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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24363 / 396쪽 160 x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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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어느 시대에도 홀로 있었던 일이 없었다. 유교는 성립단계에서부터 언제나 다른 종교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대립하여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 위치와 성격을 정립하여? 왔다. 공자는 노자를 찾아가 도(道)를 물었다 하고,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는 일찍부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니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한 구절 “攻乎異端, 斯害也已”는 유교전통에 한가지 의미깊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 구절을 주자는 “이단을 ‘전공’(攻)하면 해로울 따름이다”라고 풀이하여, ‘이단’에 대한 거부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어느 시대에도 홀로 있었던 일이 없었다. 유교는 성립단계에서부터 언제나 다른 종교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대립하여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 위치와 성격을 정립하여 왔다. 공자는 노자를 찾아가 도(道)를 물었다 하고,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는 일찍부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니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한 구절 “攻乎異端, 斯害也已”는 유교전통에 한가지 의미깊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 구절을 주자는 “이단을 ‘전공’(攻)하면 해로울 따름이다”라고 풀이하여, ‘이단’에 대한 거부의 입장으로 해석하였지만, 이와 달리 “이단을 ‘공격’(攻)하면 해로울 따름이다”라고 포용적 입장으로 해석하는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곧 여박사(呂博士: 藍田 呂大臨)는 “이제 사설(邪說)이 정도(正)를 해치는 것을 미워하여 공격한다면 단지 스스로 가리워지는 것일 뿐이다”(今惡邪說之害正而攻之.則適所以自?而已)라고 하여, ‘전공’(攻)이 아니라 ‘공격’의 뜻으로 해석하였고, 주자 자신도 ?답왕상서서?(答汪尙書書)에서 자신의 견해와 상반된 여박사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공자의 ‘이단’에 대한 입장은 ‘전공’하지 말라는 배타적 입장인지 ‘공격’하지 말라는 포용적 입장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용」(30장)에서는 공자의 덕을 서술하면서, “‘도’는 함께 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道?行而不相悖)라고 하여 포용과 조화의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공자는 여전히 포용적 입장을 지녔던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해 맹자는 ‘이단’비판의 배타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맹자는 양주(楊朱)를 임금도 없다(無君)하고 묵적(墨翟)을 부모도 없다(無父)하여 ‘이단’으로 배척하면서, “양주·묵적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는다”(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라고 극단적 ‘이단’배척의 태도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단’에 대한 유교전통의 태도에는 비판적 거부의 입장과 개방적 포용의 입장이라는 두 얼굴을 드러내어 왔던 것이다. 포용과 배척은 어떤 의미에서 유교전통이 지닌 두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도 부정되면 전체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는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니, 양면을 함께 보는 눈으로 유교와 타종교 내지 타사상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오자 유교는 국가의 통치이념이요 체제교학(體制敎學)으로서 조선사회를 이끌어왔다. 말하자면 유교는 조선시대의 국교(國敎)로서 권위와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회는 유교만 있었던 단일종교체제가 아니라, 언제나 다른 종교와 만나고 부딪치면서 지속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 전반기에는 고려시대에서 물려받은 막강한 불교적 유산과 대결하여야 했고, 조선시대 후반기에는 새로 전래해온 서양종교로서 천주교와 충돌하여야 했다. 