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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2021년 2월 22일 오늘의 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 다반 | 2020.09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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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미학!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저자에게, 책은 하나의 타자(他者)이다. 그것을 통해 타인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과 저자 자신의 변화를 경험한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는 나의 미래’인 바, 저자는 책에서 새로운 시간들을 발견한다. 그런 내일과의 마주침이 글쓰기를 통해 어제로 쌓여가는 ‘시간의 기록’, 그 개인의 역사를 그러모은 이 책 한 권이 다시 누군가에게 ‘타자’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 그렇듯 저자의 어제는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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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대신할 문장을 만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바쁘게 다녀도 하루를 마감할 때 어딘가 허전하고 공허해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책을 펼쳤다. (p.20, 「혼자 책 읽는 시간」 중에서)

 

- 브런치 안 하시죠?

​

소설을 함께 쓰는 문우님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글쓰기 플랫폼을 말하는 줄 알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 아뇨. 저도 브런치 해요.
- 안 할 거 같은데…

 

내 글이 그렇게 별로였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말한 브런치는 진짜 브런치였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 보낸 뒤, 오전 10시쯤부터 시작해 하교하는 시간쯤 끝나는 엄마들의 모임.

 

수다로 힐링이 된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그런 모임에 다녀오면 온몸에 기가 빠져나가 침대에 한동안 벌러덩 누워 있어야 했다. 몸만 지치면 얼마나 다행일까. 마음 상하는 일이 더 잦았다. 육아도 힘든데 굳이 이런 관계까지 힘들게 유지해야 할까. 나는 그런 모임에서 점점 발을 뺐다. 몸과 마음이 상하느니 그냥 외로워지자, 하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 나이에 맞춰 엄마들이 친구가 되는 세상에서 멀어지고 조금씩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면서 책을 만났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건 좋아했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내지 못하던 나는 서른이 넘어가면서 그야말로 도끼로 머리를 찍어 내리는 책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 창가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뭐든 썼다. 수유기에는 어차피 못 잘 거 책이나 읽자 하며 버텼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른 모습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강하고 덤덤한 줄만 알았던 나는 너무 예민하고, 너무 잘 우는 사람이었다. 단어 하나에, 문장 하나에 세상을 세웠다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아파트 작은도서관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공개된 모집 공고여서 부담 없이 갔는데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고 모임 회원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진짜 사람이 왔어? 하는 듯한. 아, 사람이 진짜 올 줄은 모르고 낸 공고였구나.

​

책을 읽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혼자 책을 읽으면서 쓴 일기 같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꺼내놓았다. 필터 없이 쏟아지는 나의 이야기에 독서모임 회원분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텐데. 고맙게도 귀를 기울여주셨다. 지금까지 못 한 슬펐던 이야기, 억울했던 이야기를 책을 방패삼아 실컷 꺼내놓았다. 책은 너무 아름답지 않아 꺼내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밤마다 책으로 더 깊게 숨어들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어도 그 시간 속에 ‘내’가 없는 것 같은 날들이면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 나를 대신할 문장을 찾아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김성민 작가의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는 책과 함께한 그때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 책은 분류상 서평집이지만, 서평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런 장르를 말하는 낱말은 없을까. 책 속의 문장을 붙들고 살아갈 힘을 얻은 이야기를 일컫는 장르.

 

1. 나는 왜 조병수의 진심을 믿지 못하였을까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불구의 몸과 부모 덕분에 ‘겸손하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인정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굽이를 건너야 했을까. (p.74, 「토지와 호미」 중에서)

 

블로그에서 김성민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흔들림 없고, 과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토지』의 조병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유가 ‘통찰’에 있단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한 장면에 머물러 감정에 깊게 빠지는 편이다. 그 뒤로는 인물이 다른 길로 들어서고,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한번 빠진 수렁에서 도무지 나올 줄 모른다. 한번 빠진 감정으로만 끝까지 몰입하는 편이다. 이런 점에서 아직도 독서력이 부족하다고 매번 느낀다.

 

그러나 김성민 작가의 독서는 달랐다. 빠질 곳에 충분히 빠졌다가 나올 곳에서는 기꺼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인물의 앞에서 속단하고 설레발을 치는 모습이라면, 작가는 한 발자국 뒤에서 인물을 조용히 따라가는 모습이랄까.

