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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돌로지와 사회학

원제 : Monadologie et Sociologie

가브리엘 타르드 저 | 이상률 역 | 이책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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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072583 / 212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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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21세기에 부활하는 타르드 사상의 강령서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의 가장 철학적인 텍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책이지만, “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반철학적인 감정이 될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혁명적이 되어라”라고 말한 타르드 사상의 중심에 서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회학자이면서 철학자이기를 원했던 그는 사회학을 철학과 분리시켜 실증주의적인 과학으로 만들려는 당시의 흐름을 거스르며 오히려 존재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담론을 자신의 사회학 이론 속에 끌어들인다. 타... 21세기에 부활하는 타르드 사상의 강령서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의 가장 철학적인 텍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책이지만, “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반철학적인 감정이 될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혁명적이 되어라”라고 말한 타르드 사상의 중심에 서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회학자이면서 철학자이기를 원했던 그는 사회학을 철학과 분리시켜 실증주의적인 과학으로 만들려는 당시의 흐름을 거스르며 오히려 존재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담론을 자신의 사회학 이론 속에 끌어들인다. 타르드 사상의 강령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수용해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타르드의 철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또 하나의 사회학, 모나돌로지에서 신모나돌로지로 1960년대 말부터 타르드가 재평가된 이후 그에 대한 논의는 《모방의 법칙》, 《여론과 군중》, 《사회 법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타르드 논평가들은 타르드를 보통 뒤르켐의 사회학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개인주의자 또는 심리학주의자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의는 사회학자 또는 사회심리학자로서의 타르드 사상은 얻을지 몰라도 철학자로서의 타르드 사상은 놓치게 된다. 사회학이 철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뒤르켐과는 달리, 타르드는 철학 없이는 사회학을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타르드에게는 철학이 없다면 사회학도 없다. 그래서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은 철학자로서의 타르드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문헌이다. 최근 타르드를 ‘분자적인 또는 미시물리적인 사회학의 창시자’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과 과학 사이에 엄격한 경계를 세우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타르드는 과학이 철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학을 철학과 분리시켜 실증주의적인 과학으로 만들려는 당시의 흐름을 거스른 것이다. 오히려 그는 존재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담론을 자신의 사회이론 속에 기꺼이 끌어들인다. 그는 특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이 당시 자연과학의 성과와 가장 잘 일치한다고 생각하면서 그 존재론적 함의를 자신의 철학 원리의 중심으로 삼는다. 타르드는 자신의 입장을 “신모나돌로지적 가설hypothese neomonadologique”이라고 명명한다. 디지털 세계가 타르드의 통찰이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보는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20세기에는 완전한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고 어떤 의의도 없었지만, 21세기에는 어떠한 것도 타르드가 그 모든 영향력을 펼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타르드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현재의 사회학자인 동시에 미래의 사상가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잊힌 사회학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사회학적 사고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대안적인 사회이론의 선구자로서 그를 주목하는 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신모나돌로지의 세 가지 원리 신모나돌로지라고 일컬어지는 타르드의 철학은 세 가지 원리에 기초해 있다. 첫째, 존재의 존재발생적 차이화 원리다. 즉 차이가 모든 존재의 근원에 있다는 것이다. 타르드는 각각의 존재에는 그 존재만의 개별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존재들 간의 동질성이란 사실 부분적인 유사이며, 이 같은 유사도 동화의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실재le reel의 무한소적 구성원리다. 타르드는 당시 생물학에서 세포와 미생물의 발견, 화학에서 원자와 전자의 발견 등 자연과학에서 미시적인 요소의 발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타르드에 따르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모든 것은 이 무한소에서 출발한다. 무한소는 서로 결합해 복합체가 되고 또 그러한 결합을 계속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복합체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우리가 무한소라고 말하는 작은 존재가 진정한 동인動因이며, 우리가 무한히 작다고 말하는 작은 변화가 진정한 행위다. 셋째, 가능태의 선존재先存在 원리다. 즉 실현된 것은 실현될 수 있는 것의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르드는 현실태란 가능태의 한 경우로만 이해할 수 있고 또 무수히 많은 가능태와 관련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사건은 발생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불확정 상태에 있다. 이 여러 가능성(즉 가능태)이 서로 다투다가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그 중 하나가 현실태가 되는 것이다. 의심론과 의사회론 타르드는 무한소가 우주 전체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무한소란 무엇인가? 그것은 크기도 양도 없는 가설적인 실재다. 이것은 진짜 물질인가? 타르드는 물질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그것이 물질이라면 연장(크기, 길이, 부피)이 있을 것이며, 그럴 경우 그것은 계속 분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무한소란 물질 이전의 것, 즉 비물질적인 것, 말하자면 어떤 정신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추측하였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물질은 정신에 속하며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이 책 35쪽). 이러한 정신일원론은 타르드로 하여금 우주의 정신화la spiritualisation de l’univers를 시도하게 하면서 그를 보편적 의심론疑心論으로 이끈다. 보편적 의심론이란 물질이든 생물이든 인간이든 우주의 모든 것을 정신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때 타르드는 이 의심론이 의인론anthropomorphisme과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것과는 분명하게 구분지었다. 그런데 무한소는 어떤 원리에 따라 결합하며 커져 가는가? 무한소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의 원리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존재인 이상, 어떤 정신적인 원리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타르드는 그 결합과 확대의 원리로 믿음과 욕망이라는 두 개의 정신적인 힘을 제시한다. 믿음은 개체들에 결합을 가져다주며 그 결합을 유지하고 공고하게 하는 힘이다. 욕망은 각각의 개체가 자신을 확대하는 힘이다. 믿음이 정적인 힘이라면, 욕망은 동적인 힘이다. 이 같은 믿음과 욕망의 두 힘이 무한소에서부터 물질(원자), 생물(세포), 사회(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결합하고 확대시킨다. 이러한 논리를 따를 경우, 개체는 자기 안에 동인動因을 지닌 자율적인 존재가 되며, 개체들의 결합체 즉 복합체는 사회가 된다. 따라서 타르드는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모든 사물은 사회이며, 모든 현상은 사회적 사실이다l”(이 책 58쪽). 이것은 세포 간의 결합이든, 원자 간의 결합이든, 인간 간의 결합이든 결합된 것이면 그 모든 것을 사회로 보는 의사회론疑社會論의 표명이다. 소유의 철학 타르드는 존재의 궁극적인 실체가 무한소, 즉 모나드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모나드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들은 닫혀 있고 서로 독립된 존재이지만, 타르드의 모나드들은 열려 있으며 서로 침투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들과는 달리 타르드의 “모나드들은 분명히 서로의 일부를 이루지만, 다소간에 서로 간에 속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최고도의 소유를 갈망한다. 그래서 모나드들의 점차적인 집중화가 일어난다.”이와 같이 해서 모나드에서 모나드로의 소유 작용이 그것들 간의 기본적인 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일방적인 소유든 상호적인 소유든 소유가 보편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해서 타르드는 소유의 철학la philos

