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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서태후와 궁녀들

시리즈 : 걸작 논픽션 [8]

진이, 선이링 저 | 주수련 역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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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7350284 / 639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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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자금성 가장 깊숙한 곳의 은밀한 이야기
서태후를 측근에서 모신 노궁녀가 들려주는 황실의 사생활


이 책은 19세기의 마지막 몇 년,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지만
이미 허물어지고 있었던 청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가
그 권력을 어떻게 누렸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추상적이고 제도적인 권력이 아니라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황실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서태후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궁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이 책은 우리가 글로 읽기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궁중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토해내고 있다. 그것은 곧 화려함의 극치이며, 인간이 인간을
떠받드는 조심스러움의 극치이고, 궁정의 잔인한 음모와 정치의 극치이며,
지금껏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던 이름 모를 궁녀와 환관들의 적나라한 실생활이다.
또한 이 책은 서양의 침략으로 베이징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서태후와 광서제가 시안으로
급히 피난했던 지난한 과정을 무엇보다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놀랍고도 진귀한
역사 사료이기도 하다.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진이金易·선이링沈義羚 


진이와 선이링은 이 책의 구술자인 노궁녀 룽얼과 이웃으로 지낸 지식인 부부다. 두 사람과 노궁녀는 말년을 이웃으로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살림을 돌봐주었고 이런 오고감 속에 청 황실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진이는 허베이 성 위톈玉田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王錫璠이다. 진이와 선이링은 1939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처음 만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학구파다. 1940년대 초반 결혼하고 대학을 졸업한 둘은 해방 전의 베이징에서 궁핍한 신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곧 지도교수의 배려로 진이가 히로시마대학 문리과대 교수로 초빙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앞둔 일본에서의 생활은 큰아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불구가 되는 아픔을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귀국 후 1947년 진이는 베이징 제2중학, 선이링은 베이징 제25중학에 문학교사로 부임하면서 생활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남편 진이가 콩팥수술 후유증으로 요양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 사람은 가정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지인의 소개로 노궁녀 룽얼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선이링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노궁녀가 살림을 돌보고 남편 진이의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노궁녀를 ‘허 아주머님’이라 불렀던 진이는 그녀가 들려주는 청 황실의 세부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며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오래 지속되었다. 진이·선이링 부부는 이때의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책의 토대로 삼았다. 진이는 1950년대 초에 고전문학에 대한 오랜 연구와 조예를 인정받아 란저우 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조예와 비상한 기억력은 1980년대 후반 『자금성』 잡지에 ‘궁녀담왕록宮女談往錄’이란 제목으로 청 황실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빛을 발했다. 중국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이는 안타깝게도 199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U&J 에이전시에서 중국어 책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일을 겸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서태후와 궁녀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등이 있다.

책 속에서

궁녀는 똑바로 누워 잘 수 없다
“첫 번째는 자는 것이에요. 궁 안의 규범 중 유난히 엄격한 규범이 하나 있어요. 궁녀들은 잘 때 바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자면 안 된답니다. 반드시 몸을 옆으로 돌리고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어요. 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신을 믿어요. 전해지기로는 궁마다 신이 있어서 밤이 되면 궁 밖으로 나와 그 궁을 지킨다고 해요. 태후마마와 황상[재위 중인 황제], 황후마마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궁녀들은 밤에도 아무렇게나 잘 수 없었어요. 신이 보는데 사지를 벌리고 팔자 모양으로 누워 있으면 얼마나 보기 싫겠어요! 그랬다가 만약 신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겠지요. 자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몰라요. 그때 습관 때문에 지금까지도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잠을 자요. 얼마나 맞았으면 그러겠어요.”(24~26)

