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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1546 / 80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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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김윤식 교수의 자전적 에세이
― 다섯 개의 프리즘을 통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쓰기
국문학자이자 비평가로, 희수(喜壽)의 나이에도 주요 문학 월간지와 계간지에 발표되는 소설을 모두 읽고 꾸준히 월평을 쓰며 왕성한 활동 중인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이 나왔다. 이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한국문학사 연구와 현장비평이라는 두 산맥에 모두 우뚝하게 솟은 봉우리라 할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각각 1970년과 1980년에 겪은 두 차례의 일본 체류에서, 그리고 그 사이 10년의 시간 속에서 만나고 읽은 ‘일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김윤식 교수의 일본 체험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한 아이가 학문의 길에 들어서고, 근대와 민족을 만나 때로는 그에 열광하고 때로는 헤매며 생각하고 고민한 사유의 기록이자 내면의 풍경이며,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등 걸출한 일본 문예비평가에 대한 하나의 안내이자 비평이기도 하고,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 답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애 전체를 건 공부, 삶 전체를 건 글쓰기를 보여 주는 문학적·지적 에세이이다.
김윤식 교수는 자신이 평생 동안 전력을 다한 읽기와 쓰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질곡이 그를 가로막았는지, 그리고 그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등에 대해 다섯 산맥(일본 불세출의 문예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와 에토 준江藤淳, 도쿄대 교수직도 버리고 프랑스 파리에 눌러앉았던 모리 아리마사森有正, 『국화와 칼』의 루스 베네딕트, 『일제하의 사상통제』의 리처드 미첼) 및 맑스주의 문예비평가 루카치와의 만남을 그리며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문맥 사이에 은근하게, 때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원로학자 김윤식의 지적 열정과 고뇌는 물론 개인적 소회와 감상까지도 엿볼 수 있는 건 이 책만의 특별함이다. 한 사람의 학자이자 비평가가 평생에 걸쳐 온 생을 건 읽기와 쓰기를 보노라면, 그 방법이나 내용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 삶과 지적 열정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와 ‘이광수와 나의 시대’ 사이에서
이제 막 서른다섯 살의 젊은 조교수가 있었다. 제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남과 북으로 나라가 반토막 나고, 반공을 국시로 한 남쪽에서 국립대의 교원, 그러니까 공무원 신분인 젊은 교수는 하버드대학 옌칭 신프로그램의 그랜트로 도쿄에 외국인연구원 신분으로 가게 된다. 1970년의 도쿄는, 그에게 “거의 천국처럼 보였다”(본문 31쪽). 붉은 깃발이 난무한 교정, 대학 정문 앞에서 파는 데모용 헬멧과 무기들, 서점에 깔려 있는 공산주의 관련 서적들……. “한국근대문학에 미친 일본문학의 영향”을 목적으로 갔던 첫번째 체일에서 젊은 조교수가 만난 것은 뜻밖에도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광수, 최남선 등과 같은 당시 일본에 유학간 학생들이 읽고 만난 일본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찾아간 그곳에서, 청년 김윤식은 길을 잃고 말았다.
‘한국근대문학에 미친 일본문학의 영향’이 1970년도 도일 목적이었지만 나는 보기 민망할 만큼 실패했다. 가까스로 이광수의 와세다 고등전문부(1년 반 과정)의 성적표와 『핫킨학보』(白金學報, 메이지학원 보통부 교지)에 실린 데뷔작 「愛か」(사랑인가)를 찾아낸 것, 이를 국내에 번역 소개한 것(「이광수의 데뷔작고」, 『독서신문』 55호, 1971년 12월 5일자)쯤을 들어 감히 성과라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참담했다. 딴눈을 팔았음에서 이런 결과에 이른 것이다. 나로 하여금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지 못하게끔 당겨 이끌고 간 장본인은 무엇이었을까. 첫번째가 루카치였고, 두번째가 미시마 유키오였고, 마침내 세번째가 고바야시 히데오와 에토 준이었다.(본문 680쪽)
“한국근대문학”으로 전공을 정한 김윤식이 맞닥뜨린 곳은 먼저 ‘근대’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국민국가와 자본제라는 보편성 탐구에 들어갔는데, ‘한국’은 이 시기에 식민지가 되고 말았기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이라는 특수적 상황을 맞이했던바 김윤식은 이 역시 탐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보편성과 특수성의 탐구 속에서 그는 인류사의 과제, 즉 ‘인간해방’이라는 테제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윤식은 이 인류사의 이념을 다루는 것이 문학이라면 그것이 집중적으로 뭉쳐 있는 곳이 문예비평이라 믿었다. “시도 소설도 그러했으나 ……이념성의 면에서는 간접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음에 비해 비평은 사정이 크게 달랐다. 직접성으로서의 이념성이 전면에 놓이는 것이 비평이었다. 이 사실의 발견이 내 조급성이랄까 미숙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친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거니와, 한동안 나는 이념성에 매료되어 문학\u003d이데올로기의 도식에 온몸으로 대응해 나갔다. ‘온몸으로’라고 감히 말했는데, 이것이 내 열정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본문 32~33쪽)
그러나 그러던 중 일본 체류에서 만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일본 문예비평의 창시자로 김윤식에게 끊임없이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 고바야시 히데오, 글쓰기에 생을 걸고 글을 쓸 수 없자 자결해 버린 비평가 에토 준과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었다. 인류사의 황금시대에 대한 환각, “문학은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 사상과 문학을 갈라내는 분기점인 ‘전향문제’ 등에 덧붙여 1980년의 광주까지 맞이한 김윤식에게 그의 무기인 비평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아졌다. 그 속에서 떠오른 한 인물이 바로 붓 한자루 외에는 다른 것을 가질 수 없었던 식민지 조선의 이광수였다.
