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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 세계문학전집61

2011년 10월 27일 오늘의 책

설국 - 세계문학전집61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 2002.01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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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이 소설은 눈에 파묻힌 산골의 자연 풍경 그리고 눈 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서정과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진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기다란 시미즈 터널 밖으로 나오면 눈의 고장, 설국이 있다. 그 한적한 곳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야성적 정열과는 대조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순미로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코, 이 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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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에 갇혀 외로워지다

 

무심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무위도식하는 남자의 세상은 ‘눈(目)’을 통해 만들어진다. 혹은 그 눈이 남자의 삶의 태도를 말해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포착된 대상들에 대한 이미지는 남자의 시선에 의해 재구성되어 정감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이에 반해 그의 말과 행동은 건조하기만 하다. 다시 말해, 감정과 심리가 그의 시선 안에 갇혀 외부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그의 말과 행동은 무심하게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감정으로 덧입혀진 자기화된 기억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외로워지고, 그의 시선에 사로잡힌 그녀는 쓸쓸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설국>의 모든 것은 남자의 시선에 의해 재현된 인상들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차창의 영상은 앞으로 이어질 모든 이미지들에 겹쳐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끝내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 그 남자의 시선 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자연의 흐름으로 어둠이 시작된 밖의 세상과 비자연의 결과로 언제까지나 빛 안에 있을 것만 같은 기차 내부의 경계에서, 차창은 거울처럼 어둠 속으로 잠식해 들어가는 풍경의 마지막 숨결을 투사하는 동시에 억지로 마련된 빛의 아래에서 죽음 옆에 앉아 있는 살아있는 그녀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그는 목적지에 가기 전까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있을 것이다.

 

이로써 생겨나는 부동(不動)의 시선. 그의 시선은 하나의 고정된 틀이다. 그는 변하지 않는 태도로 변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차창 밖에서 흘러가는 풍경들은 움직이지 않는 그의 틀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그의 틀을 부수고 나가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는 산행과 여행이라는 움직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의 기억은 부동의 시선이 담아내는 흘러가는 풍경과 같이, 순간 혹은 찰나로만 남을 것이다. 이는 그에게는 목적지가 있으며, 그곳에 도달하면 그의 시선 안에서 흐르던 풍경들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세상과 삶 속에는 언제나 마지막이 마련되어 있다. 출발과 도착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현재. 이 순간을 지나쳐 가면 모든 것은 찰나의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의 촉각으로 그에게 그녀가 남겨졌듯이. 그렇게 해서 모든 것들이 그의 시선을 통해 기억 안에서 허무해지고 만다. 

 

한 번 내린 눈(雪)은 언제나 사라질 숙명을 안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눈의 고장으로 향하는 남자는 도착과 함께 기차에서 내리듯, 언젠가는 그 고장에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그와 무관하게 흘러갈 차창의 풍경들처럼 그녀 또한 그렇게 남겨놓을 것이다. 결국 그가 반복적으로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도착하기 위함이고, 마지막을 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시 찾아올 눈을 기다리는 가을날, 또 다른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이별을 예감하는 남자는, 그래서 더 외로워 보인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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