그 밖에도 유교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사회저변에 자리잡고 있었던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과 대결하거나 통제해야 했고, 조선시대 말기에는 붕괴해가는 유교적 영향력의 빈틈을 파고드는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新宗敎)들과 부딪치기도 하였다. 또한 유교이념의 그늘 속에는 중국사상으로서 유교와 더불어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도가(道家: 老莊)사상도 언제나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서 유교이념의 기준이요 중심축을 이루었던 것은 도학-주자학(道學-朱子學)이었다. 도학이념은 ‘정통’(正統)을 표방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종교를 ‘이단’(異端)으로 비판하고 배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내에서도 주자학에 배치되는 양명학을 ‘이단’으로 비판할 만큼 엄격한 배타적 정통론을 견지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시대 유교가 맞서야 했던 가장 큰 종교적 세력은 조선전기의 불교와 조선후기의 천주교였다. 곧 조선전기에는 불교비판에 이단배척론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상당한 견제력을 발휘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조선후기에는 천주교비판에 이단배척론을 강경하게 지켜갔음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일본의 외세(外勢)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유교체제 자체가 붕괴하는데 이르고 말았다. 이처럼 유교의 타종교에 대한 대결과정에서 본다면 조선시대 유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바로 도학이념에 어긋나는 모든 다른 종교와 주자학에 어긋나는 다른 사상유파를 비판하고 배척하는 정통주의적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유교의 특성은 한편으로 도학정통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순정성(醇正性)을 추구하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 도학에 어긋나는 타종교나 사상유파를 철저히 비판하고 배척하는 폐쇄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사회에서 도학이념은 ‘성리설’의 형이상학적 이론과 ‘수양론’의 인격적 정립으로 근본을 삼고, ‘의리론’의 강인한 신념을 표출하며, ‘예학’의 구체적 의례절차로 절제된 질서를 구현함으로써, 조선사회의 도덕적 이상과 사회적 기강을 정립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학이념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독선에 빠지면서 시대변화에 적응력을 잃게 되었고, 밖으로부터 다른 종교나 외세의 도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사회붕괴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선시대 도학은 강인한 신념의 정립으로 융성하였지만 배타적 폐쇄성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조선후기의 실학파 유교지식인들 가운데는 도학의 독선적 폐쇄성에 대해 절실하게 성찰하고 비판하였던 인물이 있었다. 조선후기 실학은 개방적 포용성을 발휘하면서 현실문제에 대한 합리적 개혁을 추구함으로써 도학이념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전기에 도학이념의 유교가 융성하였던 사실은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데서 이룬 것이 아니라, 도학정신을 시대정신의 이상으로서 발휘하는데서 가능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후기에 도학이념이 쇠퇴하였던 사실은 다른 종교 내지 다른 사상에 대한 배타적 폐쇄성에 빠지면서 자기변혁의 기회도 잃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만큼 유교가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해 배타적이었는지 개방적이었는지는 유교이념의 성쇠에 연결되는 것이요, 조선사회의 성쇠와도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유교와 타종교’라는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조선시대에 도학이념의 유교가 불교·도가·제자백가·서학 등 다른 종교와 만남에서 얼마나 폐쇄성과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동시에 불교와 천주교가 유교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거나 