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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원제 : WITNESS: Lessons from Elie Wiesel’s Classroom (2018)

엘리 위젤 저 | 우진하 역 | 쌤앤파커스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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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5340872 / 396쪽 147 x 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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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2016)이 생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 엘리 위젤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인권 문제뿐 아니라 기억, 믿음과 의심, 광기와 저항, 말과 글을 넘어서는 예술 같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을지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저자인 아리엘 버거는 15세에 처음 엘리 위젤을 만났고, 20대를 엘리 위젤의 학생으로 보냈으며, 30대를 엘리 위젤의 조교로 일한 인물로, 25년 동안 이어진 만남의 기록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등을 토대로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의 열기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엘리 위젤의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때로는 위트 넘치는 수업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리 위젤의 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사 같은 활동가가 되거나 저항자나 성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을 통해서 우리는 힘도 영향력도 없이 외면당하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쓸 때 비로소 인류애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울 수 있다.

출판사 리뷰

광기와 폐허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스승이 연대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세대에게 폭력과 억압, 차별과 배제로 점철된 힘겨운 시대, 인류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지혜 ★ 버락 오바마(미국 전 대통령), 파커 J. 파머(《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저자) 추천 도서 ★ 2018 전미 유대인 도서상 수상작 “무엇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입니다.” _1986년 엘리 위젤의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중에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목소리 2016년 7월 2일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 87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례적으로 백악관을 통해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엘리 위젤을 “친애하는 친구(dear friend)”라고 표현하면서 “엘리 위젤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목소리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여러 면에서 세계의 양심이었습니다. 엘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기념비였습니다.”라고 말했다. 1928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엘리 위젤은 프리모 레비(《이것이 인간인가》), 안네 프랑크(《일기》), 빅터 프랑클(《죽음의 수용소에서》) 등과 함께 홀로코스트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10대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잃고,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엘리 위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프랑스의 고아원에서 자랐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8년이 되어서야 자전적 소설 《밤》을 불어로 발표했다(이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밤》은 196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자마자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단숨에 홀로코스트 문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 반열에 올랐다. 1963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 엘리 위젤은 1976년부터 40년 동안 보스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위기에 처한 인류의 참상을 알리고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고통 앞에서도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주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엘리 위젤이 생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인권 문제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 믿음과 의심, 광기와 저항, 말과 글을 넘어서는 예술 같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을지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아리엘 버거는 15세에 처음 엘리 위젤을 만났고, 20대를 엘리 위젤의 학생으로 보냈으며, 30대를 엘리 위젤의 조교로 일한 인물로, 25년 동안 이어진 만남의 기록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등을 토대로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의 열기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파커 J. 파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이렇게 말했다. “아리엘 버거의 노고 덕분에 엘리 위젤이 수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단지 그가 남긴 말과 글 등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엘리 위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진정한 인류애가 무엇인지 보여준 우리 인류의 보물이었다. 