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오늘의 책
김연수 | 문학동네 | 2015.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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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타인에게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하고 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멈춰 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건너기 힘든 아득한 심연이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라는 일인칭 세계에서 ‘너’라는 타인에게로 시야를 넓혀온 작가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이르러 ‘나’와 ‘너...
잘 쓰인 이야기를 읽고 나면 슬픔이 온다. 그것이 햇빛 아래 끝난다 할지라도 그렇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러하듯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인 슬픔이, 격렬하게도 아니고 잔잔하지도 않고, 그래, 슬픔이 있다. 오는 게 아니라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그렇게. 어쩌면 슬픔이란,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잘 쓰인 이야기란, 평소엔 만질 수 없었던 마음을 만지는 것, 만져서는 안 될 금단의 살을 만지고 소스라치는 것.
그것을 작가는 심연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결코 건널 수 없는 너와 나 사이의 틈. 아주 얕고 좁아 보일지언정 절대 도하를 허락하지 않는 공포. 심연은 금기다. 금기를 건너려고 하는 자, 목숨을 주어야 할 것이다. 물속으로 흩어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지은처럼, 태중의 기억을 복기하며 사라진 동백꽃 그늘을 걷는 카밀라 희재처럼.
그들 사이에는 무슨 말이 오갔던 걸까. 밤중을 달려 그 아이의 집으로 가고 칼에 찔리고 불타는 동료들을 보며 허공에 매달려 고개를 수그렸던, 죽은 아비와 기사회생을 산 아비를 둔 두 소녀 사이에. 과연 무엇이라도 오갈 수 있는 것일까. 그러한 사연이 없더라도 우리는. 마주 보고 웃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과연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고통은 결코 건널 수 없고 기미만 남아서 우리는 결국 가식적인 미소로 외면하거나 날선 거짓말로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주 오래전 청춘을 만진다. 무너진 서가가 반들반들 윤이 나고 먼지투성이 석양이 붉게 들이찬 책상에 머리 긴 소녀가 한 장 한 장 공들여 책장을 넘기는 풍경을. 그렇게 쓴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신혜숙은 카밀라에게 충고한다. 진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그런 관광지의 기억과 신파 같은 사연만 마음에 품고 이 땅을 떠나라고. 진실은 아름답지 않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카밀라는 온몸으로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하여 카밀라는 사라지고 희재만 남는다. 근친상간의 희재일까, 사제지간의 금단의 사랑의 결실인 희재일까, 아니면 양관, 귀신이 떠도는 집에서 움튼 희재일까. 카밀라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진실을 쫓지만 결국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풍문만 남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소녀시대가 남았다. 회고하는 자들이 말하는 제각각의 기억들만 남았다. 검모래에 아이를 낳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소녀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우리는 심연에 기억을 잃고 산다. 설령 자신의 심연일지라도 한 번 심연 속으로 잃은 기억은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진실을 산다. 한 번의 생으로는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천 번의 생이 반복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단 한 번의 삶보다 더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리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어떤 청춘의 문장처럼 이 이야기는 그렇게 왔다.
남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시집 <안개주의보>(문학과지성사)와 산문집 <당신을 기억하는 슬픈 버릇이 있다>(서랍의날씨) 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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