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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제2차 세계대전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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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쉴 음벰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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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토 아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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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지상 최대 제국 청淸 자금성의 환관(태감)들 권력의 수족이자 핵심이었던 그들이 최초로 베일을 벗다 환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황실 관리체계 중국 최후의 구중궁궐에 가려진 권력의 내밀한 일상 천명을 거스른 비운의 사내들의 삶 다양하게 복원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환관(태감) 제도의 유래는 물론이고 거대한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과 태감의 일반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궁중의 비화와 태감의 불운한 ... 지상 최대 제국 청淸 자금성의 환관(태감)들 권력의 수족이자 핵심이었던 그들이 최초로 베일을 벗다 환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황실 관리체계 중국 최후의 구중궁궐에 가려진 권력의 내밀한 일상 천명을 거스른 비운의 사내들의 삶 다양하게 복원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환관(태감) 제도의 유래는 물론이고 거대한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과 태감의 일반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궁중의 비화와 태감의 불운한 일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5000년 동안 이어져온 태감 제도가 최후에 이르러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 궁궐의 일상과 각종 연회를 담당한 환관들의 조직과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복원 ◆ 환관의 기억과 시선으로 들춰낸 청 황실의 숨겨진 이야기들 ◆ 광서제는 왜 산해진미를 놔두고 환관의 찐빵을 빼앗아 먹었을까? ◆ 함풍제와 동치제는 왜 천수를 누리지 못했을까? ◆ 서태후는 왜 환관에게 똥을 먹였나? 그녀는 대머리였나? ◆ 환관은 어떻게 ‘권력의 수족’ 역할을 했는가 ◆ 가난 때문에 거세한 뒤 인간 이하의 삶을 산 환관들의 애환 생생한 육성으로 듣다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글항아리 ‘걸작 논픽션’ 시리즈의 제6권인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중국 역사상 최후의 환관(이하 태감太監)들이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황궁의 화려하면서도 쇠잔한 풍경이다. (이 책에는 환관이라는 명칭 대신 ‘태감’이 쓰인다. 태감은 명청 시대 환관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이다.) 이 책은 70대에 접어든 마지막 태감 신슈밍이 젊은 시절 25년 동안 궁중에서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은밀한 황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마더칭 외 14인의 태감이 자금성의 사생활과 함께 태감의 한 많은 삶을 구술한 회고록인 제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 그리고 서태후가 상주하던 궁전인 영수궁에서 일했던 태감 겅진시를 인터뷰한 제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5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비인간적인 환관 제도에 희생당했던 태감들이 청말과 중화민국 초 권력의 묘혈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술회하는 황궁은 거대서사와 영웅서사가 포착할 수 없는 소소하고 비밀스러우며 잔인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태감 제도의 유래는 물론이고 거대한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과 태감의 일반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궁중의 비화와 태감의 불운한 일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5000년 동안 이어져온 태감 제도가 최후에 이르러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약 1000명에 달했던 청대 내정 태감들이 제각각 어떤 소임을 맡아 청 황실의 살림을 운영했는지 상세히 보여준다. 각 부처를 열거해보면, 상전을 가까이 모시는 ‘상’, 태후와 같은 여주인을 모시는 ‘하’를 비롯해 차(차茶를 담당하는 곳), 선(주방), 약(약을 달이는 곳), 사(사방, 사무 총괄처), 불(불당佛堂), 전(전상殿上. 궁과 전을 관리하는 곳), 산(산차散差. 