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5일 오늘의 책
한병철, 김태환 | 문학과지성사 | 2013.03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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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간, 즉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 혁명이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 2012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의 신간! 2012년 최고의 인문서로 꼽힌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의 책 『시간의 향기』(2009)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ㆍ출간되었다. 『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2010)의 전작으로 현대사회에서 모든...
또, 하루가 지났다. 오늘도 수고했다. 그 뿐이다. 더 무엇을, 생각할 겨를 같은 건 없다. 일단은 쉬자. 쉬게 하자. 몸도 마음도, 지금은 너무 지쳤으니까. 쫓기듯 잠에 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의 시간이 찢기는 파열음이 들린다. 어느새 아침이다. 또, 아침이다. 부랴부랴, 몽롱한 정신에 옷을 입힌다. 허겁지겁, 나른한 육체에 의무감을 먹인다. 풀지 못한 피로는 냉정하게 떼어놓는다. 정돈되지 않은 것들은 방안에 가두고 열쇠를 잠근다. 집을 나선다. 바삐, 걸음을 옮긴다. 출근길 북적이는 지하철 안으로, 내 앞으로 쌓인 오늘의 할 일을 향해. 어제, 그제 그리고 엊그제와도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러 다시.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날의 피로사회는 시간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두고, 시간을 곧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의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 쉬는 시간도 다른 시간이 아니다. 쉬는 시간은 그저 일의 시간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일의 시간은 오늘날 시간 전체를 잠식해버렸다. 우리는 휴가 때뿐만 아니라 잠잘 때에도 일의 시간을 데리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잠자리가 그토록 편치 못한 것이다. 지쳐버린 성과주체는 다리가 마비되는 것처럼 그렇게 잠이 든다. (5쪽)
문득, 달이 가고 해가 갔다는, 이미 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허투루 보낸 하루 없이 매일이 열심이었는데, 퍼뜩 정신 차리고 나니 덩그러니 오늘만 있다. 지난날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을 헤집어 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제는 오늘 같았고, 어제는 그제 같았고, 그제는 엊그제 같았다. 매일이 오늘 같았고, 매일 오늘이었다. “현재는 덧없이 사라져가는 시―점으로 쪼그라”들었고, “현재에는 더 이상 과거와 미래의 긴 꼬리가 달려 있지 않다.” (23쪽) 사람들은 “하나의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로 바삐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34쪽) 토막나버린 시간, 흩어지고 헤매이는 시간, 그 안에서 더욱 분주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오늘만 살고 있는 우리가 있다.
삶은 지금, 여기에만 있다. “하나의 지금에서 다른 지금으로 옮겨 다닌다.” “세계가 온통 여기가 되어버림으로써 저기는 제거되고 만다.” 존재는 오로지 그 점들로만 축소되어 깊이와 넓이를 잃어버린다. 사이와 간격, 머무름의 시・공간으로부터 생성되는 삶의 의미, 발견되는 세계의 본질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사물과 세계, 존재가 맺던 관계의 끈은 끊어지고 지속의 시간에 촘촘하게 새겨질 존재의 서사는 파괴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이 시작하고 “삶의 가능성들” 사이에서 불안하게 우왕좌왕한다.” (33쪽) 하나의 가능성은 완성되고 마무리되지 못한다. 그저 의미 없이 나열되다 “영영 어딘가에 도착하지” 못하고 불시에 허망하게 중단될 뿐이다.
실제로 어떤 사건, 형식, 진동은 오직 긴 사색적 시선에만 모습을 드러낼 뿐, 일하는 시선에는 숨겨져 있다. 섬세한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 보잘것없는 것, 사소한 것, 떠도는 것, 뒤로 물러서는 것 등등, 폭력적인 손길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것. (…) 사색적 머무름은 시간을 준다. 그것은 존재를 넓힌다. 활동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도록. 삶은 사색적 능력을 회복할 때, 시간과 공간을, 지속과 넓이를 얻을 것이다. (126, 181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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