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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혁명가의 삶 2

원제 : Che Guevara: A Revolutionary Life
시리즈 : 체 게바라 혁명가의 삶 [2]

존 리 앤더슨 저 | 허진, 안성열 역 | 열린책들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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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917047 / 800쪽 130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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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화 뒤에 감추어진 인간, 실제의 체 게바라 균형 잡힌 시각이 돋보이는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 1997년 출간 이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제는 고전이 된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 국제 분쟁 취재 전문 기자인 존 리 앤더슨이 5년에 걸쳐 쓴 책으로, 이 책 이후로는 체 게바라에 관해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체 게바라에 관한 최종적인 전기》라는 격찬을 받았다. 《오직 체 게바라 본인에 대해서만 충실했으며, 그 누구도 아닌 체 게바라의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썼다》고 밝히는 저자 존 리 앤더슨은 이... 신화 뒤에 감추어진 인간, 실제의 체 게바라 균형 잡힌 시각이 돋보이는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 1997년 출간 이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제는 고전이 된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 국제 분쟁 취재 전문 기자인 존 리 앤더슨이 5년에 걸쳐 쓴 책으로, 이 책 이후로는 체 게바라에 관해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체 게바라에 관한 최종적인 전기》라는 격찬을 받았다. 《오직 체 게바라 본인에 대해서만 충실했으며, 그 누구도 아닌 체 게바라의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썼다》고 밝히는 저자 존 리 앤더슨은 이 책의 집필 과정에서 체의 사후 28년간 비밀의 베일에 싸여 있던 체의 시신의 행방을 알아냈고, 그럼으로써 체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쿠바 혁명의 전장까지, 다시 카스트로 정부 권력 핵심부의 요직을 박차고 나와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죽음에 이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체의 극적인 삶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체가 살았던 대강의 삶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이는 줄거리가 아니라 디테일에 있다. 저자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한 젊은이가 어떻게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이자 비정한 혁명가로 변모해 갔는지를 균형 잡힌 시각과 당대 역사에 대한 의식, 감탄할 만한 세부 묘사를 통해 완벽하게 복원해 내고 있다.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혁명을 믿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체 게바라는 왜 잊히지 않고 기억되는가? 그것은 체가 정체된 현실에 대한 영원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낭만적 열정과 냉철한 분석적 사고를 바탕으로, 체는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위해 실패를 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체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역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썼다. 체의 이미지가 오늘날 어떻게 소비되든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인물이었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하나의 역사, 특히 추악했던 냉전 시대의 역사에서 가장 도드라지고 가장 순수했던 열망을 대변하는 역사다. 체 같은 인물은 다시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천식을 앓는 자유분방한 젊은이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로,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 명문가 출신의 부모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와 셀리아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게바라를 평생 괴롭힌 천식을 그의 아버지는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 시작된 시기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수영을 하러 간 아내의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 그의 천식은 알레르기가 심했던 어머니의 유전적 성향을 물려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찬 공기와 물은 이미 잠재되어 있던 증상을 단지 촉진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천식 때문에 게바라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짓궂은 장난에 골몰하며 위험천만한 짓을 벌이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런 장난에 어른들은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경외심을 느꼈다. 무모한 신체적 도전, 다른 사람들을 이끌려는 성향, 굽힐 줄 모르는 성격, 경쟁심, 자기 규율 등 그의 성격적 특징들은 이미 소년 시절에 내재되어 있었다.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던 체 게바라는 청년 시절부터 이미 앞일을 걱정하지 않는 태도, 형식적인 절차에 대한 경멸, 전투적인 지성을 완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첫해에 게바라는 징집영장을 받았지만, 신체검사에서 천식이 확인되어 《체력 부실》을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때 그는 친구들에게 《모처럼 훌륭한 일을 해낸 이 지랄 같은 폐》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캠퍼스의 급우들에게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게바라는 늘 분주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개인적인 공부와 성찰의 세계에 할애하며 자신만의 철학 노트를 만들었고, 자신이 읽은 문헌 목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그는 대학 시절 내내 그는 방관자에 가까웠다. 관찰하고, 듣고, 토론했지만,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신중히 피했다. 20대 초반의 게바라는 매력적인 괴짜였다. 재고품 떨이 시장에서 산 낡고 잘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더러운 점퍼를 입고 다니면서도 사람들이 놀리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몇 가지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가정용 바퀴벌레 약을 개발해 특허를 받기도 했고, 도매 경매 시장에서 신발을 대량으로 싸게 구매한 다음 방문 판매를 통해 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바퀴벌레 약을 만들 때는 그의 조력자들과 게바라 자신이 시름시름 앓게 되면서 사업을 접었고, 직접 눈으로 보지도 않고 낙찰을 받은 신발들에는 짝이 안 맞는 외짝 신발들이 많았다. 체 게바라는 서로 색깔이 다른 신발 한 켤레를 신고 다니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즐겼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게바라는 여행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시야를 더욱 넓히고 싶어 했다. 의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1월 1일, 그는 작은 이탈리아제 쿠치올로 엔진을 장착한 자전거를 타고 아르헨티나 내륙을 향해 떠났다. 평생에 걸친 여행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일생 동안 이어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스물두 살이었다. 이 여행 중에 만난 한 떠돌이 노동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체 게바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맙소사, 아무런 까닭 없이 이 생고생을 사서 한다고?? 게바라는 그 떠돌이 노동자에게 자기 나라를 좀 더 보고 싶다는 말 말고는 자신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말에 게바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재미있는 일화들과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일기장에 쓰던 게바라는 이때부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깊이 살피는 글을 일기에 남기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 만난 나병 환자, 떠돌이 노동자, 구금된 자, 병원 환자 같은 이들의 삶을 뒤덮은 부당함에 대해 말이다. 1952년 1월, 게바라는 다시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남미 대륙이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게바라 일행은 오도 가도 못하고 고립되어 있던 한 부부를 만난다. 남자는 파업 때문에 투옥되었다가 막 감옥에서 풀려난 광부였다. 그는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아마도 체포된 후 사라진 다른 동지들은 아마 살해되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내와 함께 산속 깊이 있는 황 광산을 찾아가는 중이며, 그 광산은 노동 조건이 워낙 험악해 정치적 신념 따위는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들과 똑같이 춥고 배고팠으며, 똑같이 피곤에 절은 몸이었지만, 게바라는 그들과 자기 일행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았다. 그라나도와 자신은 즐거움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었던 반면 그들 부부는 박해받아 길거리로 내몰려 있었던 것이다. 게바라는 이 여행 중에 정의롭지 못한 사회 질서 때문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남미의 현실에 눈을 떴다. 미래의 계몽된 정부들이 사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결코 나아질 리가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게바라는 『여행 노트』에 이렇게 적는다. 《이 노트들을 쓴 자는 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죽었다. 그 내용을 수정하고 다듬는 사람인 《나》는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 《아메리카》를 두루 떠돈