이 책 역시 우리에게 죽음을 생명으로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초월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국 전역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2018년 전미 유대인 도서상(National Jewish Book Award)을 수상했는데, 특히 전기(biography) 부문에서는 1986년 미국의 역사학자 예후다 라인하르츠의 수상 이후 32년 만에 나온 수상작이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목격자가 된다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똑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보를 순전히 기술적으로만 전달하는 일 역시 또 다른 비극을 막는 데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만일 기억을 통해 어떤 도덕적 변화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먼저 그 기억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저자 아리엘 버거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이 책 《나의 기억을 보라》는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던 절망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의 비통한 기억이 우리를 어떻게 일깨워 평화와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엘리 위젤은 강의를 할 때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입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다. 엘리 위젤은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목격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교육을 강조했다. 평소에도 “나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던 엘리 위젤은 뉴욕과 보스턴을 오가면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인종 대학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면서도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대화하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엘리 위젤은 교육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이 이처럼 혼란하고 복잡한 때일수록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단순한 행위에 희망의 근원이 있다고 보았다. “내게 가르치는 일이란 결심이나 결의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내 결심이 여러분 결심의 일부가 되어서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러분을 통해 올바른 일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 저자는 엘리 위젤이 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와 강연의 주제들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정리했다. 기억과 가르침, 다름과 타인, 종교와 믿음, 광기와 저항, 증오를 넘어서는 말과 글, 예술과 열정이 그것이다. 이 모든 주제들에 대하여 엘리 위젤은 학생들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하나의 민족을 절멸시키려 하거나 사회 구성원들에게 증오의 감정을 품게 하는 ‘광기’에 대해서 엘리 위젤은 이렇게 말한다. “광기에도 대단히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적 문제는 파괴적 형태로 나타나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고 고립시키지요. 광기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면 이른바 정치적 광기가 되는데, 그러면 한 국가가 나아갈 바를 잃고 증오에 휩싸이고 맙니다. 증오와 반대되는 개념의 광기도 있는데, 나는 그걸 일종의 ‘신비주의적’ 광기라고 부릅니다. 인간성, 구원, 사람들의 단결,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구세주와 관련된 요소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광기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인간성을 구원하거나 적어도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믿음에 미칠 필요가 꼭 있습니다. 물론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일입니다만, 나는 그런 광기라면 언제든지 찬성입니다.” 또한 엘리 위젤은 ‘증오’의 감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증오를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무언가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만일 교사라면 바른길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작가라면 더 좋은 글을 쓰도록 애써야겠지요. 자신이 느낀 바를 표현하되 증오를 다른 모습으로 바꿔서 표출해야 합니다. 증오를 그대로 발산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엘리 위젤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도덕적 양심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단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전해준 지혜의 답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여러 분쟁 지역을 방문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자격은 비로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저 말만 앞세우며 대중 앞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목격자가 됨으로써 ‘권력 앞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 무게감을 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만 가지고 세상 앞에 나서고 또 나섰다. 그의 도구란 그의 눈과 그의 마음과 그의 글이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학자이자 작가, 사회 활동가였으며 그 어떤 단체나 조직 혹은 후원자를 대표하지 않았다.” “나의 기억을 보라”: 엘리 위젤과 함께하는 수업으로의 초대 저자는 엘리 위젤이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의 가슴 아픈 기억들까지도 마지막 장에 담아냄으로써 ‘광기와 폐허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스승’의 전기를 감동적으로 완성했다. 미국의 한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에겐 엘리 위젤의 지혜가 필요하다.” 엘리 위젤은 이 책에서 여전히 학생들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아리엘 버거의 도움으로 우리는 나치 친위대 장교의 손녀부터 유학 중인 한국의 목사까지 위젤과 함께했던 수많은 학생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는다. 강의실에 빈 자리가 있다면 그곳이 이 책을 들고 있는 독자들의 자리가 될 것이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리 위젤의 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사 같은 활동가가 되거나 저항자나 성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을 통해서 우리는 힘도 영향력도 없이 외면당하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쓸 때 비로소 인류애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울 수 있다. 엘리 위젤 교수가 이번 학기 첫 번째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는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강의실의 높다란 창문에서 비쳐 들어오는 아침 햇살처럼 고요함이 강의실을 가득 채워 나간다. 위젤 교수가 오래된 나무 의자 뒤에 서서 “안녕하세요” 하고 짧게 인사말을 건넨다. 이제 우리가 화답할 차례이다.