 

『토지』의 조병수는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지만 악덕한 부모에게 핍박을 받으며 자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소목 일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람답게 살게 된다. 조병수는 이를 두고 구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부모를 용서한 게 아니라, 자신이 용서를 받은 것이라 한다. 부모의 악행과 불구의 몸은 조병수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며, 그 덕분에 겸손한 자세로 내면을 가꾸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병수의 태도에 감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해했던 기억이 난다. 왜 착한 척이야, 했다. 나는 병수가 감내했을 마음의 굽이를 살피고 싶지 않았다. 부모를 용서했다고 해도 믿지 않을 판이었는데, 자신이 용서를 받은 것이라니. 나는 조병수를 읽을 때 찜찜함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기록해두었다.

 

김성민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본 조병수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날뛰는 마음을 굽이굽이 살폈을 그의 마음이 이제야 보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병수를 믿지 못했던 나를 다시 만났다. 나는 조병수의 진심을 왜 믿지 못했을까.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억울하고 화난 마음으로 조병수를 읽으면 병수가 구원받는 마음으로 살아간 진심을 믿지 못한다. 나의 철저한 오독이었다. 오독하지 않으려면 시선이 투명해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토지의 조병수뿐일까. 나는 아직 많은 인물들을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줄곧 비틀어진 마음으로 쓸모없는 독서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용서할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을 것을 용서받게 되면 작가처럼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나도 제대로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가 하고 싶어졌다.

 

2. 나는 무엇을 애도하는가

 

나의 읽기와 쓰기는 애도에서 비롯되며 잃어버린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의 표현이자 사랑이다. 데리다의 말처럼 ‘위로할 길이 없어 슬픔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윤리’일 것이다. (p.188, 「슬픔에는 마침표가 없다」 중에서 )

 

아이가 슬픔 사전이라 불러주니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던 나다. 슬픔이 익숙하고, 외로움이 친구 같은 나다. 왜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듯한 답을 찾은 적은 없다. 이 책의 3장을 읽다 이 문장을 만나 한참을 머물렀다. 읽기와 쓰기가 애도에서 비롯된다. 잃어버린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의 표현이다. 슬픔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애도 중인 것이었나.

 

어제 만난 언니가 요즘 내 블로그에 글이 자주 올라온다는 말을 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바쁜데 나는 왜 블로그에 글을 더 많이 쓰는 걸까. 아무리 터질 것처럼 바빠도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지 않으면 끝날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그리움이 있다. 도무지 찍고 싶지 않은 마침표가 있다. 그것은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머무는 감정과 닮았다. 슬픔인가, 외로움인가. 이름까진 모르겠다.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그 감정을 나는 핵심 감정이라 부르고 있다. 아직까지는 외로움에 가장 근접한 형태다. 그것은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아이러니한 감정에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은 강렬한 마음이 있다.

​

잃어버린 것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움을 애도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애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애도하는 것일까. 태어나는 순간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줄곧 가지고 지냈다. 엄마의 자궁을 통과하던 장면에 있기도 하고, 갓난아기 때 누워있던 작은 방의 장면에 있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가장 가까운 첫 장면은 일곱 살 크리스마스이브다. 분주하게 지냈지만 어디에도 내가 없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어김없이 그런 장면들을 재생시킨다. 아직은 재생이 가능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더 자세하게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더 극적으로 꾸밀 수도 있다. 결핍의 장면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나는 수정을 반복한다. 여러 형태로 내 슬픔을 만난다. 슬픔은 드러나길 바란다. 위로다. 아직 끝나고 싶지 않은 슬픔을 당겨 안는 나만의 위로.

 

슬픔에는 마침표가 없다니, 나는 평생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무기한 티켓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김성민 님의 첫 책이라 예판으로 사고, 가볍게 한 편씩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내 마음이 가라앉는 시기였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되고 내 마음을 대신할 문장을 찾아보게 되는 시기, 다들 그런 거 있지 않나? 그 마음과 단정한 문장이 만나 후루룩 읽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을 읽을 때, 한 편씩 펴서 다시 보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jjeh99'님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걷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40대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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