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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 높은 마음

시리즈 : 태학 산문선 [26]

성해응 저 | 손혜리 역 | 태학사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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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666980 / 240쪽 127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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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기록 이 산문선의 저자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은 박학고증적인 학문 성향을 바탕으로 학술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서화(書畵), 고동(古董), 음악 등에 관한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록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훌륭한 덕과 재주를 지니고도 신분적 처지로 인해 인멸될 처지에 놓인 하층민들의 자취를 취재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성해응은 사(士)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세상과 소통하였으며, 오늘 우리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은 곳을 바...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기록 이 산문선의 저자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은 박학고증적인 학문 성향을 바탕으로 학술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서화(書畵), 고동(古董), 음악 등에 관한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록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훌륭한 덕과 재주를 지니고도 신분적 처지로 인해 인멸될 처지에 놓인 하층민들의 자취를 취재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성해응은 사(士)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세상과 소통하였으며, 오늘 우리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성해응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서족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자는 용여(龍汝), 호는 연경재(硏經齋)?난실(蘭室), 본관은 창녕으로,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다. 150여 권의『연경재전집』을 저술하여 다산 정약용과 함께 통유(通儒)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학적인 역량과 성과에 비하여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곧 지위가 덕을 충족시키지 못한 인물이다. 성해응의 문학은 ‘산문 문학’이라고 할 만큼 문(文)의 비중이 크다. 동시대에서부터 역사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고평할 만한 자취가 있는 이들의 사적을 두루 취재하여 기록하는 데 치력하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충렬을 충직하게 실천한 이름 없는 병졸이나 노비, 기녀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층 신분의 인물이 많다. 또 신선이나 협객, 악사, 장인 등 기이한 풍모를 지닌 인물도 있다. 이처럼 이들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긴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에 기인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충효열(忠孝烈)을 실천한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감정은 남달랐다. 그러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묻힐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성해응은 이들에 대해 연민과 책임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덕과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신분이 미천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채 사라질 운명에 놓이거나, 일사(逸士)로서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실현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생을 마쳐야 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그 역시 학적 역량이 뛰어났지만 포부와 경륜을 펼칠 만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멸될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한 행적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마침내 이들의 존재는 성해응의 기록으로 인해 역사에 전해지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사(士)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상과 소통하려 한 성해응의 높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책 소개 ? 