나는 이 중년의 한복 입은 사내[이광수]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손에 들린 무기에서 왔다. 달랑 붓 한 자루뿐이었던 것. 이 가장 부드럽고 연약한 붓 한 자루로, 5월 광주와 DMZ 속을 헤매어야 한다는 것. 빚갚기란 이 붓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이 점을 그는 내게 가르쳤다. 다듬어 말해 그것은 ‘민족’에 대한 빚갚음이 아닐 수 없었다. ……
[이광수가] 민족과 개인을 동시에 보는 무기란 붓밖에 없었다. 붓, 그것은 「참회록」에서 윤동주가 읊은 거울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이 연약한 붓의 행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나 역시 붓 한 자루뿐이었던 까닭이다. 스스로 붓 한 자루를 갖고자 한 점에서 나는 그와 크게 달랐다. 다른 것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붓 쪽을 택한 것이었다. 비평이란 무기도 그 속에 있었고, 죄의식도 업보도 그 속에 있었다. 강변 포플러숲에서 자란 소년이 드디어 까마귀와 붕어를 속이고 길을 떠난 이래 4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첫번째 현해탄 건너기에서 가진 무기인 비평도 여기에서는 이미 소용없었다. 이상이 두번째 현해탄 건너기의 진짜 이유였다. 무기없는 무기, 붓 한 자루의 행적 따르기가 그것. 그 무거운 이광수전집(10권)을 들고 현해탄을 건넌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미 나는,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을 옆으로 밀치고 떠오른 어떤 악마와도 맞설 만한 모종의 조바심에 타오르고 있었다.(본문 703~704쪽)
우리 국문학사에서 독립적인 전기 비평의 전범으로 손꼽히는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는 이렇게 김윤식이 두 차례의 체일을 통해 헤매고 고민하며 완성해 낸 결과물이다. 한 문학가의 생애를 그 시대의 정신사적 문맥과 함께 통합적으로 구성·해석하는 형식으로, 요컨대 ‘고아의식’이라는, 이광수 개인과 그의 시대를 지배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써낸 『이광수와 그의 시대』에서 김윤식 자신이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글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시대의 관계”였다.
1970년 첫번째 일본 체류로 시작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 속에 현재 자신의 관심사(이중어 글쓰기bilingual writing)를 녹여 내며 끝맺고 있는 이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서, 우리는 인류사의 문제에 가슴 설레며 열정적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젊은 청년 비평가의 모습부터 쉼없는 책읽기와 사유를 통해 훨씬 넓어지고 깊어진 사유의 원로학자의 모습까지를 오가며, 결국 “글과 나의 관계”, “나와 나의 시대”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김윤식을 만나게 된다. 이 모습은 한 중견 작가가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처럼 보인다”고 말한 바로 그대로이며, “생을 건 글쓰기”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연구도, 비평도, 글쓰기도, 모두 여기(餘技)이거나 밥벌이가 되도록 만드는 지금 시대에, 이처럼 연구도 글쓰기도 바로 삶 그 자체인 원로학자의 모습은, 경외감과 더불어 문학과 비평은 무엇인지, 나아가 글쓰기란 아니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자문케 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연구에 뜻을 세우고 대학원(1960~64)에 든 내가 선택한 연구주제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였다. 임화의 『개설 신문학사』(1939~41)가 있었지만 신소설 언저리에서 중단되었고,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1948~49)가 씌어졌으나, 이들은 모두 종합문학사 범주에 드는 것이어서 시, 소설, 평론, 희곡 등 개별문학사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형편에 놓여 있었다. 내가 이 영역에 주목한 것은 문학과 사상(이데올로기)의 관련성이었는데 그만큼 문학이란 대단한 그 무엇임을 암묵적으론 승인했음에서 온 것이다. 문학이란 철학 그것처럼 인류사의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지도이거나 별이거나 지침서 같은 것. 이 인류사의 이념을 다루는 것이 문학이라면 그것이 집중적으로 뭉쳐 있는 곳이 문예비평이라 믿었던 것이다. (「제1장 1970년, 도쿄대학, 루카치」 중에서)
먼저 아이는 이 문제를 근대비평의 문을 연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에 물어보았소. 그의 무덤에까지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소. 그가 은밀히 들려준 것은 다음 한마디. “백제관음은 외설적이나 석굴암 대불은 모든 말을 잃게 한다”였소. 나는 지금도 이 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오. 알쏭달쏭하니까. “아, 알쏭달쏭하는 것이 비평인가 보다”라는 정도의 이해라고 할까.
두번째로 물어본 곳은 에토 준(江藤淳). 나보다 겨우 세 살 위인 이 스승은 이렇게 말했소. 강아지를 길러 보라, 라고. 글쓰기 위해서는 강아지를 집에서 기르기뿐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머지는? 나머지라니, 라고 에토는 한심하다는 듯이 아이를 내려다보지 않겠소. 글쓰기가 전부라는 것. 나머지도 송두리째 글쓰기뿐이라는 것. 그 글의 내용이란 극우든 극좌든 또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치 않다는 것. 요컨대 강아지 기르는 시간만 빼면 먹는 것, 자는 것, 말하는 것, 심지어 숨쉬는 것까지 오직 글쓰기뿐이라는 것. 숨쉬기조차도 글쓰기를 위해 있다는 것. 이 앞에서 아이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소. (「한 아이를 위한 후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