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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퇴장

2015년 3월 25일 오늘의 책

유령 퇴장

필립 로스 | 문학동네 | 2014.08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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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을 읽는/글을 쓰는 사람들인 우린 끝났어. 우린 문학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걸 목격하고 있는 유령이야.” 가장 미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작가 필립 로스 그의 ‘주커먼 시리즈’ 30년 대장정?의 완결판! ☆★ ‘주커먼 시리즈’의 완결판. 그의 팬들에게는 축복 같은 작품. 인디펜던트 ★☆ 선택의 여지 없이 닥쳐오는 우리 육신의 무자비한 노쇠에 대한 기품 있는 폭로. 나딘 고디머(소설가. 199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로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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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와 주커먼, 안녕


필립 로스의 작품이라 역시 재미있지만, 『유령 퇴장』은 『에브리맨』이나 『울분』처럼 술술 읽히진 않았다. 우선 『유령 퇴장』의 화자는 꽤 이름이 난 노작가로 설정되어 있는데, 거의 죽음에 다다른 늙은 화자가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에브리맨』과 유사하다. 하지만, 『유령 퇴장』에는 뭐랄까, 이야기로서의 소설뿐 아니라 소설 작법이나 작가의 '소설관'도 엿볼 수 있다. 작가들은 주인공을 창조해낸다지만, 주인공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과 세상에 단절된 채 몇십 년을 살아온 노작가의 은둔. 은둔의 저변에는 테러리즘, 유다이즘, 미국정치 및 현실 정치참여 등의 굵직한 키워드가 포진해 있다. 어느 날, 노작가는 아주 즉흥적인 감정에 휘말려 은둔 생활을 깨뜨리고 다시 인간사 뉴욕의 한복판으로 삶의 추를 이동한다. 그의 과거는 자신과 함께 늙어 나타나고, 새로운 현재는 거스를 수 없는 활력으로 그를 덮쳐온다. 이미 '생식능력을 잃어' 반죽음 상태의 늙은 화자를 중심으로 같은 범주에 있는 인물들: 르노프, 에이미, 조지, 젊음과 활력, 에너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 제이미, 클리먼, 빌리, 그리고 이미 늙어버린 범주에 있는 인물들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젊음을 상징하는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열정과 분노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부시 주니어가 두 번째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늙음과 젊음의 반응은 얼마나 다른가.

늙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화자 주커먼은 어느 날 속절없이 죽음으로 잡아끄는 신체시계를 거부해버린다. 바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제이미에게 홀딱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르노프의 과거와 자신의 과거를 엉뚱하게 곡해하고, 비평하며, 당찬 젊은이 클리프와 맞서려는 동시에 끝없이 제이미와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의 대화 내용은 『유령 퇴장』 속 짧은 단편인 「그와 그녀」라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주커먼은 절대로 클리먼의 젊음과 무모한 열정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젊음은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활력으로 살아가는 반면, 늙음은 무한하게 소멸시키는 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죽은 르노프의 전기 역시 완성될 것이다. 그 전기에 기록되고, 곡해된 '실수'나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르노프를 다시 읽고, 재해석할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활력의 물결 앞에서, 주커먼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그녀」를 완성하는 일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바로 「그와 그녀」의 결말이다. 유령은 퇴장한다. 현실과는 다르게, 「그와 그녀」 속 제이미는 주커먼의 호텔로 곧 온다고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다. 퇴장한다.

『유령 퇴장』은 무엇을 말하려는 소설인가? 늙으면 떠나라는 명백함을 이야기하는 건가? 소설 맨 앞장을 다시 펼친다. 딜런 토마스의 시 구절이 있다.


죽음이 너를 취하기 전에, 오 이것을 되찾으라.
- 딜런 토마스, 「뼈에서 살점 찾기」


죽음이 늙음을 취하기 전에, 그는 퇴장해버렸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퇴장해버린 것이다.

나는 최근에서야 필립 로스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도 못했다. 『유령 퇴장』은 필립 로스의 '주커먼 시리즈'의 맨 마지막이라고 한다. 나는 사전 지식 없이 도서관 서가에서 끌리는 대로 집어 왔다. 주커먼 시리즈의 맨 마지막부터 읽게 된 셈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무작위로 고른 필립 로스의 세 작품 간 기묘한 배치가 흥미롭다. 펄펄 끓는 피를 주체 못 하는 『울분』의 정육점집 아들 마커스, 그리고 노년이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말하는 『에브리맨』의 늙고 병든 화자. 『유령 퇴장』에서는 상반된 두 화자의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치기에 넘쳐 어린 것 하나 믿고 날뛰는 젊은이와 세월과 순리에 갉혀 소멸해가는 늙은이들. 젊음과 늙음이 과연 다른 범주일까? 젊음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늙음도 싱싱한 매력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유령 퇴장』의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맞지 않고, 내 손에 싱싱한 매력을 쥐기도 거부한다. 삶의 무대에서 ‘퇴장’해버리는 유령의 뒷모습일 뿐이다. 역시 단발의 섬광으로 결말을 내리치는 필립 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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