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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스

2016년 10월 31일 오늘의 책

더 걸스

에마 클라인 | 아르테 | 2016.10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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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그해 여름, 나는 열네 살이었고 수전은 열아홉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전 세계 36개국 판권 판매, 16개국 출간! 《뉴욕 타임스》 12주 연속 베스트셀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스콧 루딘 제작 참여, 영화화 예정 언론의 극찬을 받은 성장소설의 새로운 전범 ▶보석처럼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으로 풀어낸, 찰스 맨슨에게 매혹된 소녀들의 이야기. 작가는 외롭고 황폐한 소녀의 내면세계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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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시대와 다가오는 희망에의 열띤 응시


만산홍엽. 단풍이 곱게 물든 이 가을은 지난 계절들이 그 잎 새와 줄기 위에 지워 준, 짙푸른 축복과 살 시린 고난을 다 떨어내고, 곧 다가올 죽음과 망각을 대비하는 시기입니다. 아직 부활과 소생을 말하기엔 사치스럽고, 나이테가 한 꺼풀 더 입혀진 성숙을 기대하기에도 호들갑스럽습니다. 번거로운 외관, 부담스런 허울을 떨어내고 긴 동면을 대비해야 하는 시간에 유독 화사하게 빛을 발하는 단풍이라는 호사는, 나무에 스며든 소박하고 정직한 영혼에게 그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오죠. 빛은 본래 정지 상태에서 질량을 갖지 않습니다만, 나무 속에 스며든 영혼은 이 가벼운 빛(light)에 대해서마저 무거운 혜택이라며 그 ‘빚(debt)’의 책임을 절감합니다.

반면 사람들, 본디 그 탄생과 성장의 과정에서마저 부모님과 사회에 무거운 빚을 지고 언젠가 닥쳐올 상환 기일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 사람들이란 존재는, 채 도래하지도 않은 그 채무 이행의 악몽에 지레 몸서리를 치며, “자유롭게 태어난 영혼에 왜 의무를 부과하느냐!”며,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젊은 세대는 그렇게 반응해 왔으며, 반대로 나이 든 세대 역시 반항이 채무 부인으로 옮아가기 전부터 지레 화를 내고 억압을 시도합니다. 역사상 어느 사회에서나 반복되어 온 세대 간 갈등이란, 이처럼 부채의 각인과 망각 사이에서 벌어지는 혈투의 비화가 그 본질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히피족이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으며 ‘숲 속의 삶’을 지향한 건 이런 의미에서 역설적입니다. 나무와 수풀은 제 몫으로 주어진 사치와 자유도 거부한 채 조용한 은둔지에서 숙명을 묵묵히 수용하며 서서히 소멸해 가는 삶을 택한 반면, 1960년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모든 제약과 규율을 비난, 저주하며 퇴폐, 고립을 부르짖은 이들은, 자연 속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을 ‘자연’이란 이름으로 옹호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를 회고하는 이들이 아무리 당시 젊은 청춘들이 목숨 걸고(시위대에 대한 공권력의 대처가 대단히 가혹했으므로) 옹호한 명분이 소중했음을 비호하더라도, 이들 히피족의 (원칙적)주장과 (이후 사회 진보에의)기여에 대해선 그 평가하는 몫이 매우 인색합니다.

미국이란 초거대강국,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체제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시절 태동한 이런 반사회적 흐름은, 아마도 문명사회가 외국과의 전쟁 상황이 아닌, 그 내부를 규율하며 목격한 범죄 중 가장 잔혹한 사건일 찰스 맨슨 케이스까지 발생하게 합니다. 찰스 맨슨 사건은 물론 비정상적 개인의 비뚤어진 일탈적 카리스마가 빚은 비극이긴 하지만, 이런 괴물 같은 범죄자를 탄생하게 한 데에 미국이란 체제의 모순이 일정 책임을 비껴갈 수 없고, 또한 히피 문화의 가장 독소적 요소가 어떻게 이런 최악성 종양을 응축시키기까지 했는지에 대해, 정반대 방향으로부터의 성찰이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희대의 범죄자가 미국 사회, 특히 대중문화에까지 끼친 영향도 지대한데, 오죽하면 한참 후 마릴린 맨슨이란 ‘아티스트’까지 나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겠습니까.