글을 배울 수 없는 ‘궁녀’…바느질로 박쥐를 만들다
“궁녀는 절대로 글을 배울 수 없었어요. 궁녀는 태감보다 한 단계 아래 계층이었기 때문에 태감들은 간혹 궁에서 글을 익혔지만 궁녀는 절대불가였어요. 대신 시간 날 때 배우는 것이 바느질과 주머니를 짜는 일이었지요. 내가 있던 저수궁은 황궁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써야할 은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동궁과 자령궁慈寧宮에는 때때로 은이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궁녀들은 용돈 벌이를 위해서라도 바느질을 악착같이 연습했지요. 어떤 때는 태후마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큰 박쥐를 만들기도 했어요. 각양각색의 실을 들고 와서 실의 한쪽 끝은 긴 바늘로 방석 위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 끝은 이로 중심선을 단단히 물어 팽팽하게 잡아당긴 뒤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면 금세 큰 박쥐 한 마리가 완성됐어요. 저수궁 문밖, 장춘궁 가는 길에 있는 살아 있는 박쥐와 똑같았지요. 그러고는 태후마마가 보시고 한번 웃어주시길 바랐어요.(38~39)

서태후 침실 안 대여섯 개 항아리의 용도는?
“태후마마의 침전에는 대여섯 개의 빈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그냥 보기 좋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과일을 저장해놓기 위한 것이었어요. 태후마마의 침전은 다른 향을 쓰지 않고 과일 향을 써서 안 좋은 냄새를 없앴어요. 저수궁 외에 체화전에도 과일 항아리가 있었고요. 이 과일들은 대부분 불수감나무 열매나 시트론[귤 등과 같은 장과], 모과같이 남쪽 지방에서 나는 과일들이었어요. 매월 둘째 날과 열여섯째 날이 되면 항아리에 든 과일을 꺼내고 다시 신선한 과일을 채워 넣었지요. 꺼낸 과일들은 우리가 가져가도 되었답니다. 이것은 태후마마와 황후마마만 내릴 수 있는 규정이어서 이 두 궁에 있는 궁녀들은 특권을 누렸지요. 가져간 과일은 자기 방에 놓을 수도 있고 남겨두었다가 식구들에게 보낼 수도 있었어요. 궁중생활에서 그래도 이것이 꽤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42~43)

‘한 편의 행위 예술’과도 같은 담배 시중
“태후마마가 편한 자세로 앉아 나를 한번 흘깃 쳐다보시면 나는 곧바로 알아듣고 부시를 준비했어요. 부싯돌과 부들솜까지 잘 준비한 다음 뒤돌아서서(반드시 몸을 돌리고 했어요) 부시로 부싯돌을 긋지요. 부싯깃에 불이 붙으면 종이에 옮겨 붙이고 입으로 불어서 불길을 일으킨 다음 불길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끌어 모아요.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담뱃대를 받쳐 올리지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기 편하도록 태후마마 입에서 3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말이에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면 서둘러 왼손으로 종이를 내리고 다시 불길을 모으지요. 그렇게 태후마마가 담배를 한 차례 피우시고 나면 대통을 새것으로 바꾸어드려요. 이것이 대략 담배 시중을 드는 일련의 과정이에요.”(55)

‘서태후의 스캔들’을 해명하다
허 아주머님의 말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하고 말았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샤오안쯔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허무맹랑한 데가 있다. 처음에 거세를 하고 궁에 들어가기를 청했을 때부터 여러 기관의 검사를 거쳐야 했을 텐데 세력을 얻고 나서 갑자기 거세한 부분이 자랐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인 듯하다. 허 아주머님은 가끔 장황하게 하소연을 하는 일도 있었다.
“중화민국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내게 묻더군요. 리롄잉이 야간 당직을 설 때 태후마마가 침실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태후마마를 깨울까봐 두려워 무릎을 꿇고 기어서 침전으로 들어갔다고 말이지요. 들어와서는 태후마마께 마실 물을 따라드렸더니 마마가 무척 감격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렇게 따지면 태후마마는 주무실 때 궁에 홀로 계셨다는 말이 되잖아요? 아무도 태후마마를 돌보지 않고, 밤에 기침을 하시는데도 물 한 그릇 떠다줄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게 무슨 황궁의 태후겠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83~84)

