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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덩 덩 둥덩 가야금 소리 들어 볼래 가야금 명인 황병기

시리즈 : 우리 인물 이야기 [21]

송재찬, 이윤희 저 | 우리교육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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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0407507 / 148쪽 17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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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평생 한 가지 뜻에 매달려 살아온 우리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담긴 인물 시리즈 ‘우리 인물 이야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 _ 딩덩 덩 둥덩 가야금 소리 들어 볼래?》 평생을 함께한 가야금, 개구쟁이 소년을 우리 음악 명인으로 만든 운명 같은 만남! ‘아!’ 병기는 숨이 탁 막혔습니다. 잔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 그것은 병기가 지금껏 들어 온 음악 중 가장 새롭고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병기는 신비스러운 음악에 심취하여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명주실로 꼬아 만든... 평생 한 가지 뜻에 매달려 살아온 우리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담긴 인물 시리즈 ‘우리 인물 이야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 _ 딩덩 덩 둥덩 가야금 소리 들어 볼래?》 평생을 함께한 가야금, 개구쟁이 소년을 우리 음악 명인으로 만든 운명 같은 만남! ‘아!’ 병기는 숨이 탁 막혔습니다. 잔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 그것은 병기가 지금껏 들어 온 음악 중 가장 새롭고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병기는 신비스러운 음악에 심취하여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명주실로 꼬아 만든 열두 줄 가야금의 소리는 병기 귀로 들어와 온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병기는, 가야금 소리를 타고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본문 44쪽) 1997년에 서울대학교 ‘자랑스러운 법대인상’, 2001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받은 국악인이 있다. 그 답을 바로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고등학생 때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다. 시작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전쟁을 피해 내려간 부산에서 선생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듯한 느낌을 준 가야금과 만나게 된다. 우리 음악은 고루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서양 악기가 아닌 가야금을 배운다는 말에 가족들은 반대하고, 가야금 배우는 걸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속에서도 황병기 선생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정악과 산조를 정식으로 배운다. 국악 안에서도 경계가 뚜렷하여 서로 교류가 없던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예술 안에 존재하는 장벽을 어린 소년이 깰 수 있던 것은 가야금을 향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겠다. 우리 음악을 대중과 가까이 가야금 음악을 보다 현대적으로 황병기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놀라운 일은 한둘이 아니다. 선생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을 때, 국악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야금을 배우는 서울 법대생으로 자연히 화제가 되었는데, 4학년 2학기에는 음대 학장으로부터 이듬해 신설되는 국악과 가야금 강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첫해에 응시생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서양 음악과 지원자 중에서 학생을 데려와야 할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선생은 처음 다짐대로 4년 동안 제자들을 길러냈고, 그 가운데 오늘날 국악계를 이끌어가는 재목들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정간보로 전해 오는 정악과 산조를 오선지에 옮기는 큰일을 해내며 우리 음악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또한 가야금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해냈으면서도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을 더 느끼며, 우리 악기 가야금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한 곡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작곡을 배운 것도 아니었고, 가야금 곡을 오선지에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마침내 세상에 나온 곡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 이다. 은 국내와 해외에서 큰 화제가 되며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해외 초청과 강연 요청이 줄을 이었고, 음반 또한 호평을 받았다. 사업과 음악을 병행한 선생이 마침내 음악의 길을 택한 것은 마흔을 앞둔 서른여덟의 일이다. 그 뒤로 발표한 곡 모두 많은 관심을 받으며 가야금은 점점 대중과 가까운 악기가 되어 갔다. 선생은 작곡과 연주회, 강연 등으로 바쁜 중에도 가야금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해 애쓰며, 가야금 연습 또한 쉬지 않았다. 가야금과 황병기 선생은 마치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는 친구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빛내 주고 있다. 계산 없이 순수한 애정과 열정으로 이뤄 낸 삶 황병기 선생은 그저 가야금이 좋아 열심히 배웠고, 그로 인해 큰 명예를 얻었다. 무엇보다 가야금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순수한 애정과 열정이 낳은 놀라운 힘이 그 분의 삶에 녹아 있다. 가야금이 곧 인생이요, 동반자인 그 분의 삶은 계산 없는 애정과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처럼 보이는 오늘날, 그렇기에 더더욱 살아가면서 힘이 되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겁고 오랜 시간 몰두에도 지치지 않는 무언가가 모두에게 하나쯤은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가는 일은 곧 나를 알아가는 일이며, 꿈을 이루는 과정이 된다. 그 길목마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을 응원하는 용기일 터다. 가야금과 함께하여 더욱 행복한 황병기 선생의 삶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찾아가는 법을 보여 주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황병기 할아버지는| 1936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쟁을 피해 내려간 부산에서 처음 본 가야금에 빠져들어, 부산 국립 국악원에서 서로 다른 정악과 산조를 배웁니다. 서울로 온 뒤 1954년 전국 학생 콩쿠르에 가야금 연주자로 나가 1등을 하며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법대 4학년 때에는 서울대 국악과 가야금 강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대학 강의와 함께 우리 음악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한 할아버지는, 1962년에는 가야금 정악과 산조를 오선보로 옮겨 내고,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 을 완성합니다. 또한 1965년 하와이를 시작으로 해외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며, 음반 또한 국내외의 극찬을 받습니다. 2005년 ‘자랑스러운 이화인상’, 2010년 ‘아시아문화상’을 받았으며, 독일 을 포함해 권위 있는 음악 사전에 이름이 실린 할아버지는 지금도 가야금과 함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교양과 감동을 한꺼번에! 우리 인물 이야기 올곧게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시대 인물들의 삶이 역사와 교양과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핵가족 시대에 우리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 삶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의 디딤돌이 되고 다양한 분야의 인물로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교양을 갖추게 할 ‘우리 인물 이야기’ 스무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감동 넘치는 이야기이자 역사 교과서입니다. |우리 인물 이야기 기획의도| (주)우리교육에서 펴내는 인물 이야기 시리즈 ‘우리 인물 이야기’는 그동안 나온 위인전의 흐름에서 벗어난 인물 이야기입니다. 인물 이야기 하면 위인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 인물 이야기’는 흔히 알려진 위인전과는 다릅니다. 대개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은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이겨 내고 ‘위인’이 되기까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살아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보여 줍니다. 그리하여 읽는 이들은 ‘이 위대한 인물들’과 더욱 멀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조금 과장해 이야기하자면 “나, 위인 안 할래!” 하는 아이들까지 생겨난다고 합니다. 하여 (주)우리교육에서는 ‘위인’이 아닌 평생을 한 가지 일이나 뜻에 바쳐온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살아오신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 살아오신 이야기에 감동과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역사 또한 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인물 이야기, 이래서 남다릅니다| - 위인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인물의 어린 시절 삶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 읽는 이로 하여금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주고 있습니다. - 여느 위인전과는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가까이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담았기에 자연스레 핵가족화 된 시대에 세대 간 소통의

