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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한국현대문학전집 07 이광수 작품선

시리즈 : 한국현대문학전집 (현대문학) [14]

이광수 저 | 황국명 역 | 현대문학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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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754770 / 508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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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근대적 장편 소설의 효시이자 우리 문학사의 우람한 봉우리 현대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무정』을 만나다!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만큼 긍정과 부정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작가?도 드물다. 때로는 변절자로, 때로는 존경할만한 문호로 평가되었으니 그의 생애는 영욕으로 점철된 것이라 하겠다.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1907년 국비유학생으로 재차 도일한 이후 도산 안창호의 도쿄 연설에 큰 감명을 받는다. 1915년 다시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철학부에 입학하고, 1917년 1월 1일부터 근대적인 장편소설... 근대적 장편 소설의 효시이자 우리 문학사의 우람한 봉우리 현대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무정』을 만나다!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만큼 긍정과 부정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작가도 드물다. 때로는 변절자로, 때로는 존경할만한 문호로 평가되었으니 그의 생애는 영욕으로 점철된 것이라 하겠다.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1907년 국비유학생으로 재차 도일한 이후 도산 안창호의 도쿄 연설에 큰 감명을 받는다. 1915년 다시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철학부에 입학하고, 1917년 1월 1일부터 근대적인 장편소설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무정』을《매일신보》에 연재한다. 1919년 상해로 탈출한 뒤 임시정부의《독립신문사》사장에 취임한다. 21년 귀국한 이후 발표한 논문「민족개조론」「민족적 경륜」으로 물의를 빚는 한편으로,『재생』『마의태자』『단종애사』『이순신』『흙』『유정』등 많은 작품을 남긴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9년 ‘북지황군위문北支皇軍慰問’에 협력하고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며, 이듬해 ‘가야마 미츠오[香山光郞]’로 창씨개명하고 각지를 돌며 친일연설을 한다. 숱한 논문과 시편을 남겼지만, 이광수를 문학사의 우람한 봉우리로 만든 것은 소설 문학이다. 먼저 주목할 것은 이광수 소설의 근본 구성원리가 이항대립이라는 점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신세대와 구세대, 근대와 전통, 자기희생과 물질만능,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정신적 사랑과 육욕 등의 관념이 상충한다.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기축으로 한 작품에서도 그 관계를 형성·해체·재구성하는 힘은 이 같은 대립적 관념들이다. 이항대립적 구성은 현상의 구체성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사유의 명료성을 강화하기 쉽고, 그런 만큼 소설 세계를 단순화할 위험도 지닌다. 이광수 소설의 상당수가 추상적 계몽소설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항대립적 구성은 작중인물의 행위나 생각, 사건과 상황에 명료한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낡은 도덕과 고루한 인습에 젖은 구세대를 분리시킴으로써 청년 주체가 자기 세대의 본질과 정체성, 자기 몫의 운명을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항대립적 구성원리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관념들은 서로를 극복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광수의 소설은 공격보다 사랑, 폭력적인 상쟁相爭보다 비폭력적인 화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나 간디의 무저항을 옹호하였거니와, 그의 소설은 급진적인 투쟁정치를 배격하고 상애相愛와 상화相和를 중시한다. 소설 결미에 흔히 반성하는 죄인이 등장하듯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악인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설 주인공들이 가치 무규정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소설에서 상애와 상화는 윤리적 지향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장편소설『무정』은 현대소설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이광수 소설 전체를 압축하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무정』은 1939년 박기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는데, 시사회에 참석했던 이광수는「영화 ‘무정’으로 공개장」이란 글에서 비극적 감흥과 함께 박영채가 구여성에서 신여성으로 사상적 변화를 겪는 데 원작자의 의도가 있다고 썼다. 과연, 영채 앞에 펼쳐진 세계는 무정한 세계이다. 아버지와 오빠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건만 아버지로부터 “가문을 더럽히는 년”이라 비난을 받는다. 문명개화를 통해 제국주의 침탈에 대응하고자 한 박 진사였지만, 영채에게 그는 봉건적 유습에 사로잡힌 억압적 가부장이다. 배명식과 김현수에게 능욕을 당한 영채는 믿었던 형식으로부터도 배신을 경험한다. 옛사람의 본을 받아 송죽 같은 정절을 지켰기를 바라는 이형식 또한 무정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영채에게는 ‘이 세상이 내 원수’일 수밖에 없다. 냉혹한 세계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형식도 영채와 다르지 않다. 세계는 고아인 자신의 고통과 시련에 냉정하며, 학생들을 위한 희생과 호의도 쓰라린 배신을 겪는다. 영채와 형식의 고아 체험은 고아인 이광수의 세계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인물들이 이 사회를 저주하면서 등을 돌리지는 않는다. 비정한 세계의 풍파를 경험하되, 그것을 저항력을 기를 ‘정신적 마마’로 여기고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것이『무정』의 고아들이다. 그래서 이형식은 소년 시대를 건너뛰어 ‘노성한 어른의 빛’을 띤다. 『무정』에서 그 의의로 볼 때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동경 유학생 김병욱이다. 홍수가 난 삼랑진 장면에서 자선음악회를 주선하기 위해 식민 권력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치마를 걷어붙이고 임산부의 온몸을 주무른다. 이때 병욱은 임산부를 민족의 거푸집이 아니라 고통받는 약자로 여긴 것이 분명하다. 또 낡은 도덕과 고루한 인습을 비판하면서도, 병욱은 ‘영채에게 옛날 지식과 동양식 감정’을 맛보며 옛 사상에도 음미할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통지식의 전면적 부정이 탈선에 이를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런 점들에『무정』을 새롭게 읽을 단서가 있겠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자 소개

  • 역자 : 황국명

인제대학교 한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채만식 소설 연구』 『삶의 진실과 소설의 방법』 『한국현대소설과 서사전략』 『우리 소설론의 터무니』 등이 있다.

목차

목차
해설 | 이광수의 삶과 문학 ● 황국명
무정
무명
예술과 인생 ● 이광수
내가 본 이광수 ● 이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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