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9일 오늘의 책
정명섭 | 시공사 | 2017.03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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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추리의 새로운 반향 《적패》 《명탐정의 탄생》 정명섭의 경성 정탐소설 정명섭 작가를 하나의 단어로 수식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 추리소설 《적패》, 좀비를 소재로 한 논픽션 《좀비 제너레이션》, 역사 인문서 《조선의 명탐정들》, 장편 창작동화 《사라진 조우관》 등 그 누구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으며, 집필 외에도 소위 좀비 장르물의 전문가로 혹은 강사, 답사가로 출판계는 물론 방송, 학회를 종횡무진 ...
『종말 일기Z』였던가, 어느 좀비 소설에서 이르길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우선적으로 좀비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일 것으로 짐작한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좀비가 되거나 좀비에게 먹히거나. 하지만 사실 좀비에게 쫓겨 다닌다고 해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에도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일상적인 일들은 그대로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일제 강점기라고 해서 악랄한 일본인과 수탈당하는 우리나라 사람만 존재했던 건 아닐 거에요. 하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암울한 생각부터 들죠. 모던보이나 모던걸 같은 멋쟁이들도 있고, 아지노모도처럼 감칠맛 나는 조미료도 등장했는데. 그뿐인가요. <별건곤> 같은 타블로이드 잡지에서 ‘잠입 르-뽀’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을 테지요. 그 암울한 시대 역시 또 그 시대만의 낭만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그 시대의 미스터리 독서광은 코난 도일의 <셜록홈스> 시리즈를 읽었고,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코고로>를 읽으며 통쾌해 하기도하고, 때로는 카피캣도 되어봤겠죠. 어리석긴. 탐정에게 반드시 들통 난다는 건 빼놓고 읽은 건가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모리아티나 괴도 루팡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봅니다.
정명섭의 『별세계 사건부』를 보아도 정탐 소설을 제법 읽은 류경호라는 훌륭한 탐정이 등장하잖아요. 그는 실존 인물들 사이에서 움직이면서도 실제감을 잃지 않아 ‘혹시 이 사람도 정말 실존했던 사람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답니다. 그는 무려 게이오 대학 출신의 기자입니다. 당시 많은 엘리트들이 옐로 저널리즘 쪽으로 빠진 걸 보면 이 남자의 행보도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첩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좀 더 좋은 자리를 꿰찼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테지요.
아무튼 ‘별세계’라는 잡지사의 기자인 그에게 조선총독부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토막 시체에 대해 조사하라는 의뢰가 들어옵니다. 개관을 얼마 남기지 않았기에 쉬쉬하며 일처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당황스러웠겠지요. 공사 현장에서 인부가 사고로 다치거나 죽더라도 문제가 될 텐데, 양복을 입을 일이 제법 있는 건축과의 직원이 살해되어 토막 났으니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본디 살인을 한 후 몸을 조각내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시신을 손괴하는 끔찍한 행동이기에, 대개 힘도 세고 흉악한 남성이 저지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여성에 의해 많이 범해집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근력이 약하므로 유기하기 쉬운 형태로 조각내어 운반하는 것인데요. 토막 살인을 다룬 소설들을 읽어보면 정말 다양한 이유로 신체를 분해합니다. 그렇다면 총독부의 토막 시신은 어떤 연유로 잘렸을까요.
시신은 기묘하게도 조선 총독부의 여섯 군데에 분리되어 버려졌는데요, 버려진 장소를 점찍어 연결해보면 얼추 큰 대(大)자가 보입니다. 저는 동그란 헬멧을 쓰지 않은 졸라맨 형태라고 상상했는데 – 중간의 묘사를 보면 큰 대자에서 약간 벗어난 걸 상상 할 수 있습니다. – 총독부 건물을 해 일(日)자로 짓고 경성부청사를 뿌리 본(本)자로 지으니 시신의 위치도 큰 대자로 보이는 게 아닐까요? 어쨌거나 큰 대자로 뿌려진 시신의 토막을 보아하니 조선총독부 건축을 반대하는 집단, 이를테면 독립운동 단체나 의열단이 저지른 일로 의견이 기울어지는데요. 설마, 연속 살인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곤란합니다. 다음의 나라 한(韓)자로 쪼개려면 보통 복잡한 작업이 아닐 테니까요. 류경호는 피해자의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 적극적인 잠입과 취재, 그리고 추리를 하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정명섭 작가의 『별세계 사건부』는 스토리 라인도 좋지만 꼼꼼한 고증이 믿음직했습니다. 특히 역사 수업시간에 졸았던 저로서는 작가가 그려놓은 배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요. 평소에 자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님의 글이니 의심하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고 부족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있어 금세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토막 시체가 등장하지만 어째서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지. 희한하지만 즐거운 소설이었습니다.
| 펜벗 인터뷰
1. 포니의책 님의 서평은 늘 조곤조곤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요. 서평을 읽고 있으면 귀가 간질간질합니다. 이런 문체 또는 어조를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평소에 말씀하실 때는 어떤 말투를 구사하실지도 궁금하네요.
책 읽고 글쓰기를 온라인으로 시작할 때, 무척 고민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말을 할 것인가,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말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요. 생각 끝에 온라인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나 자신의 만족과 동시에 다른 여러 사람이 읽는 글이니 말을 건네듯 쓰자고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서평이라기보다는 독서 후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으로 쓰고 있어요. 엄격한 기준으로 말하자면 서평이라는 것을 쓸 깜냥이 안 되기 때문이죠.
평소에는 시트콤 같은 일상을 살고 있어요. 말장난도 즐기고요. 아니, ‘언어유희’라고 정정할께요. 글을 쓰고 반드시 중얼중얼 읽어보는데요. 어색하지 않은 걸로 봐서 진지할 때는 글 쓸 때와 같은 말투인 것 같아요.
2.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일상적인 일들은 그대로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어김없이 닥쳐오는 일상은 야속하면서도, 때때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잊게 해주기도 합니다. 포니의책 님에게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일상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라 잠시 고민했는데요. 아마도 책 읽기가 아닐까요. 만화책을 포함해서요.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부터 책을 읽었어요. 처음 만난 책은 기억이 안나지만, 만화는 기억하고 있어요. 여섯 살 때 읽었던 『베르사유의 장미』였죠.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화려한 등장인물들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무척 어릴 때부터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괜찮아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기억 못한다고 했으니까.
3. 일제강점기의 또다른 풍경을 들춰 보여준 소설이었네요. 역사를 주제로 다룬 소설, 또는 팩션(faction) 등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저는 학창시절에 역사 성적이 별로 안 좋았어요. 외워도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는 거에요. 흐름에 맞추면 된다는데 흐름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역사 소설이나 팩션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군요.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작가의 역사 고증이 확실할 것. 두 번째는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것. 정조 시대에 밤을 걷는 선비가 있었다고 상상은 해도 좋지만 믿으면 안되잖아요.
4. 포니의책 님이 만약 이야기를 창작한다면 시대적 배경을 어느 시점에 맞추시겠어요?
제가 이야기를 창작한다면, 아무래도 “현재”. 딱 지금이 좋겠어요. 아니, 아예 미래가 좋을 것 같기도 해요. 그도 저도 아니라면 패러렐월드(평행우주)는 어떨까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포니의책'님은?
제주에 살고 있는 나름 책 블로거.
| [포니의책 님의 테마북 – 원래는 하나였던 몸이지만]
| 펜벗 큐레이션 Vol.22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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