자금성 궁궐 바닥재는 어떤 것을 썼을까?
“궁 바닥에는 벽돌이 깔려 있어요. 흔히들 금 벽돌 바닥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도토[불순물과 침전물을 제거하여 만든 매우 부드러운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로 만든 벽돌이었지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굉장히 견고해서 궁 바닥은 갈라진 틈 하나 없이 단단했어요. 듣기로는 벽돌을 깐 뒤 그 위에 다시 뜨거운 밀랍으로 여러 번 덧칠해서 벽돌의 틈과 틈 사이를 메운다고 해요. 하나의 커다란 벽돌 덩어리처럼 말이에요. 여름에는 이런 바닥에서 흙먼지가 올라오지 않지만 겨울에는 벽돌 밑에서 불을 때면 벽돌이 건조해져서 먼지가 흩날린답니다. 궁에서는, 특히 저수궁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태후마마의 규기 시간 동안 바닥을 꼭 물로 한번 깨끗이 닦아내서 흙먼지를 없앴는데 이것이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에요.”(103)

세계박람회에 내놔도 손색없을 서태후의 관방(요강)
“태후마마가 쓰시던 관방은 정말이지 국보급이었어요. 지금 같으면 세계 각국 전람회에 가져다놓고 전시를 해도 될 거예요. 나도 꽤 눈이 높은 사람인데 궁을 떠난 뒤에도 그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물건은 보지 못했답니다. 태후마마가 자주 쓰시던 것은 겉에 큰 도마뱀붙이가 새겨진 단향목 관방이었지요. 아유, 이 조각도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하고 붙잡으려는 듯한 모습이었지요. 네 발은 사납게 땅을 붙잡고 서 있는데 이 발이 바로 관방 밑을 받치는 네 개의 다리예요. 몸에 있는 보일 듯 말 듯한 비늘은 온통 곤두선 듯하고,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이 꼭 큰 조롱박 같지요. 이 배 부분이 바로 관방의 불룩하게 나온 부분이에요. 꼬리는 바짝 말려 올라가 있고 구부러진 꼬리 끝과 꼬리 자루가 교차하면서 숫자 8의 모양을 만들어요. 바로 절묘하게 만든 관방의 뒤쪽 손잡이 부분이지요. 도마뱀붙이의 머리는 뒤로 살짝 들어올린 채 관방의 배 위에 찰싹 붙어 있고 아래턱은 약간 튀어나와서 뒤의 꼬리와 평행선상에 있어요. 손아귀는 앞쪽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고요. 뒤로 젖힌 머리로 두 눈은 위를 주시하고 있답니다. 자신의 등 위에 탄 사람을 말이지요. 관방에 나 있는 한 줄의 갈라진 틈은 도마뱀붙이의 입이에요. 이 살짝 벌린 입으로 화장지를 물고 있지요. 두 눈은 이름 모를 붉은 보석이 박혀 있어 광채가 나고요. 관방은 전체 크기가 자기 요강보다 약간 높고 위에 올라가서 일을 볼 수 있어요. 관방의 아가리는 길쭉한 타원형이고 뚜껑도 있지요. 뚜껑 정중앙에 누워 있는 이무기가 바로 뚜껑 손잡이였어요. 도마뱀붙이 뱃속에는 잘 말린 향나무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어요. 변이 떨어지면 즉시 향나무 가루 속으로 굴러들어가 파묻혀서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지요. 물론 악취가 나지도 않고요.”(106~111)

