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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의 인문학 이상한 놈, 필링의 인문학을 만나다

유범상 저 | 논형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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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571539 / 424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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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지친 나를 위로하는 힐링의 인문학에서, 나를 지치게 만드는 본질을 찾는 필링의 인문학으로 한 인디언이 말을 타고 질주하다 갑자기 멈춘다. 너무 빨리 달려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친 영혼을 기다려 위로한다. 고전도 읽어주고 여행도 하고 이것이 힐링의 인문학이다. 또 다른 인디언도 멈추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말을 본다. ‘어떤 놈이 내 말에 눈가리개를!’ 누군가 씌워 놓은 눈가리개를 확 벗겨 내던진다. 이것이 필링의 인문학이다. 힐링의 인문학이 지친 내 영혼을 위로하는... 지친 나를 위로하는 힐링의 인문학에서, 나를 지치게 만드는 본질을 찾는 필링의 인문학으로 한 인디언이 말을 타고 질주하다 갑자기 멈춘다. 너무 빨리 달려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친 영혼을 기다려 위로한다. 고전도 읽어주고 여행도 하고 이것이 힐링의 인문학이다. 또 다른 인디언도 멈추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말을 본다. ‘어떤 놈이 내 말에 눈가리개를!’ 누군가 씌워 놓은 눈가리개를 확 벗겨 내던진다. 이것이 필링의 인문학이다. 힐링의 인문학이 지친 내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필링의 인문학은 나를 지치게 만드는 본질을 찾아 문제 삼는다. 인문학은 단순히 교양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나인 ‘실존적 자아’를 권력과 정치의 관계 속에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또 다른 나인 ‘성찰적 자아’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인문학, 권력인문학, 비판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찰적 자아를 찾으려고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며 답한다. 첫째, 과연 나는 생각하는가, 둘째, 나는 행복한가, 셋째, 희망은 있는가. 실존적 나는 생각당하며 살고 있다. 정치의 대상이 된 나는 어두운 뒤안길의 사회에서 불행하다. 희망은 어디 있는가. 이 책은 타자의 상징으로 생각당하는 대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성찰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큰 변화를 만드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처럼 도처에서 권력과 제도의 가면을 벗기면서 토론하고실천하는 시민들에게서 ‘근거 있는 낙관주의’의 희망을 발견한다. 책속으로 추가 성찰, 나는 행복한가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을 위해 근대화와 자주국방, 즉 발전주의와 반공주의를 옹호했다. 이렇게 해서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의 세계화는 1997년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자본은 이제 자본이 발전국가를 딛고 독자적으로 서기 시작했다. 지금 시민사회는 여전히 ‘선성장 후분배’,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를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많은 사람이 실업·노령·장애로 인한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OECD 조사에 의하면 2009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4,513명으로 OECD 평균 13.0의 2배 이상이나 된다. 더 나쁜 것은 노인과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다. 노인의 경우 2010년 OECD 국가 중 1위인데, 더 심각한 것은 빈곤층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생계 때문이다. 청소년도 자살률 1위다. 입시경쟁에 내몰려 성적·진학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점이다. 성공한 국가라는 이면에서 시민들이 지쳐가는 것이다. 또한 출산율도 OECD 최하위였다.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비정규직의 비율은 계속 늘고, 연간노동시간은 세계 2위다. 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2013년 가계부채가 1천조에 달하면서 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워 대부업체에서 고금리로 대출받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 소득은 뻔한데 치솟는 전셋값과 갈수록 커지는 가계대출 때문이다. 중소 자영업자도 대출원리금 갚는 데 허덕이고 있다. 이 우울한 현실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브라질을 변화시킨 실천적 인물인 그는 “나는 생존의 세계에 서식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인식과 변화의 세계에 사는, 세계와 더불어 사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즉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비판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 속의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나의 어제와 오늘 , 내일은 불행하기 그지없다. 국가가 훌쩍 성장해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참극을 접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빠진 것도 기가막힌데 300여 명의 희생자가 난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무능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세상에서 사는 지를 깨닫게 한다. 불안해서 더 불행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이 사회에서 위험은 전면화되었다.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의 활화산을 깔고 앉아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그 원인은 근대화라고 밝혔다. 우리도 이제 그만할 때다. 외눈박이 눈으로 질주하는 한국호를 묵인하는 것, 이 질주가 만든 위험과 위험의 피해를 단순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 조직화된 무책임을 용인하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아 단죄하고 자기 위로하는 것. 세월호의 암초는 내부에 있었다. 그 암초를 ‘we’가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찾고, 함께 제거하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집합적 실천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독일과 스웨덴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충고한다. 사회 도처에서 성찰하고 토론하는 모임과 광장을 만들라고. 정신질환을 매개로 만나는 환자와 의사만의 광장이 아니라 세월호를 홀로코스트처럼 영원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 광장은 시민들이 학습과 교육, 소통을 통해 일상의 정치가 늘 있는 집합적 시민광장이어야 한다. 이상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상상하라. 이것이야말로 세월호에 대한 산 자들의 기본 의무다. 상상, 희망은 있는가 ‘빛의 천사’라고 부르는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1909년 29세에 미국 사회당에 입당해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그녀는 사회주의를 찬양하며 소비에트와 노동자계급을 지지했고, 미국과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실천이 비판의 기본적인 정신이고, 그래서 비판은 매우 희망적인 행위다. 비판이 없다면 현실유지와 대안부재(TINA)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으니 현실을 수긍하며 열심히 적응하자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입시지옥과 비정규직 세상은 나와 내 아이에게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 나는 비판을 현재 이곳의 상식과 대면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비판은 상식을 비판하고, 정책과 제도를 문제 삼아 그 이면에 있는 권력관계와 이념을 밝혀내는 것이다. 필링의 인문학은 나를 지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비판이자 실천을 의미한다. 마중물은 이 실천의 의미, 방향,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 말은 변화가 도처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역과 마을, 현장에서 전문가가 아닌 일상의 문제를 느끼는 누구나 다 정책 입안가와 시민교육가가 되어야 하며, 또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마중물은 교육할 줄 아는 사람, 시민교사다. 교육을 매개로 상식의 전복을 통한 의식의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이다. 마중물은 시민교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관심을 정책으로 향해야 한다. 정책은 시민들의 일상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마중물은 현 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다음 마중물은 대안정책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누구나 각자의 공간에서 실천하면 된다. 토론을 하는 것, 선거와 정책을 꼼꼼히 따지는 것, 자원봉