저자 소개

 


  분쟁 지역 전문 취재 기자. 1979년 페루의 「리마 타임스」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난 30여 년간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 레바논, 엘살바도르, 우간다, 소말리아, 아일랜드 등 전 세계의 분쟁과 전쟁 지역을 취재해 왔다. 「뉴욕 타임스」, 『타임』 등 주요 매체의 중앙아메리카 담당 기자를 거쳐, 현재 『뉴요커』지 기자로 있다. 해외언론클럽상을 수차례 수상했고, 2013년에는 라틴 아메리카 취재의 공로를 인정받아 마리아 무어스 캐벗상을 수상했다. 
  근대 게릴라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던 1980년대부터 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존 리 앤더슨은 곧 그의 삶이 대부분 비밀의 베일에 가려진 채 제대로 써진 적이 없음을 깨닫고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착수한다. 그는 체 게바라의 미망인 알레이다 마르치로부터 죽은 남편의 전기를 쓰는 데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1993년 가족과 함께 아바나로 이사를 간다. 미망인 알레이다가 보관하던 체의 개인 유품들과 쿠바 정부의 비밀 자료들, 그리고 체의 어린 시절 유모와 친구들에서부터 KGB와 CIA 인사들, 볼리비아 장성들과 체를 죽인 장본인인 마리오 테란에 이르기까지, 앤더슨은 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하고 인터뷰해 나갔다. 1995년 11월 어느 날, 앤더슨은 희대의 특종을 잡는다. 28년간 비밀에 묻혀 있던 체의 매장지에 대한 언급을 인터뷰하던 한 볼리비아 장성으로부터 이끌어 낸 것이다. 이후 체에 관한 역사는 다시 쓰일 수밖에 없었다. 1997년 출간 이후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체 게바라에 관한 결정적인 전기로 인정받고 있다. 
  앤더슨의 다른 책으로는 『게릴라: 반군의 세계』, 『바그다드 함락』, 『사자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특전』 등이 있다.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의 인문주간으로 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존 리 앤더슨의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 마더 테레사의 『마더 테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수잔 브릴랜드의 『델프트 이야기』 오드리 설킬드의 『레니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메투초프가 말했듯이, 그는 자신보다 어린 체와 대화를 나누며 설득을 하려다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귀가 크고 눈은 연한 파란색에 아래턱이 단단하고 굵은 눈썹이 튀어나온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끌렸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치 나는 달아나고 싶은데, 내 자신을 떼어놓고 싶은데 그가 나를 끄는 것 같았습니다. 보세요. ……그의 눈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놀라운 눈, 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정직한 눈, 너무나 정직해서 상대방이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말을 매우 잘했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흥분했고, 그의 연설에는 상대를 쥐어짜는 듯한 힘이 있었습니다.」  _25장 <게릴라 분기점>, 2권 424∼425쪽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알레이다와 아이들이 농장으로 와서 체를 마지막으로 몇 번 만났을 때였다. 체는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라몬 삼촌>으로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아이들에게 무척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아버지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최근에 아버지를 만났으며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충고를 전해 주러 왔다고 말했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라몬 삼촌은 <파파> 체가 그랬던 것처럼 식탁의 가장 윗자리에 앉았다. _28장 <후퇴는 없다>, 2권 640쪽

