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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

2015년 3월 23일 오늘의 책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 이리 | 2014.08

분류 : 사회/정치/법률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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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가 세상에 닿기를


한종선 씨에게

안녕하세요. 한종선 씨.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국가와 집단의 폭력의 피해자이자, 그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한 저자를 뭐라고 부를지 편지를 쓰면서부터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무엇보다 한종선 씨 당신이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과 구별된 사람이 아니라, 인권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편지 첫 말을 한종선 씨라고 적으며 모처럼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책은 2015년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만, 저는 당신의 책에도 나오는 2012년 문화연구캠프에서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를 밝히는 자리에 같이 있었습니다. 당시 캠프의 키노트 스피치(Keynote Speech) 발제자로 나선 당신의 책의 기획자이자 공저자이신 전규찬 교수의 발제와 당신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당시의 생생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1980년대 말, 30년 이 갓 지난, 이제 막 역사책의 잉크가 마르기 시작했을 법한 가까운 과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폭력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2015년에 책을 통해 접한 한종선 씨가 원치 않게 경험한 삶의 파편들은 여전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잔혹함을 국가적 시스템으로 만들어 무고한 이들의 인권을 짓밟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충격’ 말고 대체할 표현이 없습니다. 부랑자라는 이유로 엄청난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며, 거기에 견디지 못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르는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조성하고 방조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이 사건이 세상에서 묻혔다는 사실입니다. 2012년 전규찬 교수와 한종선 씨의 발제를 듣고서 제가 이 사실을 그때야 알게 됐다는 사실이 황망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세상에 묻힌 사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절망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전규찬 교수는 부산 형제복지원사건과 같은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처럼 잔혹한 ‘제노사이드’는 비슷하게 반복되고, 사회에 묻혔다는 사실이 끔찍합니다.

기득권을 지닌 사건 피의자들의 힘과 언론의 외면 그리고 대중의 망각이 맞물려 우리는 박래군 씨의 표현처럼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버린 듯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격언은 우리나라에서는 일개의 수사학적 표현에만 그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015년 벽두, 한종선 씨의 책을 보며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참담함을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책을 통해 그 참담함을 넘어설 희망을 봅니다.

전규찬 씨는 한종선 씨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본의 논리만이 진리라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당신의 생각은 어쩌면 타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미약하지만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봐줄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당신의 책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참담함을 넘어설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가슴 아프고 믿기 싫은 역사지만, 그 역사를 기억할 때 우리 사회 구성원은 또 다른 비극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을 통해 기억해야 합니다.

한종선 씨, 당신이 대단한 이유는 거대해 보이는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이러한 제노사이드를 망각하고 넘어갈 경우 또 다른 엄청난 제노사이드를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아직 우리는 이 사실을 완벽히 습득하지 못해, 선택적으로 우리의 아픈 과거를 학습하고, 그마저도 미화와 왜곡의 위협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대단합니다. 당신이 기억하면서 겪었을 고통을 일개 독자인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국 고통을 넘어서고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의 뜻을 지지합니다.

아직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저는 당신을 직접적으로 도울 어떠한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당신이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을 같이 기억하겠습니다. 이름도 모른 채 부산 형제복지원 인근 야산에 묻히거나, 인근 대학병원의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희생자들의 늦었지만 명복을 빌겠습니다. 저는 국가와 우리 사회가 바뀌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기억하는 힘을 믿는 한 명의 독자로부터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3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오늘의 편지'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주로 문학과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즐겨 읽으시죠? 만약 한종선 씨에게 편지와 함께 책을 보낸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실 건가요?
가장 많은 고민이 든 질문입니다. 읽어 본 책도 생각해보고, 책꽂이를 둘러보면서 어떤 책이 좋을지 찾아도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재미있게 읽은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시리즈에 눈길이 갔습니다. 웹툰의 단행본을 초면에 선물한다는 것이 왠지 결례를 범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은 한종선 씨에게 그때 들었을 법한 이야기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신과 함께』는 우리나라의 전통 신화가 배경입니다. 양가 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옛이야기를 저도 듣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신과 함께』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의 기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삶을 반추할 수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많은 여운을 남겨주기에, 조심스럽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서평 본문 중 ‘아직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일개 독자’라는 부분을 보고 질문 드려 봅니다. 함초롬반디님은 지금도 책에 관한 관심이 높아 보이는데요, 앞으로도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꿈꾸시나요?
이제 본격적으로 취직을 앞둔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책과 함께할 수 있는 직업을 얻고,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일종의 환상이기도 합니다. 반디앤루니스에 제가 채용된다면 저의 젊은 시절이 책과 함께할 수 있겠지요. 농담입니다. 책과 가까이하는 삶은 제 목표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인 저에게, 책은 그 목표를 채우기 위해 가장 큰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펜벗 큐레이션을 통해 알게 된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를 읽고서 나와 내 또래 세대가 닥친 현실이 살벌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분주해졌습니다. 취업이라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기가 이처럼 잔인하고 어려운 일인지 혀를 내두르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자기계발서도 아닌데, 의지를 만들어주는 굉장히 신기한 책입니다. 소설 『청동 정원」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영미 작가의 소설 속 표현에 감탄하면서, 허구적 이야기가 던져주는 깊은 공감을 진하게 느끼게 해 준 소설입니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즈음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자주 읽었는데, 1980년 5월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 읽으면서 새삼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한 여성의 삶에 투영된 우리나라의 80년대를 경험하는 데 이만한 소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타깃 차이나』를 읽고 있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지 전략 분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안 그래도 복잡한 미국에 대한 감정이 더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 ‘펜벗’의 특성 중 하나는 ‘주제가 있는 서평’입니다. 펜벗으로 활동하시면서 개인적으로 써 보고 싶으셨던 주제가 있었나요?
‘친구’ 어떨까요? 아마 책을 평균 이상 읽는 독자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은 주위에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인식이 아닐까요? 아직 20대 중반이 채 안 지난 저의 친구들도 전공 교재나 학습 교재 등 실용서 말고 제대로 된 독서를 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드뭅니다. 이 친구들이 책일 일부러 피하는 것이 아닌데, 사회 환경 자체가 독서를 위한 일말의 여유를 주지 않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주제로 내 ‘친구’에게 이 책만은 꼭 읽길 바란다며, 책을 추천한다든가 ‘친구’와 관련된 책을 추천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서의 시작은 혼자지만, 주위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독서는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함께 읽는 독서를 위한 ‘친구’ 어떨까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함초롬반디'님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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