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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시리즈 : 펭귄 클래식 시리즈 [126]

허균 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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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01091587 / 152쪽 133 x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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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들 펭귄판으로 거듭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금오신화』 최초의 한글 소설, 허균 사상과 철학의 집합체 -『홍길동전』 ▣ 고어와 한문의 현대적 번역, 수준 높은 작품해설과 원문 목판본 함께 실어 웅진의 단행본 그룹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이 영국 펭귄클래식과 공동 투자하여 설립한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두 편의 한국 작품을 동시에 선보였다. 그간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검증받은 작품’들로 라인업을 구축해 왔다. ...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들 펭귄판으로 거듭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금오신화』 최초의 한글 소설, 허균 사상과 철학의 집합체 -『홍길동전』 ▣ 고어와 한문의 현대적 번역, 수준 높은 작품해설과 원문 목판본 함께 실어 웅진의 단행본 그룹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이 영국 펭귄클래식과 공동 투자하여 설립한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두 편의 한국 작품을 동시에 선보였다. 그간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검증받은 작품’들로 라인업을 구축해 왔다. 금번에 출간된 김시습의『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대표적인 전기소설(傳奇小說)로서 전대(前代)의 설화와 가전체를 발전시켜 후대 작품에 다방면으로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펭귄클래식 『금오신화』는 한문 원본의 예스러운 문체를 살리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번역되었고, 현시대 젊은이와 청소년들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생소한 고사(故事)나 어려운 한자어 해설을 주석으로 달아주었다. 펭귄클래식 판 『금오신화』에는 작품 전체에 대한 해설과 함께 조선 명종 때의 문인이었던 윤춘년이 편집한 목판본을 실어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책이자 어렵고 딱딱하지 않은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였다.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이자 한국 문학사에서 소설 시대의 문을 연 허균의 『홍길동전』역시『금오신화』에서 제시된 사회 비판 의식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한 작품이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융합한 내러티브 등으로 대중적 호응도를 높여 자칫 딱딱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의 사회적 기능을 일깨운 작품이기도 하다. 펭귄클래식 판『홍길동전』에는 수십 종의 이본(異本) 중 작품성이 뛰어나면서 각 판본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적합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해 실었고, 책의 말미에는 내용 분석과 함께 『홍길동전』 연구사의 쟁점과 흐름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는 작품 해설을 담았으며, 1880년경 서울 방각본 제판소에서 만들어진 경판 24장본의 원본을 실어 번역된 현대 한국어와 비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 붓끝 하나로 현실을 꿈처럼 펼쳐낸 시대의 저항아들 김시습과 허균의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서부터 비범한 글재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당시의 주류 학문은 물론 그에 반(反)하는 것일지라도 관심이 가는 학문에는 굶주린 듯 파고들어 폭넓게 배우고 익혔으며,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고 저항하는 반골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상 체계를 융화시키는 데 성공한 철학자이자 천재적인 문학자였으나 유교 중심의 당시 관료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단자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편협한 유교 문화에 한계를 느끼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이후 방랑길에 올랐는데 그 시기에 『금오신화』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허균의 『홍길동전』은 여러 차례 파직과 복직이 반복되던 끝에 마지막 파직을 전후하여 쓰인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작가의 현실이 지극히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쓰인 것인데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에서는 작가가 현실 속에서 느낀 많은 부조리와 비극적인 정서가 ‘꿈’ 그리고 ‘이상’과 결합하여, 때로는 아름다운 묘사로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붓끝을 타고 춤을 추듯 펼쳐진다. ▣『홍길동전』 400년을 앞서 간 개혁가 허균의 자유분방한 사상을 함축한 문제적 명작 길동이 술을 마셔 반쯤 취한 후에 칼을 잡고 춤을 추니 칼 빛이 번쩍거려 햇빛과 어우러지고 옷소매는 가볍게 공중에 휘날렸다. 『홍길동전』은 한국고소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적 작품이다. 최초의 국문소설이고, 문제 작가 허균의 창작소설이며, 민감한 사회문제를 제기한 사회소설이라는 평가가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적서 차별 문제는 조선 시대의 사회적 병폐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 사회에서나 제기될 수 있는 신분 차별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적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추구하는 가치 또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만인 평등의 미래 사회라는 점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늘이 낳아주셨는데 사람이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다. 하늘을 거역하고 하늘에 빌어 복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늘을 받들어 하늘의 뜻대로 행해야만 큰 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 -허균 중 『홍길동전』의 이러한 내용의 특성은 지은이 허균의 독특한 개인적 이력에 연유한다. 허균은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그는 예교(禮敎)에 얽매여 있던 당시의 폐쇄된 사회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자유분방한 정신과 생활 방식의 소유자였다. 생전에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역적모의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후 모두 사라지고 그 가운데 일부만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홍길동전』은 그 일부 중 하나이자 대표작으로서 이를 ‘허균의 자서전이고 주인공 길동은 그의 자화상’이라고 규정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그만큼 『홍길동전』의 내용에는 허균의 행적이나 그가 다른 논설들을 통해서 주장했던 민본사상, 신분 계급의 타파, 인재 등용 방안, 국방력 강화론 등이 반영되어 있다. 때문에 『홍길동전』을 허균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는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는 달라도 현실적 부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날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서민들도 고통받고 있다. 사회 문제에 대한 파격적이고 대담한 제시안인『홍길동전』은 어쩌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훨씬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지금 다시 『홍길동전』을 읽는 것은 진부한 고전을 읽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저자 소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檢閱)·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형조정랑(刑曹正郞)을 지내고 1602년 사예(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수안군수(遂安郡守)를 역임하였다. 1606년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되었고, 천주교 12단(端)을 얻어왔다. 같은 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참방(參榜)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후 태인(泰仁)에서 창작에 전념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평소 친교가 있던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안전을 위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여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지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었다. 같은 해 좌참찬(左參贊)으로 승진하고, 광해군 폭정에 항거하여 이듬해 하인준(河仁俊)·김개(金) ·김우성(金宇成) 등과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1618년 가산이 적몰(籍沒)되고 참형되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로 여류시인 난설헌(蘭雪軒)의 동생이며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이다. 작품으로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부부고(惺所覆藁)》 《성수시화(惺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도문대작(屠門大爵)》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
하며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이상하게 여겨 즉시 홍 아무개를 불러 말하기를,
"자식을 알아보는 데는 아비만 한 이가 없다 하니 저 여덟 중에서 그대의 아들을 골라내라."
하니 홍공이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뢰기르,
"저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사마귀가 있사오니,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31 중에서)
 

목차

목차
[홍길동전]
경판 24장본
[홍길동전]
완판 36장본
작품 해설
부록 [홍길동전] 목판 방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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