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3일 오늘의 책
조은 | 또하나의문화 | 2012.05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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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국대학교에서 교수직 정년을 맞은 사회학자 조은이 1986년에 사당동에서 처음 만난 한 가난한 가족을 25년 동안 따라다닌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 이 책은 한국 근대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도시빈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빈곤을 겪어 보지 않은 사회학자가 연구 대상일 뿐이던 한 빈곤 가족을 4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빈곤을 연구한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자문하는 작업으로, 25년간 가난이라는...
‘서울’에 대한 내 기억은 스무 살에서 시작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살았던 곳이 명륜동, 처음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곳이 대학로, 그 돈으로 재수를 준비하던 곳이 노량진이다. 그 외에는 다니던 대학과 그 주변, 번화가(종로, 명동, 신촌, 홍대 등) 정도가 전부다. 그때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당연히 나는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서울’은 여전히 스무 살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데, 명륜동, 대학로, 노량진에 새겨진 세월의 나이를 알 만큼, 그곳에 오래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나에게 서울은 구체적인 삶의 ‘장소’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잠깐씩 기거하는 ‘공간’에 불과했다. 자연히 실제적 삶의 장소로서의 서울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서울을 구성하는 지역은 지하철 노선도의 역명으로만 알고 있고, 도시 재개발과 빈민의 문제는 언론 매체를 통해서 접한 게 다였다. 그 지역이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그곳의 역사는 나와 무관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게 ‘사당동’이 나에게는 제법 잘 사는 친구의 집으로 기억되는 사이, 그곳에서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며 다음 세대로 가난을 대물림 했던 도시 빈민의 삶은 깔끔하게 지어진 높은 빌딩에 가려 기억되지 않는 과거로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 《사당동 더하기 25》는 그 기억을 기록으로 붙들어, 온갖 ‘푸어’들을 양산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면전에 데려다 놓는다. 1986년 사당동에 살던 가난한 가족과 25년의 세월을 함께 하며 ‘빈곤의 세대 재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나타난 빈곤 문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가난의 결과다. (…) 이들은 형제자매가 많은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서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일했고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임금이 너무 낮았거나 경기가 불안정해서 가정을 지키거나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철거 재개발, IMF, 금융 위기 등 구조적 충격이 왔을 때 이를 완화할 ‘완충 지대’도 없었다. 이들은 철거 재개발 정책이라는 자본주의적 공간의 재편에 바로 영향을 받았고 88 올림픽 때는 일자리가 줄어 직격탄을 맞았으며 IMF 때는 경기가 둔화되면서 바로 실직으로 이어졌고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는 카드깡으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주민 등록증을 빌려 주고 대포차나 대포 통장을 만드는 일에 가담하는 범법자가 되어 갔다.” (311-312쪽)
참여 관찰에 의해 문자와 영상으로 남겨진 ‘빈민’, ‘불량 주거지’, ‘철거 재개발’, ‘달동네’의 현실은 현장 조교들이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만큼 생생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난에 대한 낯선 느낌은 더욱 가중되기도 하는데, 좁은 단칸방에 서너 명의 식구가 모여 ‘칼잠’을 자고, 천원 이천원 하는 전기세, 수도세를 놓고 이웃끼리 싸움이 벌어지는 등, 몸으로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가난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처럼 쉽게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사흘은 놀아야 된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계급적 배경에 따라 사흘을 3개월로 풀이한 어떤 대학생처럼 말이다.
《사당동 더하기 25》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분단과 재개발, IMF와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가난에 갇힌 사람들’을 만들어내는지, 그동안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던 ‘가난’의 실제를 드러내 보여준다. 가진 건 달랑 맨몸밖에 없는 그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끊임없이 서울 곳곳에 있는 빈민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한 번쯤 더 이 가족에 대한 다큐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25년에 몇 년이 더해져도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른다. 그 점이 두렵다. 25년이 더 더해져도 그럴지도 모른다.” (321쪽)는 저자의 말이,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빈곤의 세대 재생산을 향해 우리의 눈먼 사고를 깨우고 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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