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9일 오늘의 책
알랭드보통 | 청미래 | 2009.12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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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공항의 첫 “상주작가”가 된 알랭 드 보통이 바라본 만남과 이별 그리고 상상력과 사색이 교차하는 히드로 공항의 이야기 “일상성의 발명가” 알랭 드 보통의 위트와 통찰력이 엿보이는 또 하나의 놀라운 신작 에세이. 보통은 2009년 공항 소유주의 초대를 받아 일주일간 공항에 머물면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수하물 담당자부터 비행기 조종사 그리고 공항 교회의 책임 목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
“밀실공포증과 정체의 느낌이 닥쳐오는 순간마다 우리가 매달리는 다른 삶에 대한 이 모든 약속들.”
공항버스, 캐리어, 활주로, 비행기, 게이트, 면세점, 라운지의 커피나 맥주, 여권, 거기에 찍히는 새로운 종류의 출입국 도장들. 이런 단어를 보고 어떤 흥분이나 설렘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항을 사랑한다. 공항의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기억한다. 캐리어를 싣는 대형카트, 출발시간과 게이트를 일러주며 수시로 바뀌는 거대한 스크린, 제복을 입은 승무원들의 리듬감 있는 발걸음. 그들이 끄는 캐리어들, 티켓팅을 하기 위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줄, 그 소란스러움과 북적임, 들뜬 공기와 웅성거림마저도. 공항과 ‘공항적’인 것들은 어떤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아련함, 그리움, 향수, 충동, 낭만, 자유, 방랑 같은 것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공항은 그 자체로 어딘가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가 착륙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통과하는 관문이자 한 지점이 된다는 것 외에 물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 공항은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여러 나라의 공항을 다녀본 사람들에게 그것이 매번 그 자체로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고작 공항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어떤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일까. 공항 입구에 도착했을 때면 마치 지상의 새로운 공간을 밟은 것처럼 매번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이 대책 없는 동경을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히드로 공항의 모든 곳을 찬찬히 둘러보고 연구하며, 이곳의 의미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되짚어본다. (그가 이렇게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술과 문학에 새로운 관심을 쏟게 된 히드로 공항 운영사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른바 '공항 상주 작가'였다)그가 말한 바와 같이 어쩌면 최첨단 현대 건축기술공법이 집약된 공항은 외관에서부터 인간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공항은 현대판 신전 같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규율에 의해 통제되고 정렬된다. 거대한 동체가 굉음을 내며 이륙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행해온 수많은 역사적 시도가 그 한 번의 이륙 속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미래의, 혹은 선진의 공간을 떠올릴 때 상상할 수 있을 법한 모든 것이 공항에 있다. 하지만 작가와 함께 공항호텔에서부터 최고급 라운지, 공항 운영사의 CEO 집무실까지 속속들이 탐방하다 결국 멈추게 되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다른 어떤 곳도 아니라, 결국 이 커다란 스크린 앞.
“터미널에는 곧 하늘로 올라갈 비행기의 여행일정을 알리는 스크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이 스크린은 무한하고 직접적인 가능성의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충동적으로 매표구에 다가가 몇 시간 안에 창에 셔터를 내린 하얀 회반죽 집들 위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나라,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우리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나라로 떠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적지의 세부 정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초점이 맞지 않은 노스탤지어와 갈망의 이미지들이 흔들리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텔아비브, 트리폴리,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이애미, 아부다비 경우 무스카트, 알제, 나소 경유 그랜드 케이만… 밀실공포증과 정체의 느낌이 닥쳐오는 순간마다 우리가 매달리는 다른 삶에 대한 이 모든 약속들.”
결국 공항이 공항다운 건, 실현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과 간절히 찾고 있는 ‘다른 삶’에 대한 약속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지치고 찌들고 상처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있다. 때때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절박하게 찾게 되는 곳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삶. 공항은 그것이 멀지 않다고, 저 게이트 앞에서 마법처럼 그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부른다. 공항은 초점이 맞지 않는 향수가 혼재된 곳이자 동경의 공간이다.
세계 여러 곳의 공항을 다녔지만, 입국심사대를 지나쳐 매번 발을 디뎌야 하는 곳은 어차피 땅이었다. 그곳이 정신없이 붐비는 히드로 공항이었건, 호객꾼이 몰려드는 발리의 덴파샤 공항이었건 마찬가지다. 비행기를 많이 탄다고 해서 인생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도, 삶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다들 그 사실을 안다. 휴가는 끝나기 마련이고 갔던 길은 보통 다시 되돌아온다. 하지만 낯설고 먼 지명들, 공항의 긴 이름을 물끄러미 보는 것만으로 여전히 나는 이토록 가슴이 뛴다.
여행하고 글쓰고 사진 찍는 톨이. 여행할 때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하는 '여행 가방 속 책'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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