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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세화회 식민지조선 일본인의 전후

최영호 저 | 논형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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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574141 / 34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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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1945년 8월 일본 패전부터 1948년 7월 부산 세화회 종료까지 약 3년간을 다루고 있다. 일본인 세화회 단체가 한반도와 일본에서 어떻게 결성되었고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정리하고 있다. 종래 한국의 역사학계가 도외시해온 해방공간에서의 일본인 존재를 새로운 연구대상 영역으로 제시하고 현대 한일관계사 속에서 차지하는 일본인 귀환자의 존재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 패전 당시 한반도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120만 명 정도의 일본인이 거류하고 있었다. 일본인 군인이 32만 명 이상 그리고 민간인이 80만 명 이상이었다. 갑작스런 패전은 일본군의 보호를 받으며 유지되어 오던 일본인 커뮤니티에 균열을 발생시켰고, 해외 거주 일본인의 안정적인 생활과 유동성을 파괴했다. 미군이 진주한 이후 남한사회에서 일본인 배척 움직임이 격화되는 가운데 1946년까지 대부분의 일본인이 쫓겨나갔다. 이들은 일본에 귀환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잃어버린 재산의 회복과 함께 귀환자 권익옹호 운동에 나섰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세화회 단체를 통해 현대 한일관계의 원점을 확인하고, 해방 직후의 시기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역사 서술이 놓치기 쉬운 ‘이동하는 사람들의 역사’를 규명하는 일이다. 한반도 거주 일본인이 일본으로 귀환해 가서도 국교정상화 교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점이나, 한일 양국 사이에 전후 처리 문제가 미흡하고 애매하게 취급되어 온 점의 이면에는 귀환자의 개인청구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반도 거주 일본인 문제는 일제 강점기에 그치지 않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일관계를 통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저자 소개

(崔永鎬)

현재 영산대학교 일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도쿄대학대학원 석사·박사 과정에서 국제관계이론과 실례에 관한 조사훈련을 받았다.
해방 직후의 한일관계에 주목하며, 사료에 입각한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 한일관계를 이야기꺼리로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웹진을 통하여 2004년 1월부터 한일관계의 흐름에 관한 칼럼, 2009년 7월부터 일본과 신흥시장에 관한 칼럼을 발신하고 있다.

주요 논저 
『전향: 쓰루미 슌스케의 전시기 일본정신사 연구』(역서, 2005), 『한일관계의 흐름 2004~2005』(2006), 『부관연락선과 부산』(공저, 2007), 『한일관계의 흐름 2006~2007』(2008), 『한일관계의 흐름 2008~2009』(2010), 『한일관계의 흐름 2010』(2011), 「재일교포사회의 형성과 민족정체성 변화의 역사」(2008), 「전후 일본 우익의 동향과 자유주의사관의 태동」(2010), 「2011년 검정통과 일본 역사교과서의 근대 서술에 나타난 변화와 특징」(2011), 「2012년판 일본중학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현대 한일관계」(2011), 「한반도 신탁통치문제의 로컬리티: 해방직후 재일조선인 사회를 중심으로」(2012), 「終戦直後の在日朝鮮人·韓国人社会における‘本国’指向性と第一次日韓会談」(2012)