상소문에 손톱으로 가부를 표시한 서태후
“상소문을 읽으신 뒤에는 종이 위에 엄지손가락 손톱으로 꼭꼭 눌러 무언가를 표시하셨어요. 어떤 때는 수직선을 그리시고 어떤 때는 ×자를 그리시고 어떤 때는 V자 표시를 하셨지요. 어쨌든 군기처의 장경[청대의 문서를 관리하는 문관]들은 모두 알아보겠지만요. 상소문을 읽는 이 짧은 시간 동안 태후마마의 손톱이 한 번 움직이는 대로 어떤 이는 승진을 하고 어떤 이는 목이 날아가고 어떤 이는 귀양을 가게 되는 거예요. 그동안 나는 문에 서서 ‘룽얼, 담배를 가져오너라’ 하는 말씀이 들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이 말이 떨어지면 궁녀들을 관리하시는 마마님은 내가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궁문을 나가 궁녀들에게 일을 지시하셨지요. 태후마마가 이 큰일을 마치신 것을 알면 비가 한 차례 왔다가 갠 것처럼 궁 전체가 다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한답니다.”(114~116)

같은 음식은 세 번 뜨지 않는다
“태후마마의 식사 때는 매번 120가지가 넘는 요리가 올라온답니다. 또 계절 요리까지 더해지고요. 이 요리들을 전부 놓고 태후마마가 원하시는 대로 골라 드시는 거예요. 오늘 이 요리를 드셨다면 내일은 다른 요리를 드시면서 누구도 태후마마가 무슨 음식을 잘 드시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요. 태후마마도 일부러 이렇게 하셨어요. 오늘 맛있게 드신 음식은 다음 날 절대 드시지 않으셨지요.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것을 드셨고요. 또 같은 음식을 세 숟가락 이상 뜨지 않았어요. 어떤 음식을 세 번이나 떴다는 것은 틀림없이 태후마마가 좋아하신다는 것이고 이것이 아랫사람에게 알려지면 나쁜 마음을 품은 자가 이 요리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122)

궁녀들의 피부는 달걀 흰 자위처럼 고와야 한다
우리 궁녀들은 피부를 달걀 흰자위처럼 보드랍고 매끄럽게 가꾸어야 했어요. 또 이렇게 해야 태후마마와 함께 문밖을 나설 때도 귀족 부인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었고요. 태후마마는 승부 근성이 강하신 분이어서 뭐든 남보다 뛰어나야 했어요. 만약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리가 못생긴 닭같이 보이면 이후에는 다시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지요. 태후마마께 우리는 몸에 단 장식품과도 같았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장식품이 태후마마보다 더 아름다우면 안 되는 거지요. 숙왕肅王[숙친왕 산치善耆, 1866~1922, 청나라 왕족이자 정치가]의 부인은 대단한 미인이었어요. 정교하게 꾸민 머리에 귀에 단 비취 귀고리는 얼굴 한쪽이 모두 푸르게 보일 만큼 반짝였지요. 황후마마와 후궁마마들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답니다. 태후마마는 심기가 상하셔서 접견을 할 때도 시종일관 그분을 향해 얼굴을 펴지 않으셨어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화장도 직무와 연결되는 일이었지요.”(169~170)

서태후는 어떻게 목욕했을까?
“태후마마는 목욕하실 때 3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낮은 의자에 앉으셨어요. 굵직하고 단단한 네 의자다리 위에는 모두 여덟 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있었지요. 각각의 다리에 두 개의 용 장식이 있는데 한 마리는 밑을 향해, 다른 한 마리는 위를 향해 엎드려 있어요. 또 의자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움직이는 의자 등받이였어요. 위아래로 들어 내릴 수도 있고 좌우로 돌아가기도 했지요. 다시 말해 등받이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어요. 등받이 위 양면에 모두 문에 거는 빗장같이 장부[한 부재의 구멍에 끼울 수 있도록 다른 부재의 끝을 가늘고 길게 만든 부분]가 있어서 등받이를 장부 안에 집어넣고 개폐기를 단단히 채우면 견고하게 고정시킬 수도 있었지요. 또 하나 설명해줄 물건은 은 목욕통이에요. 태후마마는 목욕을 하실 때 두 개의 목욕통을 사용하셨는데 둘 다 나무에 은을 입힌 것으로 그다지 크지 않았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 두 목욕통이 똑같이 생겼지만 통 바닥에 비밀이 있어서 잘 훈련받은 궁녀가 손으로 바닥을 한번 만져보면 금방 두 개를 구별해냈답니다. 하나는 상체를 씻는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하체를 씻는 용도라 두 개를 절대 헷갈리면 안 되었지요.”(185~186)

