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흔히, “안녕하세요. 저는…”이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나이나 직업, 취향 등 나에 대한 간략한 그림을 그려 타인에게 제시하면서, 그것을 참고하여 ‘나’라는 사람의 정체를 추측해보도록 하는 셈이다. 상대방은 나의 자화상을 그대로 받지 않는다. 그들은 곧 새로운 붓질을 더해 나에 대한 다른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나를 그린 것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은 독자들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아들을 잃고, 남편과 이혼한 샹탈과 연하의 장마르크는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서로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몇 년 후 장마르크는 여행지에서 낯선 여자를 샹탈로 오인한 자신으로 인해 충격을 받는다. 샹탈도 다른 남자들이 ‘더 이상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며 우울해 한다. 그는 샹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스스로 시라노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익명의 연애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샹탈은 이제 버스나 카페에서 만나는 낯선 남자들, 길거리의 부랑아를 시라노로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샹탈에게 은밀하고 짜릿한 상상이었지만, 낯선 사람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불안함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이 안다고 여겼던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게 되었다. 장마르크는 빨간색이 어울린다는 “다른 사람 말에 복종하는”(108쪽) 샹탈에게 “본질이 빠져나가"(116쪽) 변형이 되어버린 낯섦을 느낀다. 샹탈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시라노가 되어버린 장마르크는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104쪽)" "거짓됨과 뻔뻔스러움, 배반(131쪽)"의 상징일 뿐이다. 이제 그들은 서로에게 행동과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어.” (99쪽)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먼저 자신이 가지는 것일 테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경험, 나의 외모나 인간관계, 감정이나 이성, 기억 등의 총합이 그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가진 ‘나의 정체성’은 정확한 것인가. “과거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17쪽)같은 친구가 없다면 예전 일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족이나 애인에 대해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순종과 위선, 무관심”(129쪽)을 넘나들기 일쑤인데 말이다. 이런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과 모호함 때문에 우리는 종종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나’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질투심이 사랑하는 사람의 환영을 변형”(116쪽)시켜 버리기도 하고, 육체적 외모 또한 혼동되기 십상이다. 때로 내가 보이는 모순적 행동 때문에, “수많은 가면을 뒤집어쓴”(133쪽) 나를 타인이 제대로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샹탈이 그녀의 시누이가 알던 순종적인 모습과 장마르크가 아는 “사랑받는 존재”(43쪽)의 모습, “동료나 상사, 부하 직원에게 보여주는”(43쪽) 모습이 모두 달랐던 것처럼, 나와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또는 어떤 성품을 가진 타인이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눈에 비친 나의 정체성은 계속 달라 보일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 밀란 쿤데라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는 듯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내가 진정한 ‘나’인가. 내가 알던 그는 정말 ‘그’인가. 당신은 가변적이고, 모호해서 과연 무엇이라고 소개할 수는 있는지 의심스러운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기는가.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샹탈에게서 찾고 싶다. “알몸인 그녀를 계속 벗기려는 그들, 그녀의 자아로부터 그녀를 벗겨 다른 이름을 주려는 그들”(177쪽) 에게 맞서 꿈에서도 몸부림치며 저항하던 그녀에게서 말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 묻는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자신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나의 자아로부터 나를 벗겨버리고 다른 이름을 부여하려는 타자에게 맞서 모호하기 짝이 없는 정체성이라도 가져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가. 나와 당신의 정체성은 안녕한가.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만나 책과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쓰는 독서활동가다. 대학원에서 독서학을 전공하였고, 지금은 연구하며 강의하는 삶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