저자 소개

1928년 루마니아의 시게트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왼팔에 ‘A-7713’이 새겨졌다. 누나 둘은 살아남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다. 그와 함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아버지는 이질과 피로로 앓다가 1945년 4월, 수용소가 해방되기 직전 사망한다. 종전 후 파리에서 수학한 뒤 기자로 일했고,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의 권유로 강제수용소 경험을 기록, 《나이트》를 출간했다. 이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고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겼다. 
1955년 도미하여 1963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78년에 대통령 직속 홀로코스트 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고, 1980년에는 미합중국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엘리 위젤 재단을 설립해 차별과 불관용, 불의에 대항해 싸워왔다. 유대인으로서 신생국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소비에트의 유대인의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억압받는 니카라과의 소수 부족, 군사정권 치하 아르헨티나의 행방불명자들, 캄보디아 난민, 쿠르드족, 아프리카의 기아와 대량학살의 희생자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피해자들,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희생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현실참여적 지식인으로 활약했다.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처럼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1972년부터 재직한 뉴욕 시립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가르쳤고, 1982-1983년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초대 헨리 루스 방문학자를 지내기도 했다. 미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 미 의회 금메달, 인도주의 메달,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그랑크루아 훈장 등, 문학에서의 성취뿐 아니라 인권을 위한 활동으로도 수많은 상을 받았다. 
작가로서 그는 소설을 포함해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 메디치상 수상작인 《예루살렘 거지》, 리브르 엥테르상을 받은 《언약》, 프랑스 문학대상을 받은 《제5의 아들》, 회고록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른다》,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말로는 《나이트》, 《이방인은 없다》, 《새벽》, 《나치스와 유대인》, 《망각》, 《벽 너머 마을》, 《엘리에제르의 고백》 등이 번역, 소개되었다.


 

역자 소개

삼육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 테솔 대학원에서 번역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성 디지털대학교 실용외국어학과 외래 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출판 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전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인섹토피디아》 《서른의 철학》 《건너야 할 다리》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만일 위대한 문학적 개념이나 거창한 철학적 전통이 광신주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없다면, 그리고 종교조차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광적인 설교에 휘둘려 신앙의 이름으로 온갖 잔혹한 짓을 저지를 만큼) 쉽게 타락할 수 있다면, 도덕적 명확성을 지키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엘리 위젤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이 세상을 광기로부터 구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 요소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가르치는 교사로서 위젤 교수는 이제 이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는 연구에 평생 천착한다. 이 요소만 찾아낸다면 지식은 다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고, 그 지식이 쌓여 증오가 아닌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과학자처럼 자신의 글쓰기와 사색을 통해, 특히 강의를 통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그 숨겨진 주요 요소를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 바로 기억이었다. 37-38쪽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자 작가이기도 한 론다 핑크 위트먼Rhonda Fink-Whitman이 2013년 아이비리그 대학교들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본적 질문들을 했다. 학생들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무지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 아무렇게나 대답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홀로코스트가 언제 일어났는지 묻는 질문에 1800년이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다. 또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숫자에 대해 처음에는 대충 300만 명이라고 했다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3억 명이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는 비단 나치의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도덕성이 한없이 추락한 특별한 사건들, 예컨대 1970년대 캄보디아 학살, 1992년 유고슬라비아 분열과 인종 청소,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등 다른 수많은 학살과 인종 청소, 그리고 분쟁이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잊혀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망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오후 위젤 교수의 연구실에서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특별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운동과 홀로코스트 부정 운동에 대해 최근 발표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보고서를 언급했다.
위젤 교수는 마치 자신도 마땅한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내 말했다. “역사란 좁다란 다리이며, 우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기억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잊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요. 그저 기능적 측면에서 보더라도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고 말 겁니다.” 51-52쪽

“우정이란 나에게 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종교지요. 누군가 우정에 열광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우정 극단주의자가 되는 경우도 없을 테니 그저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또 말했다. “여러분이 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만큼 나 역시도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배워 나갑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꺼운 마음 한편으로 부담감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간단한 이야기가 학생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하는 위치에서 능동적 기여자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젤 교수의 그 말은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원칙인 셈이었다. 탈무드에도 “송아지가 젖을 먹고 싶어 하는 만큼이나 어미 소도 젖을 먹이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런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질문이나 호기심이 없고 아예 뭘 알고 싶은 생각마저 없다면, 교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사와 학생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일종의 교육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 (...)
“과거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야 합니다.” 위젤 교수는 이야기를 들려준 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80-81쪽

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지만 엘리 위젤은 매일 자신의 갑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학생들에게 자신을 모두 열어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의 꿈과 희망에 귀 기울이고 신앙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말했다. “사랑도 가능하고, 희망도 가능합니다. 나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강의를 합니다. 도덕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먼저 마음을 열면 학생들이 마음을 여는 일이 가능해지거든요.” 114쪽