전달, 보고, 가마를 부르는 일, 궁문을 지키는 일을 담당한 곳), 화(남화원과 북화원 및 전 안팎의 생화를 관리하는 곳)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대내 핵심기구는 서태후가 머무르던 영수궁의 사방이었다. 사방에서는 태후 궁의 모든 금은보화와 비단 창고 관리, 장부의 출납 정리, 황족 부인들과 명부命婦(황제에게서 봉호를 받은 부인을 뜻하며, 주로 관리의 부인이나 어머니가 해당된다)들의 태후 궁 출입 파악, 공물 진상과 하사품 보관, 매일 밤 본궁 태감들이 전 안팎에서 교대로 서는 불침번 명단, 전 안에 두는 명단 패, 사방의 원장부 보존과 같은 일을 모조리 사방에서 관리했다. 핵심기구인 만큼 사방에 차출되는 태감은 모집한 태감 가운데서도 가장 총기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 외의 태감 집단으로 대표적인 것이 ‘보천동경반’이라는 극단이다. 이 극단은 서태후가 황족과 대신 및 외국 사절과의 연회 때 올릴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이 책의 제1부를 쓴 신슈밍이 몸담은 곳이기도 하다. 입궁 뒤 태감이 밟는 승급에도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입궁하면 스승이 되는 태감 밑에서 궁의 규범을 배운 뒤 소小태감으로 일한다. 그 이후 회사태감(보고를 올리는 태감), 파선태감(상차림을 담당하는 태감), 장안태감(태후의 모든 음식과 생활을 책임지는 태감으로, 책임이 큰 만큼 대내 태감 가운데 가장 권력이 컸다), 어전 수령태감, 본궁 총관태감을 차례로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최후의 환관, 신슈밍은 누구인가? 이 책의 골자는 신슈밍이 쓴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이다. 제2부와 제3부는 분량이나 비중상 보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슈밍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살펴보면 이 책의 윤곽이 잡힌다. 엮은이가 지적하듯 그를 규정하는 단어는 지식인이다. 그는 정식으로 태감이 되기 전 부경군왕부에서 군왕의 손녀에게 『대학』 『중용』 등을 가르친, 청대 황궁의 태감으로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청대의 태감은 대개 못 먹고 못 배운 가난한 집안의 자제였다. 1000명 가운데 1명 나올까 말까 한 ‘부자 태감’이 될 소망을 품고 거세한 채 궁에 들어온 이들이었다. 신슈밍 또한 부친의 사망 이후 부모와 자식, 형제를 부양하기 위해 태감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다만 그가 10년간 유학을 공부했으며 수사학당과 태의원 시험에 응시했다 떨어진 유생 출신이라는 사실이 여느 과문한 태감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군왕부에 있던 그에게 변통으로 태감이 될 기회가 생긴다. 태감이 되고자 하나 기하인(만주족) 명단에 들지 못한 이들에게 도주한 태감의 이름을 빌려 태감으로 일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본명 ‘신롄자’를 버리고 ‘장셴시’라는 이름으로 태감이 된다. 이후 ‘즈슈다오’라는 이름을 거쳐 신슈밍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보다도 ‘신선 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렸다. 관상과 복점에 능한 그에게 서태후 앞에서 점을 칠 기회가 생겼고, 이때 그를 마음에 들어한 서태후가 직접 ‘신선’이라는 별칭을 내린 것이다. 광서 28년(1902)에 서태후의 사무 총괄처인 영수궁 사방의 태감이 된 이후 서태후를 8년, 융유태후(광서제의 황후)를 6년, 단강태비(광서제의 후궁)를 10년간 모셨다. 신슈밍은 서태후의 명으로 ‘보천동경반’이라는 극단에서 연극 각본 쓰는 일과 추길(길일을 택하는 것) 책임을 담당했는데, 모두 서태후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이었다. 이처럼 서태후의 총애를 받은 신슈밍은 교만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본분에 맞게 처신해 궁중에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잇속을 차리는 데 급급해 승급과 돈에 눈이 먼 대신 뛰어난 관찰력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타고난 친화력으로 청 황궁의 비사를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가 출궁 뒤 포충호국사 주지승으로 있으면서 일기에 적어둔 그 자료들을 정리한 것으로, 청 황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데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다. “고백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법이다”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사실만을 전하겠다는 확고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신뢰를 갖게 한다. 소소
동치제는 조정 일을 마치고 태후 궁에서 저녁 문안을 드리고 난 뒤 매번 태감이 입는 평상복 차림을 하고 붉은 술이 달린 모자를 쓴 채 심복 태감 하나를 데리고 궁을 빠져나가 창기의 집을 드나들며 향락을 즐겼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 조회에 맞추어 자금성으로 들어왔다. (…) 태후가 이따금 설득해도 황상은 듣기는커녕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곤 했다. 이 일로 모자간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태후 역시 황상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황상을 말리지 못하는 황후만 탓했다. 이 때문에 또 궁에서는 태후가 황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동치제는 화류병에 걸리고 말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의원 어의가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황상이 걸린 병이 화류병이라는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한 어의는 처방전을 논할 때 황상이 천연두에 걸렸다고 고했고, 천연두로 오인해 처방한 결과 황상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_51~52쪽
