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7일 오늘의 책
이노우에 야스시 | 문학동네 | 2010.08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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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위대한 역사적 유산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대서사시 “이노우에 야스시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작가이다.” _ 도널드 리치(문화평론가)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역사소설의 거장 이노우에 야스시의 대표작. 20세기 초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전의 비밀에 착안하여, 경전이 둔황석굴에 묻히게 된 과정을 상상을 통해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단순히 허무맹랑한 공상...
한동안 책과 멀어졌었다. 아주 안 읽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 감상을 써둘 만한 책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어찌 됐든 꿋꿋하게 한 권을 읽어나갔을 텐데, 요새는 더 읽을 필요가 없다 생각되는 순간 과감하게 책장을 덮는다. 인생은 짧고 만날 수 있는 책은 유한한데, 흥미 없는 책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평소에 서점에 들르면 첫머리와 띠지를 훑고서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어 둔다. 지난달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아버린 것이다. 내가 읽으려고 꼽아둔 책만 해도 일 년 치 분량이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둔황』을 손에 들게 되었다.
억지로 시작하긴 했으나, 책 두께가 얇아서 부담이 덜했다. 첫머리도 제법 흥미로웠다. 반신욕을 하는 동안 몇 쪽 읽기 시작하다가, 살이 퉁퉁 불을 때까지 욕조에 눌러앉아 버렸다. 뒤에서부터 뭉텅 끊어내어 이야기하자면, ‘어쩌다 경전이 둔황 석굴 안에 묻히게 되었나?’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둔황은 지금도 중국 간쑤성 안에 있는 실제 도시다. 1900년, 이곳의 한 석굴 (막고굴) 안에서 무려 2만 점이나 되는 서적과 회화류가 발견되었다. 특히 한 나라의 것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한 필사본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둔황이야말로 동서양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거도 없는 석굴 안에, 어째서 대량의 경전이 파묻히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이 부분에서 큰 흥미를 느꼈는지, 직접 펜을 들었다.
작가가 실제 둔황을 찾아간 것은 책을 낸 이후라고 한다. 이전까지 단순히 자료를 보고 상상력을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런 것치고 『둔황』에는 위화감이 없다. 얼핏 남가몽 설화 느낌이 나는 초반부와, 작품 전체에 흐르는 도교적 사상이 허무주의를 지향하는 작가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행덕은 관리가 되고자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한 사내다. 학문에 자신감이 넘치지만, 불행히도 시간 관념은 좀 모자랐던 모양이다. 그는 시험을 앞두고 잠에 빠져들어 순번을 놓치고 만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면접 보러 가서 잠에 빠져든 셈이니, 대단한 배짱이라고 해야 할지, 바보라고 해야 할지 의심스럽다. 상심한 채로 귀향하던 행덕은 엉겁결에 여자를 구하게 되는데, 그녀가 목숨값으로 내어준 문자를 보고 ‘서하’ 라는 도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이윽고 ‘서하’ 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하지 않게 전쟁에 휘말려 팔자에도 없는 군생활을 시작하는데 어찌된 게 이 남자, 늘 한결같이 성실하게 행동하며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다. 때때로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려볼 뿐, 뒤를 보며 후회하는 일은 일절 없다. 희로애락의 사건을 경험하며 순리대로 살아나간 결과,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인류의 보고를 보존하는 중대한 위업을 달성한다. 사막의 상인에게 경전을 보물인 것처럼 속이고 묻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언젠가 그 책이 발견되리라고 믿었을까?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그 책들을 구출할 생각이었을까? 이야기의 끝은 그의 자취를 더 이상 쫓지 않는다. 그럼에도, 먼 훗날 그가 소중하게 묻어둔 경전이 발견될 때는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든다. 경전의 값어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질수록 유쾌한 기분이 된다. 조행덕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탓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변하지 않는 것에 매달려 본다. 그것은 꿈일 때도 있고, 애인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으며, 친구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다. 조행덕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몇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이름은 새로운 ‘의미’ 를 지니게 됐다. 나는 뜬금없이 체 게바라의 어록이 떠올랐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당장 해내고 있는 일이 인생과 역사에 어느 정도의 의미 있는 일이 될지 미리 굽어볼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빛난다. 예상할 수 없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에 꿈을 꾼다. 적어도 내게는 석굴에서 발견된 고전보다 무덤덤한 행덕의 일생이 더 빛나 보였다. 때때로 쓰러지고 수없이 방황하지만,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 (근사한) 예비 조행덕이 아닐는지!
오만 가지 분야에 집적대면서, 다양한 지식을 집적(集積)하는 것이 목표인 백수입니다. 느긋하면 어때, 돌아가면 어때, 당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삼팔 광땡이라 믿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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