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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찍는 사진관

시리즈 : 가교출판 작은 책방 시리즈 [8]

강소천, 박보라 저 | 가교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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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7771987 / 229쪽 143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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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강소천 선생님은 고독과 그리움에서 머물지 않고, 보다 큰 꿈과 넓은 사랑으로 승화시켜 어둠에서 밝음을 안겨 주었다. -김영자(아동문학가)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 강소천의 동화집 출간! 「꿈을 찍는 사진관」「꽃신」등 강소천의 대표작 12편 수록 ‘스승의 노래’, ‘어린이 노래’, ‘꼬마 눈사람’ 등 수많은 동요의 노랫말을 쓴 강소천. 1930년, 함흥 영생 고보 재학 시절 어린이잡지에 동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강소천은 196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40여 편의 동요·동시와 140여 편의 동화를 남기며 한국 아동문... 강소천 선생님은 고독과 그리움에서 머물지 않고, 보다 큰 꿈과 넓은 사랑으로 승화시켜 어둠에서 밝음을 안겨 주었다. -김영자(아동문학가)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 강소천의 동화집 출간! 「꿈을 찍는 사진관」「꽃신」등 강소천의 대표작 12편 수록 ‘스승의 노래’, ‘어린이 노래’, ‘꼬마 눈사람’ 등 수많은 동요의 노랫말을 쓴 강소천. 1930년, 함흥 영생 고보 재학 시절 어린이잡지에 동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강소천은 196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40여 편의 동요·동시와 140여 편의 동화를 남기며 한국 아동문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1957년 어린이날, 마해송 등과 함께 ‘어린이 헌장’을 만들어 발표하는 등 ‘어린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에도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늘 생각하고 실천하는 아동문학가였다. 그래서 그는 주변 문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아동문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39년 에 「돌멩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한 강소천은 그 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동화작가로 자리 잡았다. 가교출판에서 출간된 강소천의 동화집 『꿈을 찍는 사진관』은 「꿈을 찍는 사진관」「꽃신」등 그의 대표작 12편을 수록한 책으로, 일본강점기와 6·25를 통과하면서 창조한 독특한 문학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꿈’을 모티프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환상동화뿐만 아니라 아이들 일상생활에 밀착된 유쾌한 생활동화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슬픔이 꿈으로, 꿈은 따뜻한 희망으로! 강소천의 문학적 배경에는 6·25전쟁의 아픔이 진하게 깔려 있다. 그는 1·4후퇴 때 그동안 써놓은 동시와 동요, 동화가 담긴 공책 한 권만 달랑 들고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홀로 월남했다. 하지만 다른 이산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영영 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소천은 가족을 잃은 자신은 물론이요 전쟁통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슬픔을 어루만져 줄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그래서 1950년 이후의 작품을 살펴보면 「꿈을 찍는 사진관」「꼬마들의 꿈」같은 ‘꿈’을 그린 동화가 많다. 전쟁 때문에 헤어진 가족들의 그리움을 꿈속에서나마 달랬던 것이다. 「꿈을 찍는 사진관」은 이북에 두고 온 동무 순이를 꿈에서 만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진사는 ‘꿈을 찍는 사진기’를 만들게 된 이유를 “내게는 안타깝게 그리운 아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 아기의 사진까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이 사진기를 만들게 된 게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라고 밝힌다. 이는 강소천이 “이북에 아이들을 두고 온 나는 때때로 사진이라도 한 장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가져 본다. 그런 생각이 이번 나로 하여금 「꿈을 찍는 사진관」이란 작품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라고 직접 밝힌 것과도 같은 내용이다. 이미 저세상에 가 버리고 없는 그리운 얼굴들도 꿈에서는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꿈길엔 38선이 없습니다. 정말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본문 p.11-12) 「꿈을 찍는 사진관」을 비롯, 강소천의 꿈을 모티프로 한 동화들은 “개인적인 전쟁 체험에서 시작된 그리움을 토대로 독자적으로 구축해낸 꿈이라는 환상 기법은 동화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꼬마들의 꿈」은 땅 위에 사는 까치와 달나라에 사는 옥토끼가 이상한 열매를 먹고 서로 몸이 바뀌어 동경하던 세상에서 잠깐 살아보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초상화」는 1963년 문교부에서 수상하는 문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쟁통에 고아가 되어 보육원에 오게 된 춘식이를 엄마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안 선생의 이야기이다.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혼자 겉돌던 춘식이는 어느 날 엄마를 꿈에서 만난 뒤 스케치북에 엄마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림 속의 엄마 얼굴은 누가 보아도 보육원의 안 선생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 선생은 독신이라 당연히 아이가 없었는데도 엄마를 잃고 그리워하는 춘식이를 달래주기 위해 “춘식이를 보자 곧 내 죽은 아들이 살아 온 것 같아!”라며 아름다운 거짓말을 한다. 전쟁의 상처는 강소천의 대표작인「꽃신」에서도 강렬하게 드러난다.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난이 아버지. 딸인 난이의 돌 선물로 꽃신을 사서 보낸다. 그런데 돌이 지난 어느 날 난이는 꽃신을 신고 집 앞에서 놀다가 한 짝을 잃어버린 채 돌아온다. 난이 엄마는 원망과 서운함과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남은 꽃신 한 짝으로 난이 엉덩짝을 후려갈기고 만다. 그저 “볼기짝 두 개, 그것뿐”이었지만 그 뒤 난이는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난이는 우리 집에 왔다 두 돌도 못 되어 돌아갔습니다. 이 엄마가, 너무 푸대접한 까닭이에요. 아니, 아기가 집에 찾아와도 한 번도 와 주지 않은 아빠가 더 나빴는지도 몰라요. (본문 p.114) 이 작품은 아이들이 얼마나 여린지, 그래서 어른들이 얼마나 소중히 품어 주어야 할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꽃신을 짓는 사람」은 어린이에 대한 강소천의 사랑이 더 확대되어 나타난다. 어느 날 얻어다 기른 딸 ‘예쁜이’를 잃어버린 부부. 구둣방을 하던 예쁜이 아버지는 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꽃신을 하나 둘 짓기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나도 예쁜이는 돌아오지 않고, 마음이 지쳐가던 아버지는 문득 깨닫는다. 남의 아기를 위해 난 여태까지 몇 해를 두고 신발을 짓고 있었어. 왜 예쁜이 하나만을 위해 신발을 지어야 하나? 세 살짜리부터 여섯 살까지 신을 수 있는, 아니 갓난아기라도 신을 수 있는 예쁜 꽃신을 만들어야 해.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다 내 예쁜이인 거야! (본문 p.99) 그러면서 예쁜이 아버지는 다시 꽃신을 짓기 시작한다. 이 작품 속의 예쁜이 아버지는 강소천 자신이기도 하다. “언제인가 나는 골목길에서 이북에 두고 온 내 아이와 모습이 흡사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달려들어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싶은 충동을 느끼었다.”라는 강소천의 말처럼, 이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뼈에 사무쳤다. 그러나 강소천은 그리움 속에 머물지 않고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짓는 사람’으로 살아갔다. 그것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된 유쾌한 생활동화로 전환하다 강소천은 6·25를 겪으면서 ‘꿈’을 모티프로 한 환상동화를 많이 쓰다가 「나는 겁쟁이다」「영식이의 영식이」「꾸러기와 몽당연필」과 같은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생활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겁쟁이다」는 힘센 돌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수남이가 어느 날 임금 자리에 오르면서 자신이 임금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정말 돌쇠를 용서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고 때리는 돌쇠에게 ‘이 자식아! 왜 사람을 못 살게 구느냐?’ 하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든가……. (본문 p.131) 수남이는 돌쇠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협박을 할 때 자신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마음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저 겁쟁이였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다. 양심과 참된 용기가 무엇인지 묻는 작품으로, 학교 폭력이 만연한 지금의 현실에서도 여전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꾸러기와 몽당연필」은 영식이 가방에서