http://cafe.naver.com/choiygho

책 속에서

패전 직후 650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아시아 지역과 태평양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 가운데 350만 명 정도의 육해군 군인과 나머지 민간인 대부분이 일본으로 귀환해야 했다. 거류하는 지역에 따라 귀환하는 양상이 달리 나타났으나 전반적으로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으며 귀환 길에 올라야 했다.
패전(해방) 직전 한반도에서 일본 본토로 이동하는 일본인에 비해 한반도로 들어오는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여기에 중국지역에 있던 일본군 부대가 남방 방어를 위해 한반도로 이동 배치되고 있던 상황이나 패전 바로 직전 만주 지역에서 소련 침공을 피해 남하하고 있던 상황까지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패전 당시 한반도 역사상 가장 많은 120만 명 정도의 일본인이 한반도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패전 당시 일본인 거류자 총수를 120만 명으로 추정하는 것은 일본인 군인이 32만 명 이상, 그리고 민간인이 80만 명 이상 한반도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한반도를 비롯하여 해외 각지에 체류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일본 열도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패전 직후의 혼란 가운데 「중국잔류고아」 문제를 비롯하여 귀환 도중에 피해를 입거나 사망하는 일본인이 대량으로 발생했으며, 많은 귀환자들이 일본에서 안정된 생활 기반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개척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한반도 일본인의 경우, 관료들의 가족이나 남부지역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선박을 마련하여 귀환한 것을 필두로 하여, 점차 군정당국의 통제를 받으면서 집단을 이루어 한반도를 떠나갔다.
38도선 이남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 중 대부분은 1946년 2월 시점에 일본으로의 귀환을 마치게 된다. 일본 후생성의 귀환통계 자료에 의하면, 해외에 있던 민간 일본인들이 패전과 함께 일본으로의 귀환을 시작하여 귀환활동이 거의 끝나는 시점인 1961년까지 총 6,288,665명이 귀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귀환한 일본인 596,454명, 북한 지역에서 귀환한 일본인 322,585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의 귀환은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패전 이후 1946년 말까지 1년 5개월 동안에는 총 5,096,323명이 귀환했으며 이 가운데 남한 지역에서 571,765명이, 북한 지역에서 304,469명이 귀환한 것으로 되어있다.
위의 후생성 통계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통계이며 여기에 패전 직후 연합군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개별적으로 귀환해 간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개별적인 귀환자까지 포함시켜 생각한다면 민간인의 경우만 90만 명 전후의 일본인이 귀환한 것이 되며, 여기에 한반도 체류 일본인 군인까지 포함시킬 경우에는 120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패전 직후 1년 정도의 기간에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귀환한 것이 된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과하여 일본으로 귀환했다.
일본인들이 거주지에서 쫓기듯 귀환해야 했던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일본제국이 민족차별을 기조로 하여 타민족에게 강요해 온 황민화 정책과 전쟁동원 시책에 따른 결과였다. 전쟁 기간에 식민지 혹은 점령지에서 현지 민족에게 불행을 강요했던 황민화 정책이 일본의 패전을 계기로 한반도 전체에 걸쳐 일본인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더욱이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 점령을 하게 됨에 따라, 소련군 점령 지역 일본인 주민들은 귀환하는 과정에서 남한 지역의 주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한민족 뿐 아니라 한반도 거주 일본인에게 있어서도 38도선은 비극의 분단선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계획적인 송환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일본인 거주자들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자구적인 단체를 결성하여 일본인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특히 중국 동북지방의 「일본인회」와 한반도의 「세화회」는 일본인 귀환자들을 원호(援護)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반도의 경우, 일찍이 포츠담 선언 수락 발표일 3일 후인 8월 18일에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세화회 조직 움직임은 일본인 민간인들의 기대와 총독부와 일본군 부대의 지원이 맞물려 순식간에 지방으로 확대되었으며, 한 달 만에 남한의 모든 지방을 커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남한의 세화회는 일본인 거주자들이 일찍 귀환해 감에 따라 1946년 4월 초에 이르러서는 서울과 부산의 조직만을 남기고 모두 소멸되었다.
한편 한반도에서 거주했던 사람들은 귀환한 후에도 도쿄를 중심으로 하여 세화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결성하고 귀환자들을 위하여 권익옹호 활동을 전개했다. 세화회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서 마지막까지 활동하던 부산 세화회는 도쿄의 세화회가 문을 닫은 지 한 해 뒤인 1948년 7월에 업무를 마쳤다.
이 책은 귀환 전 한반도의 세화회 활동과 귀환 후 일본의 세화회 활동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연결고리를 찾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처럼 관계사의 측면에서 귀환자 단체의 한반도 활동과 일본 귀환 후의 활동을 서로 관련시켜 서술하고자 한 점은 기존의 세화회 관련 연구와 비교하여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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