어쩌면, 본격적으로 대중 중심 사회가 전개된 1960년대야말로, 덩치는 크고 지갑에 돈은 많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숙할 뿐이었던 미국이라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성장통을 겪고 정체성을 찾아나가던 시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작가 엠마 클라인은, 이 장편으로 문단에 갓 데뷔한 순도 100%의 초짜 작가인데, 이 장편 하나로 미디어와 평단, 그리고 독서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내느라 지금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합니다. 미국 대중문화가 오늘의 성황을 이루기까지 가장 큰 빚을 진 1960년대라는 시간을 돌아보는 게, 문학은 물론 음악, 영화 부문에서도 얼마 전부터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엠마 클라인은 정직한 창작 동기로 자연스럽게 허구의 긴 사연을 뽑아내었을 뿐이겠지만, 미국의 문단은 그전부터 여성의 섬세한 시선으로, 갈팡질팡하는 사춘기 소녀의 보행을 걸어내던 1960년대라는 특별한 과거를 짚어 내며 묘사하고 ‘재현’할 필요가 있었는데, 마침 이 멋진, 슬픈, 섬뜩한, 그러면서도 속 깊은 소설이 천렵 뜰채에 딱 걸려 든 거죠.

대체 왜 소녀들이 한창 아름다운 것만 눈에 담고 마음에 품어야 할 그 시기 그 길에 그런 악독한 광인이 버티고 있었던 걸까. 이 광인은 또한 어떤 까닭으로, 무슨 권능으로 그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왜 하필 그렇게 많은 소녀들이 그 마수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 점은 지금까지도 여러 범죄 심리학자들, 혹은 시사 분석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이 골머리를 앓는 난제 중 하나입니다. 신인 작가 엠마 클라인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로 기록될 이 사건 피해자 소녀들의 자취를 되짚으며, 이 소녀들이 빠져든 함정은 그저 개인의 마력이나 음모, 혹은 우연한 불운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미국이란 사회, 혹은 짧은 역사가 품은 구조적 모순이 필연적으로 얼개를 짠, 거시 규모(따라서 맨눈에 잘 보이는)의 비극이 작은 프랙털, 혹은 미니어처를 잉태하여 특정 개인(들)의 삶에 투하된 오발탄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사실상) 규정합니다. 오십 줄에 접어들어 비행청소년들의 내일 없는 삶을 근거리에서 구경하며, 저들과 하나 다를 것 없었던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는 여성 이비는, 이런 의미에서 ‘미합중국’이라는 과거의 미숙한 틴에이저, 그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한 여인을, 의인화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어깨를 짓누르는 굴레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물주가 수고의 대가로 그 피조물에게 개체의 사멸까지 분할 상환할 것을 명한, 정당한 명령의 발급인가. 그렇지 않고 그저 동료 인간 중 사악한 자가 나머지를 노예로 부리기 위해 조작한 부재의 장막인가. 1960년대에 미국을 흔들었던 숱한 반항과 동요의 물결은 어쩌면 이런 근원적 질문에 대해 맹렬히 후자라며 입을 모은, 자본주의에 존재가 순치되길 거부한 대중의 무작위적, 무조건반사적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자신들의 창창한 앞날이 결국 어떤 괴물 같은 기제에 의해 잠식당하고 말리라며 신경증적 확신에 도달했던 소녀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그래서 더 무서운) 괴물 대신, 눈에 보이며 최소한 형체라도 정직히 드러내는 러셀(물론 버트란드 러셀이 아닙니다!)을 따랐는지도 모릅니다. 출애굽의 군중이 현세의 간난과 수고를 명하는 모세를 거부하고 황금 송아지를 좇은 것도, 어찌 보면 세상에 무작정 던져진 이런 모순투성이의 인생에 대한 총체적 반항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느닷없이 무섭고 서러워질 때가 있다면,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철저한 규율로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는 이들조차, 결국 저런 철없는 반항을 택한 인생들과 결국 그 귀결이 다르지 않으리라는 각성이 문득 의식을 찾아올 때죠. 낙엽이 지는 이 가을은 그런 허무감이 패배주의로 도지지 않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빚이란, 마치 빛처럼, 필멸하는 존재의 숙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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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벗 인터뷰


