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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청춘이다

2013년 11월 27일 오늘의 책

나무가 청춘이다

고주환 | 글항아리 | 2013.11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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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산골마을 생활사와 구절양장의 현대사, 동양 전통 풍속을 긴밀하게 엮어낸 전인미답의 인문人紋 에세이. 산색은 강렬하고, 인간의 향기는 풍성하다. · ‘노인’ 아버지와 화살나무 양밥, 겨울 산의? 물참대 피리 · ‘눈이 발바닥’이셨던 어머니의 고광나무와 미나리물김치 · 도깨비집 소녀와 ‘가중나무’ · 법복, 군복, 미영치마 물들이던 ‘신나무’ · 누이의 못난이손톱 ‘살구나무’ · 부지런한 며느리의 홑잎나물 ‘화살나무’ · 작고 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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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날이 여기 있어

 

나는 감나무를 보면 시골집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나고 자랐다는 그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떫은 감 몇 개가 열릴 뿐이고 가지 뻗은 모양새도 매가리가 없어 영 폼이 안 나는 놈이었다. 그래도 좋아했던 나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서 그 여전한 모습을 보면 시골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우리를 맞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생들이랑 저물녘까지 뛰어다니던 논둑도, 목을 축이던 식혜 맛도 매번 그대로였다. 나에게 감나무는 변함없는 그곳의 상징 같은 거였다. 사실 모든 것을 보다 오래 누릴 줄 알았던 어린 날에는 그리 깊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지나고 나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더는 살 사람이 없게 된 그 집을 처분하고, 시골집의 흔적이 남지 않게 되고 나니. 마찬가지로 같은 나무도 이제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다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남의 집 감나무라도 마주할 때면.

 

이 책에서는 나름 치열했던 내 청춘 자서전의 조각들을 그 시절을 대표하던 나무들과 함께 풀어냈다. (…) 요즘도 주말이면 가족과 집을 나서 어릴 적 노인 아버지가 눈자위만 하얗던 막둥이를 데리고 올라 물참대 피리를 만들어주던 그 산천을 오른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물오른 산버들가지를 비틀어 호둑이를 만들어 불거나 덜 익은 야광나무 열매를 깨물다 뱉기도 하고 비탈밭에 소를 부려 쟁기질을 하는 친구 아버지에게 옛이야기를 청해 듣기도 한다. 그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풀과 나무로부터 심연의 기억들을 끌어올려 소제목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7쪽)

 

나무에 기억을 빚진 건 나만이 아니다. 《나무가 청춘이다》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이 불러낸 어린 날을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민초 작가이자 토속식물의 어원연구가를 자처하는 저자는 책에서 사십 종이 넘는 나무, 풀, 꽃을 다룬다. 이는 단지 식물학적 지식 전달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나무와 함께 자란 자신의 한 시절을 되짚어 간다. 진짜 뜸을 들였던 건 이런 이야기다.

 

   “아유 싫어! 이게 뭔데?”
   “곪지 말라구 마 뿌리를 찧어서 화살나무 재를 섞은 거여. 가시 박힌 데는 이만한 양밥이 없다구 아버지가 어두운 산에 가서 해온 거여.”
   “아, 닿기만 해도 쓰라려서 싫다구. 아 싫어!”
   (…) 이튿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부엌에 더운물을 뜨러 갔다가 태우다 만 화살나무 가지를 보고서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슬그머니 밀려왔다. (…) 연로하신 아버지는 몇 년 뒤 세상을 뜨셨는데 사각사각 비 오는 소리처럼 뽕잎을 갉아 먹는 누에방에만 누우면 어둑어둑한 뒷산에 올라 화살나무를 찾아다니셨을 아버지 생각이 났다. (…) 지천명에 나무공부 바람이 들어 화살나무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가 ‘날개를 태운 재가 살에 박힌 가시를 빼내는 효과가 있다’는 구절을 보고 왈칵 솟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164쪽)

 

동무들과 어울리기 바빴던 시절이다. 하루는 억지로 집에 붙잡혀 아버지 일을 돕다가 뒷덜미에 가시가 박혔다. 놀러 나가지 못한 서러움까지 더해져 심하게 울어 재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 저자가 바라보는 나무들은 화살나무처럼 지난날의 기억을 지금도 살아 있게 한다. 이는 봄이 되면 어디에든 다시 살아오는 나무의 힘일 게다. 덕택에 그의 어린 날은, 나의 어린 날은 언제고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이 있기에 오늘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어둠속을 헤매는 이를 떠나보내고 끝내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생을 더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 가고 없대도, 저 나무들 어디쯤에 뿌리 내린 기억에 기대어.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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