 

 볼리비아에서 체의 죽음과 관련되었던 사람들 대다수가 변사하면서 소위 말하는 <체의 저주>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볼리비아 군부 대통령 레네 바리엔토스로, 그는 1969년 4월에 원인 불명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죽었다. 호아킨 군단을 배신한 농민 협력자 오노라토 로하스는 1969년 말에 <제2민족해방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아르게다스의 내무부에서 정보부 총책임자로 일하면서 체의 지문을 뜬 로베르토 킨타니야는 1971년에 독일에서 살해당했다.
  포퓰리스트 대통령 후안 호세 토레스 장군 ― 바리엔토스의 합동 참모본부의 일원으로 1967년 체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다 ― 정권을 잃은 뒤 망명했지만 1976년 아르헨티나 암살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토레스 장군이 암살당하기 2주 전에는 호아킨 센테노 아나야 장군이 파리에서 총을 맞고 죽었는데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체게바라 국제연대>라는 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체의 타도>에 한몫하여 환호를 받았던 가리 프라도 소령은 군에서 빠르게 출세하여 대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81년 산타크루스의 무장봉기 진압 작전 중에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안드레스 셀리치 중령은 체 게바라의 생포와 처형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 중에 최악의 운명을 맞이했다. 1971년에 셀리치는 군사 반란을 일으켜 후안 토레스 대통령을 쫓아내고 우파인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 장군을 권좌에 끌어올렸다. 그러나 반세르 정부의 내무장관이 된 지 고작 6개월 만에 좌천되어 파라과이 대사로 외교적 추방을 당했다. 그는 곧 독재자를 쫓아낼 공모를 시작했고, 1973년에 몰래 볼리비아로 들어가서 새로운 반란을 준비했지만 발각되어 반세르의 명령에 따라 군 폭력배들에게 맞아 죽었다. _에필로그 <꿈과 저주>, 734∼735쪽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바예그란데에서는 체의 시신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다. 1997년 7월에 양손이 없는 체의 유골이 쿠바와 아르헨티나 공동 감식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체의 유골은 비포장 활주로 아래쪽 2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다른 여섯 구의 유골과 함께 누워 있었다. 발굴 후 게릴라들의 유골은 관에 담겨 쿠바로 옮겨졌고, 조심스럽지만 감상적인 기념식이 열렸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가 기념식을 주재했으며 체의 미망인과 자녀들이 참석했다. 1997년 10월에 그의 유골은 산타클라라 시 외곽에 특별히 지은 웅장한 무덤에 공개 이장되었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후 체 게바라가 드디어 제2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바예그란데의 진흙 벽돌로 지은 전화국 벽에는 스페인어로 휘갈겨 쓴 그라피티가 남아 있다. <체 ― 그들이 결코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남다.> 아마도 이 구절은 체의 진정한 유산을 그 무엇보다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체 게바라는 대중의 상상력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영원히 젊고, 용감하고, 준엄하고, 반항적이고, 목적과 의분이 가득한 눈으로 쏘아보는 체는 죽음과 싸워서 이겼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동지들이 나이를 먹으며 시들거나 안락함에 굴복하여 더 이상 혁명이 설 자리가 없는 생활을 할 때에도 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살아생전 다른 사람들에게 추구하라고 열심히 설득했던 새로운 인간의 유일한 본보기가 되어 영원히 살아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_에필로그 <꿈과 저주>, 2권 744∼745쪽.


 

목차

목차
3부 새로운 인간 만들기
20장 최고 검사
21장 《나의 역사적 임무》
22장 《우리가 바로 미래입니다》
23장 《개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24장 원자폭탄의 시대
25장 게릴라 분기점
26장 긴 이별
27장 실패담
28장 후퇴는 없다
29장 불가피한 희생
에필로그 꿈과 저주
부록
자료에 대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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