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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

한상영 저 | 지식공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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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955275 / 544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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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도덕경 이란,

도덕경(道德經)은 주(周)나라 때의 노자(老子)가 함곡관에서 윤희(尹喜)에게 지어 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는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편집된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81장으로 구성된 도덕경은 왕필본(王弼本) ∙ 백본(帛本) ∙ 초간본(楚簡本) 등의 판본이 있으며, 그 중 왕필본이 통행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노자’와 ‘도덕경’이라는 이름에서 도덕경 읽기를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노자(老子)는 ‘삶을 충분히 오래 그리고 제대로 살아본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도덕경은 ‘그 노자(老子)들이 살아보고 남기는 가르침들’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면 도(道)는 노자들이 각자의 삶의 경계를 넘어 통찰과 직관으로 도달한 바름(正)과 밝음(明)의 대명사가 된다. 도덕경에는 노자의 지혜를 빌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본보기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도덕경을 노자(老子)들이 후대에 남겨준 인생의 길잡이이자 자기경영의 비전으로 삼는 것이다.
도덕경은 ‘도(道)에 다다르기 위한 덕을 쌓는 도덕(道德)’과 ‘덕(德)을 통하여 도에 다다라 가는 덕도(德道)’의 지혜를 자연의 순리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 지혜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통치학 ∙ 처세학 ∙ 양생학 ∙ 경영학 ∙ 병법 등의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며, 명(命)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행하는 것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삶의 모습은 다양해도 인생이라는 하나의 길(道)을 걷고 있음을 말해주고자 함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 길을 함께 걷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덕경 속 노자들의 애정 가득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 보자.


도덕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에서 배우는 통찰과 직관]
도덕경은 인간과 사회에 공평하고 바르게 적용되는 자연의 투자와 회수 원리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회의 구성원과 기업, 국가 등에 적용되는 성공과 번영을 위한 하나의 원리이다. 즉, 다퉈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어우러질 수 있는 법을 알려 준다. 세상의 경계들은 인위적인 근거에 기반한 권위이다. 학습된 허위와 분별적 권위는 우리의 삶을 한계 짓게 한다. 경계의 안과 밖을 살필 수 있는 통찰은 한계를 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직관의 힘을 줄 것이다.

[도덕경 읽기, 성공하는 삶을 위한 자기경영]
도덕경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도덕경은 개인과 세상 모두에게 스승이 되어 줄 수 있다. 도덕경의 가르침에 공감하여 행동으로 드러나는 순간, 자기 운명의 이루어짐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을 멈추게 하는 세상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목표에 다다르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세상에 자리를 정하고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뿌리를 내려, 자기의 꽃과 열매를 발현시키는 것이 인생이다. 도덕경 읽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의 특별함은,

[정명(正名; 바른 이름)]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처음으로 '도덕경 읽기를 위한 정명'이라는 개념 정의를 시도했다. 도덕경으로 도덕경을 읽음으로써 경전 그대로의 뜻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덕분에 동양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쉽게 도덕경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 모든 사람이 공정한 입장에서 노자들이 남긴 통찰과 직관을 자기의 삶에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도덕경으로 도덕경 읽기]
이 책은 특별한 동양학 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책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동양적 통찰력과 직관의 지혜를 얻게 해준다. 이를 위하여 임의적 의역을 배제한 명확한 번역과 그 내용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설명은 독자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 힐링과 실천을 응원하는 멘토의 역할]
이 책은 기존의 현학적인 도덕경 해석서가 아니다. 이 책은 인문학을 통한 실용적 삶의 지침서로서, 모두의 삶에 실제로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멘토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 도덕경의 본래 의도인 자연의 공평무사함, 차별이 아닌 차이, 모든 역할들의 평등함을 설명함으로써, 같은 무게와 가치로 더불어 살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하는 길을 알려준다.

