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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2631036 / 328쪽 148 x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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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근대 산업 사회를 형성한 주역이자 자본과 노동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혁신가로서 엔지니어를 조망하다 과학기술사 연구는 공학을 응용과학으로 보는 견해가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공학은 산업혁명 이전 혹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철교나 증기 기관을 만들던 장인 기술 혹은 기예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신설 학문이다. 공학은 과학을 응용해 발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독자적으로 발달한 공학 지식에서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 중요한 사례가 다수 있다. 따라서 기술과 공학이 과학의 응용에 불과하다는 전통적ㆍ 상식적 견해... 근대 산업 사회를 형성한 주역이자 자본과 노동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혁신가로서 엔지니어를 조망하다 과학기술사 연구는 공학을 응용과학으로 보는 견해가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공학은 산업혁명 이전 혹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철교나 증기 기관을 만들던 장인 기술 혹은 기예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신설 학문이다. 공학은 과학을 응용해 발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독자적으로 발달한 공학 지식에서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 중요한 사례가 다수 있다. 따라서 기술과 공학이 과학의 응용에 불과하다는 전통적ㆍ 상식적 견해는 재고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엔지니어 및 공학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 사회의 일반적 특성이나 문화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연구가 과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왔다면, 이 연구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엔지니어 집단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산업 사회라는 인류사의 새로운 문명을 이끌고 근대 산업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역사의 주역으로서 근대 엔지니어는 혁신적 기술을 통해 자본가에게는 새로운 이윤 창출을, 노동자에게는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었다. 학문으로서 공학의 정착 과정은 국가별로 뚜렷이 구별된다.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은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산업혁명과 전 세계의 산업 발달을 주도했다. 따라서 이 연구는 근대 엔지니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이 4개국의 엔지니어를 연구 대상으로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근대를 구축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엔지니어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양성되었고,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그들은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과연 동일한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국가별로 각기 다른 길을 걸었을까?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근대화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마치 20세기 비(非)유럽 국가에서 전개된 근대화의 길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 역시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국가별로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제1차 산업 혁명기, 즉 18세기 후반에서 1870년대 혹은 1880년대까지다. 특히 이 시기의 토목공학과 기계공학에서 근대 엔지니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시기는 주요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엔지니어 양성의 무게중심이 장인의 작업장에서 대학 및 기술학교의 실습실로 이동한 때이다. 엔지니어란 누구인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장인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엔지니어에 의한 공학의 탄생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과정이다. 이것은 곧 전통적 장인에서 근대적 엔지니어로 사회적 위상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엔지니어의 지위를 과학자만큼 끌어린 것도 공학 덕분이다. 엔지니어의 형성 과정은 4개국 모두에서 벌어진,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주목할 만한 일이며, 이는 산업화 이전 혹은 산업화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엔지니어들은 스스로를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동질적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술사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엔지니어들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며, 언제 어디서나 전문가로 기능했다고 볼 수 없다. 이 연구는 과학이 이론 지향적이고 순수한 학문이며, 공학은 실천 지향적이고 과학을 응용한 학문이라는 관념이 공학과 과학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19세기 후반에 자리 잡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기술사가들의 관점에 동의한다. 국가적 스타일 공학 이론의 역사에서 프랑스 엔지니어는 매우 중요하다. 