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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2020년 5월 28일 오늘의 책

나의 기억을 보라

엘리 위젤 | 쌤앤파커스 | 2020.04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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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폐허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스승이 연대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세대에게 폭력과 억압, 차별과 배제로 점철된 힘겨운 시대, 인류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지혜 ★ 버락 오바마(미국 전 대통령), 파커 J. 파머(《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저자) 추천 도서 ★ 2018 전미 유대인 도서상 수상작 “무엇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입니다.” _1986년 엘리 위젤의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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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우호적 적대자가 필요하다

 

인간으로 태어나 내재된 인간성을 포기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잔혹한 악행을 저지른 인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저 일어난 ‘사실’일 뿐이고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멍하니 바라만 보는 것이 정당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경험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의 제자이다.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엘리 위젤이 말년에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했었는데, 그의 조교로 일했던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저자는 위젤이 살아생전 강의했던 내용이나, 기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 등을 엮어서 이 책에 담았다.

 

위젤은 비경험자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겪은 시대의 피해자이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홀로코스트를 오로지 사진과 텍스트로만 경험한 세대인 ‘나’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엘리 위젤’ 사이에 존재할 특정 상황에 대한 인식차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경험자인 나로선 그런 비극적인 일들에 관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에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학살을 자행했던 당시 독일 국민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양이 넘쳤던 독일의 국민들이 광기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독일에는 도덕관념과 관련된 철학이 유행했었다고 하니 굉장히 모순적이다. 위젤은 기계적인 정보나 지식의 교환을 의미하는 ‘교육’보다는 공통된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표로 추구하는 도덕적인 교육을 강조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하는 것이다.

 

어떤 주체가 저지른 악행을 ‘기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악행에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되새기는 것도 기억이고, 앞으로 그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기억이다. 사건의 목격자는 기억을 타인들에게 전함으로써 새로운 목격자를 만들어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선의의 목격자들이 많아져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다름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의 세계관을 허물면서 자신과 타인이 동일함으로 수렴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교, 인종, 언어 등의 방면의 경계는 무조건 허물어야 하는 것이며, 서로 친밀하게 지내는 데 방해하는 요소로 치부한다. 위젤은 이런 방식의 관계 맺기는 각자의 다름을 희석시키고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게끔 만든다고 말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존중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특히나 집단의식이 강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위젤의 말은 치명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듯하다. ‘으쌰으쌰’해서 하나로 합치된 의견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례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과연 그것이 정의고 최선일까.

 

비판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거 없는 광신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꾸준히 의문을 갖고 질문해야 한다. 오로지 그것만이 중심을 지탱할 수 있게끔 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호적 적대자’가 되어 서로 맞서며 도와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에서 자행된 여러 학살사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르완다나 바르샤바,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것이다. 각각의 사건들에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특히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이 그 대상이 되었다. 책의 저자가 유대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해 편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조금 더 중립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몇 년 전, 또 다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하요 메이어가 이스라엘의 나치화를 질타한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그 비판의 대상에는 엘리 위젤도 포함되었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결국 홀로코스트라면 앞으로 비극은 끝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만들어진 교훈이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거나 내로남불하는 식으로 사용되면 안 될 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ahiti8505'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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