 

출판사 리뷰

도덕경은 쉬운 책이지만 세상이 어려운 책으로 만들었다. 도덕경만이 아니라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양의 인문 고전들 역시 같은 이유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고전을 다루는 많은 책들의 내용은 너무 난해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쉬워 그 본질을 배우기 어렵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의 동양고전 대신 서양의 실용 인문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서양은 동양에서 길을 찾아 성공을 이루고, 동양은 그들이 찾아낸 길을 따라가는 역설이 반복된 것이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이런 불편한 현실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신선한 방법으로 고전에 접근하며, 내용은 친절하면서도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도덕경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또한 여러 권위적 근거들을 짜깁기하지 않고, 현대적 논리구조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에 따라 내용을 풀어간다. 세상에 빼앗겨 버렸던 삶을 위한 고전들을 개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도덕경(道德經)은 주(周)나라 때의 노자(老子)가 함곡관에서 윤희(尹喜)에게 지어 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는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편집된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81장으로 구성된 도덕경은 왕필본(王弼本) 백본(帛本) 초간본(楚簡本) 등의 판본이 있으며, 그 중 왕필본이 통행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노자’와 ‘도덕경’이라는 이름에서 도덕경 읽기를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노자(老子)는 ‘삶을 충분히 오래 그리고 제대로 살아본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도덕경은 ‘그 노자(老子)들이 살아보고 남기는 가르침들’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면 도(道)는 노자들이 각자의 삶의 경계를 넘어 통찰과 직관으로 도달한 바름(正)과 밝음(明)의 대명사가 된다. 도덕경에는 노자의 지혜를 빌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본보기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도덕경을 노자(老子)들이 후대에 남겨준 인생의 길잡이이자 자기경영의 비전으로 삼는 것이다.
도덕경은 ‘도(道)에 다다르기 위한 덕을 쌓는 도덕(道德)’과 ‘덕(德)을 통하여 도에 다다라 가는 덕도(德道)’의 지혜를 자연의 순리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 지혜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통치학ㆍ처세학ㆍ양생학ㆍ경영학ㆍ병법 등의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며, 명(命)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행하는 것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삶의 모습은 다양해도 인생이라는 하나의 길(道)을 걷고 있음을 말해주고자 함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 길을 함께 걷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덕경 속 노자들의 애정 가득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 보자.

“우리의 인생,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담겨 있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을 통하여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통찰과 직관 그리고 자기 경영을 위한 지혜를 보여주고자 한다.

현대의 사회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이런 불안정함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겨, 공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과 상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의 문제 해결이 어렵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격려를 받기도 어렵다. 스스로의 참된 채움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 채움의 도구는 검증된 적절한 것이어야 하고, 순간이 아니라 삶 전체에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를 얻을 수 있다. 성공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꿈은 다툼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채우고, 세상을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이에 대한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현대를 인문학의 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복잡한 사회에서 길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인류는 길을 잃을 때마다 인문 고전에서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제로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덕경은 이러한 동양의 인문 전통의 중심에 위치한 책이다. 도덕경은 인간과 사회에 공평하고 바르게 적용되는 자연의 투자와 회수 원리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회의 구성원과 기업, 국가 등에 적용되는 성공과 번영을 위한 하나의 원리이다. 즉, 다퉈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어우러질 수 있는 법을 알려 준다. 세상의 경계들은 인위적인 근거에 기반한 권위이다. 학습된 허위와 분별적 권위는 우리의 삶을 한계 짓게 한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경계의 안과 밖을 살필 수 있는 통찰은 한계를 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직관의 힘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책에는 몇 가지의 특별한 장점이 있다. 첫 번째, 책의 앞부분에 도덕경에서 사용하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명(正名)을 제공한다. 이는 도덕경의 번역에서 처음 시도되는 작업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저자가 하나의 맥락으로 81장 전체를 꿰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저자는 의도적으로 참고문헌과 인용문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책이 ‘도덕경으로 도덕경 읽기’를 목표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특별한 동양학 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동양적 통찰력과 직관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세 번째, 도덕경에 대한 신비주의를 벗어나 사실적이고 명확한 번역이 이루어졌다. 임의적인 의역을 배제하면서도, 번역한 내용을 차근차근 거듭 설명해 주어 한글세대가 읽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가 실제 삶 속에서 다양한 동양 고전들을 접목하여 얻은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력이 논리 정연하게 담겨 있다. 읽는 것을 거듭할수록 얻는 것이 늘어나는 인문학의 보물상자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셀프 힐링(Self Healing)과 삶의 실천을 응원하는 멘토(Mentor)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책이다.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은 인문 고전들이 현대에서 자리를 되찾기 위한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지금 삶의 길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인문 서적을 권해야 한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 소개

