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무정

이광수 저 | 홍신문화사 | 2006년 01월

베스트셀러

북트리

정가
$17.00
판매가
$9.35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19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897055453X / 413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5,300
  • 15,300
  • 16,200
  • 16,650

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교양서! 춘원 이광수의 대표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장편소설. 개인적인 사랑을 민족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통하여 민족적 이상주의와 계몽적 정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살아있는 논술교육의 첫걸음, 우리 문학 제대로 읽기! 달라진 대입논술?면접시험, 풍부한 독서량만이 해결책이다! ---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상 최초의 장편소설인 동시에 신소설의 공리적 효용주의를 계승하여 문학적으로 완성을 기도함으로써 근대 문학 초기에 개척자적 공적을 인정받은 대표작이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 그리고 사랑의 삼각관계 이 발표된 시기는 1917년이다. 이 시기는 조선의 봉건적 질서와 서구의 현대적 가... 살아있는 논술교육의 첫걸음, 우리 문학 제대로 읽기! 달라진 대입논술?면접시험, 풍부한 독서량만이 해결책이다! ---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상 최초의 장편소설인 동시에 신소설의 공리적 효용주의를 계승하여 문학적으로 완성을 기도함으로써 근대 문학 초기에 개척자적 공적을 인정받은 대표작이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 그리고 사랑의 삼각관계 이 발표된 시기는 1917년이다. 이 시기는 조선의 봉건적 질서와 서구의 현대적 가치관이 공존하던 때이다. 이광수는 구시대적 질서 중에서도 특히 유교적 가치관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광수에게 유교적 세계 구조는 그가 태어난 사회의 중요한 정신적 근간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닌 거의 모든 것들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조선이 자주적인 근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가 유교의 구태의연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광수가 서구적 가치관을 바람직한 근대의 표상으로 적극 수용한 것 역시 유교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기인했다. 은 이광수가 지닌 이러한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은 사랑에서 큰 사랑으로 은 개인적인 사랑을 민족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통하여 민족적 이상주의와 계몽적 정열을 보여준다. 은 자유연애 사상을 고취하는 연애 소설의 구조를 지니면서 이러한 연애의 삶 역시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대승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함을 형식의 세계관을 통하여 역설한다. 형식은 신세대의 전형적 인물이면서도 구시대의 교육과 신교육을 동시에 섭렵한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는 옛 은사의 딸인 영채에 대하여 의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대적인 삶의 구조 속에 있는 선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혹은 우리 민족에게 더욱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기생이 되어 있는 영채를 구하거나 배학감에게 겁탈당한 영채를 찾기 위해서 평양까지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영채가 하루 속히 개화하기를 바라는 형식의 마음 역시 여기에 맞물려 있다. 영채의 삶이 극적으로 반전되는 것은 형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욱에 의해서이다. 자살을 결심한 영채가 병욱의 설득에 의해 동경 유학을 떠나게 되는 것은 영채의 삶 역시 근대화의 과정을 통하여 거듭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차간에서 우연히 만난 영채, 병욱, 형식, 선형은 삼랑진 수해 현장을 찾아가서 자선 음악회를 연다. 여관에 돌아와서 형식이 밝히게 되는 각오는 선형에 대한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민족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형식은 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 유학을 통하여 신학문을 시급히 배워 와야 하며 이는 모두 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지점에서 은 계몽사상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 점에서 형식은 작가 이광수의 세계관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책 속에서

경성 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 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려 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善馨)이가 명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고빙하여 오늘 오후 세 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다.
이형식은 아직 독신이라, 남의 여자와 가까이 교제하여 본 적이 없고 이렇게 순결한 청년이 흔히 그러한 모양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면 자연 수줍은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확확 달며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남자로 생겨나서 이러함이 못생겼다면 못생겼다고도 하려니와, 여자를 보면 아무러한 핑계를 얻어서라도 가까이 가려 하고, 말 한마디라도 하여 보려 하는 잘난 사람들보다는 나으리라. ----- 19p

형식의 앞에는 선형과 영채가 가지런히 떠 나온다. 처음에는 둘이 다 백설 같은 옷을 입고 각각 한 손에 꽃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형식의 손을 잡으려는 듯이 손길을 펴서 형식의 앞에 내어밀었다. 그리고 두 처녀는 각각 방글방글 웃으며, ‘형식 씨! 제 손을 잡아 주셔요, 네.’ 하고 아양을 부리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형식은 이 손을 잡을까 저 손을 잡을까 하여 자기의 두 손을 공중에 내어 들고 주저한다.
이윽고 영채의 모양이 변하여지며 그 백설 같은 옷이 스러지고 피묻고 찢어진, 이름도 모를 비단 치마를 입고, 그 치마 찢어진 데로 피묻은 다리가 보인다. 영채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입술에서는 피가 흐른다. 영채의 손에 들었던 꽃가지는 금시에 간 데가 없고, 손에는 더러운 흙을 쥐었다.
형식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백설같이 차리고 방글방글 웃는 선형은 형식의 앞에서 손을 내밀고, ‘형식 씨! 제 손을 잡으세요, 네.’ 하고 고개를 잠깐 기울인다. 형식이가 정신이 황홀하여 선형의 손을 잡으려 할 때에 곁에 섰던 영채의 얼굴이 귀신같이 무섭게 변하며 빠드득 하고 입술을 깨물어 형식을 향하고 피를 뿌린다. 형식은 흠칫 놀래어 몸을 흔들었다. ----- 160p

목차

목차
작품해설
작품개요
무정
작가의 생애와 작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