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사상이나 이념이 인간의 발목을 잡는다면, 아니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목덜미를 물어 한 사람을 쓰러뜨린다면 우린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여기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방향전환한 사람이 있다. 해방 후엔 남한을 버리고, 월북해서는 다시 북조선을 버렸던 사내 한추민. '파란만장'이라 이름 붙일밖에 도리 없는 그의 삶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국민일보> 문학전문기자 정철훈의 첫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는 한추민의 생애에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추적함으로써 분단과 이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나아가 중앙아시아에서 겪은 한민족의 수난이라는 해방 이후 현대사를 우회적으로 복원해낸다. 정철훈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은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 시기에 이미 현실 사회주의의 목표에서 멀어져간 스탈린식 독재체제에 염증을 느껴 조국을 등져야 했던 한 지식인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간의 악보>를 요약한다.
작가가 선언처럼 구사한 이 문장은 한추민이 사회주의자보다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국가와 당(黨)을 포함한 모든 기계적인 조직을 부정하는 건 무정부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 아래 한추민이 대사는 내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대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상과 이념, 그리고 국가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 나무에게 물어보라 나무의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무정부주의'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낭만과 퇴폐성이 내포돼 있다. 거기에 유학간 소련에서도 고전음악을 공부했으니 한추민의 예민한 감수성이야 재론할 필요가 없을 터. 그랬던 '섬세 청년'에게 이념과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고 죽인 격랑의 역사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지상낙원으로 생각하며 찾아갔던 사회주의 조국 북조선이 권력쟁탈과 개인숭배의 악덕을 답습하는 걸 차마 두고보지 못한 한추민은 모스크바 국비유학생이라는 특권신분을 버리고, 중앙아시아 알마티로 떠난다. 그리고, 남과 북 어느 조국으로도 돌아오길 거부한다.
책의 마지막. 작중 화자인 '나'는 "고향에 돌아가 뿌려달라"고 부탁 받은 삼촌 한추민의 유골을 중앙아시아 어느 바람 부는 간이역에 놓아준다. 황량한 하늘로 흩어지는 한 쓸쓸했던 무정부주의자의 뼛가루를 보며 조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악보>가 가진 미덕은 대놓고 분단과 이산의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철훈의 문장 속에 내재된 힘은 자칫 신파로 떨어지기 쉬운 소재를 세밀하게 정련해 문학적 감동으로 독자를 이끈다. 작품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이산문학의 영역확장' '표현의 세련미' '이야기를 끌어가는 진득한 힘' 등을 이유로 들며 정철훈의 첫 장편에 "지극히 높은 성취"라는 보기 드문 상찬을 얹었다. 기자로선 베테랑이지만, 소설가로는 첫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한 신인작가의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 셈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졸리니'님은?
시집을 포함해 4권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게’ 즐거운 서른 아홉 문학소년(?). 루이스 푸엔조와 에보 모랄레스를 좋아하기에 그들의 꿈이 꽃 핀 남아메리카를 동경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