저자 소개

1950년 음력 6월.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노트 한 쪽을 2등분해서 두 권의 책을 정리하도록 했는데 독후감이 뭔지 제대로 몰랐던 작가는 줄거리만을 간추려 노트를 채웠다. 그의 책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69년에 제주교육대학에 입학했다. 군사 훈련과 아르바이트로 정신이 없었지만 문학동인 ‘연지’를 결성하여 시 습작을 했고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남제주 대정초등학교에 발령이 났다. 도서관연구학교여서 여느 도서실에는 쉽게 볼 수 없는 한국창작동화 같은 게 꽂혀 있었다. 처음으로 한국 창작동화를 읽기 시작했고 교육잡지 ≪새교실≫과 ≪교육잡지≫ 독자 문예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투고 작품은 최종심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독자 문예에 뽑힌 작품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는 사이, 동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신춘문예, 소년중앙 문학상 등 아동문학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가는 섬을 떠나 육지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봉화, 영주, 안동 등을 다니며 동화책을 사기 시작했고 이원수 선생님 추천으로 ≪새교실≫ 동화 3회 추천을 끝냈다. 당시는 동화에 전념했던 시기였고 동화작가 배익천에게 날마다 편지를 쓰던 시기였다. 이웃 학교에 계시는 이오덕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받고 안동군 일직면 송리로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1975년 동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벽지로 자원, 동면초등학교로 옮겼다. <강아지똥>을 당선시켰던 ≪기독교 교육≫에 <종을 치는 마음>이 당선되고 창주문학상에 <화가와 비둘기>가 당선됐다. 그리고 1976년 마침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찬란한 믿음>이 당선되었다.



광주에서 내던 ≪아동문예≫에 첫 장편을 연재했고 첫 작품집 ≪민들레섬의 나비≫가 나왔으며 중편 <안개와 들꽃>으로 한국동화문학상을 받았고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로 제7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 5월 말쯤  ≪소년동아≫ 성인환 기자에게 동화 연재를 의뢰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돌마당에 뜨는 해>다.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아동물을 시작한다고 해서 ≪소년동아≫는 이 작품을 추천했고 작품집으로 묶여 나왔다.



1981년, 노원호 시인의 덕으로 서울사립학교인 서울여대 부설 화랑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기고 서울 사람으로 살기 시작했다. 대형 서점을 구경하는 동안 제주도에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제주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작품 속에 제주도 설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장편 ≪큰불 장군과 작은불 왕자≫, ≪제주도 할머니를 찾습니다≫, ≪하얀 야생마≫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어린이 책과 함께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곰의 아이들》,《블루 재스민》,《거짓말을 왜 할까요?》들이 있습니다. 

목차

목차
1. 3대독자 낙제생
2. 학교 대표 독창자
3. 부산 피난 시절 만난 가야금
4. 정악과 산조
5. 중학생 영감 고무신 대학생
6. 서울대학교 국악과 가야금 강사
7. 첫 가야금 창작곡
8. 세계로 퍼져 가는 가야금 음악
9. 명금들의 숨은 이야기
10. 세 번 들으면 죽는 가야금 음악 미궁
* 더 살펴봐요! 우리 악기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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