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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어느 겨울 동화 공산당 선언

하인리히 하이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 | 홍성광 역 | 연암서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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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54629 / 295쪽 135 x 196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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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독일. 어느 겨울 동화』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한스 카우프만 “『공산당 선언』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한 선언서이다.” -알렉스 칼리니코스 하이네?와 그의 친구 마르크스, 시와 사상의 만남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 낭만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친구로서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꿈꾼 혁명 시인이었다. 하이네는 마르크스, 하인리히 뵐, 위르겐 하버마스, 귄터 그라스 등으로 이어지는 독일 지식인들 중 최초의 지식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종교는 민중의 아... “『독일. 어느 겨울 동화』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한스 카우프만 “『공산당 선언』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한 선언서이다.” -알렉스 칼리니코스 하이네와 그의 친구 마르크스, 시와 사상의 만남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 낭만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친구로서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꿈꾼 혁명 시인이었다. 하이네는 마르크스, 하인리히 뵐, 위르겐 하버마스, 귄터 그라스 등으로 이어지는 독일 지식인들 중 최초의 지식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표현도 하이네가 마르크스보다 10년 앞서 한 말이었다. 마르크스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14개월 동안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사이였다. 1840년부터 43년 사이에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실린 하이네의 글은 청년 마르크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도 『독일. 어느 겨울 동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공산당 선언』과 『독일. 어느 겨울 동화』 둘 다 봉건 타파, 속물 부르주아 비판, 혁명의 필요성, 종교의 거부에 공감하고 있다. 『독일. 어느 겨울 동화』가 독일의 봉건 영주, 물질주의에 경도된 속물 시민을 비판하고 있다면,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해 부르주아 계급의 타도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유령 하나가 유럽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첫 문장은 『독일. 어느 겨울 동화』에서 화자를 따라다니는 무시무시한 분신을 상기시킨다. 분신은 화자의 사고를 집행하는 행동의 역할을 한다. 화자의 분신은 봉건 군주에게 철퇴를 가하고,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부르주아 계급을 깨뜨린다. 『독일. 어느 겨울 동화』에서의 화자와 그 분신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와 그 분신인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관계이다. “『독일. 어느 겨울 동화』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한스 카우프만 “『공산당 선언』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한 선언서이다.” -알렉스 칼리니코스

저자 소개

1797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함부르크의 은행가인 숙부 잘로몬 하이네처럼 대상인이 되기를 바랐으나, 장사보다는 문학에 더 재능이 더 많았던 청년 하이네의 상인 수업은 그의 첫사랑과 더불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숙부의 도움으로 본 대학교에 입학, 이어 괴팅겐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등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법학보다는 슐레겔의 문학 강의나 헤겔의 철학 강의에 심취했다. 1825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 노력했으나 당시 독일 내 팽배했던 반유대정서와 이듬해 출간된 《여행화첩》에 대한 보수인사들의 적대감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 1827년에는 <로렐라이> <노래의 날개 위에> 등이 수록된 시집 《노래의 책》을 발표했다. 후일 슈베르트, 슈만 등에 의해 음악으로 재탄생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애송되는 이 시들을 통해 하이네는 대표적 서정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일생에 걸친 저술 활동의 소재로 삼은 것은 민중의 해방 같은 시대의 문제들이었다. 프랑스의 7월혁명에 크게 감화된 하이네는 자신을 포함한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1831년 파리로 망명을 감행한다. 이곳에서 그는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통신원으로 일하는 한편 《프랑스의 상황》, 《독일 최근 문학의 역사에 대하여》 등의 저술을 통해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위한 교량 역할을 했다. 또한 1840년대에는 마르크스와 친교를 맺기도 했으나 당시 대두하기 시작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 쓰인 두 편의 운문서사시 《아타 트롤. 한 여름밤의 꿈》과 《독일, 어느 겨울동화》는 한편으로 봉건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을, 다른 한편으로는 왜곡된 혁명 운동의 편협함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하이네의 예술적 참여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848년 척수결핵으로 쓰러져 8년간 병상에 묶인 생활을 하였으나 창작에의 열정을 거두지 않았던 하이네는 1854년 2월 17일 파리 마티뇽가 자택에서 사망, 자신의 유언에 따라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1818년 독일 라인 주(州) 트리어에서 유대인 그리스도교 가정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본 및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고,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여 각 나라 혁명에 불을 지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며, 전 생애를 거쳐『자본론』집필에 전념했다. 1883년 3월 14일 런던 자택에서 평생 동지인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을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세계사적인 혁명 이론과 실천 활동을 전개한 혁명가다.

1820년 베스트팔렌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이미 공산주의로 전향한 엥겔스는 1842년 가족 기업을 대표하여 영국 맨체스터로 건너갔다. 방적공 메리 번스와의 관계와 지방 오언주의자들과 차티스트들과의 우정은 그의 유명한 초기 저작 『1844년 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에 영감을 주었다. 1844년 마르크스와의 공동 작업이 시작됐고, 1847년 『공산당 선언』의 초안들을 작성했다. 독일 혁명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후, 엥겔스는 맨체스터로 돌아가 1870년까지 일하다가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르크스를 재정적으로 도왔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마르크스와 입장을 같이함으로써 그 입지를 강화했다.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는 『자본론』 출간을 준비했다. 1895년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다.

역자 소개

1959년 강원도 삼척 출생, 부산고 졸업.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마의 산』, 카프카의 『변신』, 『소송』, 『성』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등이 있다. 

목차

목차
해제 마르크스의 친구 하이네와 그들의 혁명 이념
독일. 어느 겨울 동화
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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