충돌하였는지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와 타종교의 만남을 통한 상호 교류와 갈등의 성격과 한계를 이해한다면, 바로 오늘의 현실에서 종교간의 이질감과 대립의식을 해소하고 갈등을 넘어 조화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이 책은 여섯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제1장 ‘조선전기 불교인의 유교인식’은 기화(己和)·설잠(雪岑)·보우(普雨)·서산(西山)을 통해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이 변용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불교가 조선사회의 억불(抑佛)정책 속에서 정착하는 양상을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제2장 ‘조선후기 유교의 「장자」(莊子)이해’는 도학 정통론자인 한원진(韓元震)이 「장자」를 해석하면서 포용적으로 이해하는 범위와 비판하는 논리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제3장 ‘조선후기 유교의 제자백가 인식--신후담(愼後聃)의 「팔가총평」(八家總評)을 중심으로’는 18세기에 서학비판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서학변'(西學辨)을 저술한 신후담이 유가류를 비롯하여 제자백가류를 ‘8가류’로 도학적 입장에서 비판적 해석과 논평을 한 저술로 조선시대에 제
목차
머리말?003
1. 조선전기 불교의 유교인식
--기화(己和)?설잠(雪岑)?보우(普雨)?휴정(休靜)의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
1. 조선전기 불교의 삼교조화론이 지닌 성격017
2. 「현정론」의 삼교조화론과 호불(護佛)변론022
1) 기화(己和)의 삼교조화론과 불교우위론?022
2) 기화(己和)의 불교비판에 대한 호교론?027
3.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의 삼교대비와 불교우위론032
1) 삼교(三敎)대비를 통한 불교우위론?032
2) 유?불대비를 통한 불교우위론?037
4. 설잠(雪岑)의 삼교인식과 유?불병행론044
1) 유교 정통론의 도교?불교 비판?044
2) 세도(世道)를 통한 유?불병행론?050
5. 보우(普雨)의 유불동조론060
1) 충효의 강조와 유불동조론?060
2) 유불화합의 동조론과 성리학적 이해?066
6. 휴정(休靜)의 삼교회통론과 유교인식075
1) 삼교회통론과 불교자성론(自省論)?075
2) ‘심’개념의 인식과 삼교회통론?082
7. 조선전기 불교의 삼교조화론이 지닌 의미087
2. 조선후기 유교의 「장자」(莊子)이해
--한원진(韓元震)의 「장자」해석과 비판논리
1. 조선후기 유학자의 「장자」해석의 성격091
2. 「장자」 ‘내편’의 구조와 문체의 이해094
1) 「장자」해석의 저술 동기와 입장?094
2) 「장자」 ‘내편’의 구조에 대한 인식?099
3. 장자의 ‘도’개념에 대한 인식107
1) ‘도’의 본체에 대한 인식?107
2) ‘도’의 양상에 대한 인식?117
4. 장자의 심(心)과 지(知)에 대한 인식131
1) 장자 ‘심’개념의 이기론적 해석?131
2) ‘지’(知)?‘언’(言)?‘시비’(是非)에 대한 인식?140
5. 장자의 ‘양생’?‘처세’?‘치도’에 대한 인식146
1) ‘양생’과 ‘처세’에 대한 인식?146
2) ‘치도’에 대한 인식?155
6. 한원진의 성리학적 「장자」해석의 의미163
3. 조선후기 유교의 제자백가 인식
--신후담(愼後聃)의 「팔가총평」(八家總評)을 중심으로
1. 신후담에서 제자백가에 대한 관심의 문제167
2. 조선시대 유학자의 제자백가에 대한 관심170
3. 신후담의 제자백가 인식의 입장180
1) 「팔가총평」(八家總評)의 저술배경과 체계?180
2) 제자백가 인식의 입장?184
4. 유가류와 도가류의 인식 190
1) 유가와 유가류의 분별?190
2) 노장과 도가류의 인식? 197
5. 제자백가의 인식 207
1) 법가(法家)?명가(名家)?묵가(墨家)류의 인식? 207
2) 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병가(兵家)류의 인식? 219
6. 신후담의 제자백가 인식이 지닌 의미 229
4. 18세기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
--윤지충?권상연의 천주사상과 영혼관
1. 18세기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과 윤지충?권상연의 위치 233
2. 성호학파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배경 236
3. 윤지충?권상연의 ‘천주’사상 246
--‘상제’신앙과 ‘천주’신앙의 거리
4. 윤지충?권상연의 영혼관과 천당지옥설 257
5. 윤지충?권상연의 폐제분주(廢祭焚主)사건과 신앙적 성격 262
6. 윤지충?권상연의 천주교신앙 수용이 지닌 의미 271
5. 19세기 한국성리학의 시대인식과 서학(西學)?
서세(西勢)에 대한 대응
1. 한국사상사에서 19세기 성리학의 위치 277
2. 사회내부적 변동과 대응 280
3. 심설(心說)의 쟁점과 학파의 분화 287
1) 기호(畿湖)학파의 분화와 쟁점? 287
2) 영남(嶺南)학파의 분화와 전개? 295
4. 서학(西學)?서세(西勢)에 대한 비판과 배척론 305
1) 서학에 대한 비판이론? 305
2) 서세(西勢)에 대한 배척과 저항의 의리? 317
5. 19세기 성리학의 사상사적 의미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