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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자리에

2019년 11월 6일 오늘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 | 알마 | 2019.04

분류 : 자연과학/공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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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태어났단 말인가?”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첫사랑’에서는 올리버 색스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너무나 사랑하던 수영과 얽힌 추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의 책’ 박물관들 이야기, 학창 시절 푹 빠져 있던 생물학 수업과 그로 인해 생긴 에피소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게 했던 도서관과 책들에 대한 회고, ‘화학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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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

 

읽기 시작한 지가 꽤 오래, 그리고 선물 받은 지는 더 오래된 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각 장이 그리 길지 않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더뎠던 것은 한 장 한 장, 그리고 책 전체를 흐르는 애정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해서였다.

 

책은 단단한 양장으로 되어있다. 그 위를 한지 같은 부슬부슬한 종이로 싸고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정겨운 그림으로 꾸며놓았다. 이야기 속에는 숲이나 솔방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표지이다. First Loves and Last tales.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라고 번역되어있는 구절이 적혀있다. 작가의 뜻인지 출판사의 의견인지 모르겠지만 썩 잘 적어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기를 시작했으나 기다리던 것이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가 곧 이해가 되었다. 작가는 각 장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썼다. 수영, 화학, 도서관, 박물관 등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사랑해 마지않은 여러 가지를 마음과 기억을 담아 썼다. 이 첫사랑 이야기를 읽다가 한 번 읽기를 중단하게 되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떤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애정을 갖고 일평생 관심을 기울일 수가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났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취향은 모호해지고 나의 기호는 희미해졌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과거의 흔적들을 보니 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인생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충실했던 요 몇 년간, 나의 취향과 기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각각의 사랑에 기울인 애정만큼을 나도 다른 것에 쏟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찾기 위해 다시금 추억거리로 묻어두었던 것들에 기웃거리고 있다.

 

첫 편이 첫사랑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편은 의사로서 찾은 환자들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각각의 환자의 증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의사로서 환자의 질병이 아닌 삶에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의사 노릇을 위해서 의학적 판단과 지식은 기본이고, 상당한 수준의 인간적 섬세함과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가끔, 아니 거의 대부분을 환자보다 진단과 치료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환자를 볼 여유가 없어서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환자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 집중하면 질병에 대해 묻는 것을 잊고, 질병에 집중하다 보면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한 명 한 명 환자를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한 번 반성을 하게 되었다.

 

기억과 기능을 잃어가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다. 각자의 상태에 맞게 상황을 적응시키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입을 해야 하는데 보통의 병원에서 가정에서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면 사려 깊게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빼고는 부모님에게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벨기에의 헤일이라는 마을에 구성되어있는 정신병 환자들의 치유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신병 환자들이 마을의 하숙인으로서 일을 돕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마을이 구성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주민 모두가 정신병 환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신병 환자의 재활이 사회적 관계 아래에서 이루어질 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게 정신과 의사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편에서는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한 단상들과 작가의 과학에 대한 관심 분야가 약간 담겨있었다. 작가의 유작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기 전 삶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조금 담았던 것 같은데 서둘러 읽었는지 다른 것에 방해가 있었는지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82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애정 하는 것들에 대해 촘촘하고 농밀한 글을 남길 수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나 같은 범재는 아마 흉내 내지 못하겠지만 부러운 만큼 존경하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작가가 평생 가졌던 것과 같은 나만의 열정을 애정을 되찾아보자.

 

 

오늘의 책을 리뷰한 'hyeon813'님은?
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쓴 블로그, ‘Muninn의 창(窓)’을 운영 중인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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