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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요리

2013년 2월 27일 오늘의 책

무국적 요리

루시드 폴 | 나무나무 | 2013.02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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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문단의 영향과 경향에서 자유로운 독자적 상상력과 스타일로 무장한 놀라운 소설 음악인이자 화학자인 루시드폴이 첫 소설집 『무국적 요리』를 출간했다. 소설집은 「탕」「똥」「기적의 물」「애기」「행성이다」「싫어!」「추구」「독」등 총 여덟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기존 소설문법에서는 읽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과 스타일로 무장하고 있다. 한국문학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출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존 문학적 전통과는 다른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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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 작은 사람

 

“사람은 다 작아지는 거래. 그러다가… 없어지는 거래.” (131쪽, <애기>)

 

와병 중에 있는 할머니는 작았다. 그 몸이 중환자실에 들어가서는 더 작아졌다. 아마 할머니를 어둔 땅속에 홀로 누였을 때는 보다 더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작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는 이제 다른 이들과의 헤어짐을 예감한다. 외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잘 아는 어른들이 차츰 작아지는 것을 본다. 이 변화가 늙고 병들기 때문일까. 나는 애초에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작음은 외형일 뿐, 사람은 본디 작은 존재다. 병으로 작아지기 이전에 슬픔 앞에서, 가난 앞에서, 시대 앞에서 할머니는 보잘것없었다. 갓난아기에서 성장판의 최대치까지 자란 손녀는 다를 것인가. 할머니보다 큰 몸으로 나는 일상의 사사로운 균열 정도에도 쩔쩔맨다. 사람은 무력하다. 이토록 작은 것이 우리의 원형이다.

 

발버둥 쳐 봐야 원형대로 살게 되니 삶은 퍽 고단하다. 예컨대 기껏 작은 시절로부터 독립한 청년은 “회사일, 목욕탕, 노인, 삼촌, 아줌마, 아버지, 봉래탕, 집, 고향.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질질 짜는 자신을 비웃는 듯”(50쪽, <탕>)한 자괴의 순간을 맞닥뜨리고, 한 정치인을 통해 “예전의 나와 같이 작고 소박한 삶에 안주하는 이들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원대한 야망”(77쪽, <똥>)을 보고 감화된 전직기자는 그러나 그의 뒤처리용으로 취급될 뿐이고, 어떤 마을 주민들은 “한 달간 쌓인 독을 비우는 세례(洗禮)”(268쪽, <독>)를 치르지 않으면 제 몸에 쌓인 독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다. 사람이, 작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망가지고 우스개가 되고 상처 입는 삶. 이는 《무국적 요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을 쓴 사람은 루시드폴이다. 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그는 일찍이 음악을 통해서도 소소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준 바 있다. 사람부터 고등어에 이르기까지 흔하디흔한 존재들을 호명했다. 그의 소설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언뜻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다. 음악에 비하면 어둡고, 날카롭고, 황당하고, 아리송한 면도 분명 있다. 허나 읽어 갈수록 나는 그가 일관되게 불러낸 사람과 만난다.

 

“할매 만나고, 아빠 낳고, 산이 낳고…”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점점 작아지데…?”
“그럼 진짜 오래됐네?”
“그럼. 조금씩, 조금씩 작아진 거지.”(117쪽, <애기>)

 

앞서 엿본 이야기에서처럼 작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도 모르게 작음을 드러내거나, 작음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그는 어떤 변화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보잘것없고 무력한 상태로도 존재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것이 결코 함량 미달의 삶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 소설에서 그가 인용한 “제비꽃만큼 작은 사람으로 태어났구나.”(102쪽, <애기>)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말은 이 점을 암시한다. 작은 사람은 제비꽃만큼, 바람에 흔들리거나 꺾일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아서 망가지고 우스개가 되고 상처 입은 것이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작아서 병을 앓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 원형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나는 루시드폴의 소설에서 본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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