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꾀꼬리와 국화 정지용 산문집

정지용, 이숭원 저 | 깊은샘 | 2011년 10월

북트리

정가
$46.00
판매가
$25.3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51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74162283 / 451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정지용산문집 『꾀꼬리와 국화』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일급의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수필가이기도 했다. 일간 신문에 지면을 얻기 어려웠던 그 시절에, 정지용은 1938년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번갈아 가며 고정 연재 칼럼을 맡아, 짧게는 일주일로부터 길게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의 글이 인기가 없었다면 신문사에서 그렇게 지면을 내어주었을 리가 없다. 그의 칼럼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삽화가 함께 실려 있는데, 이것 또한 그의 산문의 인기를 알려주는 사례다. 정지용은 시론에서 정신의... 정지용산문집 『꾀꼬리와 국화』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일급의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수필가이기도 했다. 일간 신문에 지면을 얻기 어려웠던 그 시절에, 정지용은 1938년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번갈아 가며 고정 연재 칼럼을 맡아, 짧게는 일주일로부터 길게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의 글이 인기가 없었다면 신문사에서 그렇게 지면을 내어주었을 리가 없다. 그의 칼럼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삽화가 함께 실려 있는데, 이것 또한 그의 산문의 인기를 알려주는 사례다. 정지용은 시론에서 정신의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수필에도 나타난다. 특히 그가 시집에 선별해서 수록한 산문들에 그러한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정지용시집』(1935)에 실린 「밤」과 「램프」, 『백록담』(1941)에 실린 「노인과 꽃」과 「꾀꼬리와 국화」다. 「밤」과 「램프」가 지면에 발표된 것은 1933년 9월(《가톨릭청년》 4호)의 일이니, 이때는 『백록담』 시편이나 그의 시론이 발표되기 훨씬 이전이다. 산을 소재로 한 고전적 여백미의 시가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937년 6월 9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비로봉」과 「구성동」부터다. 수필 「밤」에서 정지용은 밤의 무한한 엄숙성을 이야기한다. 밤은 아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어둠의 적막으로 천지를 가득 채운다. 그는 밤이 선사하는 신비로운 묵극?劇에 경탄하고 있다. 밤의 위대한 적막은 인간의 모든 슬픔과 동작과 언어를 다 포용한다는 것이다. 램프에 불을 밝히고 방에 들어올 때, 밤은 이 갑작스런 틈입자闖入者에 조금도 놀라지 않고 램프 불과 화합하여 꽃동산 같이 환한 얼굴을 바로 보여준다고 했다. 여기서 지용이 밤을 대하는 경건한 자세와 사색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정결한 정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그의 고전적 정신주의는 「램프」에서 더욱 뚜렷한 용모를 드러낸다. 그는 깨끗하고 산뜻하면서도 반듯한 상태를 추구하며 그런 모양을 지닌 대상에 호감을 느낀다. 우선 램프의 흰색 갓에 호감을 표시한다. 그는 정결한 흰빛에 대한 선호를 갖고 있다. 갓이 연잎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으면서도 불에 닿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한 점도 좋다고 했다. 이렇게 고풍스러운 램프는 벽에 걸려 있는 것보다 탁자에 올려놓은 모습이 더 보기 좋다고 했다. 램프 불이 비추면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에 농담의 변화가 생겨 마치 회화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예술적이라고 찬탄했다. 특히 흉한 모습의 석유가 아름다운 불로 변신하는 것이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고 아름다운 비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신비로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도시의 풍물인 전등과 비교하면서 램프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전등은 불의 조화造花”에 불과하고 “등불의 원시적 정열을 잊어버린” 인공적 설치물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전등에는 위로 솟아오르는 불의 혀 모양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장면에서 대상의 심미적 특성을 눈여겨보고 거기 정신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그의 정신주의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백록담』에 실린 「노인과 꽃」(《조선일보》, 1936. 6. 21)과 「꾀꼬리와 국화」(《삼천리문학》, 1938. 1)에서 정신적 염결성은 앞의 두 작품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노인과 꽃」에서 지용은 청춘의 정염과 수치와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비로소 노년의 청수하고 고고한 경지에 이르러 담담히 꽃을 완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노인이고, 꽃을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미옥美玉과 같이 탁마된 춘추”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노년의 지혜와 법열에 도달해야 진정으로 꽃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용도 빨리 하얗게 늙어 그 순수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때 지용의 나이 35세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노경을 꿈꾸었던 것은 그의 정신적 염결성의 지향 때문이다. 연옥의 시련에 해당하는 욕망과 번민을 다 가라앉히고 눈처럼 정결한지혜의 법열에 도달하기를 희구했다. 「꾀꼬리와 국화」는 그가 1937년 3월 북아현동으로 이사한 후 쓴 수필이다.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꾀꼬리 소리를 듣고 그는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집값이나 땅값에만 관심을 가질 뿐 꾀꼬리 소리에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꾀꼬리가 우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친구들에게 편지로 알렸더니 장성에 사는 벗이 먼 곳에서 일부러 올라왔다.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꾀꼬리가 울기를 기다렸으나 그날따라 꾀꼬리가 울지 않았다. 장성 벗은 서운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고 돌아갔다. 지용은 꾀꼬리가 아무 때나 울지 않고 어느 한 때에만 운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꾀꼬리처럼 귀한 새는 우는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제 가을이 되어 새 소리는 그쳤고 모든 것이 시들어 떨어진다. 꽃 중에 꾀꼬리처럼 귀한 꽃이 가을에 피는 “조선 황국”이다. 그는 조선 황국을 보고 취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정신의 염결성을 지니겠다는 일종의 자기 선언이다. 새 중의 새인 꾀꼬리가 아무 때나 울지 않고 꽃 중의 꽃인 조선 황국이 쇠락의 계절에만 피어나듯이 자신도 그런 정결한 정신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그 쇠락의 계절에 정신의 고고한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지용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꾀꼬리와 국화」는 「장수산」의 정신적 결의를 예비한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산문을 시와 연관 지어 읽으면 정지용의 정신세계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필은 생활문학의 단면을 지니기 때문에 그의 수필에는 정지용의 생활 양태를 실감 있게 전해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그는 김영랑, 박용철, 김현구, 길진섭, 박팔양, 이병기, 이승만, 조택원, 김소운, 조풍연, 김상용, 방용구, 설정식 등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기에 이르는 많은 문학 예술인들과 다양하게 교류했는데, 그 자취가 그의 산문에 그대로 실려 있다. 특히 길진섭, 김영랑, 박용철 등과의 여행담에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 동시대인으로서의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그와 더불어 그의 산문에는 문학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영화, 무용 등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그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다방면의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전천후 예술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정지용의 산문은 새롭게 음미하고 깊이 탐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일제강점기의 둔탁한 고문투를 털어내고 지금의 어법으로 바꾸어 놓으니 청신한 느낌이 햇살처럼 피어난다. -이숭원교수의 머리말