제1부 ―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 성해응의 산문 작품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묘지명, 애사(哀辭) 등이 많다. 대상은 대부분 대를 이어 교유한 친구와 가족이다. 그는 일찍이 “나는 평소 교유를 즐기지 않아 교유한 것은 오직 대대로 교유한 이들이다.” “나는 중년이후부터 벗이라고 할 만한 이가 없었다. 실로 내가 부족하여 다른 사람의 벗이 되기에 부족하였고 세상 또한 벗을 구하는 자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젊어서 졸박하여 감히 사람들에게 벗을 구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나를 벗하는 이가 적었다.” “나는 본래 술을 마시지 않아 술을 마시는 자를 보면 문득 꾸짖어(…)” “나는 평소 성질이 급하여 부인은 항상 온화하고 천천히 할 것을 경계하였다”라고 술회하였다. 성격이 급하고 내성적이며 술을 좋아하지 않아 교유관계가 넓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부친 성대중(成大中)이 40여 년 동안 오랜 관직생활을 한 데다 성품이 온화하여 한 가지 선(善)이나 장점만 있어도 두루 취하여 교유관계가 폭넓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성해응은 부친으로부터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교유권은 대부분 계승하였다. 그의 교유는 심지어 3대를 이어오기도 할 만큼 기간이 길었고, 폭이 넓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사귐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쇠락과 죽음을 목도한 후 느낀 비애와 상실감, 그리고 함께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글로 표출한 것이 많다. 뛰어난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일찍 죽은 친구 이원순의 죽음을 애도한 「담박하고 깊은 우정」에서는 진솔한 우정의 장면을 하나씩 보여준다. 이원순 역시 대를 이어 교유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성해응의 부친과 친구 사이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뵙고 그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옛 추억이 된 서글픔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검서관으로 재직한 성해응은 국왕 정조의 사랑을 받고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선배 학자들과 규장각에서 함께 근무하며 학문을 토론하고 학적 역량을 드높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덕무의 부친에 이어 이덕무가 죽고, 박제가와 유득공도 불우하게 죽었다.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가 죽으면서, 성해응은 이덕무의 집안 삼대에게 곡하게 된 것이다. 이광규의 부음을 듣고 이덕무의 죽음이 떠오른 데다 박제가와 유득공의 죽음이 연상되면서 기억의 지층 아래 봉인해둔 아픔이 상기되었다. 이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심경으로 「이덕무 삼대에게 곡하다」를 썼다. 부인의 죽음을 맞아 지은 「아내의 방」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부인에 대한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이 절제된 필치로 담담하게 그려졌다. 병이 위중한데도 남편의 밥상을 차린 부인의 사랑이 숭고하기만 하다. 자신의 병은 돌보지 않고 남편을 간호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의 옛 자취를 돌아보며 통한에 찬 부정(夫情)이 애절하다. 학자로 널리 알려진 성해응의 인간적 면모와 감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제2부 ― 일상의 아름다움 아버지의 친구이자 존경하던 선배 학자인 나열(羅烈)이 30여 년 전에 지어준 시를 우연히 발견하고 감회가 일어 글을 지었다. 나열이 방문했을 때 마침 출타 중이던 부친을 대신해서 성해응이 접대하였다. 창가에 등불을 돋우고 다과를 올리며 고서화를 열람하였다. 때 맞춰 가을 하늘에는 비가 올 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둘이 마주 보며 나눈 담소는 밤이 깊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 여운을 이어 다음날 함께 송재도의 집을 방문하였다. 송재도는 아버지와 나열의 친구이다. 그는 이때 도성에 있었는데 나열이 온다는 말을 듣고 급히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석양이 사립문에서 꺾일 무렵 막 도착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성해응은 농사를 돌보기 위해 곧바로 돌아갔다. 나열은 이틀을 묵은 후 도성으로 돌아갈 때 성해응에게 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 바로 이 시를 31년 만에 우연히 발견하고 「돌아가신 선배들을 그리며」를 지었다. 선배 학자들의 풍모와 자취에 대한 그리움이 늦가을 정취와 잘 어우러진다. 동생 성해운이 고향 포천의 화산 남쪽에 집을 짓고 매화, 국화, 복숭아, 살구, 사과, 자두, 배, 무궁화, 왜홍, 산단, 작약, 모란 등 몇십 종을 골고루 심었는데 대나무만 한 그루도 없었다. 대나무는 제 살던 곳을 떠나 옮겨 심으면 죽어버린다. 매화, 국화 (…) 모란 등은 꽃과 열매의 색과 향기가 대나무보다 훨씬 아름답지만 데리고 와 키우기에 쉽다. 성해운은 이런 대나무의 본성을 사모하여 새 집의 이름을 죽곡정사(竹谷精舍)라 지었다. 성해응은 이식하기 어려운 대나무의 절개를 사모하고 이를 선비의 절개에 비유하여 죽곡정사라 명명한 아우를 칭찬하고 격려하여 「대나무 없는 곳에 대나무 집이라 이름 한 아우에게」를 지었다. 사내아이가 냇가에서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아서 보여주었다. 성해응은 물고기가 죽을까 염려되어 표주박에 물을 담아 물고기를 풀어주었다. 물고기는 이내

