之維新宜先破壞)…………………………………………………… 64
6. 승려의 교육을 논함(論僧侶之敎育)……………………………………… 68
7. 참선을 논함(論參禪)…………………………………………………………… 84
8. 염불당 폐지를 논함(論廢念佛堂)………………………………………… 95
9. 포교를 논함(論布敎)… ……………………………………………………… 106
10. 사원의 위치를 논함(論寺院位置)… …………………………………… 120
11. 불가(佛家)에서 숭배하는 소회(塑繪)를 논함(論佛家崇拜之塑繪)…… 143
12. 불가(佛家)의 각종 의식을 논함(論佛家之各種儀式)………………… 161
13. 승려의 인권회복은 반드시 생산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논함
(論僧侶之克復人權必自生利始)… ……………………………………… 169
14. 불교의 앞날이 승니(僧尼)의 결혼여부와 관련됨을 논함
(論佛敎之前途가 關於僧尼嫁娶與否者)……………………………………… 182
15. 사원 주직(住職)의 선거법을 논함(論寺院住職選擧法)………… 206
16. 승려의 단결을 논함(論僧侶之團體)… ………………………………… 212
17. 사원의 통할을 논함(論寺院統轄)… …………………………………… 232
18. 결론(結論)… ……………………………………………………………… 238
Ⅲ장. 『조선불교유신론』의 번역과 그 연구
- 만해학(萬海學)의 ‘빛과 그림자’ -
1. 『조선불교유신론』 새 번역의 필요성… ………………………………… 245
2. 『조선불교유신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248
3. 만해의 일본행과 『조선불교유신론』의 관계…………………………… 251
4. 본 번역본에 대하여…………………………………………………………… 259
『조선불교유신론』 영인본 / 별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