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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2015년 6월 29일 오늘의 책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오현종 | 문학동네 | 2015.04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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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야기에 들린 작가, 오현종 그 섬세한 손끝이 그려낸 고색 모던한 복수 활극!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장르 간의 경계를 해체해온 소설가 오현종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이 출간되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낱낱이 흡수하여 문학의 장(場)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녀가 이번에 눈을 돌린 장르는 화살과 표창이 날고, 검광이 번득이는 무협 서사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자객열전」 속 인물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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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해야 섹시한 남자


어린 시절에 꾸었던 원대한 무술인의 꿈을 뒤로하고 2015년, 나는 오현종이라는 작가를 만난다. 작가의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을 읽으며 어린 시절 내가 꾸었던 꿈들, 그리고 상상 속에 갈고닦던 무술, 아니 사연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 소설은 복수를 꿈꾸는 자의 이야기이다. 복수를 꿈꾸는 자는 방법을 찾기 위해 미궁을 헤맨다. 그로 하여금 미궁에서 길을 찾도록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다. 문장들과 사연들을 나침반 삼아 소설 속을 나아가는 그는, 역시 복수를 꿈꾸는 어느 남매와 함께 미궁과도 같은 이야기를 굽이굽이를 헤맨다. 막다른 길목에서는 기꺼이 길을 잃기도 한다. 이야기의 길을 잃으면서 오히려 복수하는 방법의 가짓수를 늘릴 수도 있었다. 미궁 속 막다른 길목마다 마주치는 열 가지, 백 가지의 사연들이 잔가지를 뻗을 때마다 사연들은 천 가지, 만 가지로 몸을 불린다. 몸을 불리는 수만 가지 사연 속에는 정체를 감추기 위해 제 얼굴을 도려내어 잘근잘근 씹어 삼킨 남자가 있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써나가는 혀가 잘린 여자, 진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 산채로 쥐떼의 밥이 되는 여자와 쥐 대신 귀신에게 잘근잘근 씹히는 남자, 그의 불면의 밤들. 제 아이가 아닌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이는 남자, 제 아비의 첩과 팥죽을 나눠 먹는 남자와 제가 낳은 아기의 새끼손가락을 똑똑 부러뜨린 여자... 인물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런 여자와 남자들의 목소리가 자욱한 골방 안에서 남자는 내리 삼 년 복수를 꿈꾸었었다. 그는 소설의 끝에서야 비로소 복수의 대상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자객의 방식이 아닌 '제 손금이 낸 길을 따라 복수를 행해야' 겠다고 말이다. 그가 가진 손금의 방식이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은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이자,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명분이 될 이야기였다.
 
(...) 정에게 꼭 해줄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앉은뱅이가 책 속에서 찾은 글자가 아니었다. 재상의 아홉 번째 첩이 쓴 이야기책의 한 구절도 아니었다. 그 말은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누군가에게 살아갈 명분이 될 어떤 이야기였다. 나는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를 깊숙이 품고 나서야 비로소 내 뼈와 같이 자라난 고독, 환관 같은 고독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170쪽)
 
소설은 아직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끝에 닿지 않았고 아직 길 위에 있다. 다만 이야기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야기를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뭔지, 그 힘이 삶에 어떠한 동력이 되는지를 그려냈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덮어도 결코 책 읽기를 마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다시 말하지만, 아직 길 위의 이야기이므로, 아직 쓰이는 중이므로, 우리에게 이야기라는 놈의 이정표를 보여주기 위해 쓰인 소설이므로. 아마 진정한 끝은 작가 오현종의 다른 작품을 통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작가는 독자의 머릿속에서 완결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우리 삶이 유의미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책 속에서 맞닥뜨릴 얼굴이 실은 무척 낯익은 얼굴 혹은 바로 자신의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이야기를 결론지을 자는 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책이 서 있는 도정에 작가와 인물, 그리고 독자인 우리도 함께 서 있다.
 
내가 오현종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는 어린 시절 무술인을 꿈꾸었던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욕망에 비로소 눈을 떴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욕망이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유와 원인을 획득해서 살아 움직일 수 있게, 거듭 살게 하는 그런 마음이다.
 
쟁쟁-
챙챙챙-
책책책책 책책- (26쪽)
 
복수를 꿈꾸는 남자. 하지만 복수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는 꿈속에서나마 장마철 낙수 소리보다 빠르게 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 칼의 소리는 쟁쟁하다 챙챙하다 책책책책 한다. 이 책의 첫 번째 목소리인, 책 속에서 복수의 문장을 찾던 사내가 '이야기'를 칼날로 삼게 되는 것도 칼날의 소리가 책책책책... 바로 '책'을 닮아서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 라고 저를 꾸짖으실 분들, 이 책은 복수를 그린 책이지만 마냥 비장하거나 하지 않아요. 웃깁니다. 양미간에 삼자를 새기며 읽다가도 눈물보다는 웃다가 튄 침들로 책을 적시게 될 것입니다. 피와 웃음이 가득한 소설, 이 소설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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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넘어졌다. 넘어진 그곳에 문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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