융유황후는 처음 궁에 들어와서부터 궁 경비 출납 장부를 쓰고 사방을 관리하며 월말과 연말에 태후와 황제 앞에서 반드시 보고를 올려야 했다. 청조의 제도상 궁 경비는 지극히 적게 정되었고, 매월 적자가 나도 감히 사실대로 보고하지 못해 흑자로 보고했다. 친정집도 원조를 보낼 형편은 아니었다. 또 삼절[설, 단오, 추석의 삼대 명절] 및 태후와 황제의 생신날에 올리는 공물은 반드시 준비해야 했다. 비록 이날 위에서 하사하는 은이 있긴 했지만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황족 부인이나 명부들이 찾아와 예를 올릴 때도 반드시 작은 답례를 해야 했다. 때로는 돈이 달려 옷이나 장신구 등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용포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
_95쪽
태후의 머리는 늘 빗기가 어려웠다. 40세 이후에는 벌써 탈모가 오기 시작해 귀밑가와 뒷머리에만 짧은 머리털이 남아 있었다. 정교하게 장식해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머리가 듬성듬성한 노부인이었다. 위엄 있는 모습을 좋아했던 태후는 정수리에 붉은 점토로 가짜 검은 머리카락을 붙였고, 머리 양쪽으로 머릿단을 붙였다. 윗부분에 크게 양 갈래로 묶는 머리 모양[‘양파두兩把頭’라 부른다]은 만주식 귀부인의 치장법이었다.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빠질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의복은 평상시에는 그리 오래 고르지 않았지만 조정에 들 때는 반드시 단정하면서도 화려하고 품위 있는 복장을 했다. 또한 태후는 키가 작아 약 20센티미터 높이의 신발을 즐겨 신었다.
_116쪽
거세를 마치고 나면 요도에 가느다란 대롱 같은 것을 끼워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새 살이 자라 요도를 덮어서 생명을 잃게 된다. 만약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나는 나중에야 이쪽 방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거세를 한 뒤 상처가 금방 아물어 딱지가 앉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100일이 지나 고름과 함께 새 살이 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주 ‘약’을 갈아주어야 하는데, 말이 쉽지, 약 같은 약이 어디 있었겠는가. 기껏해야 백랍, 향유, 산초열매 가루 같은 것을 바른 얇은 종이가 전부였다. 매번 약을 갈 때마다 나는 통증으로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하는 것만 같았다.
_378쪽
마음이 언짢을 때는 태감들이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다.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였던 일이다. 궁 안 태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 노인은 이 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매일같이 온몸을 깨끗이 씻게 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서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소변을 먹이는 것,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태후 궁에서는 두 부녀가 좋은 젖을 낼 수 있도록 닭이며 오리, 생선, 돼지 등 온갖 산해진미를 제공했다. 다만 소금이나 간장은 넣지 않았다. 소금과 간장이 들어가면 젖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 두 부인네는 더없이 좋은 음식을 약을 먹듯이 풍미도 못 느끼며 먹어야 했다.
_419쪽
목차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
자서: 태감 생활 25년 | 제1장 황제와 비빈들의 어려움 | 제2장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서태후의 삶 | 제3장 태후의 일상생활 | 제4장 궁중의 수많은 규범 | 제5장 대내의 신화들 | 제6장 세세토록 평안하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 제7장 중화민국 초기의 황궁 | 제8장 청대의 궁녀 선출 | 제9장 엄격한 규제가 결국 복이 되다 | 제10장 태감들에 얽힌 일화 | 제11장 승평서 및 그 외 이야기
제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
제1장 어린 시절 받은 잊지 못할 벌 | 제2장 도자광과 신형사 | 제3장 입궁해 스승을 정하는 일 | 제4장 입궁 뒤 받는 훈련 | 제5장 어전태감의 하루 일상 | 제6장 진비이 죽음을 목격한 왕샹 | 제7장 궁중 여인들의 일상 | 제8장 태감들의 일상 | 제9장 태감과 사원
제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
제1장 창음각에서의 연극 공연 | 제2장 낙수당에서의 식사 | 제3장 태감과 주방 일꾼들의 처소 | 제4장 영수궁에서의 서태후
엮은이 후기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