한상영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생(生)의 모습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주어진 생(生)의 기회에 더 큰 관심을 지니고 산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 삶의 명제를 ‘자유인 그리고 자유인생’ 이라 정했고, 신(神)들을 그 본뜸의 대상으로 삼아 마음대로 사는 삶 역시 본뜨고자 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삶의 순간마다 필요한 지혜를 채워주는 고전들을,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었던 본래 모습 그대로 ‘경계 너머’의 쉬운 말로 옮겨 전하고 싶어한다. 
저서로는 『도덕경, 삶의 경계를 넘는 통찰』『천부경, 신이 길을 걷는 우주진화의 원리』가 있다.


 

책 속에서

자연(自然)에서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법은 없다. 생각이 아닌 행함으로 같아지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얻게 된다. 그것이 천지(天地)가 지속되는 동안 변함없이 지켜지는 원칙이다. 인간을 제외한 만물은 본질에 따라 당연하게 주어진 길을 따라 산다. 인간은 그와 달리 선택의 길이 많아졌다. 그런 까닭에 같아지고자 하는 것이 도(道)나 덕(德)이 아닐 확률 역시 높다. 옛적의 도(古之道)에서 멀어져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리는 것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 잃어버리게 하는 학(學)에 의지하는 것도 자신이고, 부득이(不得已)함을 이유로 그것을 즐긴 결과이다. 도(道)나 덕(德)이기에 즐거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도(道)와 덕(德), 실(失) 중 즐거움의 대상이 되는 것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 스스로 선택한 것과 어우러져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 천지(天地)는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한 것만을 얻도록 한다. <23장의 해설 중에서>


다양한 지식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고로 학(學)을 보태어 가는 것으로 지혜로워질 수 없다. 깊은 곳까지 다가가지 못한다. 공부한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인생에 대해 안다는 의미이다. 또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지혜는 존재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 지식을 쌓는 것은 천하에서 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지식으로 밝아질 수 없다. 스스로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알게 되어야 비로소 밝아진다. 밝다는 것은 각각의 존재가 지닌 본성(本性)과 재료로서의 질(質), 드러난 형태로서의 분(分)에 대해 아는 것이다. 스스로를 알게 되면 의심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본질(本質)과 분(分)을 알 수 있으니 밝게 된다. 스스로를 알아 밝아짐은 깊은 곳에 자리한 도(道)와 만나는 것이다. 그 도(道)는 만물과 연결되는 같은 하나(一)이다. 그러나 세상의 학(學)은 이와 달리 욕심과 분별을 만들어 오히려 어둡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이 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강함을 증명하지 못한다. 자기보다 힘이 센 상대를 만나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힘은 상대적이기에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은 강함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욕망을 위한 것이니 쉽다. 약한 사람도 센 힘을 동원하면 가능하다. 반면에 스스로를 이긴다는 것은 자기의 욕망과 상황을 절제하는 것이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자기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그런 까닭에 힘이 있는 것과 강한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강함은 다른 사람을 상대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강함은 다른 사람을 다루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루는 힘이다. 만사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으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상황들을 이겨내고 밝아져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강함이다. <33장의 해설 중에서>