저자 소개

사회과학자로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석사 논문으로 정치철학을 고민했고, 박사 논문은 노동 문제를 주제로 썼으며, 노동연구원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사회정책을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국에서 사회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더 받았다. 이 과정에서 불평등과 빈곤은 자본주의와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확신했다. 한국에 돌아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이때 만난 사람들과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이하 사단법인 마중물)을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삶의 터전이고 불평등의 온상이라면, 정치는 자본주의를 유지, 수정 혹은 변혁하는 인간적인 행위이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은 의외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해야 이 주제를 시민들이 깊이 이해하고, 자신들의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대중서인 《필링의 인문학》과《고독한 나에서 함께 하는 우리로》(공저)는 이 고민의 산물이다. 더 좋은 방법을 찾던 중 발견한 것이 문학작품이다. 문학작품은 문제를 보다 쉽고 본질적이고 친근하게 이끈다. 그래서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고 그 결실이 《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이다.
그 사이 사단법인 마중물에 모인 사람들이 협동조합(마중물문화광장)을 만들었고 이 협동조합은 인천 소래포구에 ‘마중물문화광장 샘’(마샘)이라는 문화복합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방송통신대학은 2018년부터 사회복지학과를 신설했고 초대 학과장이 되었다. 책이 출간된다면 제일 먼저 이 두 곳에서 강좌를 열어 공유하고 싶다. 지금 이 시간에는 청소년들까지 자본주의와 정치를 토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고, 곧 정치 우화 형식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책 속에서