진심으로 미신을 믿는 청 최고 권력자
“태후마마는 미신을 깊이 믿는 분이었어요.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게 낫다는 식으로 대충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믿고 계셨지요. 7월 10일이 지나면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도 찾지 못하게 하셨어요. 예를 들어 태후마마가 부채를 어느 곳에 떨어뜨려도 절대 찾으면 안 되었어요. ‘찾지 말거라. 며칠 후에 다시 보자꾸나’ 하고 말씀하셨지요. 며칠이 지나서 정말 찾으면 태후마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내가 찾을 필요 없다고 했잖니. 며칠이 지나면 돌아오니까 말이야.’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였어요. 태후마마는 이 며칠 동안 도처에 귀신이 있어서 무언가 아끼는 물건을 발견하면 며칠간 가지고 놀기 때문에 찾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셨거든요. 귀신들을 대할 때는 속 좁게 굴지 말고 대범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만약 사람이 조급해하면 그것들은 도리어 물건을 망가뜨려 외진 구석에 던져버린다고 하시면서요. 이는 곧 화가 났다는 표시이지요. 우리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귀신들을 화나게 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태후마마의 이런 세심함과 넓은 도량은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많이 볼 수 없었어요. 오직 귀신들에게만 이렇게 큰 아량으로 자비를 베푸셨지요.”(317)

서태후의 시안 피란

너무나 평화롭던 피란 전날
“피란을 간 때는 광서 26년, 즉 경자년 7월 21일(1900년 8월 15일) 새벽이었어요. 흔히들 말하는 의화단 사건이 있었던 해지요. 피란을 갔던 첫날도 기억나요. 7월 20일 오후, 태후마마가 낮잠을 주무시고 일어나신 뒤였지요. 아마 내 기억이 확실할 거예요. 그날 태후마마는 침실에서 낮잠을 주무셨고 궁 안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평소 때와 조금도 다름없었지요. 피란을 떠나는 조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이날은 마침 내가 낮에 침실 시중을 드는 날이었답니다. 그날 오후,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침실 서쪽 벽에 기대고 앉아 문 입구를 마주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침실 시중을 드는 자의 규범이었지요. 태후마마는 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고 주무셨고 나는 태후마마의 침대에서 고작 6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태후마마가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휘장을 걷어올리셨어요. 휘장을 걷는 일은 보통 궁녀가 하는데 이날은 뜻밖에도 태후마마가 직접 일어나서 하시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급히 밖에 있던 궁녀에게 신호를 보냈어요. 태후마마는 황급히 세수를 하시고는 담배도 피우지 않으시고 우리가 올려드린 파인애플 즙도 마다하신 채 한마디 말씀도 없이 저수궁 동쪽 길목의 낙수당을 나와 북쪽으로 걸어가셨어요. 나는 황급히 그 뒤를 쫓았어요. 속으로는 좀 당황스러워서 급히 샤오쥐안쯔에게 이 일을 알렸지요. 샤오쥐안쯔도 뛰어오고, 우리 둘은 서쪽 회랑 중앙까지 태후마마를 황급히 따라갔어요. 그때 태후마마가 말씀하셨지요. ‘따를 필요 없다.’ 낮잠에서 깨신 뒤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후마마 혼자 북쪽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어요.” (337~338)

