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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에 관한 명상 [개정]

시리즈 : 작가정신 소설향 [28]

이순원 저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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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7288216X / 11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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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릉상업고등학교·강원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낮달》이 당선되어 등단. 창작집에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어머니의 이슬털이》  등이 있고, 장편소설에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에덴에 그를 보낸다》 《미혼에게 바친다》 《수색, 그 물빛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독약 같은 사랑》등이 있으며, 1996년 단편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제27회 동인문학상을, 1997년 중편 《은비령》으로 제42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그때 아저씨는 문을 열고 앉아 무얼 내다보려고 했던 것일까. 오래 전 아들 곁으로 떠난 숙모였을까, 아니면 미음을 쒀서 저 밭끝 쪽으로 걸어올 어머니였을까.
장례는 참으로 간단했다. 다음날 면소에서 사람들이 나왔고, 전날 그들이 미리 해둔 분별에 따라 시내에서 장의사와 장의차가 나왔다. 장례도 나라에서 나라의 경비로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러면 국장이고 국상이네, 하고 말해 잠시 쓸쓸하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염을 하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수의를 갈아입힐 때 나는 처음으로 아저씨의 벗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육신이었다. 사지가 멀쩡해도 그런 느낌이 들 텐데 왼쪽으로 둘 다 구부정하게 휘어진 짝짝이의 두 다리와 생기다 만 듯 가늘게 휘어져 옆구리에 붙은 왼팔과 육신 중 유일하게 성했던 오른팔, 허리조차 활처럼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거기에다 숲만 무성했지 그 숲 속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작게 쪼그라든 자지(성기라고 썼다가 아저씨에겐 그게 성기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다시 고쳐 쓴다)까지, 초라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육신이었다. 그래도 그 몸으로 아이를 만드는 일말고는 못하는 것 없이 살아온, 말년의 몇 해를 제외하곤 근면하고도 성실한 삶을 살아온 부끄러움 없는 육신이었다. 오갈 데도 없는 천치와도 같은 두번째의 여자를 매정하게 내친 것말고는 평생 지은 죄 하나 없이 살아온 참으로 착한 육신이었다.
“햐, 이 몸으로 소 두 마리씩 끌고 대관령을 걸어 넘었으니…….”
함께 몸을 바라본 동네 일가의 한 숙항이 말했다.
“세일아. 다음에도 우리 형제로 만나자. 그땐 온전한 사지 육신 받아오고.”
아버지는 아저씨의 온몸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아저씨의 몸 위에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차라리 담담해져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올 때야 온전한 몸 받아왔지요, 왜.”
소 이야기를 하던 일가의 숙항이 다시 말했다.
“그래. 그때는 그 몸 온전하게 간수하고 세일아…….”
아버지는 아기 손을 어루만지듯 아저씨의 왼손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펴보며 쓰다듬었다. 나는 아저씨가 젊은 한때 힘차게 거도를 밀고 잡아당기던 오른팔과 손을 찬찬히 눈으로 더듬었다. 그 손으로 황소의 두 고삐를 한꺼번에 잡았다. 성한 구석 없는 몸이지만 그런 빛나던 시절이 아저씨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오누이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며 귀하게 여기던 사랑도 아저씨에게 있었다.
“잘 찾아봐요. 더 있을 거래요, 아마. 안에 걸려 있는 다른 옷들도 보고.”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이 형님 벌기만 했지 쓰지는 않은 양반이니까.”
무슨 소린가 돌아봤더니 문밖에 선 사람들이 아저씨 옷의 주머니를 하나하나 뒤지며 나누는 얘기들이었다. 지난 설에 우리 형제들이 앞앞이 용돈을 주고 또 며칠 전에 면소에 나가 생활비를 받아왔다는데도 잠시 전에 벗어놓은 옷 속에서만 3만 4,230원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벽에 걸려 있거나 구석에 밀쳐둔 아저씨의 다른 옷들까지 꺼내 그것을 찾아보고 있는 것이었다.
“더 없을 거야. 야가 살아 있을 동안 자네들보다 먼저 거기에 늘 손을 대던 한 집의 젊고 늙은 두 쥐가 있었어.”
아버지로서도 처음 사람들 앞에 그 소리를 한 셈이었다. 그 말에 방 안에서 아저씨의 시신을 바라보던 도근이 아저씨는 험, 험, 하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이제 그 아저씨도 많이 늙어 보였다. 아버지보다 다섯 살이나 위인데도 여전히 크고 작은 화투판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아저씨의 시신은 그날 바로 화장을 했다. 스위치는 큰형이 눌렀다.
“아저씨! 집에 불났어요! 빨리 나와요!”
형은 큰 소리로 고함치듯 그 소리를 세 번 질렀다. 마지막엔 나도 합창을 했다.
“아저씨! 집에 불났어요! 빨리 팔다리 가지고 나와요!”
절구에 뼈를 빻을 때 첫 노자 역시 아저씨 스스로 마련한 것을 썼다. 아버지는 먼저 입었던 옷에서 나온 3만 4,230원을 첫 노자로 절구 앞에 놓았다. 형과 나도 아저씨에게 마지막 용돈을 드렸다. 작은형과 은호 몫의 용돈도 드렸다. 이건 누구 것이고, 이건 또 누구 것이고, 하나하나 분별해서 드렸다.
참 허무했다.
슬퍼서 울지 않고 허무해서 큰형과 나는 마주보고 섰다가도 눈물이 나면 등을 보이고 돌아서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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