저자 소개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그리는 그림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품으로 ⟪누가 내 짝꿍 좀 말려줘요⟫《왕따의 거짓말 일기》《약속했단 말이야》《잔양》《우리 동네》 등이 있습니다. 
1915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용률(龍律)이다. 고원공립보통학교와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 고향 미둔리에서 결혼했으며, 1945년부터 6·25가 일어나기 전까지 고원중학교, 청진여자고급중학교, 청진제일고급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1933년 동요 <울엄마젓>이 ≪어린이≫ 5월호에 입선되고, <까치야>가 ≪아이생활≫ 5월호에 윤석중의 고선으로 뽑혀 발표되고부터 정식 작가로 인정받았다. 1936년 ≪童話(동화)≫에 동요 <제비>, <리아>, 동시 <국화와 채송화> 등을, 1937년 ≪소년≫ 창간호에 대표작 <닭>을 발표했으며, 1937년부터는 동요·동시와 함께 동화와 소년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강소천은 고향에서 6·25를 당하고, 1951년 1·4후퇴 때 고향에 부모와 처자를 남겨 둔 채, 흥남에서 군부대를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다. 이때 그는 남한 땅을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는 일시적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한시적 삶의 공간으로 생각했으나 6·25 전쟁은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으로 종결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결국 남한 땅은 그에게 삶의 터전으로 새롭게 일구어 내야 하는 공허한 삶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월남 후 그는 주로 아동잡지 편집과 교육 활동에 종사하며 1963년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 ≪새벗≫ 주간, ≪아동문학≫ 편집위원,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분과위원장,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문인협회 이사, 한국보육대학 강사,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강사, 국정교과서 국어과 심의 의원, 서울 중앙방송국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요시집 ≪호박꽃초롱≫(박문서관, 1941), 동화집과 소년소설집으로 ≪조그만 사진첩≫(다이제스트사, 1952), ≪꽃신≫(한국교육문화협회, 1953), ≪진달래와 철쭉≫(다이제스트사, 1953), ≪꿈을 찍는 사진관≫(홍익사, 1954), ≪달 돋는 나라≫(대한기독교서회, 1955), ≪바다여 말해다오≫(대한기독교서회, 1955), ≪종소리≫(대한기독교서회, 1956), ≪무지개≫(대한기독교서회, 1957), ≪인형의 꿈≫(새글집, 1958), ≪꾸러기와 몽당연필≫(새글집, 1959), ≪대답 없는 메아리≫(대한기독교서회, 1960), ≪강소천 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1), ≪한국아동문학전집−강소천편≫(민중서관, 1962), ≪어머니의 초상화≫(배영사, 1963), ≪강소천 아동문학전집≫ 전 6권(배영사, 1964), ≪강소천문학전집≫ 전 15권(문음사, 1981), ≪강소천 아동문학전집≫(교학사, 2006)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목차

목차
꿈을 찍는 사진관
박송아지
꾸러기와 몽당연필
어머니의 초상화
영식이의 영식이
빨강 눈 파랑 눈이 내리는 동산
꽃신을 짓는 사람
꽃신
나는 겁쟁이다
꼬마들의 꿈
시집 속의 소녀
그리다 만 그림
해설|움트고 꽃 피려는 간절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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