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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원제 : ちょうちんそで

에쿠니 가오리 저 | 김난주 역 | 소담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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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섬세한 감성 소설의 일인자 에쿠니 가오리, 기존 작품의 틀을 깨고 새얼굴로 돌아오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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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3812196 / 204쪽 / 286g / 131 x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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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쉰네 살 히나코의 내면에는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른다. 아니, ‘가공의 여동생’과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그 다른 시간의 흐름에 밀려 현실은 저만치 뒤로 밀려나 있다. 그녀의 현실은 ‘어느 시점’ 이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버지 다른 두 아들과 불쑥불쑥 찾아오는 옆집 아저씨, 노령자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삶은 그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현재를 구성한다.
_역자 후기 중에서

섬세한 감성 소설의 일인자 에쿠니 가오리,
기존 작품의 틀을 깨고 새 얼굴로 돌아오다


섬세한 필치로 국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엔 독특한 추리 형식의 장편소설을 들고 나왔다. 에쿠니 가오리는 보통 사랑과 기다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애틋하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소설 『등 뒤의 기억(원제: ちょうちんそで, 불룩 소매)』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설적 구도는 기존 작품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과, 그 다양한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초반부터 이 인물, 저 인물의 각기 다른 사연을 차례로 접하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소설 속에 암묵적인 장치로 녹여낸 인물들 간의 개연성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가며 새로운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이 소설의 중심축에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히나코가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는 무척이나 정적이고 조용한 성품이고, 그녀의 집은 그녀만큼이나 적막하다. 타인이 보는 그녀는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독신녀이지만, 그녀의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히나코는 혼자가 아니다. 돌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언제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집을 종종 찾아오는 이웃 남자는 히나코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과거의 비밀을 자꾸만 들춘다.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서서히 맞춰지는 진실의 조각들. 그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독자들은 히나코의 가슴 먹먹한 고독과, 옛 추억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오롯이 마주하게 된다.

“마음을 품고 있는 한, 그 관계는 유효하다”
추억을 마주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


소녀라 하기엔 나이를 먹은 자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에쿠니 가오리는 말했다.
“『하느님의 보트』 때도 그렇고, 이 책에 등장하는 아메코 역시 그렇지만, 남이 보기에 완전히 끝난 관계라 해도, 자신은 아직도 그 관계 속에서, 그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히나코의 경우, 본인은 그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끝났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 끝난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람이 그 마음을 품고 있는 한은, 그것은 유효합니다.”
만남과 인연에 관한 에쿠니의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기다림’이라는 코드도 그녀의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행방이 묘연한 동생을 적극적으로 찾기보다는 기억 속의 동생,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가공의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인연을 추억하는 히나코의 일상은 그래서 더욱 애달프고 처연하다. 소설 속 여러 인물의 매개체로 등장하는 ‘고비토’라는 미스터리한 존재는 어쩌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며 잊고 사는 무엇,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끈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 ‘고비토’라는 미스터리한 존재 외에도 감상의 흥미를 더하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전작 『하느님의 보트』 속 남편을 기다리는 여주인공과 이 소설 속 히나코의 여동생 이름이 같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행담이나 여동생과의 추억 이야기에 에쿠니 가오리의 개인 경험이 꽤 많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수필집까지 두루 탐독한 오랜 팬이라면 소설 속 히나코와 아메코에게서 에쿠니 가오리 자매의 모습을 여럿 발견할 것이다.
소설이 조용한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독자들은 히나코와 그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슬픔에 젖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히나코의 방 안, 허망하리만치 고요한 풍경처럼.

저자 소개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에쿠니 가오리는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1992)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의 작은 새』(1998)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았다.


저서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호텔 선인장》,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있다》,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하는 사랑》,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웨하스 의자》, 《도쿄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좌안 1, 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부드러운 양상추》, 《나의 작은 새》,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잡동사니》, 《한낮인데 어두운 방》

역자 소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쇼와여자대학(昭和女子大学)에서 일본 근대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신기한 돈(ふしぎなお金)』『사각형의 역사(四角形の歴史)』『냉정과 열정 사이: 로소(冷靜と情熱のあいだ: Rosso)』 『키친(キッチン)』『박사가 사랑한 수식(博士の愛した數式)』『겐지 이야기(源氏物語)』『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별을 담은 배(ほしぼしのふね)』『신참자(新參者)』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순응하는 거야.”
엄마는 입버릇처럼 그런 말을 자주 한다. 대개는 나쓰키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다. 그녀에게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쓰키는 엄마에게는 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빠에게도. 경험상, 그들이 서로에게 무슨 말이든 한다는 것을 나쓰키는 알고 있다.
그 꿈에는 나쓰키 외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나쓰키는 혼자 거기에 있다. 일본에서 전에 살았던 집에. 현관으로 들어서면, 나쓰키는 심장이 터질 듯이 반갑다. 그런 기분으로, 방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걷는다.
‘아, 여기.’
그 꿈속에서, 나쓰키는 많은 것을 본다. 커튼과 벽과 부엌, 복도와 침대와 천장.
‘아, 이거.’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이고 그리움으로 가득한데, 눈을 뜨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커튼의 무늬도, 벽의 모습도, 부엌에 뭐가 있었는지도. 그래서 잠이 깬 후에는 한참이나 멍해지고 만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집이 가엾어서 슬퍼진다. 때로 나쓰키는 그런 꿈을 꾸지만, 꿈 얘기를 하면 엄마와 아빠는 딸이 일본에 돌아가고 싶어 하나 보다고 걱정할 것이다. 실제로는,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닌데. _pp.44~45

어머니에게 건강해 보인다고 한 것은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2년 반 전, 병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어머니는 죽은 사람 같았다. 영양실조에 극도로 쇠약해진 데다 알코올중독 직전이라고 들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표정 하나 없고,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얼굴도 몸도 딱딱하게 쪼그라든 것처럼 보였고, 긴 머리는 더럽게 엉켜 있고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다. 마코토에게는 어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보다 돌아왔을 때(그걸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 어쩔 수 없으리만큼 화가 났다. 기억 속의 엄마, 쾌활하고 정이 깊고, 언제든 아빠를 웃게 하고, 어렸던 자신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예쁘고 부드러운 몸의, 옆에 있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_pp.76~77

“동생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남자의 말은 순식간에 히나코를 산산이 부서뜨렸다. 방 안에 있는 가공의 여동생을 소멸시켰고,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저 끊기게 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방과, 그렇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인 이 기묘한 아파트 자체, 눈앞의 남자(거의 알지도 못함에도 집 안에 들이고 홍차까지 끓여주는). 그런 현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굴욕적인지 순식간에 깨닫게 하고 말았다. 마치, 히나코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처럼. _p.121

해 질 녘. 오늘은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해서 러브호텔에 들러 여기로 왔다. 아미는 마코토와 나눈 섹스를 수첩에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오늘은 그 백 번째로 기념할 만한 날이다. 1년 8개월에 백 번. 횟수에 의미는 없다 쳐도, 꽤 멋진 사실이 아닌가.
아미는 만날 때마다 자신이 마코토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기쁜 한편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미는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코토든 아니든, 이 이상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고 말 것 같아, 그런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_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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