진비의 죽음
“‘태후마마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어. ‘서양인들이 성안으로 쳐들어오려 한다. 바깥은 난리가 나서 누구도 제 한 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 만일 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 황실의 체통은 전부 끝장이고 선대 조상들께도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매우 강경한 어조셨어. 말씀을 마치시고는 턱을 치켜드시고 진비마마에게 눈길 한번 주시지 않은 채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셨지.’” “‘진비마마는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이렇게 대답하셨어. ‘알고 있습니다. 선조의 체면을 깎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후마마가 다시 입을 여셨어. ‘너는 아직 젊어서 말썽이 나기 쉽다. 우리는 잠시 몸을 피신하려 하나 젊은 너를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진비마마가 대답하셨어. ‘마마는 몸을 피하시옵소서. 황상을 베이징에 두시어 정세를 돌보도록 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태후마마의 심기를 건드렸어. 태후마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색이 변하시더니 큰 소리로 꾸짖으셨지. ‘당장 죽음을 코앞에 둔 것이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게냐!’” “‘그러자 진비마마도 외쳤어. ‘저는 죽을죄가 없사옵니다!’ ‘죄가 있든지 없든지 너는 죽어야 할 것이다!’ ‘황상을 한번 뵙게 해주시옵소서. 황상은 저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황상도 너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저 계집을 우물 속으로 집어넣어라! 게 누구 없느냐?’’” “‘이렇게 해서 나랑 왕더환이 같이 진비마마를 붙들어서 정순문貞順門 안 우물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지. 진비마마는 계속 황상을 뵙게 해달라고 외치다가 결국에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지. ‘황상, 베풀어주신 은혜, 내세에서 갚겠나이다.’”(태감 추이위구이가 룽얼에게 해준 말, 348~349)

“내 손톱을 잘라버려라”
“태후마마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참에 느닷없이 떨어진 청천벽력이었어요. 바로 그때, 유탄 하나가 낙수당 서쪽 편전 방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어요. 리롄잉이 외쳤어요. ‘마마, 얼른 가마에 오르시옵소서!’ 태후마마는 그때서야 정말 놀라셔서 사람을 불러 황상을 모셔오고 황후마마와 후궁마마, 자령궁의 태비마마, 궁 안에 있는 공주마마들께도 알려 얼른 낙수당으로 오라고 분부하셨어요. 또 다른 태감을 보내 태자마마께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하라 하셨지요. (…) ‘쥐안쯔와 룽쯔는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야말로 천은이었어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지요. 태후마마의 이 말씀 한마디면 이 생사의 고비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감격으로 둘 다 온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기어가서 태후마마의 발을 붙잡고 ‘마마!’ 하고 외쳤어요. 그런데 태후마마는 잠시 멍하니 계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룽쯔, 가서 가위를 가져오너라!’ 그때 태후마마는 침전 의자에 앉아서 왼손을 탁자 모서리에 올려놓고 계셨어요. 그 상태로 얼굴을 돌리신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지 뭐예요. ‘내 손톱을 잘라버려라!’”(363)

일반 백성인 척 꾸미고 궁을 빠져나오다
“이 무렵에야 나는 비로소 태후마마의 세심함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포롱차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백성들이 입는 복장으로 갈아입은 것은 사람들 틈에 끼어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황족 분위기를 풍기지 않고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이 두 대의 마차를 고용한 것은 미리부터 계획해놓지 않은 이상 그 자리에서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뿐만 아니라 포롱차를 하층민들의 물건 싣는 차처럼 꾸며놓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가장 놀랄 만한 것은 궁 안의 진기한 보물들을 조금도 가지고 오지 않으시고 그저 자잘한 은 몇 개만 싸가지고 오셨다는 점이에요. 이 모든 것은 황족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태후마마의 그런 주도면밀한 생각과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민첩함, 또 값진 보물들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단호함은 정말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어요. 그런데 이때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그러면 태후마마는 이 피란을 애초부터 준비하고 계셨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 준비 없이 맞닥뜨리신 것인가? 나같이 태후마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몸종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378~379)

