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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형 인간의 농담

2021년 3월 30일 오늘의 책

내향형 인간의 농담

염문경 | 북하우스 | 2021.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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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례하게 느껴질수록 우리에겐 좋은 농담이 필요하다” 꽉 막힌 세상에서 찾은 웃음의 쓸모, 그리고 그 웃음에 필요한 거리두기의 기술 농담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가치나 상징을 모방하거나 희화화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웃더라도 쓴웃음을 삼키는 한 명은 분명 어딘가 존재한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농담’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관습과 엄숙주의를 비틀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취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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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쉽게 온점 찍지 못하는 내향형 인간들에게

누군가는 책의 제목을 보고서 묻겠지요. 아니, 내향형 인간이 농담이라니요?

 

저자는 모든 ‘내향형 인간’들을 대변이라도 하듯 말합니다. 우리 내향형 인간들, 생각도 말고 골도 아프지만, 끝없이 인생의 대단한 의미를 추구하다가 멍청할 만큼 생각 없는 이 현실 세계에 좌절하지만, 그래도 우리도 농담을 사랑한다고! 별 의미 없는 인생이다가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의미가 생겨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이십 대에 내 세계는 괴롭고 부조리한 일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연극을 했는데, 거기에도 답은커녕 엉망인 것들만 보여서 더 화가 났다. 화내는 일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괴로워서, 더는 화를 내지 않고 부당하고 슬픈 것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 시작했다. (…) (코미디를 썼던) 문득 요 몇 년간 이루어낸 일들이 진정한 나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가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무의식적인 자조를 품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유효하며, 바로 그러기 때문에 즐거운 이야기를 쓸 수 있노라고.

 

『내향형 인간의 농담』은 정말 제목에 충실한 에세이입니다. 어떨 땐 어이없을 만큼 엉뚱한 이야기를 던지다가도, 어떨 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말에 걸맞게 단어 하나에도 고뇌하며 땅을 파 내려가는 저자의, 이런저런 생에 대한 단상이랄까요?

 

에세이이긴 하지만 정확한 한 결만으로 이 책을 소개하기도 어렵습니다. 2, 30대 온갖 차별과 폭력을 헤치며 생존해낸 것만으로도 대견해야 하는 대한민국 직업여성들의 이야기이다가도, 펭수를 비롯한 각본 작업과 배우라는 꿈을 좇는 한 예술 종사자의 서글픈 일기이다가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답 없는 인생의 슬프지만은 않은 좌충우돌 일지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던지다가, 한순간 실없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 저자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염문경”이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그러면서 은근슬쩍 위로도 받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층적 존재이듯, 『내향형 인간』 역시 저자가 가진 겹겹의 면모들을 보임으로써, 그냥 ‘이 저자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내향형 인간’스러운 책이 있을까요!

 

역시나 ‘내향형 인간’인 저도 제 얘기를 슬쩍 꺼내 보자면, 먼저 질문부터 해야겠습니다. 혹시 당신의 인생을 바꾼 한 마디를 고르라면, 고르실 수 있나요? 최소한 저는 있습니다. 때는 아득한 중학교 시절, 제 옆에는 정말 멋있고 진취적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커서 왕이 되겠다”라고 말해도 전혀 허황되어 보이지 않는 그런 친구 한 명씩은 보기 마련인데, 그 친구가 꼭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 그 친구처럼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어느 정도 받아들여 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선생님이 어느 날 복도에 함께 서 있는 저희 둘에게 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옆의 친구를 가리키며 “넌 외적으로 에너지가 많고” 그리곤 절 보며, “넌 내적으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인 거야”

 

아. 그런 거구나.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내 자아의 용암과 대면했습니다.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에너지가 내 삶을 끌어가겠구나, 이 안으로 파고드는 에너지가 나를 더 깊고 끈질긴 사람으로 만들겠구나.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구나. 그 방향이 다를 수 있구나.

 

그래서인지 내향형 인간의 농담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그 선생님의 말이 다시 떠오르며 책을 살 수밖에 없더군요. 읽으며 ‘와 정말 나랑 비슷한 점이 많다’라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동족을 만난 느낌이랄까요? 다만 저의 MBTI는 INFP가 아니라 INFJ이지만요….

 

“내향형”이라는 건 “내성적”이라는 말과 다릅니다. “내향형” 인간들은 위축되어 지내는 게 아니라, 자아의 눈을 바깥보다는 내 내면에 더 많이 두고 있는, 그냥 방향이 다른 인간일 뿐이지요. 진취성과 리더십만 강조하는 사회에서 어릴 땐 저의 이 성향이 싫었지만, 성장하며 이 나를 향한 눈 덕에 저만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내향형의 힘을 받아들인 이후로 제 에너지가 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살았습니다. 꿈도 도전도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네가 그걸 한다고? 대체 왜?”, “네가 그걸 이제야 한다고?” 같은 말들을 번갈아 들으며 살다가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부업으로 쓰다가 예상외의 성공에 오히려 괴로워하고, 여러 어려움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연기를 하고자 하고, 예술론에 대해 때로 뾰족한 태도로 다가가다가도 또다시 이해해 보려 하고… 죽자고 의미를 좇고, 못된 놈도 잘되는 세계에 회의하며 괜히 악바리를 써보기도 하고, 아예 다 회의하며 물러나 보기도 하며. 이 ‘의미 찾기’는 내향형 인간들의 고질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너무 열심히 살고 있을 내향형 인간들에게, 저자는 다 이해한다는 듯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삶이란 보통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고, 흘러가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들이 쌓여 어느 날 의미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든, 너에게든.


 

“에이 저건 다 틀렸어”하고 뒤돌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면? 언젠가 내가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면?”이라며 오늘도 인생에 대해, 나에 대해, 가치에 대해 온점을 찍지 못하고 망설이는 내향형 인간들. 삶에 너무 지쳐버렸다면, 오늘은 정답이 아니라 “농담”이 필요한 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내향형 인간의 농담』, 슬쩍 권하며, 저는 이만 물러나 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펜벗 12기 어떤'님은?
“어떤”의 빈 자리에 애정하는 것들을 둡니다. 책을 읽고, 때로 쓰며, 그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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