1. 미국 사회가 1960년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던 것처럼, 우리가 다가오는 희망을 응시하기 위해 다시 돌이켜 봐야 할 ‘지는’ 시대는 언제라고 보시나요? 특정한 한 시대를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보통 ‘극복해야 할 시대’ 혹은 ‘그 적폐를 청산해야 할 시대’라고 하고 싶을 때에는, ‘지는 시대’라는 말을 쓰기보다, ‘패배(실패)한 시대’ 같은, 더 분명한 부정적 의미를 담아서 표현하곤 하죠. 제가 뜻한 ‘지는 시대’는 그와는 달리, 아련히 저물어가는 시대, 지금의 우리를 고맙게도 낳아 주었으나 더 발전으로(변증법적으로), 보람되게, 다른 단계로 승화되어야 할 시대, 대략 이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자식을 낳고 키워 어엿한 사람 구실을 하게 돕고 그 수명을 다해 가는, 현존재를 직접 잉태한 고마운 부모님 같은 시대, 뭐 좀 더 부연설명을 하면 그렇습니다.

대중 문화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 온갖 실험적이고 기이한 몸부림이 넘쳐 났던 게 미국의 1960년대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완숙한 형태, 상업적으로 미국 경제에 큰 활력을 부여했던 대중문화 포맷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거나 참여하는 장(場)처럼, 기성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발칙한 풍자나 비틀기를 시도하는, 혹은 실제로 반항의 열매를 거두는 스타일이 문화 전면에 걸쳐 대두한 적은 그 이전에는 없었다고 봐도 되죠. 또 하나 그 시대의 소중한 결실은, 그런 문화가 실제로 시민과 민중의 삶 속에 침투하여, 체제의 모순과 비위를 극복하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람된 생을 서서히 마감하고 저물어 가는 시대'란 뜻의 우리 식 '지는 시대'라면, 저는 1980년대를 꼽고 싶습니다. 물론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하던 시절이라, 미국의 저 시대처럼 문화 섹터에서 선명한 반항의 기운이 싹트지는 않았습니다(암암리에 그런 기색을 풍기던 건 없지 않았죠). 하지만 처음으로 두터이 형성된 중산층이 현대식 아파트에 거주하며 한국적인 생활 문화 그 기초를 일구었고, 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그 이전 세대와는 달리 보다 풍요로운(때로는 해롭거나 꺼림칙한) 대중문화, 소비문화를 잡지나 TV, 비디오물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섭취한 게 이 시절부터입니다. 어떤 케이블 채널에서 제작한 <응답하라~> 시리즈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게 1988편이었던 사실도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합니다.

대학가나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제는 독재를 떨쳐 내고,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외침이 들불처럼 번졌던 것도 역시 1980년대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보통 “1987년 (9차 개헌) 헌법”이라 불리며,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현 정치 시스템은 ‘87년 체제’라고 통칭됩니다. 1980년대는 현 사회를 중추적으로 이끌어가는 세대가 귀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자양분을 공급해 준 시대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아슬아슬 자생적으로 싹을 피워 오늘의 자유와 풍요의 텃밭이 일궈진 기간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는 이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그 모습을 직접 낳아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동시에 구태, 혹은 병폐 같은 것이 그 고유의 모습으로 여태까지 남은 점도 적지 않습니다. 1980년대는 현재가 큰 빚을 졌고, 동시에 발전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리고 애상적으로 바라보는, ‘지는 시대’입니다.

2. 리뷰 마지막 ‘인생이 느닷 무섭고 서러워질 때가 있다면~’이란 생각에 도달할 때까지 컬러리니드 님이 겪었을 시간들이 궁금합니다. 컬러리니드 님도 인생이 느닷없이 무섭고 서러워질 때를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물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걱정 없이 뛰놀면서도 석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귀가할 때 문득 엄습해 오는 걱정이, “내가 커서 어엿한 성인으로 제 구실을 하며 살 수 있을까”였죠. 기억이 안 날 뿐 누구라도 그런 체험은 한 번쯤 했을 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생활이란 끊임없는 도전과 위험의 연속이죠. 의도했던 일이 잘 안 풀리고, 기대를 품었던 계약이 성사 직전에서 좌절되면, 저런 막막하고 절망적인 느낌이 당연 온몸을 엄습해 옵니다.