저자 소개


1760~1839


정조ㆍ순조 연간에 활동한 문인 학자로, 자는 용여(龍汝)이고 호는 연경재(硏經齋)ㆍ난실(蘭室)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서족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을 비롯하여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와 음성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박학고증과 실용의 학문을 추구하여 한학(漢學)을 바탕으로 한 경학과 우리나라 역사ㆍ지리에 관한 저술을 많이 남겼다. 특히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라, 고평할 만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처지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이들의 자취를 취재하여 기록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를 집대성한 것이 150여 권의 『연경재전집』이다.

역자 소개

경북대 한문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국한문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연경재 성해응 문학 연구』와 『실학파 문학 연구』(공저)가 있고, 『유배지에서 역사를 노래하다, 영남악부』, 『역주 이십일도회고시』 외 다수의 공역서가 있다. 논문으로는 「조선 후기 지식인의 생업에 대한 인식과 현실적 대응」,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 지식인들의 명(明) 유민(遺民)에 대한 기록과 편찬 의식」, 「과거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서얼가의 학지(學知) 생성과 가학(家學)의 성립」 외 다수가 있다.

책 속에서

나는 젊을 때 사교성이 없어 감히 남들과 벗을 맺지 못했다. 남들도 나하고 벗하려는 이가 드물었다. 벗이 어찌 대충 사귈 일이랴? 무릇 벗이란 굳이 손을 꼭 잡고 호감을 토로하고 마치 아교풀이 달라붙듯 그에게 반해서 마음까지 쏟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담박하면서 거슬림이 없고, 겸허하면서 서로 잘 맞으며, 잘한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지적해준다. 가깝다고 해서 너무 바짝 들러붙지 않고, 멀다고 해서 소원하게 대하지 않아야 좋은 벗이다. (25쪽)

작년 겨울 내 병이 매우 심했을 때 부인은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직접 약을 달였는데, 추위에도 불구하고 멈추지를 않았소. 올여름 내가 또 병나자, 부인은 자신의 병이 한층 깊어졌는데도 오히려 밥상을 살폈지요. 이제 좀 병세가 나아져 당신의 방에 들어갔으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구려. 옛 자취에 눈길이 닿으매 평생의 일이 두루 생각나 더욱 슬프고 목이 메는구나! 이제 말을 다 했지만 슬픔은 끝이 없네그려. 혼령께서는 이 마음을 살펴주소서. (34쪽)

옛사람들이 험하거나 먼 곳을 피하지 않고 구한 것은 반드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인데 번번이 이를 따르지 않는 민간의 풍속이 걱정스럽다. 진실로 풍속에 맞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이다. 하지만 어찌 뜻을 같이하는 한두 사람이 이에 힘입어 스스로 구제하는 일이 없을 줄 알겠는가? 또 어찌 뜻을 같이하는 한두 사람이 이웃 마을의 여럿에게 가르침을 전파하여 그 이로움을 널리 퍼뜨리는 일이 없을 줄 알겠는가? 또 어찌 후대 사람들이 그 이로움을 알아 천하에 더욱 널리 퍼뜨리는 일이 없을 줄 알겠는가?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은 실로 스스로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미미한 초목에도 정성을 다하는 이유이다. (95쪽)

우리나라 사람은 샘을 품평할 때 무거운 것을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가벼운 것이 좋다. 연꽃 이슬과 눈 녹은 물이 가장 가벼우니 이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산수가 비록 가장 좋기는 하지만, 깊은 산과 궁벽한 골짜기에 쌓인 나뭇잎이 썩어 솟아나는 샘물은 마실 수 없고, 마시면 복통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폭포수와 여울물도 마실 수 없고, 마시면 목에 병이 생긴다. 샘을 품평하는 자는 이런 것들을 몰라서는 안 된다. (109쪽)

자제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찾아가서 배워야지 스승을 집에 모시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도가 엄하다는 것을 안 뒤에야 비로소 학문에 나아갈 수 있다. 임금과 아버지는 정해진 지위가 있지만 스승에게는 그것이 없다. 오직 도가 있어야만 스승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가 존귀한지 비천한지 가리는가? 덕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세력은 남에게 달려 있다. 배우는 자는 자신을 위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남을 위하고자 하는가? (129쪽)

