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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김열규 산문

김열규 저 | 산지니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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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451792 / 184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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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부산에서 자라난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의 청소년 시절을 그린 자화상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스스로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을 출간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부산에서 자라난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의 청소년 시절을 그린 자화상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스스로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을 출간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는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련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유년 시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복하기 전 일제 강점기에 그토록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맹세하곤 했는데, 이게 뭐람? 광복을 맞은 이제,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으라니!”(p142) 광복 후, 좌익 학생 단체 소속의 선배들이 시켜 공산당의 ‘적기가’를 불렀던 일은 소년 김열규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그 당시 빚어진 정치 집단의 이념 갈등은 학생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산문집『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은 일제 시대와 광복,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게 되는 소년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부평동 사거리에서 ‘마사무네야 혼텐(正宗屋 本店)’이라는 정종 도매 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열규 교수는 일본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한 그곳에서 ‘누가 뭐래도 여긴 우리 조선 땅이야!’라며 마음속에 긍지를 잃지 않았다. 그가 유년을 보낸 부산은 일본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한국의 현대사를 더욱 실감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소재를 저자는 무겁게 풀어내지 않는다. 그 시절의 부산 풍경과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밌게 보여주고 있다. 마음껏 소년다울 수 있었던 그때!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유년기를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 마음껏 시내를 활보하면서 이웃집 형과 함께 일본인 소학교에 원정을 떠나 일본아이들을 응징했던 일, 그리고 「부산일보」(당시 ‘후잔닛보’)에 작문 글이 실려서 신문사로 한걸음에 달려갔던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모습들을 노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소년의 눈으로 회고한다. 늙은 소년 김열규 교수가 켜는 아코디언의 울림을 듣다 보면, 어느덧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 부산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소년이 된 우리네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꼬맹이’ 소년 김열규의 삶을 그린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와 철들기 시작할 무렵 ‘학생’ 김열규의 삶을 담은 「얌생이와 돗따」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치하를 겪은 유소년기와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청소년기의 김열규 교수 모습을 나눈 셈이다. 특히나 2부 「얌생이와 돗따」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군수품을 만들면서 꿇어앉아 맞이하던 광복의 순간들이 묘사되어 있어 한국 현대사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소년의 기억에 스며든 둥지, 부산 6?25전쟁이 끝나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까지 자신을 품어주고 가꾸어준 부산을 둘도 없는 ‘내 둥지’라고 말하는 김열규 교수. 광복로, 보수천, 자갈치, 영도다리, 중앙동 40계단, 범어사 등 그의 기억 속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며 변모했다. 지금은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바뀐 중앙동 40계단은 6?25전쟁 시대를 회고하는 역사박물관 거리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40계단의 중턱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은 저자가 학생 시절, 좌익과 우익 학생의 싸움을 겪은 곳이라 김 교수에게는 아픈 사연이 깃든 장소이다. 한편, 지금의 부산 서구청에 위치했던 ‘대정(大正)공원’의 지명을 설명하면서 일본말로 ‘다이쇼’라고 하는 일본 왕의 칭호를 언급하고, 오늘날 국제시장의 전신인 ‘돗떼기시장’이 ‘돗따(取, 취할 취)’에서 왔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한다. 보수동 헌책방의 기원도 바로 이 ‘돗떼기시장’에 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많은 책들을 수집했는데, 이 책들은 어린 김열규로 하여금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여, 훗날 학자 김열규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저자 소개

1932년 2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2013년 10월 그곳에서 영면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으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국의 광복을 맞았으나 이내 좌우익의 정치적 파란 속에 사춘기를 보냈다. 부친의 좌익 성향으로 어려워진 형편 속에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란했다가 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로 돌아와 대학원을 마쳤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삶의 궤적을 함께했기에 한국인과 한국문학, 한국의 민속에 천착했으며 국문학과 민속학을 아우르는 한국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새로이 열어냈다. 1963년 29세에 강단에 서기 시작한 후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U.C 버클리대 객원교수 등을 거쳐 1992년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배움과 가르침, 연구와 집필에 골몰했다. 수많은 제자는 그를 인생과 학문을 소년처럼 즐기고 사랑한 스승으로 기억한다.


퇴임 후 고향인 경남 고성으로 돌아가 인제대 교수와 계명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지리산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토록 사랑한 고향 마을의 뒷산과 앞바다 품에서 22년 동안 밭을 일구고 산책을 했으며 한 해에 한 권이 넘는 책을 펴내는 열정적인 글쓰기를 이어갔다. 여행과 수영, 산행을 즐겼으며 고전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모차르트와 브람스, 말러를 즐겨 들었고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릴케를 사랑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죽음, 인간의 본질을 묻고 이를 글로 답한 그의 묘비에는 “인생의, 최후 일전의 결말이 죽음이 되게 해야 한다.”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평생 동안 7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한국신화와 무속연구》,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이젠 없는 것들 1・2》, 《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 《한국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상징으로 말하는 한국인 한국문화》, 《한국인 우리들은 누구인가》, 《한국문학 형태론》, 《한국인의 에로스》, 《한국인의 신화》, 《독서》, 《공부》, 《노년의 즐거움》, 《아흔 즈음에》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첫머리에 | 부산, 한국 현대사의 전위대
1부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알짜 부산 놈! 부평동에서 자라면서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용동, 영생유치원과 항서교회에서
‘나가테 도오리(광복로)’의 야시장에서
전차에 얽힌 추억
용두산 신사에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민 이겨라! 봉래 이겨라!
‘후잔닛보(釜山日報)’에 글이 실리고
보수천 ‘검정다리’에서 물놀이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대신동, 고원견산에서 여우를 만나다
까치고개 넘어 괴정으로
하단과 명지에서 수박서리
송도에서 친구 목숨을 구하고
나의 영도다리
2부 얌생이와 돗따
대연동 못골고개를 달리면서
감내 바다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수영의 군사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다
부경대학교 앞뜰의 백사장에서 조개며 고동을 줍고
역사를 간직한 제1부두
‘학생 치안대’로 파출소 근무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
해운대 백사장에서 ‘적기가’를 부르고
‘대정공원’의 삼일절 기념식에서 우익의 테러를 당하다
국제시장의 전신, ‘돗데기시장’의 출발
대연동 못골 저수지에서 뱀과 헤엄치기 경주를
범일동 전차 정거장 지척에 공동 우물이 있었으니
6ㆍ25전쟁의 후방기지 제2부두에서
6ㆍ25난리 통의 부산 거리
부산의 전시 피난 대학
범어사의 인연
종장에서 | 내게 끼쳐진 부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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