몇몇은 과학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서양 과학사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는 샤를-오귀스탱 쿨롱이나 사디 카르노 등이 프랑스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발명이나 실질적 기술 개발의 역사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혁신적 인공물의 발명이나 특허 영역에서 프랑스 엔지니어의 기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국제적으로 팽창일로에 있던 산업 연구 분야에서 프랑스 엔지니어의 활동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미국의 상황은 정반대다. 공학 이론 측면에서 19세기 미국의 엔지니어가 남긴 성과는 대단치 않다. 하지만 산업 연구 영역에서는 실로 풍성한 연구 결과를 도출했고, 상당수의 실질적 기술 개선을 이끌어냈다. 이 연구에서 다루는 프랑스ㆍ 독일ㆍ 영국ㆍ 미국은 산업 혁명기 이래, 국가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880년대까지 기술 인력 양성의 방향이 사적 훈련에서 공적 교육으로 전환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럼에도 각국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인다. 영국의 엔지니어는 자수성가한 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 노력을 통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초창기 엔지니어를 배출한 도제 제도가 강력하게 유지되면서 전문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대학의 공학 교육이 매우 더디고 불완전하게 진행되었으며,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 또한 전문 직업인으로 정착하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엔지니어는 상층부의 국가 엔지니어와 중하층의 민간 엔지니어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18세기 말 이래 프랑스는 ‘새로운 인간형’으로서 국가 엔지니어를 양성했다. 이들은 ‘혁명’(프랑스 혁명, 산업혁명)과 ‘전쟁’(나폴레옹 전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변되는 정치적ㆍ 경제적 변화의 부산물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엘리트로 성장한 국가 엔지니어는 19세기 중엽부터는 민간 엔지니어와 경쟁하면서 학교 서열과 교육 내용이 계급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엔지니어 집단 내부에 다양성과 계층화가 진행되었다. 독일 엔지니어의 경우는 19세기 초부터 정부가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엔지니어 양성과 수급에 나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국가적 지원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민간 엔지니어 양성으로도 이어졌다. ‘교육을 통한 산업 부흥’이라는 모토 아래 바우 아카데미부터 폴리테크닉 학교, 고등기술학교로 이어지는 다양한 근대 엔지니어 양성 기관이 발달했다. 미국의 근대 공학 교육은 프랑스를 모방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영국식 도제 훈련 방식의 영향이 컸다. 이리 운하 건설 사업 같은 공공 토목 프로젝트가 사회적 측면에서 엔지니어 양성 공간 역할을 수행했으나 1862년 연방 정부가 모릴 법을 통해 주립대학이 공과대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정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대학에서 엔지니어가 대규모로 배출되었다. 근대 엔지니어의 기원 근대 엔지니어의 궤적을 추적하려면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6세기 초에 시작된 프랑스의 공학 교육은 18세기에 도약기를 거치면서 공학의 제도화를 일궈냈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앞서 토목학교를 비롯한 전문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는 등 다른 유럽 국가에 공학 교육 체제의 역할 모델을 제공했다. 프랑스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은 1789년 대혁명, 1794년 에콜 폴리테크닉 창설, 이후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19세기 초의 산업화가 가져온 민간 엔지니어 양성이라는 새로운 공학 교육 체제의 변화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공학 교육 체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그 가운데 근대 공학 교육의 요람으로 평가받는 에콜 폴리테크닉의 초기 역사는 프랑스에서 국가 전략상 과학기술 정책 및 교육에 대한 국가 지도자나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어떻게 이공계 우대 전통을 확립하고 발전시켜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일 지역에서 근대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주로 정부와 군대에서 건축과 토목을 담당하는 전문 집단에서 비롯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국의 수도 빈에는 1670
목차
머리말
프랑스: 국가, 혁명 그리고 산업화
1 머리말
2 프랑스 엔지니어의 기원
2.1 엔지니어 개념의 변천
2.2 앙시앵 레짐의 공학 교육
3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과 공학 교육 체제
3.1 프랑스 혁명과 에콜 폴리테크닉의 창설
3.2 산업화와 민간 엔지니어 양성
4 프랑스 엔지니어 집단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5 맺음말
독일: 국가, 교육 그리고 수공업
1 독일 엔지니어의 탄생과 특수성
2 엔지니어 교육: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고등기술학교’로
2.1 엔지니어 교육의 출발: 전문기술학교와 ‘폴리테크닉 학교’
2.2 기술교육의 ‘학문화’: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고등기술학교’로
3 ‘교양 시민층’을 향해: ‘기술자’에서 ‘엔지니어’로
4 독일 엔지니어 협회: 전문 직업화
5 새로운 출발
영국: 전문 단체와 신사-엔지니어의 이상
1 머리말
2 영국 근대 엔지니어의 기원
2.1 군사공학의 등장과 발달
2.2 ‘민간 엔지니어’의 등장
2.3 신사-엔지니어의 원조, 존 스미턴
2.3 신사-엔지니어의 원조, 존 스미턴
3 엔지니어의 성장과 분화
3.1 토목 엔지니어의 집단화
3.2 장인적 기계 엔지니어
3.3 철도 붐과 철도 엔지니어의 성장
3.4 기계 엔지니어 협회의 설립
4 엔지니어 양성
4.1 작업장 문화의 전통
4.2 대학 공학 교육의 선구자
4.3 공학 교육의 체계화와 실험실 교육
5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5.1 신사-엔지니어
5.2 두 계층의 엔지니어 사회
6 맺음말
미국: 유럽 따라잡기와 엔지니어의 팽창
1 머리말
2 미국 엔지니어의 기원
2.1 토목공학
2.2 기계공학
3 엔지니어 양성
3.1 남북전쟁 이전
4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4.1 남북전쟁 이전
4.2 남북전쟁 이후
5 엔지니어 단체의 출현
5.1 토목 엔지니어 협회
5.2 기계 엔지니어 협회
6 맺음말
근대 엔지니어 관련 연표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