<프롤로그> 이상한 놈, 필링의 인문학을 발견하다

필링(Peeling)의 인문학은 인간을 정치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눈가리개를 문제 삼아 그것을 벗겨내는 것이다. 개인의 영혼은 채찍과 눈가리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를 지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권력관계와 구조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이제 인문학은 개인의 이해와 힐링(healing)을 넘어 공동체의 갈등과 구조를 필링해야 한다. 힐링은 힐링 자체로 힐링되는 것이 아니라 필링과 필링의 정치를 통해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필링의 인문학은 진정한 힐링의 조건을 만들고, 생각하는 정치적 주체를 통해 작동할 것이다. 이때 인문학은 단순히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실천이 되는 것이다.

질문, 과연 나는 생각하는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즉 인간의 존재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나’에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생각‘당하는’ 존재라면 어떻게 될까.
나라는 존재는 남성·장남·검사 등 그 사회의 상징을 담은 그 언어와 의미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상징계다. 즉 이 단계에서 이 사회가 부여한 상징을 통해 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상징계에 자기 색깔의 상식을 진리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가 자기 생각을 채색하려는 것이 상식의 지배다.
정치가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이 되고, 이상한 놈이 될 수 없을 때 인문학은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상한 놈이 되어 비판하며 상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은 정치에 대해 민감한 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 존재하는 학교·공장·가정은 물론 정치의 싸움기술인 상식에 대해 비판하고 또 비판해야 한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등에처럼. 또 노동을 외면하는 현실을 문제 삼아 비판하고 성찰하며 상상할 수 있는 실천 지혜의 샘이 되어야 한다.

성찰, 나는 행복한가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을 위해 근대화와 자주국방, 즉 발전주의와 반공주의를 옹호했다. 이렇게 해서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의 세계화는 1997년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자본은 이제 자본이 발전국가를 딛고 독자적으로 서기 시작했다.
지금 시민사회는 여전히 ‘선성장 후분배’,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를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많은 사람이 실업·노령·장애로 인한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OECD 조사에 의하면 2009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4,513명으로 OECD 평균 13.0의 2배 이상이나 된다. 더 나쁜 것은 노인과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다. 노인의 경우 2010년 OECD 국가 중 1위인데, 더 심각한 것은 빈곤층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생계 때문이다. 청소년도 자살률 1위다. 입시경쟁에 내몰려 성적·진학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점이다. 성공한 국가라는 이면에서 시민들이 지쳐가는 것이다. 또한 출산율도 OECD 최하위였다.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비정규직의 비율은 계속 늘고, 연간노동시간은 세계 2위다. 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2013년 가계부채가 1천조에 달하면서 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워 대부업체에서 고금리로 대출받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 소득은 뻔한데 치솟는 전셋값과 갈수록 커지는 가계대출 때문이다. 중소 자영업자도 대출원리금 갚는 데 허덕이고 있다.
이 우울한 현실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브라질을 변화시킨 실천적 인물인 그는 “나는 생존의 세계에 서식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인식과 변화의 세계에 사는, 세계와 더불어 사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즉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비판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 속의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나의 어제와 오늘 , 내일은 불행하기 그지없다. 국가가 훌쩍 성장해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참극을 접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빠진 것도 기가막힌데 300여 명의 희생자가 난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무능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세상에서 사는 지를 깨닫게 한다. 불안해서 더 불행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이 사회에서 위험은 전면화되었다.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의 활화산을 깔고 앉아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그 원인은 근대화라고 밝혔다.
우리도 이제 그만할 때다. 외눈박이 눈으로 질주하는 한국호를 묵인하는 것, 이 질주가 만든 위험과 위험의 피해를 단순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 조직화된 무책임을 용인하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아 단죄하고 자기 위로하는 것. 세월호의 암초는 내부에 있었다. 그 암초를 ‘we’가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찾고, 함께 제거하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집합적 실천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독일과 스웨덴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충고한다. 사회 도처에서 성찰하고 토론하는 모임과 광장을 만들라고. 정신질환을 매개로 만나는 환자와 의사만의 광장이 아니라 세월호를 홀로코스트처럼 영원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 광장은 시민들이 학습과 교육, 소통을 통해 일상의 정치가 늘 있는 집합적 시민광장이어야 한다. 이상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상상하라. 이것이야말로 세월호에 대한 산 자들의 기본 의무다.