“교수님, 언제부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시게 되었습니까?”
“글쎄요, 일단 나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꽤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디시어로 발행되는 신문의 기자로, 그다음은 이스라엘 계열의 신문사에서 일하며 기사 한 편당 원고료를 받았지요. 그렇게 일을 하며 가장 좋았던 건 개인적으로 가보기 힘든 곳들을 신문사 비용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 곳에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분쟁과 압제, 그리고 어떤 비인간적 행위가 벌어지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인도의 빈민, 베트남의 난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Khmer Rouge(1975년부터 5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하며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급진 공산주의 혁명 단체.-옮긴이) 희생자, 중앙아메리카에서 박해받은 혼혈 원주민까지. 이미 아는 사실들을 또다시 확인하고 한 번 본 일들을 연거푸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낱 기자에 글이나 쓰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일단 내가 확인한 사실들을 기사로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은 훗날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요. 더 나중에는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주요 매체에 필요할 때마다 특별 외부 기고자로 많은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나 작가처럼 도움을 원하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접촉해, 말과 글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지요.”
“그런 말과 글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습니까?” 데이브가 다시 물었다.
“때로는 가진 것이 말과 글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나 글이 일종의 증언이 되고, 단순히 추상적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안에 힘이 있지요. 비록 기자 생활을 그만둔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세계 여러 곳을 둘러보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목격자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에는 분명 힘이 실리지요.” 235-237쪽

위젤 교수는 어떤 노력과 행동으로 도덕적 자격을 얻었는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당시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 《밤》을 출간한 그는 분명 고통과 생존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일찌감치 얻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자격은 다른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여러 분쟁 지역을 방문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자격은 비로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저 말만 앞세우며 대중 앞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목격자가 됨으로써 ‘권력 앞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 무게감을 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만 가지고 세상 앞에 나서고 또 나섰다. 그의 도구란 그의 눈과 그의 마음과 그의 글이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학자이자 작가, 사회 활동가였으며 그 어떤 단체나 조직 혹은 후원자를 대표하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은 후에는 엘리 위젤 인권 재단을 설립해 처음으로 실질적 후원 단체를 갖게 되었고, 주요 신문 지면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자금도 확보했다. 또한 다른 노벨상 수상자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완전한 자유와 자율적 책임 아래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는 원칙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종종 언급하며 자신은 백악관이나 국제 연합에서 이야기할 때도 어느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온 예시바 학생이었을 때처럼, 어떤 단체나 위원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오직 말과 글로 싸우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38-239쪽

우리는 언어가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원래 내보이고 싶었던 뜻을 그대로 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굶주리는 어린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소득 불균형’이라고 돌려서 말합니까? 그냥 ‘죄 없는 가족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세요. ‘인종 간 갈등’이라고 말하지 말고요. 정치에서도 문학에서도, 그리고 물론 교육에서도 이런 원칙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언어를 왜곡한다면 진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위젤 교수에게 말이나 글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가 강의 시간에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리라. ‘전하고자 하는 뜻을 잘 전달했습니까? 그러지 못했다고요? 그렇다면 말이나 글로써 할 수 없는 일을 노래 한 곡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04쪽

정말로 열정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열정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그런 열정을 찾지 않는 풍조마저 생겨났습니다. 그런 열정 대신 그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오락거리를 찾게 되었지요. 명심하세요. 나치도 공산당도, 그리고 크메르루주도 모두 열정으로 가득 찬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상이 있었으며,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내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국민은 민족적 순수성, 계급 간 투쟁의 종결, 역사의 새로운 시작과 종교적 지배권 등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지요. 그들에게는 불꽃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는데 미적지근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은, 더 뜨거운 불꽃을 피워 올려야만 합니다.” 333-334쪽

목차

독자들에게
머리말

1 기억
2 다름
3 믿음과 불신
4 광기와 반항
5 행동주의
6 말과 글을 넘어서
7 목격자

맺음말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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