“그럼 우리 살이라도 떼어 올리시지요”
“샤오쥐안쯔가 울먹이며 대꾸했어요. ‘그럼 우리 살이라도 떼어다 올리시지요! 제 살부터 떼세요.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추이위구이가 대답했어요. ‘쥐안쯔, 누구 살을 떼겠다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거야. 지금 우리가 반 묘畝 정도의 땅에서 딴 채소들 중 조금 남은 것은 대부분 병사들이 앞 다투어 가져갔어. 그러니 당장이라도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동부 꼬투리를 훑고 옥수수 대는 베어 묶어 마차에 실어야 돼. 사람도, 가축도 모두 필요한 것이니까. 지금 우린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어. ‘부유할 때 미리 없을 때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을 때 있던 시절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지금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함께 움직여야 돼. 길에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말이야.’”(388)

모기떼의 습격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또 어디서 수많은 모기떼가 굴러들어왔어요. 정말 굴러들어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창문 윗부분, 처마 아래에 한 무더기의 모기들이 둥근 공처럼 뭉쳐서 온통 웽웽거리고 있었답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웠어요. 전통 극에서 치는 소라[꽹과리보다 작은 징] 소리를 들어본 적 있지요? 소라를 계속해서 두드릴 때 쉴 새 없이 울리는 그 소리, 이때의 모기 소리가 꼭 그랬어요.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재빨리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태후마마께 모기를 쫓으시라고 파초선을 건네드렸지요. 뿐만 아니라 보고 있자니 모기떼는 사람을 뜯어 먹을 기세였어요. 방 안에 불빛이 있으면 안 되었지요. 조금이라도 불빛이 보이면 옥수수 나방이 날아 들어왔으니까요. 그것들은 목숨을 걸고 날아 들어와 얼굴, 목, 손 할 것 없이 아무 데나 부딪혔어요. 손으로 쳐서 잡으면 썩은 살구처럼 배에서 체액이 흘러나와 소름이 돋게 했지요. 우리 중 셋째 공주마마는 유독 겁이 많고 벌레를 무서워하셔서 벽 모퉁이에 움츠리고 계신 채 꼼짝도 하지 않으셨어요.”(397)

들판에서 용변을 해결하다
“그때 갑자기 맨 앞에 있던 말의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고개를 들어 내다보니 태후마마의 가마가 멈춰서 있었지요. 우리는 얼른 마차에서 내려 태후마마의 가마 앞으로 달려갔어요. 가마가 높아서 서서 고개를 들고 여쭙는 수밖에 없었지요. 사실 이것은 궁에서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랍니다. 태후마마는 낮은 목소리로 우리 둘에게 용변을 해결해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잠시 멍해졌지요. 이 황량한 교외에서 앞뒤로 마을도 없고 어떻게 태후마마의 용변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에요. 태후마마는 과감히 말씀하셨어요. ‘여기 풀이 빽빽한 곳에서 해결할 테니까 나를 둘러서서 가리도록 해라.’ 정말 현명하신 판단이었어요. 화장실 한 번 쓰기 위해 애걸복걸해야 했던 원취안이나 시관스의 똥통보다는 몇 배나 나은 조건이었지요. 적어도 구역질날 만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우리 궁녀들은 재빨리 둥글게 벽을 만들었고 이 벽 안에서 태후마마, 황후마마, 후궁마마, 공주마마들까지 차례로 용변을 해결했어요. 정말이지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지요. 화장지도 없어서 야생 마잎으로 대신해야 했답니다.”(412~413)

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궁녀생활
제2장 서태후의 일상
제3장 청 황궁의 풍속
제4장 서태후와 광서제의 시안 피란
제5장 내궁의 소소한 이야기들
후기
부록 1 내가 아는 '노궁녀'_류야오신
부록2 작은 정성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왔던 50년 : 진이와 함께한 날들을 돌아보며_선이링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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