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인간의 역사를 히브리스(hybris)-네메시스(nemesis)의 연속으로 파악했다. 이 역사관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유한의 운명을 지난 한낱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때가 이르러 힘이 강대해지면 자신의 분수를 잊고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남을 경멸하고 신을 경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히브리스(hybris, 오만)이며, 이윽고 신이 내리는 아테(ate, 迷妄)에 빠져 신이나 인간에 의해 집행되는 네메시스(nemesis 벌, 보복)를 받아 야욕은 좌절되고 자신은 파멸한다.”*
<4천 년의 농부>를 읽으며 이러한 헤로도토스의 역사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연의 힘을 경시하고 인간의 교만함에 빠져 모든 것을 자신의 밑에 두고 파멸로 치닫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저자 역시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낭비적인 오물 생산자다. 인간은 그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그 자신까지도 황폐화시켰다.” (182쪽)

▲ 프랭클린 히람 킹 (Franklin Hiram King, 1848~1911)
이 책은 미국 농업부의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저자가 1909년 중국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면서 이들 나라의 농법을 눈으로 보고 쓴 탐사보고서이다. 미국의 땅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농사짓기 어려운 상태로 나빠지는 이유를 찾기 위해 떠난 탐사여행이었다. 짧은 여행을 통해 저자가 그려낸 한·중·일의 농업엔 과도한 해석과 오해들이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된 농부’들이 인간의 교만을 벗어내고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한 저자의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과 영국인들은 국민 100만 명당 일년에 질소 579만 4300~1200만 파운드, 칼륨 188만 1900~415만 1000파운드, 인 77만 7200~305만 7600파운드를 바다와 강, 또는 호수, 지하수에 내다버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는 이 같은 배설물 처리법을 우리 문명의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착각하고 있다.” (180쪽)
저자는 이런 ‘오래된 농부’의 얼굴 뒤에는 보기 좋은 옷이나 편리한 환경을 초월하는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전쟁의 시대에 태어나 계몽되지 않는 인간의 덧없음을 깨달았단 헤로도토스가 이런 ‘오래된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덧없는 존재로 오만과 미망에 빠져 결국 벌을 받아 파멸하게 되지 않는 ‘새로운 인간의 빛’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을 극복하지 못할지라도, 이러한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곳은 바로 땅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내 물음과 노력에 정직하게 반응해 줄 수 있는 곳이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을 많은 것들이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4대강 사업과 농업에 대한 몰상식적인 행동들이 자행되는 요즈음 “자본주의 문명의 전개는 세계 전역의 토착문화와 그 문화의 토대인 땅에 대한 체계적인 유린과 공격의 역사” ** 라는 김종철 선생의 말은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이런 도전에 맞서 근본인 땅을 지켜내고 살리는 일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좁고 낮은 두둑으로 나누니 작고 불규칙한 한국의 논 - <4천년의 농부>에서
땅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거듭 반복되듯이, ‘땅에서 얻은 것들을 다시 땅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한․중․일의 ‘오래된 농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땅이 힘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중 으뜸은 ‘똥’을 통한 ‘땅 살리기’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뒷간’을 통해 거름을 모으고 만들었다. 뒷간은 볼일을 보고 난 후 볏짚, 톱밥, 쌀겨, 낙엽 등으로 덮으면 냄새도 나지 않고 훌륭한 거름도 만들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똥돼지를 키우는데 사람의 똥은 돼지가 먹고 돼지의 똥은 거름이 되어 작물의 성장을 도왔다. 이런 돼지뒷간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서도 발견되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돼지를 이용한 뒷간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대소변을 한곳에 모으고 여기에 볏짚, 톱밥, 낙엽 등을 섞어 거름을 만들어 땅의 기운을 살림으로써 거름은 농작물의 성장을 도와 풍요로운 수확을 도와준다. 자연스러운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 일제시대 거름지게를 진 농부
내가 먹은 것을 그대로 땅으로 돌려주는 이런 순환구조야 말로, 내 몸에 붙은 오만을 떨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농사란 인간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해내는 것이라는 철학(?)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우주의 질서를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한 의지로 뭉친 것이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사과 꽃 한 송이 피울 수 없어요. 나락을 맺게 하는 것은 벼이고, 사과가 열리게 하는 것은 사과나무입니다."***
* 김진경 외, <서양고대사 강의>, 한울, 2008
** 김종철, <땅의 옹호>, 녹색평론사, 2008
***기무라 아키노리,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김영사, 2010
오늘의 책을 리뷰한 ‘농부사서’님은?
공공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현재는 제주도로 귀농하여 농부사서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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