상상, 희망은 있는가

‘빛의 천사’라고 부르는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1909년 29세에 미국 사회당에 입당해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그녀는 사회주의를 찬양하며 소비에트와 노동자계급을 지지했고, 미국과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실천이 비판의 기본적인 정신이고, 그래서 비판은 매우 희망적인 행위다. 비판이 없다면 현실유지와 대안부재(TINA)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으니 현실을 수긍하며 열심히 적응하자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입시지옥과 비정규직 세상은 나와 내 아이에게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 나는 비판을 현재 이곳의 상식과 대면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비판은 상식을 비판하고, 정책과 제도를 문제 삼아 그 이면에 있는 권력관계와 이념을 밝혀내는 것이다.
필링의 인문학은 나를 지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비판이자 실천을 의미한다. 마중물은 이 실천의 의미, 방향,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 말은 변화가 도처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역과 마을, 현장에서 전문가가 아닌 일상의 문제를 느끼는 누구나 다 정책 입안가와 시민교육가가 되어야 하며, 또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마중물은 교육할 줄 아는 사람, 시민교사다. 교육을 매개로 상식의 전복을 통한 의식의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이다. 마중물은 시민교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관심을 정책으로 향해야 한다. 정책은 시민들의 일상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마중물은 현 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다음 마중물은 대안정책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누구나 각자의 공간에서 실천하면 된다. 토론을 하는 것, 선거와 정책을 꼼꼼히 따지는 것, 자원봉사를 하거나 후원하는 것 등이 모두 자신의 공간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이렇게 변화한 나들이 모여 함께 상상하고 실천할 때 시작된다.

<에필로그> 근거 없는 낙과주의가 근거를 만들다

모소대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 대나무는 4∼5년 동안은 뿌리를 내리는 데 몰입하므로 이 기간에는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다. 모소대나무의 특징은 뿌리가 사방에 퍼져 있어 가뭄이나 비바람에도 절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도 증명된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과학혁명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의 대발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응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일들을 근거가 있어야 실천한다고 했다면 이런 작은 노력들을 시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실천은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고, 역사적인 결절점의 징후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모소대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필링의 인문학은 지친 나의 본질을 찾아 모든 상식·권력·구조·관계를 문제 삼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갖고 이 필링의 실천이 도처에서 생겨날 때 필링의 인문학은 마중물과 만나 나와 내 공동체의 성찰과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 갈 것이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이상한 놈, 필링의 인문학을 발견하다

section 1 질문, 과연 나는 생각하는가
chapter 1 생각하는 나인가, 생각당하는 나인가
chapter 2 내 생각의 배경, 나는 타자의 상징이다
chapter 3 내 생각의 제작자, 정치가 결정한다

section 2 성찰, 나는 행복한가
chapter 4 내가 사는 세상, 성공신화의 국가와 어두운 사회
chapter 5 나의 어제와 내일, 저당잡힌 청춘과 늙은 시민의 구슬픈 노래
chapter 6 오늘의 나, 이름 없는 엄마와 무기력한 아빠의 장탄식 소리
chapter 7 불안한 세상, 외눈박이 괴물의 무한질주와 세월호에 갇힌 우리

section 3 상상, 희망이 있는가
chapter 8 상식의 전복과 정치의 회복
chapter 9 희망을 일군 사람들
chapter 10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희망을 긷다

에필로그-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근거를 만들다
색인/ 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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