그런데 존재의 위기를 느낄 만큼 무섭고 서러워질 때라면,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게 딱 두 번입니다. 한 번은 고교 2학년 때였는데, 시험 성적이 엄청 낮게 나온 걸 보고서였죠. 이래 갖고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 장래가 막막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근원적 공포가 밀려 왔습니다. 다른 한 번은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이 충격은 사실 지금도 (최소한 잠재의식 수준에선) 극복이 안 된 셈인데, 생전의 추억이 자주 꿈속에서 재현되거든요. 갓 꿈을 깨면 아직 아버지가 생존해 계셔서, 내가 요걸 좀 해 드려야겠다고 비몽사몽 간에 마음을 먹다가, 아 이 전 상황이 꿈이었나? 하고 슬픈 자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도 탤런트 박근형 씨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부모입니다.”라는 멘트를 TV 속 광고에서 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그렇게 시려 올 수가 없네요.

3. 컬러리니드 님에게 펜벗 4기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지난 4개월의 시간은, 마치 과거 시험에서 논제를 받아들고, 흰 백지를 어떻게 채울까 작은 고민에 살짝 마음이 노크되는, 즐거운 의무감이 한 달씩을 채우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느낌이 아닐 것도 같은데요. 미션을 완수하고 URL을 댓글로 단 뒤, 그 다음날(보통은 월요일이죠) 주제어가 발표되면, 가벼운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오지들 않으셨는지…. 저는 마치 대학생 때 중간/기말 고사 문제지가 배부되거나, 혹은 조교 형이 칠판에 문제를 쓰고 장내에 가득한 “아….” 소리가 환청으로 재생되는 것 같았습니다(비록 펜벗 님들이 계신 공간, 심지어 시간도 제각각이었겠지만).

미션을 완수 못 해도 직장에서의 과업이 아니라서, 어떤 제재나 불이익이 올 일이야 당연 없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어엿한 감상으로 A1 한 장 분량을 못 채운다면, 같이 활동하시는 펜벗 님들께 많이 부끄러울 것도 같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찜찜함, 자괴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번 4기 중에는, 논제가 참신하고 그 참신한 만큼 어려웠습니다. 다른 펜벗 님들은 어떠셨는지 모르나 제게는 어려웠고, 그래서 한 달 내내 이 의무감이 마음 속의 작은 공간, 작은 공간의 구석이라도 꽉 잡고선 밖으로 안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숙제 다 해 가? 아직도 감 못 잡았어?”

저는 4기 활동을 하면서 '땡큐 박스'를 처음 받았습니다. 이 '땡큐 박스'는 아직도 미개봉인 채 제 책상 상단에 깨끗이, 먼지 한 점 안타고 보란 듯이 놓여 있습니다. 펜벗 마지막 달에 개봉하고 사진도 찍고 제 나름 감상과 함께 포스팅할 생각으로 아직 수령 당시 상태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이번 4기는 이 땡큐 박스와 함께, 그리고 적잖게 어려웠던 주제어와 함께, 좀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유독 이번 4기는 제 개인적으로 다른 펜벗님들과 소통을 못했다는 점입니다. 큐레이션 페이지만 열심히 볼 게 아니라, 직접 다른 벗님들의 블로그에 찾아가서, 말 걸기가 겸연쩍으면 추천이라도 누르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계절이 깊어가는 시점이라, 펜벗 활동이 끝나간다는 말씀 들으니 더 스산해지네요. “난 뭘 했나~”

오늘의 책을 리뷰한 '컬러리니드'님은?
저는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유관 법률 사무도 관장합니다.

컬러리니드 님의 테마북 [질 줄 알아야 지지 않는다 ]


| 펜벗 큐레이션 Vol.17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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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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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월급을 만드는 저수지 투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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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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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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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트렌드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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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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