대변약눌(大辯若訥)은 성장과 여유에 의한 것이다. 말을 잘하게 되면 필요한 말만으로 전달이 가능해진다. 알면 알수록 말(言)이 줄어들고, 쉬운 말(言)을 쓴다. 단어 하나, 말(言) 한마디를 변별해서 사용함이 자연스럽다. 현학적이거나 화려한 논리가 아니라 간단하고 명료한 명확함을 쓴다. 그래서 말(言)에 여유가 있다.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복합적인 의미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듣기에는 어눌한 듯 보이게 되는 것이다. 말(言)이 많아지면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딱 필요한 만큼의 언어를 사용해서 오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대변(大辯)인 사람은 귀(耳)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인다. 달변이 귀(耳)를 통하여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목적과 다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시의적절하게 쓰이는 명확한 한마디의 말(言)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말(言)의 양과 지혜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대변약눌(大辯若訥)은 자연이 도(道)로 보여주는 지혜의 당당한 일면이다. <45장 해설 중에서>


사람을 아낀다는 것은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부리지 않고 아낌으로 저절로 따르게 한다. 그것이 하늘을 섬겨 따르는 자세이다. 더불어 말(言)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제로 아껴야 한다. 이것이 아낌의 기본이다. 아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일찍 옷을 입고 먼저 일을 하는 것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치인(治人)하고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옷을 일찍 입는다는 것이 덕(德)을 쌓음을 중히 여기는 것이 된다. 덕(德)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힘을 사용하여 자신이 편안함을 추구할 것이다. 일찍 옷을 입고 솔선수범하여 덕(德)을 쌓으면 사람들은 저절로 다스려진다. 다스리는 자와 따르는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같아진다. <59장 해설 중에서>


일은 큰 것에서 작은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미하고 세세한 것들에서 시작되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팔로 안아야 하는 아름드리나무도 작은 뿌리에서 생겨나고, 다시 그 뿌리에 의지해 살아간다. 구층의 누대도 흙을 쌓아 올려서 세워지고, 다시 그 흙을 의지해 지탱한다. 천리를 가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큰 나무가 털 끝보다 크지 않고, 구층의 누대가 흙보다 특별하지 않으며, 천리를 간 것이 한 걸음을 내딛는 것 보다 훌륭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큰 것은 오히려 뿌리인 본(本)에서 분화되어 나와 형성된 결실일 뿐이다. 나무의 근본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도(道)는 이 뿌리와 흙 그리고 한 걸음을 본다. 반면에 학(學)은 나무와 구층의 누대 그리고 천리에 도달한 것을 본다. 이 양자는 같은 곳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세상의 학(學)은 보이는 것만 본다. 또한 보이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 도(道)는 볼 수 없다. 미미하고 쉬운 것을 살피는 것은 본(本)과 분(分)을 함께 보기 위한 것이다. 만물은 순서와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순서와 과정은 모두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 무게는 모두 같다. <64장 해설 중에서>


인간의 삶이 지속되면서 높고 낮은 것의 분별이 계속 커졌다. 그 결과로 다양한 분별이 생겼다. 인간이 만든 천하에 하늘과 만물처럼 역할의 차별이 생긴 것이다. 천지(天地)는 남는 것에서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 만물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이 도(道)가 운행하는 천지 사이에서 살아가기에 순응한다. 천지(天地) 역시 그 역할에 따라 모든 것을 추구와 같은 무게로 공평(公平)하고 무사(無私)하게 대할 뿐이다. 반면에 인간은 천지(天地)의 사이에 천하(天下)라는 인간만의 천지(天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의 뜻(天命)을 명분 삼아 분별과 차별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하늘의 도(道)와 달리 높은 것은 더욱 높이려 하고, 낮은 것은 더욱 낮게 만들려고 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고, 차별은 억누름과 복종이 되었다. 이것을 부족한 것을 덜어 남은 것에 바친다고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하는 조용할 날이 없게 되었다. 날로 도(道)에서 멀어지는 밝음으로 어리석어진다. <77장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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