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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2008년 10월 24일 오늘의 책

제주 올레 여행

서명숙 | 북하우스 | 2008.09

분류 : 여행/취미/레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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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이고, 지치고 상처 받은 당신에게 바치는 길 바당올레 하늘올레 제주올레 길 ‘제주에 길을 만드는 여자’ 서명숙 전 편집장, 전 편집국장 그녀가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주올레 길! 정치부 여기자 1세대로 꼽히면서 시사주간지 사상 최초의 여성편집장을 역임한 서명숙. 깐깐하고 날카로운 정치 칼럼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녀가 23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때려치우고 홀연 걷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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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상처 받은 당신을 위한 길


어느 해 겨울에 갔던 제주의 바다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바다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선, 중문해수욕장이 그랬어요. 눈부시게 고운 에메랄드빛 물과 하얀 모래. 나는 ‘예쁘다’를 연발하며 오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저 물과 만날 수 있게 이 자리에서 모래가 되어도 좋겠다고.

용머리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었던 기억도 나네요. 가는 곳마다 돌의 무늬가 바뀌고 절벽의 형세가 달라져 흥미진진한 길이었지요. 물은 또 얼마나 짙푸르던지. 그런데, 속 깊은 그곳 어디쯤에 문이 하나 있었어요. 물속으로 통하는 문일까, 혹은 과거를 거스르는 문일까, 현재를 투영하는 문일까, 아니면 미래로 흘러가는 문일까 알 수 없는 문. 비밀의 문.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의 열쇠를 찾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맘먹었지요. “지금은 등지고 가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올게. 그때 내 손에는 열쇠가 들려 있을 거야. 의기양양하게 문을 열어 그 안쪽으로 들어갈 거라구!” 도대체 어떤 문이냐구요? 바로, 이 문입니다.
 


삶이 무거운 배낭이나 높은 허들처럼 느껴질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넉넉한 바다와 따뜻한 바람을 가진 곳, 베일 것 같은 푸르름과 알 수 없는 서늘함도 지닌 곳, 그럼에도 ‘지금 이곳’을 벗어난다면 무작정 안기고 싶을 만큼 품이 아름다운 곳, 그곳을 열고 싶다고. 그런데 여기, 훨씬 더 간절하게 같은 곳을 그리워한 사람이 있네요. <시사저널> 전 편집장 서명숙 씨가 바로 그인데요. <제주 걷기 여행>은 제주에 대한 저자의 사유와 실천을 기록한 책이랍니다.

책은 ‘제주에 길을 만드는 여자’ 서명숙의 꿈과 열정을 담고 있어요. 그가 ‘걷기’에 빠져든 사연, 산티아고 완주에 도전하는 여정,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스케치,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겠다는 다짐, ‘제주올레’를 발족하여 1코스부터 6코스까지 걷는 길을 내고 다듬는 작업, 올레지기와 올레꾼들의 유쾌하고도 짠한 교감,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고소한 삶 이야기가 가슴 벅차게 펼쳐집니다.

특히 올레 길을 만드는 과정이 감동적이에요. 때로는 손으로 일일이 돌을 옮겨 바윗길을 평탄하게 만들고, 때로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30여 년 동안 사라졌던 길을 복원해내고, 손으로 흙을 다져 계단을 만들기도 하고, 손수 돌덩이를 옮겨 돌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행복이란 의지와 부지런함이 뒷받침돼야 얻을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토록 정성들여 얻은 행복은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요.

참, ‘올레’가 뭔지 궁금하시다구요? ‘동네의 넓은 골목으로 연결되는 집 앞의 좁은 골목길’을 의미하는 제주어에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과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잘 닦인 직선의 길을 빠르게 걷는 걸음이 아니에요. 울퉁불퉁하고 구불거리는 곡선의 길을 느리게, 때로는 헤매고 땀방울을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걷는 걸음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좁은 골목들도 거치겠지요. 걷기에 동행하며 제주의 길 이름을 ‘올레’라고 지은 데 깊이 공감하실 겁니다.

<제주 걷기 여행>은 놀라운 책이에요.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제주에서 보낸 저자의 어린 시절, 해녀와 화가 등 저자가 만난 다양한 제주인의 희로애락, 제주의 생태와 풍토, 수려하지만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진들까지, 한 권의 책에 참으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담겨 있거든요.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저자의 따스하고 뚝심 있는 이야기에 깃든 ‘치유의 힘’입니다. 그와 함께 걷고, 바람을 맞고, 파도에 발을 담그다 보면 상처로 움푹 팼던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그런 뒤엔 당장 제주에 가고 싶다는, 올레를 걷고 싶다는 생각에 북받치실 지도 몰라요.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비밀의 문. 그 문을 열 열쇠는 바로 ‘결심’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 몸과 마음의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따르는 정직함, 오래 걷고 긴 시간 생각에 잠기는 느긋함, 분노와 미움 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유연함, 낮고 어두운 데 자리 잡은 이웃들까지 돌아보는 여유로움,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보겠다는 ‘결심’.

나는 <제주 걷기 여행>이란 열쇠를 얻었어요. 지치고 상처 받은 나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열쇠를 손바닥 위에 올려봅니다. 문은 ‘그곳’에 있습니다. 멀지만, 그렇게 먼 것만도 아닙니다. 쉬이 지치지 않는 다리와 바다를 보고 탄식하는 가슴만 있다면, 머지않은 어느 날에 당도하고 말테니까요. 그때까지 걸어보지요. 폭신한 운동화를 신고, 열쇠는 소중히 주머니에 간직한 채, 중문과 용머리보다 더 아름다운 어딘가가 있을 거라 꿈꾸면서. 자, 씩씩하게!



 

-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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