저자 소개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 1843~1904) 


가브리엘 타르드는 에밀 뒤르케임과 더불어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계를 대표한 사상가였지만, 사후 오랫동안 잊혔다. 1960년대 말 철학자 질 들뢰즈가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재평가하면서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타르드 전집을 간행 중이며, 특히 브뤼노 라투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등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타르드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이러한 열기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타르드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학자들의 전공 분야도 사회학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철학, 커뮤니케이션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법칙』 은 타르드가 자신의 철학을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해 그 핵심을 정리한 것으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통과지점이다. 주요 저서로 『사회법칙』 이외에 『여론과 군중』, 『모방의 법칙』, 『모나돌로지와 사회학』, 『권력의 변형』, 『사회논리학』, 『보편적 대립』, 『경제심리학』 등이 있다.

역자 소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번역서로는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국가는 거대한 허구다》,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 《여론과 군중》,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빵의 쟁취》, 막스 베버의 《관료제》, 《사회학의 기초개념》,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 《유교와 도교》, 베르너 좀바르트의 《전쟁과 자본주의》,《사치와 자본주의》, 칼 뢰비트의 《베버와 마르크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군중의 시대》, 그랜트 매크래켄의 《문화와 소비》,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라이프니츠의 딸들인 모나드들은 태어난 이후 계속 전진하였다. 과학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나드들은 여러 독립된 길을 통해 현대 과학의 심장 속에 스며들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라이프니츠적인 의미에서는 아니더라도 본질적인 점에서 이 위대한 가설에 함축된 모든 부차적인 가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_p.17

라이프니츠는 닫힌 모나드라는 자신의 생각을 보완하기 위해, 그 각각의 모나드를 어두운 방으로 보고 거기에서는 다른 모나드들의 세계 전체가 축소된 형태로 또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그려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 [중략] … 우리는 서로 무관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상호침투하는 열린 모나드들을 생각해 내면 그 수수께끼들이 풀린다고 기대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_p.54-55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물이 사회이며 모든 현상이 사회적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과학이-게다가 지금까지 말한 일련의 논리를 통해 보면-사회 개념을 이상할 정도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동물사회, 세포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원자사회에 대해서 말하면 왜 안 되는가? _p.58

