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7일 오늘의 책
레나타 살레츨 | 후마니타스 | 2014.09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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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왜 더욱 우울하고 불안해졌나?”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 자기계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탁월한 분석 라캉을 경유해 후기 자본주의사회를 진?단하는 슬로베니아학파 정신분석학자 레나타 살레츨의 최신작 정말 자기 계발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기 계발서는 던져 버리고 이 책을 선택하라. … 슈퍼마켓 싹쓸이 쇼핑 같은 삶에 대한 살레츨의 비평은 적확하고 매력적이다. … 네오-마르크스주의적 ...
수명이 다 된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새로 사야 할 때 오래도록 망설여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반전문가가 될 때까지 관련 분야의 정보(인터넷, 서적 등)를 수집했음에도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는 일, 외출 시 복장, 진로, 배우자, 출산, 자녀 교육 등 인생에서 선택을 빼놓고 이뤄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저자는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레나다 살레츨이다. 저자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가능한 수많은 '자유'의 선택지들로 점철된 이 시대의 딜레마와 부작용을 알아본다. 정신분석과 라캉주의적 관점으로 무한 소비사회를 바라보고, 소소하게는 제품에서부터 인생의 주요 갈림길, 심지어 감정과 같은 무의식까지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선택의 독재’를 진단하고 나선다.
선택이란 행위는 정신적 외상을 초래하는데 바로 그 이유는 우리를 지켜봐 주는 '대타자'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늘 맹신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기제들에 자족하려고 애쓸 때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란 오로지 대타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94쪽)
최근 '~하라' 또는 '~ 하는 법'과 같은 제목의 자기계발서들은 예의 선택으로의 결정권을 더욱 실현 가능한 것으로 추켜세운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유명 인사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선택이란 관념 이면에 숨어있는 후회와 상실, 두려움에 관한 부정적 측면을 공공연히 가리고 있다. 소위 '용팔이'에게 당했다는 후기가 올라오면, 내가 그런 호구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사전에 더욱 꼼꼼히 조사한다. 책이나 가공식품을 주문할 때도 상품평, 별점, 판매지수를 보고 고른다. 사 놓고도 상품 평가에 신경을 끄지 못한다. 즉, 타인의 관점과 타자의 욕망은 자신의 선택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
선택과 자유, 평등은 뗄 수 없는 개념이다. 선택은 자본과 능력이 주어지는 한 자신에게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한을 주는 듯하다. 하지만 늘 이상적 선택만을 할 수 없기에 타인은 자신보다 완벽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좌절과 죄책감이 들 수 있다. 그러한 불안은 결국 선택을 무한 유보하거나 다른 이(카운셀러, 코치 등)에게 선택할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선택의 자유가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호소력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길 바란다. (88쪽)
선택지가 많을수록 많은 그림을 꿈꾼다. 혹시라도 나타날지 모를 더 나은 이상을 기대하고, 열린 가능성 속에서 선택을 잘못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면, 패배자가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늘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금지와 소유에 관한 만족을 이어 언급한다. 선택지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에 반해 자기 금지 또한 공공연히 행해지고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 만족도는 0을 향한다고 이야기한다. “극단적 선택과 무한자유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은 상황을 더욱 더 깊은 공포에 빠뜨린다.”
'심연 앞에 선 개인이 불안한 이유는 자신이 심연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심연에 투신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말 인용- 69쪽)
정신분석가들은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면서 늘 욕망과 금지를 관련 지었다. 누군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어서 괴로워할 때 그 해결책은 그것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제한을 '소중히 하도록', 그리고 욕망의 대상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임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134쪽)
사랑과 결혼에 관한 선택은 더욱 어렵고 복잡하다. 즉석 만남, 의례적인 인사, 온라인 만남 등은 똑 부러진 대답을 원치 않는다. 선택에 대한 책임과 결과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매력이 이런 문화의 확산을 불러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빈민층과 중산층의 가족계획, 죽은 이의 정자를 이용한 2세 출산 문제, 게이커플의 대리모 계약, 체외수정의 산아 제한 등 과학기술과 윤리의 경계에 얽힌 수많은 선택지 또한 딜레마가 될 수 있다. 선택은 권리와도 직결된 문제다. 기형아의 태어나지 않을 권리, 고통을 끝맺을 환자의 권리(안락사)는 법과 의료계에서 종종 야기되는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욕망은 그것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면이 있다. 마치 갖가지 의상과 액세사리로 치장한 아바타처럼 상상 속 자신을 이것저것의 선택에 짜 맞춰 넣어 보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내 인생은 내가 꿈꾸는 이상으로 만들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에 겨운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제된 선택은 사회를 결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강제된 선택의 사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합의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3쪽)
랜덤 자판기라는 것이 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말 그대로 랜덤 음료수 자판기다. 사실 이처럼 선택권이 전혀 없는 기계에 한때 사람들은 우연과 궁금증 때문에 이것을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어 짬짜면과 세트메뉴를 만들어 낸 음식문화 또한 늘어난 선택지만큼 함께 커진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채, 인간을 조여 매는 강제와 자유의 억눌림. 그것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게, 아무것도 아닌 듯한 무심한 선택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후기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조장한 강박적 태도는 사실 선택의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무질서를 몹시 두려워하며, 죽어간다는 생각에 소스라치는 아주 조심러운 사람들은, 무한하다고들 하는 선택의 가능성 앞에서 거의 향락을 얻지 못한다. (193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아스피린'님은?
활자중독에 걸린 잡식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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