저자 소개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 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 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 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유학 시절에는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귀국 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일했다. 
1930년에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서 활동했고, 1939년에는 《문장》의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에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6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펴낸 책으로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감성의 파문>, <폐허 속의 축복>, <원본 정지용 시집>,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세속의 성전>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여는 글
Ⅰ 소묘와 수수어
소묘 1
소묘 2
소묘 3
소묘 4 밤
소묘 5 램프
수수어 1-1
수수어 1-2 아스팔트
수수어 1-3
수수어 1-4 노인과 꽃
수수어 2-1
수수어 2-2
수수어 2-3 내금강 소묘 1
수수어 2-4 내금강 소묘 2
수수어 3-1 이목구비
수수어 3-2
수수어 3-3 육체
수수어 4 봄

Ⅱ 기행문
남유南遊 제1신 꾀꼬리
남유 제2신 석류ㆍ감시甘枾ㆍ유자
남유 제3신 烏竹ㆍ맹종죽孟宗竹
남유 제4신 체화체花
남유 제5신 때까치
남유 제6신 동백나무
다도해기 이가락離家樂
다도해기 해협병海峽病
다도해기 실적도失籍島
다도해기 일편낙토一片樂土
다도해기 귀거래
선천宣川 1
선천 2
선천 3
의주 1
의주 2
의주 3
평양 1
평양 2
평양 3
오룡배伍龍背1
오룡배 2
오룡배 3
남해 오월 점철點綴 1 기차
남해 오월 점철 2 보리
남해 오월 점철 3 부산 1
남해 오월 점철 4 부산 2
남해 오월 점철 5 부산 3
남해 오월 점철 6 부산 4
남해 오월 점철 7 부산 5
남해 오월 점철 8 통영 1
남해 오월 점철 9 통영 2
남해 오월 점철 10 통영 3
남해 오월 점철 11 통영 4
남해 오월 점철 12 통영 5
남해 오월 점철 13 통영 6
Ⅲ 수필
옛 글 새로운 정
꾀꼬리와 국화
날은 풀리며 벗은 앓으며
남병사南病舍 7호실의 봄
인정각人定閣
압천鴨川 상류
다방 'ROBIN' 안에 연지 찍은 색시들
서왕록逝往錄
예양禮讓
우산
합숙
화문畵文 점철點綴 1
화문 점철 2
비
비둘기
Ⅳ 시론과 평문
영랑과 그의 시
생명의 분수 무용인 조택원론(상)
참신한 동양인 무용인 조택원론(하)
월탄月灘의 『금산의 피』와각지 비평과 독후감
시의 옹호
시와 발표
시의 위의威儀
시와 언어
《문장》지 선후평 1
《문장》지 선후평 2
《문장》지 선후평 3
《문장》지 선후평 4
《문장》지 선후평 5
《문장》지 선후평 6
《문장》지 선후평 7
《문장》지 선후평 8
《문장》지 선후평 9
《문장》지 선후평 10
《문장》지 선후평 11
《문장》지 선후평 12
『가람시조집』발跋
『가람시조집』에
윤석중 동요집 『초생달』
시집『종鍾』에 대한 것
조택원 무용에 관한 것 그의 도미 공연을 계기로
『포도』에 대하여
윤동주 시집 서
조선시의 반성
서序 대신 시인 수형琇馨께 편지로
월파月坡와 시집『망향』

Ⅴ 해방 후 산문
한 사람분과 열 사람분
학생과 함께
동경대진재 여화
산문
새옷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