나는 가설을 만든다Hypotheses fingo라고 나는 고지식하게 말하고 싶다. 과학에는 위험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빠짝 조인 추론, 즉 마지막 깊이까지 또는 마지막 낭떠러지까지 논리적으로 따라간 추론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상태에 있는 사상유령이다. 보편사회학의 관점이란 내가 보기에는 오늘날 사상가들의 뇌를 떠나지 않는 그러한 유령 중 하나인 것 같다. 우선은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를 보자. 괴상하다고 여길 위험이 있지만 지나친 생각을 해보자. 특히 이러한 문제에서는 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반反철학적인 감정이 될 것이다. _pp.68-69

모든 정신활동이 신체기관의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 위대한 진실은 우리 관점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이 진실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된다. 즉 사회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다른 많은 사람들(대부분의 경우 처음에는 알지 못한 다른 개인들)의 협력 없이는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_p.69

그렇지만 그 어떤 사회집단이 아무리 친밀하고 깊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도, 집합적 자아가 신기한 결과로서(그 구성원들이 단지 그 조건에 불과한 신기한 결과로서) 놀랍게도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볼 수 없다. 집단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한 명의 구성원이나 각자가 특수한 측면에서 집단을 완전히 똑같이 개별적으로 표현하는 소수의 구성원들(한 나라의 장관들)은 아마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두머리나 우두머리들도 역시 언제나 그들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집단구성원이지, 그들의 신하나 피통치자에게서 집단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의식이 있는 인간들의 일치는 어는 사회에서든 그러한 위력이 없는데, 의식이 없는 뇌세포들의 일치는 왜 발달되지 않은 뇌에서도 의식을 매일 무無에서 불러일으키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 _p.73

우리가 그 안에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인 (인간) 사회세계를 관찰한다면, 행위자 즉 인간이 통치기구, 법이나 믿음의 체계, 사전이나 문법 등 이런 것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보다 훨씬 더 분화[차이화]되어 있고 개인마다 특징이 있으며 또 훨씬 더 풍부하게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거기에 참여하는) 행위자들 중 한 사람의 그 어떤 정신상태보다 더 단순하고 분명하다. _p.75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억양, 음정, 목소리, 몸짓으로 말한다. 여기에 사회적 요소, 즉 조화되지 않은 이질성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혼란이 있다. 그렇지만 마침내는 이 혼란스러운 바벨탑에서 일반적인 언어습관이 흘러나오며, 그 습관은 문법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문법은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함께 교류하게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생각의 고유한 표현(즉 다른 종류의 불일치)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만 소용될 뿐이다. 그리고 문법은 그 자체가 더 고정되고 획일적인 것이 될수록 정신을 더욱더 다양화하는 데 성공한다. _p.82

모든 철학이 지금까지는 있다[…이다]Êre라는 동사 위에 세워졌는데, 이에 대한 정의는 발견해야 할 현자의 돌인 것 같았다. 모든 철학이 갖다Avoir라는 동사 위에 세워졌다면, 쓸데없는 많은 논쟁이나 정신의 많은 제자리걸음을 피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있다[…이다]Je suis라는 이 원리는 아주 섬세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는 나의 존재 이외의 그 어떤 다른 존재도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갖는다J’ai’라는 공리를 먼저 근본적인 사실로 가정하자. _p.102

현실의 기괴하고 일그러진 성격, 즉 분명히 내전으로 찢겨진 다음 불안정한 타협이 뒤따르는 현실의 그러한 성격은 세계의 동인動因이 다수라는 것을 증명한다. _p.113

이것은 다소 분명한 자기 나름의 성격을 지닌 그 여하한 사회적 산물(예를 들면 산업제품, 시, 문구, 뇌의 구석 어딘가에서 어느 날 나타난 어떤 정치사상)이 알렉산더 대왕처럼 세계 정복을 꿈꾸고,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무수한 표본을 통해 자신을 투사하려고 하는 이유다. 그 사회적 산물이 도중에 멈추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야심을 지닌 경쟁자와 충돌해 뒤로 물러날 때뿐이다. _p.118

목차

목차
독일어판 서문 사회적인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과학? _브뤼노 라투르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부록Ⅰ 가브리엘 타르드와 사회적인 것의 종말 _브뤼노 라투르
부록Ⅱ 소유의 역학 : 가브리엘 타르드의 사회학 입문 _디디에 드베스
해설 모나돌로지에서 신모나돌로지로 _이상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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