나는 산속에 오래 거처하면서 사계절 동안 흐드러지게 피어 만발한 초목의 꽃들과 잡초 무성한 밭도랑 등 한적함이 넘쳐흐르는 풍광을 보았다. 가장 사랑한 장면은 안개비가 갑자기 몰려와 앞산 한 자락을 가렸다가 홀연히 흩어져 산줄기를 드러내더니 온갖 자태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때 시정(詩情)과 화의(畵意)가 나도 모르게 날아 움직여 오래갔다. 하지만 말이 졸렬하여 가슴속의 뜻을 다 펼 수 없었고, 붓이 서툴러 풍광 속의 정취를 모 두 표현할 수 없었다. (137쪽)

죽하는 초겨울 낙엽 진 밤에 이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이때 사방 벌판은 깜깜하고 달빛이 창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그 형상으로 인해 의경을 얻을 수 있었다. 금사의 거문고 연주는 정제되고 절실하며, 타는 곡조는 느리고 완만했을 것이다. 이윽고 그 모습이 눈에 고요히 들어오고 소리가 슬프게 귀에 가득 들려오며 궁상(宮商)의 음률이 찌르릉 연주된다. 이것이 장자(莊子)가 말한 ‘신응(神凝)’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금사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의경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하물며 죽하의 문장이 또 그 의경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157쪽)


 

목차

목차
성해응론 ―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기록
제1부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
담박하고 깊은 우정(李時和哀辭)
내 딸 증만(?女墓誌)
아내의 방(祭亡室文)
덕에 비해 지위가 낮았던 나덕야?(羅君攸哀辭)
이덕무 삼대(三代)에게 곡하다(李奉?哀辭)
실학에 힘쓴 유득공(柳惠甫哀辭)
술 마시다 죽은 이이호(哀李彛好文)
제2부 일상의 아름다움
돌처럼 단단한 우정(送金時明序)
선과 복은 마주치지 않는가(書贈菱濠羅景先)
돌아가신 선배들을 그리며(題海陽詩後)
대나무 없는 곳에 대나무 집이라 이름 한 아우에게
(竹谷精舍記)
내가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竹谷賞荷記)
명산을 유람하는 이유(名山記序)
물고기를 기르며(養魚小記)
병상에서 쓴 편지(寄沈橋金元博尹聖兪書)
포천 지역의 공부 모임(詩社記)
아우의 회갑을 축하하며(仲弟鵬之六十一歲序)
제3부 박학과 실용
고구마를 어떻게 보급시킬 것인가(藷說)
정원에 심을 화훼 목록(花譜小序)
송이버섯의 이로움(松芝說)
좋은 벼루의 계보(硯譜)
전국 샘물을 품평한다(東國泉品序)
퉁소 부는 이한진(題丹室閔公玉簫詩後)
조선의 명필 한석봉(題韓石峯筆帖後)
최고의 생선 명태(北海魚族記)
읍루의 담비 갖옷(?婁貂記)
귀고리의 유래(兩耳懸珥環)
제4부 학문과 경세의 깨우침
스승을 부르지 말고 찾아가서 배워라(師說)
훌륭한 문장이란(秋潭集序)
시와 그림의 신묘한 경지(東詩畵譜序)
과거 문장의 병폐(題科體詩後)
서북 지역의 인재를 등용하라(奬人材)
중국의 정세를 잘 파악하라(送從子祐曾入燕序)
제5부 기인과 열녀
마음으로 듣는 아름다운 소리(復書竹下哀李琴師文後)
이 시대의 기남자 백동수(書白永叔事)
신선 이정해(書李神仙事)
김은애가 추문에 대처하는 방법(金銀愛傳)
계모에게 맞아 죽은 장 처녀(書淸安張處女獄事)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강상 효녀(江上孝女傳)
영천 박 열부와 충복 만석(書榮川朴烈婦事)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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